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90화 (190/430)

# 190화

얼마 전에 제작진이 해랑이 잘생기게 나온 영상을 제공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잘생기게 나온 영상……. 해랑이는 다 잘생겼는데요?]

[음……. 그렇긴 하죠.]

스태프는 내 대답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럼 모노크롬 공식 채널에 있는 영상을 자료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해서 허락했었다.

자료 화면을 제공해 줘도 방송에 사용이 안 될 수도 있고 무슨 용도로 필요한지 일일이 설명 들을 수는 없어서 용도는 정확히 몰랐지만, 잘생긴 걸 찾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용도일 테니까.

‘메인 포지션이 있는 멤버들은 포지션 따라 트레이닝을 했는데 해랑이만 달라서 그럴 수도.’

단체 트레이닝 때도 랩 코너는 해랑과 준해가 같이 맡았었다. 그때 딱히 래퍼란 설명이 나왔던 것도 아니었고.

이번 전담 트레이닝에서도 해랑은 래퍼인 제오를 맡은 게 아니라, 랩과 댄스 교육이 같이 필요했던 만호의 멘토가 되었다.

그래서 해랑이 래퍼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소개가 필요한가…… 하는 예상만 하고 있었는데.

[자, 학교 후배와 만나서 과제를 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에 10분 늦었다. 이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후배는 조금 짜증이 난 상황인 거지!]

처음엔 만호가 무슨 강아지 흉내를 내더니, 잠시 후엔 필요한 자료를 찾아들고 들어온 해랑을 보며 만호가 또 상황극 지시를 했다.

[그리고 내가 그 후배. 흥! 지금 삐진 거 보이죠. 선배는 선배 시간만 중요해요?!]

[……기, 기다렸지? 미안.]

화면 속 해랑은 예상치 못하게 시작된 상황극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만호와 제작진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모른 척할 수 없었는지 어색한 대사를 읊으며 조금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래도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눈치 보듯이 시선을 마주하는 표정만큼은 일품이었다.

제작진도 보기 좋았던 걸까. 화면에 뽀얀 필터까지 깔아놓았다.

‘그, 그건 좋은데 대체 왜 여기서 해랑이가 연기를 하고 있어?’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 궁금했는데 이게 만호식 예능 수련법인 걸까? 예능보다는 연기 레벨이 오를 것 같은 수련법인데.

대사를 어색하게 읊는 것을 봐서 알겠지만 해랑의 연기 레벨은 낮은 편이었다. 아마 3이었던가.

예능 레벨만큼 특히 낮은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낮아서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났다.

다만 한이 덕분에 연기 레벨 항목이 열린 후, 처음 그의 연기 레벨을 확인했을 때 ‘해랑이는 연기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한 기억만큼은 뚜렷했다. 그는 능력치의 편차가 큰 멤버였다.

‘하필이면 가장 레벨이 낮은 예능과 연기가 결합한 상황극의 굴레에 빠져버리다니.’

이렇게 트레이닝 중에도 만호의 지시로 상황극이 갑자기 시작되는 장면이 몇 번 반복되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지 모를 혼란스러운 현장이었으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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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뭐냐 남친 시뮬레이터야?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만호 여친 연기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

└저런 커플 주변에 있으면 보고만 있어도 웃길듯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만 불어도 안 막아준다고 삐지는 개복치 여친이랑 모든걸 얼굴로 무마하는 남친ㅋㄱㅋㄱㄲㅋㅋ

└만호 대신 여주 넣어서 로코드라마로 보고싶다

└원만호 키차이도 나서 완전 여주 재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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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면 이 어설픈 연기도 나름대로 예능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재미는 원만호 씨가 캐리하는 것 같지만.’

잘 받아주는 것만 해도 해랑은 제 몫을 다한 게 아닐까.

시청자들이 웃는 건 주로 만호의 행동과 연기 때문이었지만 해랑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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ㅓ..? 나 유사 안 퍼먹는데 왜 내 입에 들어와있지

심지어 존맛이네?

└하 진짜 아이돌이 이런 거 찍어도 되냐고 당장 구속해 내 마음 불법침입죄로

└백해랑 당신 유죄

└엄마가 같이 방송보다가 저 아이돌 이름 뭔지 알아보래.. 엄마 미안 내가 먼저야 줄서

└내가 원만호보다 잘 어울릴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지만 다음생엔,,,,

└아니 내가 원만호보다 부족한게 뭔데?! 재력이 안돼? 응 안 돼,, 연예대상을 못 받았길 해? 응 못 받았어,,

└윗댓글 자아분열 머냐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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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대회 이후 비주얼로 주목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저번엔 멀리서 지켜보는 체대 선배 이미지였다면 이번엔 오래 사귄 남자친구 이미지인가?

만호가 코믹하게 상황을 풀어나간 덕분에 사람들도 반쯤은 재미로 ‘사랑해’, ‘유죄’ 같은 반응을 남겼지만, 설렌다는 반응만큼은 진심인 것 같았다.

‘난 해랑이 성격을 아니까 방송을 위해 노력한다 싶어서 그냥 기특했는데.’

그의 얼굴에 대한 면역이 없는 사람들에겐 좋은 쪽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만호가 예상치 못하게 주목도를 해랑에게 몰아주자 컬러즈도 신이 나서 글을 마구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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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이 잘생긴 거 동네방네 소문난다 ㄷㄷㄷ

우리끼리만 보기 아까웠는데 정말로 만인의 존잘남이 되어버린 너낌

└내 친구가 방송봤는지 쟤 너가 좋아하는 아이돌 아니냐고 메시지보냄 ㅜㅜㅋㅋㅋㅋㅋ내 플사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난 알고 있었는데도 오늘은 진짜 역대급이었다

└제작진분들도 해랑이 얼굴에 진심이신듯ㅋㅋㅋㅋㅋ 반짝이 효과 안 넣어도 우리 애 자체후광 가능해요

└좋았어 다음은 우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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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컬러즈는 모노크롬의 우주 진출을 노리곤 했다. 100회 팬미팅은 우주에서 하자고 했던가.

‘내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그것까지는 이뤄줄 수 없어.’

음악대상보다 더한 목표 설정은 차라리 음악대상이 현실적이라 할 만하다는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이 흐름을 타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 더 벌어졌다.

[마이 엔터: 아티스트의 능력치가 올랐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뭐? 쿨럭.”

<쉰셋돌>은 주말 방영이라 집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보고 있었는데, 소파 테이블 위에 놓아둔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머금은 커피를 뱉을 뻔했다.

‘혹시 정말로 예능 레벨이 오른 건가?’

그렇다면 내가 계획해서 멤버의 레벨을 올린 첫 케이스가 되는 거 아냐? 예능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 해랑을 만호의 멘토로 지정한 것이었으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이 엔터를 열어보니 역시나 해랑의 옆에 [UP!]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확인한 그의 예능 레벨은 여전히 2.

‘뭐야. 안 올랐잖아……?’

두근거리던 마음이 다른 의미로 덜컹했다.

마이 엔터에 오류가 생긴 거라면 어떻게 하지? 마이 엔터로는 현상 파악만 할 수 있다지만, 그 마음의 안정감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는데.

게다가 마이 엔터는 다시 설치할 수 없는 게임이다. 아마도 이 세계에선 내 핸드폰에만 남아 있겠지.

고장 나서 어플 기동이 안 되기라도 하면 누가 고쳐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온갖 안 좋은 미래를 상상하며 잠시 초점을 잃은 내 눈에, 화면의 한 숫자가 들어왔다.

‘11……?’

레벨이…… 11. 그 앞에 적힌 글자는 ‘매력’이었다.

“매력 레벨이 올랐다고?!”

혼자 살면 혼잣말이 는다지만 지금은 육성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연기 레벨이 오른 게 아닌가 하고 확인해보니 여전히 3이라 실망했는데, 난 엉뚱한 곳만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 엔터의 오류가 아니었다는 안도와 해랑의 레벨이 올랐다는 기쁨이 뒤섞여 오히려 멍해졌다.

‘10이 레벨 최대치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10에서 더 늘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 상황에선 납득이 가는 레벨 상승이기도 했다.

만호 덕분에 코믹해지긴 했지만 전부 해랑의 매력을 보여주는 상황극들이긴 했지.

방송에서 만호가 비주얼 멤버 어쩌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복선이 내 스마트폰 안에서 회수될 줄이야.

매력 레벨 11. 그만큼 사람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비쳤다는 뜻이다. 혹시 이게 끝이 아니라 나중에 더 오르는 거 아니야?!

무의식중에 10이면 오를 것은 다 오른 상태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속에 새로운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방송은 트레이닝을 따라가기 벅차 하던 류현과 헤매던 이담의 모습을 다시 비췄다.

‘더 임팩트를 주려고 일부러 장면을 이렇게 배치한 건가?’

커뮤니티는 방금까지 류현과 이담에 대한 좋지 않은 반응과 방송 감상이 섞여 온도 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치트키 힙합인과 레벨 11짜리 매력을 접하고 기분을 환기했는지 전체적으로 너그러운 분위기로 바뀐 상태였다.

여기서 류현과 이담이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자 아까와는 또 다른 반응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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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어디서 저런 메보 발굴해온것임ㅋㅋㅋ

궁금해서 더클랜 최신곡 찾아들어보니까 저정도로 잘부른단 느낌은 확 안 오는데 어케 구해왔지

└아깐 엥 쟤가 메보? 이랬는데 메보 맞네ㅇㅇ

└사실 난 아까도 이라솔이 계속 다시 불러보라길래 뭐가 잘 안되는구나 했지 아니었으면 걍 잘 부른다고만 생각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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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은 다행히 부담감을 털어내고 성운이 요구하던 보컬 스타일을 찾았고, 조마조마하게 방송을 지켜보던 더클랜의 팬들은 안도하며 자신 있게 이담을 영업하고 나섰다.

영업하면서 꺼내 드는 것이 전부 거친 힙합곡이라 영업이 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것까지 자꾸 컬러즈를 떠올리게 해.’

그래도 모노크롬이 6년 차가 될 때까지 고여 있던 컬러즈만큼 한이 쌓여 있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룹의 컨셉은 거친데 팬덤에는 이담처럼 마음 약한 사람이 많아 보였다.

인기가 많지 않은 중소 아이돌을 응원하면 어쩔 수 없이 소심하고 방어적이 되는 걸까. 조금만 분쟁이 일어나도 타격이 크니까.

그리고 아까는 류현을 검색하면 비꼬는 듯한 글이 꽤 많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류현의 팬들도 당당히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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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 춤선 좋아하는 사람 나야나

세상 사람들 다 알아봐주시라구요(GIF 이미지)

└222 류혀니 댄스 스타일이 있는 건데 왜 못춘다고 바득바득 우기는지 모를일

└이게 다 베터가 동선 수납해서 그렇잖아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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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이 팬들만 알아보던 류현의 춤선을 발굴해서 끄집어낸 모양이었다.

제일 비중 큰 보컬 파트를 못 얻어서 실망감을 보이던 팬들은 곧바로 화제를 바꿔 류현의 춤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류현의 춤 실력이나 안무 동선과 관련해서 많은 말이 오갔던 듯했다.

‘중소가 아니라도 소속사 욕먹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구나.’

러너스하이가 활동하는 동안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거기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마이 엔터가 설치된 스마트폰은 혹시라도 닳을까 봐 조심조심 다뤘는데 기왕 해랑의 레벨을 확인하느라 켠 김에 멤버들의 능력치도 확인하기로 했다.

‘티저 공개 때도 반응이 좋아서인지 우형이 작곡 경험치가 올랐었으니까.’

멤버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 외에도 레벨에 영향을 줄 만한 요소가 있으면 경험치가 쌓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멤버들이 방송에서 보여준 분야의 경험치가 어느 정도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류현에게 계속 시범을 보여주는 장면이 방송에 나와서인지 재민의 댄스 경험치가 제법 올랐다.

‘이것도 나중에 11로 올랐으면 좋겠다……. 너무 과한 욕심인가?’

물론 지금도 만족스럽지만 기대하는 건 자유니까 괜찮겠지.

처음엔 한 퀘스트 안에 무수한 과제가 있는 것 같아서 막막했는데, 이건 과제가 아닌 새로운 목표로 느껴졌다.

가끔 ‘모노크롬은 왜 자기네들 활동 안 하고 남의 그룹 돌봐주고 있냐’ 하는 식의 반응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희생한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길을 고른 것이다.

정답이나 길은 하나가 아니다. 멤버들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이 점을 깨닫게 되었다.

‘같이 성장해서 그런지 신셋한테 정도 든 것 같아.’

처음부터 끝이 정해져 있는 활동이라 아쉽지만, 좋은 반응이 많은 것을 봐선 무탈하게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지.

우리가 매니지먼트까지 담당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제는 각자의 활동으로 돌아가야겠지만 말이다.

‘가르치던 학생 졸업시키는 기분이야.’

이제 다음은 프로듀서와 연습생이 아니라 선후배로 만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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