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89화 (189/430)

# 189화

“와……. 정말 연예인이네요. 아니, 연예인 맞지만.”

촬영에 동행한 홍보팀 직원은 단군대 축제 당일 해랑을 보고 재학생이냐고 물어봤던 그 직원이었다.

원래 외부인이 학교 시설을 신고한 목적대로 사용하는지 지켜보는 역할로 동행한 것인데 지금은 감시보다는 구경하는 자세였다.

그녀가 일도 잊고 감탄한 이유. 바로 카메라 앞에 있는 해랑 때문이었다.

학교 선배를 짝사랑해서 대시하지만 번번이 철벽에 막혀 버리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러했다.

뮤직비디오 주인공이 반한 그 선배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결국 두 사람이 잘되면서 주인공은 짝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마저 청춘의 한 장면이라는 느낌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리고 그 ‘선배가 좋아하는 사람’ 역할로 낙점된 것이 해랑이었다.

‘원래는 연기 경력이 있는 한이가 물망에 올랐었는데.’

연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아주 짧게만 나올 예정이라 연기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뮤직비디오 주인공이 대시하던 선배는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 취향이라 연하 스타일의 주인공에겐 눈길도 안 줬다는 것이 마지막에야 밝혀진다.

그래서 주인공과는 차이점이 확연히 느껴지는, 어른스러운 매력을 보여줄 사람이 필요했다.

한이도 배우상이고 어른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주인공과 더 대비되는 이미지로는 냉미남 계열의 해랑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해서 그를 골랐다.

‘맨날 뺏기는 컨셉만 하다가 여기선 빼앗는 역할이라니.’

1년에 걸쳐 악동의 업보를 조금씩 회수했는데, 어쩌다 보니 프로젝트 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 그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마치 모노크롬이 맡던 그 악동이 잘 성장해서 멋진 어른이 된 것 같잖아.

방송에서도 신셋은 후배, 모노크롬은 선배 구도를 유지했다. 덕분에 노리지 않았는데도 뮤직비디오 스토리에서도 자연스레 연상과 연하의 구도로 이어졌다.

악동의 자리는 이제 악동이 어울릴 만한 후배에게 넘겨주면서 모노크롬은 깔끔하게 악동과 작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뮤직비디오의 메인은 어디까지나 신셋이고 해랑이가 아니니까.’

괜히 우리가 분량을 가져가면 안 좋은 소리 듣기 십상이라서 짧게만 나오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다.

그래도 주인공에겐 관심도 안 주던 선배가 선택한 사람이라는 게 이해가 될 정도의 매력은 보여줘야 하고.

너무 눈에 띄면 안 되지만 너무 눈에 안 띄어도 안 된다는, 이 상충하는 조건을 어떻게 맞춰야 할 것인가.

[메이크업을 안 하고 찍어도 되지 않을까요.]

[와, 자신감.]

[그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메이크업은 필요하지.]

내가 고민하고 있자 해랑은 노메이크업이라는 대담한 발상을 꺼냈다. 옆에서 듣던 한이가 기함했지만 이유 있는 자신감이라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역시 촬영에 생얼은 좀……. 그리고 해랑은 아이, 립 메이크업을 세게 하는 게 아니면 맨얼굴과 크게 차이가 없기도 하고. 오히려 생얼이란 점이 더 튀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최대한 어른스러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신셋이 귀여운 스타일인 게 도움이 됐어.’

쉰셋이지만 청춘이고 싶다는 만호의 요구 때문에 신셋 멤버들은 전부 귀여운 신인 느낌으로 스타일을 맞춘 상태.

그래서 해랑은 신셋 멤버들과 상반되도록 더 어른스럽게 꾸몄다. 오히려 나이보다 더 들어 보여도 상관없었기에 가감 없이 어른스러운 아이템을 추가했다.

백해랑 팀장의 재등장이었지만 이번엔 반깐머리가 아니라 완깐머리였다. 거기에 심플 오브 심플 롱코트에 빈티지한 느낌의 안경까지.

“부장님이 쓸 것 같은 금테 안경으로 골라왔는데 왜 저것까지 잘 소화해내는 거야?”

“저번에 이상한 동물 셔츠도 잘 어울리던 거 보셨죠. 한번 제대로 연구해 봐야 해요. 뭘 입어야 이상해 보일지.”

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왜 해랑을 이상하게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 참 재밌는 컨텐츠겠는걸.

LA에서 멤버들이 찍었던 이상한 패션쇼의 해랑 버전이라고 하면 되려나. 머릿속 아이디어 목록에 한이의 아이디어를 저장했다.

“준해 안경은…….”

“그건 논외.”

우형이 준해의 안경을 언급하자 한이는 곧바로 논외라며 선을 그었다. 모노크롬과 컬러즈 사이에서 준해의 안경은 그냥 언급만 해도 입을 다물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다.

해랑의 얼굴 위에서도 미묘하게 겉돌던 그 안경과 달리, 지금 저 부장님 안경은 오히려 평소와 다른 매력을 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와. 예능 촬영할 때 본 얼굴이 끝판왕이 아니었다니.”

“너도 선배님의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목소리가 들려오는 옆을 쳐다보니 도한과 제오가 촬영을 구경하며 대화 중이었다.

‘얘네는 언제 이렇게 마음이 통하기 시작한 거야?’

두 사람은 트레이닝 때 붙어 있더니 오늘은 마치 절친처럼 가까워 보였다. 제오는 원래 얼마 전까지 류현과 붙어 다니지 않았나.

제오는 왜 해랑의 외모 찬양을 하고 있으며 도한은 왜 자기 칭찬을 들은 것처럼 뿌듯해하는 건지.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구경꾼으로 몰려든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전에 내가 뒷모습도 잘생겼다고 한 사람 저 사람이야!”

“뒷모습이 문제가 아닌데……?”

“그치? 전에 회사에 일 있다고 선배 데려가는데, 나도 그 회사 취직하고 싶더라니까.”

준해의 과 후배로 보이는 이 여학생은 조금 전 엑스트라로 참여한 대신 좀 더 가까이서 구경할 기회를 얻어 내 뒤쪽에 서 있었다.

동기와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제 때 준해네 학과 부스에 있었던 학생인가 보다. 그때 해랑을 목격했구나.

‘뉴마에 취직하고 싶었다니…….’

원래 좋아하는 연예인이 소속된 회사에 입사하는 상상은 한 번씩은 해 보기도 하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뉴마에는 회삿돈 탕진하는 이사가 한 명 있어서 별로 입사를 추천해 주고 싶지 않은걸.

해랑의 옆에 앉아있는 다봄도 이 촬영을 즐기고 있었다. <최고의 팀메이트>에서 아이돌 복근 사진을 볼 때와 흡사한 표정이었다.

‘매력 레벨은 알뜰살뜰하게 잘 쓴 것 같아.’

예능 레벨 2여서 예능적인 면으로는 방송에 잘 나올지 모르겠지만, 무려 10이나 되는 매력 레벨을 선보일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다른 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있는 능력치는 최대한 활용해야지.

이 장면으로 외부 촬영은 끝. 재민이 따라온 이유인 강당에서의 안무 촬영을 마치고 우리와 함께한 뮤직비디오 촬영은 완료되었다.

***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예능 촬영 스케줄은 점점 줄어들었다.

연예인들은 보통 연말에 바빠서 합동 스케줄을 잡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앨범 발매 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할 일은 이쯤 마무리되어야 하는 게 맞았다.

우리가 슬슬 손을 떼기 시작했다는 것은 신셋의 앨범이 완성되어 간다는 증거. 발매에 앞서 신셋의 티저도 하나씩 공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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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곡 잘 뽑았다

진짜 신인 아이돌 같음. 신인 맞지만ㅋㅋㅋㅋ

└ㄹㅇㅋㅋ

└타이틀곡 투표때 다른 곡 뽑았는데 나온거 보니까 괜찮네ㅋㅋ

└노래방 가서 부르면 신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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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 원만호 왜 귀여움?

최애 자리 위협하는데

└딱 덕후몰이상임

└티저 보니까 춤은 실망인디; 얼굴만 믿고 아이돌 하나

└빽으로 데뷔한다고 업계에 소문 다 퍼짐 ㅠㅠ

└벌써부터 신인 견제하는 것 봐라^^ 만호 꽃길만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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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타이틀곡 투표 때 일부 공개된 타이틀곡이었지만, 우형과 성운은 멤버들에게 맞춰 추가로 수정을 거쳤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미 아는 곡인데도 좋은 평가를 남기며 기대했다.

방송이 스포일러가 되지 않도록 티저 공개 일정을 맞춘 덕에, 이제 <쉰셋돌> 방송은 마치 활동 비하인드와도 같은 위치가 되었다.

‘어느 신인 그룹이 공중파 방송국을 비하인드 공개 플랫폼으로 사용하겠어.’

금수저도 이런 금수저가 없지.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딱 1집 활동만 하고 끝나니까.

그리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시동을 걸자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파트 배분이었다.

파트 배분은 우리 사이에서도 꽤 골칫거리인 문제였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누가 파트를 더 가져가느냐’에 관한 화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이닝하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이담이 보컬 스타일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본 시청자들은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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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솔도 계속 다시 불러보라고 하는데 음..;

다른 멤버도 있는데 굳이 저 파트 줘야했나 싶기도

└티저에선 괜찮던데

└라이브 실력이 안 되면 걍 기계 보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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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돼서 실력을 제대로 못 펼쳤던 거지만…….’

데뷔 리얼리티를 표방하다 보니 제작진은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벽에 부딪혔다가 성장하는 모습이 청춘답고 좋다고 생각한 거겠지. 일부 시청자들은 성장한 모습이 나오기 전에 실력을 판단해 버린다는 게 문제였지만.

원래 시청자들의 반응 정도만 보고 다른 팬덤의 반응까진 안 보지만, 신경이 쓰여서 조금 찾아보니 역시나 류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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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은 보컬 밀리고 할 거 없어서 춤만 주구장창 배운건가ㅜㅜ 계속 댄스수업 받는것만 나오니까 좀 웃기네ㅎ

@이딴 소리 할 거면 써방이나 제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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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SNS엔 이렇게 적나라한 글이 꽤 있었다. 류현이 춤을 못 추기 때문에 계속 댄스 트레이닝만 받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재민이 트레이닝을 따라올 정도면 걔도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데…….’

팀 미로의 트레이닝 방식이나 재민의 스타일을 모르니까 하는 소리겠지.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를 내가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감추지 않고 꺼내는 것은 좀 놀라웠다.

애초에 언급량이 많은 탓에 이런 이야기들이 더 내 눈에 띄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팬덤의 분위기도 많이 다른 것이 느껴졌다.

‘컬러즈도 무조건 좋은 감상만 남기는 건 아닐 테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보통 숨어서 말하는 것 같던데.’

예전에 우형이 출연한 직업 토크쇼를 봤을 때도 그랬었지. 대나무숲을 찾듯이 뒤로 숨어 있다 나오던 그들.

긴 비활동기에도 멤버들만 보고 남아 있던 소수 팬은 그나마 있는 판이라도 지키려고 그런 방식을 취해왔고, 신규 유입된 컬러즈도 기존 컬러즈의 성향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정착된 듯 보였다.

그에 비해 류현이 소속된 러너스하이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러너스하이의 연차보다 아이돌 팬 경력이 긴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멤버를 평가하는 듯한 반응이 많았다.

반대로 이담의 그룹인 더클랜의 팬덤은 어떠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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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ㅜㅜ 이담이 부담돼서 그른가보다ㅜㅜ

티저 음색 진짜 좋았는데 뒤에서 많이 노력한듯 ㅜㅜ

└나중에 잘하는 거 보여주려고 일부러 저렇게 편집한 것 같기두하구..근데 보는 나는 맴찢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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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떡밥 하나 뜰 때마다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던 예전 컬러즈가 생각나…….’

그래서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간단 말이지.

왠지 살얼음판 같은 두 사람의 분량이 지나고 다음은 도한과 제오가 함께 나오는 분량.

도한이 래퍼 포지션으로 붙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커뮤니티에서 ‘힙합인’은 가히 치트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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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인 돌아와줄 거라고 믿고있었다구

└공중파 아이돌이라 디스랩 못쓰잖아ㅠ

└zbs 디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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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그림을 원하는 걸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두 사람의 트레이닝 장면은 아주 평화로웠다.

두 사람이 하는 것은 수록곡으로 들어갈 데모곡의 랩 파트에 가사를 붙이는 것. 주제는 ‘나라는 가치만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느낌’이었다.

[으음. 라임은 아주 좋은데 이 정도로 가사가 셀 필요는 없어…….]

도한이 뭘 썼는지 몰라도 방송에 내보낼 만한 것은 아니었는지 편집되었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밖에 없었다.

가사를 확인한 우형이 카메라에 비치지 않게 노트를 뒤집어서 다시 도한에게 돌려주었다.

그 와중에 옆에 앉아 있는 제오는 뭔가 경쟁심을 느꼈는지 도한의 노트를 흘끔하더니 자신이 적던 가사 위에 선을 긋고 다시 코를 박고 열중했다.

다음은 예능 레벨의 격차를 보이는 조합.

내가 촬영 장면을 지켜본 게 아니었기에, 해랑과 만호가 무엇을 했는지는 방송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뭘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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