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지금 오를 만한 레벨은 딱 하나뿐이었다.
확인했더니 예상대로 한이의 연기 레벨이 올라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레벨이 오른 요소가 내 앞에 있으면 알림으로 오는 건가?’
연기 레벨 항목이 처음 열렸을 때 확인한 한이의 연기 레벨은 6. 그 이후에 연기 트레이닝을 하면서 어느새 7로 올라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올라서 현재 8.
지금은 한이도 숙소로 돌아간 상태. 지금 연기 트레이닝이나 촬영을 하고 있지도 않은데 레벨이 올랐다는 것은, 이 순간에 한이의 실력 자체가 늘었다는 게 아니라…….
‘한이의 실력을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레벨이 올랐다고 보는 게 맞겠지.’
드라마가 공개되고, 그것을 본 많은 사람이 한이의 연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반영하여 레벨이 오른 듯했다.
해랑의 매력 레벨이 처음 오를 때도 그랬다. 스타일을 바꾸자마자 오른 게 아니라 촬영한 후에 올랐었지.
마찬가지로 우형이나 해랑의 작곡 레벨도 곡이 공개된 후에 부쩍 올랐던 것 같고.
꼭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게 아니더라도, 스태프나 주변인이 보는 것만으로도 레벨에 영향을 주는 듯했다.
‘시스템 공부까지 새로 해야 하냐고…….’
구조를 안다고 해서 내 임의대로 레벨을 막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올리는 데 참고는 될 테니까.
경험치는 정말 멤버들이 연습하고 노력한 ‘경험’이 반영된 것 같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 다른 사람들도 실력이 좋다고 평가하면 그만큼 레벨이 오른다……는 것이 내 추측이었다.
그래도 사람마다 잘한다, 못한다, 판단하는 기준이 전부 다를 텐데. 그 평균치가 반영되는 걸까?
그렇다면, 멤버들의 실력을 고까운 시선으로 저평가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여준다면 레벨 상승치가 낮아지는 게 아닐까.
‘……뉴마 아냐?’
팬미팅에서 블랙 회사란 소리를 듣고 한 컬러즈가 ‘뉴마 아냐?’ 하고 중얼거렸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그러고 있을 줄은.
설마 내가 온 이후로 멤버들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게, 그간 뉴마에서는 저평가만 받아오느라 묻혀 있었던 실력이 발굴되어서일까.
이런 도움 안 되는 뉴마 같으니.
그때의 뉴마는 잘 모르지만 가끔 이런 요소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대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레벨 시스템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선 많은 사람한테 실력을 보여주는 게 좋은 건 확실해.’
한이의 보컬 레벨이 현재 8 후반인데, 연기 레벨이 벌써 8이란 것은 재능도 있고 실력도 있다는 뜻이다.
메인 보컬뿐만 아니라 메인 연기자를 해도 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상승 속도를 봐서는 이러다가 연기 레벨이 보컬 레벨을 앞서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이는 연기보다 보컬로서 뭔가를 이루고 싶다고 했지만…….
어쨌든, 한이의 연기 레벨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이는 시청자는 컬러즈뿐만이 아니었다.
그냥 드라마가 재밌어 보여서 본 사람도 있겠지만, 도아가 나온다는 소식에 시청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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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경 배우님 멜로드라마 찍으셨는데 이미지 엄청 다르다
여기선 엄청 러블리하셔ㅠㅠ(이미지)
└거기서 잘 살고있구나.. 행복하면 됐다..
└순경님 다시 태어나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 같아서 찡함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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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도아를 ‘한 순경’이라 칭하는 이들은 도아의 전작, 스릴러물 드라마의 팬들이었다.
꽤나 인기 있는 드라마였는지 종영하고도 작품의 팬들이 모여 있었다. 도아는 전작에서 순경 역할을 맡은 듯했다.
말하는 게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같아서 무슨 역할이었나 알아보니, 동료 대신 총을 맞고 순직한 캐릭터였다나.
캐릭터의 죽음이 제법 비중 있게 다뤄졌는지 모두에게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도아 씨 첫인상을 생각하면 그런 작품이 잘 어울리긴 해.’
원래는 스릴러나 수사물에 어울리는 이미지로 정착되어 있었는지, ‘윤도아’라는 배우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이미지 변신에 놀라워했다.
배우로서 좋은 인상이 남았는지 차기작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 자신도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는데 남들 눈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진 거겠지.
이번 웹드라마가 한이뿐만 아니라 도아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 듯해서 다행이었다.
한이의 데뷔작이자 도아의 멜로 데뷔작. 그녀가 배우로서 승승장구하면 한이와 함께 연기했던 것도 알려지면서 서로 좋은 영향을 더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두 사람 다 새로운 분야에서 스타트를 잘 끊은 것 같아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
“혹시 연기가 더 하고 싶다거나 그런 기분이 들어?”
“으음. 글쎄요? 그건 왜 물어보세요?”
“그냥. 드라마가 끝나고 기분이 좀 달라졌나 해서.”
“기분이야 항상 좋죠.”
“……그러면 다행이고.”
멤버들이 레벨이 오를 때면 조금 더 자신감이 늘어난 것 같다거나, 중심이 잡힌 것 같다거나, 그런 게 내 눈에도 보였는데.
한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물어보니 별생각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레벨이 올라봤어야 무슨 기분인지 알지.’
다른 멤버들처럼 잠시 벽에 부딪혔다가 성장한 게 아니라, 이 레벨 8이 원래 지닌 실력이어서 그런 걸까. 처음엔 경험치가 부족해서 더 낮은 레벨에서 시작했을 뿐이고.
이런 사람을 재능러라고 하던가. 하마터면 이 재능이 계속 묻혀 있을 뻔했다.
‘기본 실력이 이 정도면 분명 잠재력이 엄청난 것 같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보컬이나 댄스 같은 다른 능력치는 모노크롬 활동을 하면서 같이 활용할 수 있는데 연기 레벨은 활용법을 잘 모르겠다. 앞으로 매번 스토리 있는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 외에 연기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개인 활동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보통은 개인 활동을 할 연차이긴 한데 지금 모노크롬은 특수하게 그룹 활동을 더 우선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이 본인도 연기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더 모르겠다.
꼭 연기 활동을 밀어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묻어두기에는 능력치가 좋아서 괜히 미련이 남았다.
내가 당장 어찌할 수 없으니 활용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 자세히 생각해 보고.
한이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변화가 조금 생기긴 했다.
뉴마 소속 연기자 두 명이 주연을 맡아 좋은 반응을 얻어내자 회사 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어, 한이 씨. 어제 마지막 회 올라왔던데.”
“아, 안녕하세요. 보셨어요? OST도 나왔는데!”
예능 때문에 잠시 모여서 회의하고 해산하는데, 복도 너머에서 한이가 배우팀 직원과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이렇게 배우팀 직원들이 한이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원래 한이는 사교적인 데다가, 멤버들과 같이 항상 회사에 있었기에 자주 보는 직원들과는 친분이 있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소속 배우랑 비슷하게 대우하는 느낌?’
아티스트팀과 배우팀 사이에는 큰 벽이 있었는데 같이 일을 해 보니 그 벽이 낮아진 듯했다.
게다가 한이 외에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진 것을 보면 모노크롬이 팬층이 있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체감한 게 아닐까.
우리가 앨범을 내고 음악방송에 출연하면 배우팀 사람들은 ‘아이돌은 원래 그렇게 활동하지.’ 하고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겠지.
그런데 대상 연예인들과 함께 일하고, 공연도 나름대로 성황리에 끝마쳤고, 드라마에 팬들이 시청자들로 유입되니 그들도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열심히 정상화했다는 걸 회사 사람들도 슬슬 알게 되는 것 같다고!’
제일 힘쓴 건 멤버들이겠지만 나도 모노크롬 팀으로서 뿌듯할 만한 일이지.
회사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
특히 최근엔 공연과 MD 판매로 수익도 좀 났겠다. 회사 눈치 볼 일도 없었다.
굿즈라는 게 한번 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특히 연말에 맞춰 내야 할 굿즈도 있었다.
‘바로 시즌그리팅!’
연말에 많은 문구 브랜드가 다음 해를 위한 다이어리를 출시하지 않던가.
이 시즌그리팅이란 것도 그런 것이었다. 달력, 다이어리 등이 들어간 일종의 굿즈 패키지.
모노크롬이 6년 차가 될 동안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연말까지 제대로 챙기자 컬러즈는 뉴마의 변화가 새삼스레 와닿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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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시그?? 뉴마 뭔일이냐
지금까지 내달라고 빌어도 싹 다 무시하더니 갑자기..ㅋㅋㅋ 물론 사긴 할 건데 기분이 좀 그렇네..
└윗대가리가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도 퀄리티는 신경쓰는 것 같아서 다행.. 굿즈 기획 누가 하는진 몰라도 오래 일해주세요
└나 지금 예약판매 걸어둔것만 몇개야.. 미니크롬도 빨리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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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시즌그리팅은 ‘그리팅’이라는 말처럼,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는 인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걸 내야 할지 조금 고민하긴 했는데.’
일단 내년까지는 내가 모노크롬을 책임질 수 있을 테니 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멤버들이 그룹 유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해 왔는데 내 퀘스트가 끝난다고 모노크롬이 끝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리고 마침 사용해야 할 소스들이 있었다.
이전에 스포츠카를 대여해서 찍은 사진처럼 나중에 일 년을 되돌아볼 용도로 준비한 것들이 있었는데, 이 시즌그리팅은 마침 그것들을 공개하기 좋은 기회였다.
사진들은 작은 포토앨범으로 시즌그리팅 구성에 추가되었고 메이킹 DVD에도 멤버들이 사진을 보며 멘트하는 영상이 들어갔다.
‘뭔가 용도가 있어서 지출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시작했던 건데 적재적소에 사용했으니 회사에서도 할 말 없겠지.’
돈을 제대로 벌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여주니 덕분에 사장은 조용했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사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
하나 해결하면 하나가 나타나고.
‘무슨 번호표 뽑고 기다리던 것도 아니고.’
이전에 최 비서에게 ‘웬만하면 메일로 처리하도록 전해달라’ 하고 지시해 뒀는데, 이렇게 굳이 이사실로 찾아오면 돌려보내기도 뭐했다.
“급한 용건이 아니면 수고스럽게 찾아오실 필요 없이 최 비서 통해 남겨주셔도 좋았을 텐데요.”
“그리 급한 용건은 아니긴 한데, 이야기 좀 나눠볼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이사님과는 좀체 대화를 나눌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할 말은 간접적으로 전달하란 것을 돌려 말했는데 상대방은 넉살 좋은 얼굴로 넘겨버렸다.
급한 일도 아닌데 왜 왔냐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내가 막 나가는 것은 아니라 쫓아낼 수도 없었다.
‘사장이 직접 찾아오긴 껄끄러워서 대신 보낸 건가.’
내 맞은편에 앉은 이 사람은 뉴마 엔터테인먼트의 권진헌 기획실장. 배우팀 직원들이 전부 그렇지만 이 사람도 물론 사장 라인이다.
내가 뉴마에서 일하며 종종 아티스트팀과 배우팀은 건물만 같이 쓰는 다른 회사 같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다.
뉴마 조직도는 마치 두 회사를 합쳐놓은 것 같은 구조였다. 아티스트와 배우 매니지먼트가 따로 나뉜 것은 당연한데, 기획실도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아티스트팀을 담당하던 허용석 기획실장은 뉴레인으로 소속을 옮겼고 지금은 내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으니, 이 사람은 배우팀만을 담당한다.
“저희가 제대로 제작 투자를 한 건 이번 웹드라마가 처음인데, 반응이 괜찮아서 이후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윤도아 씨에 대한 반응도 좋고요. 아, 물론 유한이 씨가 주연을 맡은 게 큰 반응을 끌어낸 요인 중 하나겠죠.”
칭찬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선 예외다.
‘아마 칭찬만 하러 온 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또 뭔가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탐이 난 게 아닐까.
사장은 사업만 하는 사람이고 알기 쉬운 타입인데 이쪽은 좀체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원래 극단에 속해 있던 사람이라 했던가. 배우 일을 하다가 사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상대는 내가 겉치레 인사에 관심이 없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지 서론을 길게 끌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조직이 개편되고 이제 슬슬 안정되어서 저희도 이렇게 다른 쪽으로 영역을 넓혀가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이사님도 좀 더 다른 쪽으로 업무 범위를 확장하실 생각이 없으신지요.”
“다른 업무라 하시면?”
“신인 육성 같은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