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83화 (183/430)

# 183화

어쩐지 겨울인데 반소매 차림으로 아무렇지 않게 바로 나간다 했어.

실내는 난방이 따뜻하게 되어서 한이는 자신이 지금 무슨 의상을 입었는지도 잠시 잊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본 영상이 떠올랐다. 한겨울에 산책하러 나가자고 조르더니 나가자마자 춥다고 들어가자고 조르는 강아지 영상.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하면서 가끔 이렇게 사람을 힘 빠지게 만든다니까.

‘컬러즈 선정 가장 영업팀에 잘 어울리는 멤버가 한이였는데.’

이런 모습을 봐선 의외로 영업사원에는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촬영을 위해 유리창 앞에 앉은 한이는 테이크아웃 컵을 든 왼팔을 창가에 걸치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오. 커피 광고 한 장면 같아요.”

“그래요?”

포토그래퍼의 칭찬에 한이는 커피 컵을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다.

정말 광고처럼 포즈를 취하자 포토그래퍼는 웃으면서 그 장면도 카메라에 담았다.

“패션 잡지니까 옷도 한번 강조해 주시고.”

“그건 또 제가 잘하죠.”

한이는 주문에 따라 컵을 창턱에 내려놓고 다른 소품인 가방을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누가 봐도 ‘지금 가방 PPL 중입니다.’라는 듯한 포즈. 정말로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포토그래퍼는 “좋아요!”라며 또 셔터를 눌렀다.

지켜보던 스태프들도 다 웃고 있는 게, 둘 다 반쯤 장난으로 찍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건 B컷으로 공개되려나?’

협찬 물품을 이렇게 강조해주면 브랜드 입장에서도 좋을 테고. 요즘은 이렇게 대놓고 광고하는 기법도 재미있어서 잘 먹히기도 하니까.

우리가 팬미팅을 위해 제작했던 광고 VCR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팬미팅 이후로 광고 찍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많아졌지.’

팬미팅 이후로 컬러즈가 상상하는 주제엔 이런 것도 추가되었다. 멤버들은 무슨 광고를 찍으면 잘 어울릴까.

그리고 한이는 커피 광고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사람들이 ‘커피 광고 모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었다.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도련님 이미지?

한이는 가끔 까불까불할 때도 있긴 하지만 비주얼을 생각하면 잘 어울리긴 하지.

‘잘 어울린다고 진짜 광고 모델로 불러주는 건 아니라서 상상하고 나면 좀 허무하지만…….’

컬러즈는 ‘아, 상상 잘했다!’ 하고 재밌게 끝낼 수 있지만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나로선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컬러즈가 보는 멤버들의 이미지가 어떤지는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재미있는 글이었다.

그 외엔 해랑은 자동차 광고가 잘 어울릴 것 같다거나, 우형은 라이프스타일숍 같은 이미지가 어울린다거나.

준해는 우유, 아이스크림 등 귀여운 이미지의 상품이 의견으로 나오다가 ‘안경’이란 두 글자가 모든 것을 압살했다.

커피 광고의 정반대 이미지로 꼽히는 멤버라면 재민.

‘메인 댄서라 그런지 차분한 것보단 활동적인 게 잘 어울리긴 해.’

톡톡 튀는 스포츠웨어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재민은 지금 뭘 하고 있냐면, 소품용 화이트보드를 자신의 미적 감각대로 꾸미고 있었다.

파란색 포인트가 들어간 흰색 타이 스카프를 매고 마커펜을 들고 고민하는 모습이 제법 마케팅팀 직원처럼 보였다.

그러나 옆에 있는 준해와 나누는 대화 수준은 회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회사에선 바보 같은 말 안 쓴다니까. 이건 학교 칠판에나 적는 거지.”

준해는 하늘색 셔츠에 흰색 반바지, 벨트로 포인트를 준 스타일. 저번에도 그랬지만 회사원 차림이어도 어려 보이는 게 딱 현재 신분처럼 인턴 느낌이랄까.

그는 옆에서 보드 지우개로 한구석에 적힌 글씨를 지웠다. 지워지다 만 잔해를 보니 재민이 ‘준해 바보’라고 적었던 모양이다.

“난 회사에서 바보 소리 들었는데.”

“누가 너보고 바보래?”

“한이 형이요.”

바보의 뉘앙스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지금 말하는 건 ‘너 바보냐?’가 아니라 ‘이 바보야!’ 정도였나 보다. 그렇다면 안심이고.

불퉁한 표정으로 말하기에 회사에서 정말로 안 좋은 소리를 들은 줄 알고 아티스트 보호 모드가 될 뻔했잖아.

“어쩌다 바보 소리를 들었어?”

“카페에서 아이스 핫초코 시켜달라고 했더니.”

“바보야…….”

재민의 대답에 준해의 입에서 바로 ‘바보’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마 한이가 이런 얼굴로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재민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는지 ‘아이스 핫초코’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에 얼음을 넣으면 위로 뜨잖아요? 뜨거운 핫초코에 얼음을 반만 넣으면 아래는 뜨겁고 위만 차가워지니까 아이스 핫초코가 되는 거예요.”

“그래도 어차피 얼음이 녹아서 금방 미지근해질 텐데?”

“시간 지나면 미지근해지는 건 아이스 초코도 핫초코도 똑같은데요. 그냥 그 시간이 빠른 거죠.”

차분차에 이어서 이건 무슨 새로운 음료란 말인가.

황당한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이론상으로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짧은 순간만 맛볼 수 있으니까 더 맛있는 거예요. 아이스크림 튀김처럼.”

아이스 핫초코라는 이상한 주제에서 시작한 대화가 갑자기 철학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만 즐길 수 있기에 더 좋은 거라니.

‘바보가 아니라 천재 아냐?’

재민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자기만의 철학이 있었다.

“그럼 형은 아이스 핫초코가 메뉴에 있으면 그것만 먹을 거야?”

“아니. 난 아이스 초코.”

그럼 결국 그냥 아이스 초코를 잘못 말한 거 맞잖아…….

내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아마 지금 내 표정도 아까 준해 표정과 똑같아지지 않았을까.

준해는 방금 자신이 글씨를 지운 보드 위에 ‘명재민 바보’라는 글을 써넣었다.

마무리가 어설프지만 그래도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영업사원에는 재민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뷰이라이브에서 컬러즈한테 그대로 말하라고 해야지.’

멤버들의 말은 믿고 보는 컬러즈니까 아이스 핫초코도 금방 영업할 수 있을 것이다.

멤버들이 좋아한다는 음료와 차분차만 마신다는 컬러즈의 홈카페 메뉴가 하나 더 늘어나겠지.

잘 맞는 두 사람은 잠시 후에 촬영이 있을 예정이라 이렇게 알아서 잘 놀게 두고, 나는 촬영 중인 쪽으로 다가갔다.

한이 다음 순서로 촬영 중인 우형은 소품인 책상에 반쯤 걸터앉은 느낌으로 기대 있었다.

베이지색 여름용 재킷을 걸친 모습은 댄디라는 말로 표현하면 딱 맞지 않을까.

‘저번 촬영이랑 팬미팅 땐 계속 신입 막내 캐릭터였는데.’

갑자기 사장으로 승진하다니 성공했구나.

그러나 성격상 신입 캐릭터가 더 편했는지, 이번 ‘젊은 사업가’ 캐릭터는 이미지를 잡는 데 어려움을 조금 겪는 듯했다.

“조금 더 프로페셔널한 느낌으로. 약간 거만해도 좋아요.”

포토그래퍼가 자세한 요구를 하자 우형은 턱을 조금 더 치켜들고 눈을 내리깔았다.

근엄할 것까지는 없지만 오피스룩이다 보니까 이지적이거나 냉철한 분위기를 원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은 메이크업도 의상도 따뜻한 느낌. 포토그래퍼가 요청한 ‘내려다보는 듯한 웃음’을 지어 봐도 왠지 ‘사람 좋은 웃음’이 되었다.

‘무대 위에선 역시 아이돌 메이크업의 힘이 꽤 컸나 봐.’

보통 컨셉이 강한 무대를 할 땐 우형의 올라간 눈꼬리를 강조하는 쪽으로 아이메이크업을 강하게 했다.

그러니 똑같이 웃어도 무대 위에선 거만하거나 나른한 웃음으로 보였던 게 지금은 왠지 따스한 웃음으로 보인다고 해야 하나.

원하는 느낌이 잘 안 나오는지 자세나 구도를 바꿔보자는 소리에 나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말했다.

“책상에 더 기대보면 어때요? 아예 누워도 괜찮을 것 같은데.”

우형은 내려다보는 것보다는 올려다보는 쪽이 확실히 더 눈매가 날카로워 보이니까 좀 더 자세를 낮추는 방향이 좋지 않을까.

포토그래퍼가 원하는 느낌과 다를 수 있으니까 먼저 물어봤는데, 그는 잠시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위치를 옮기며 눈대중으로 구도를 확인했다.

“흐음……. 위에서 아래로 찍으면 느낌이 살 것 같네요.”

다행히 원하는 이미지와 겹쳤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보다 보니 재킷이 펴지는 모양, 옷이 주름지는 모양도 신경 써야 해서 우형이 신중하게 자세를 고쳤다.

“이 정도로 기대면 될까요?”

“응. 수평적인 회사니까 수평적인 느낌으로.”

“……물리적으로 수평인 거예요?”

방금까지 조금 헤매느라 심각한 표정이던 우형은 내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픽 웃었다.

포토그래퍼와 상의한 후, 우형은 완전히 눕지는 않고 팔꿈치로 상체를 지탱해서 약 35도로 누운 자세를 취했다.

책상에 눕는 행동은 물론 회사에서 하면 안 될 일이지만 화보라면 가능하다.

포토그래퍼는 섹시한 느낌이라고 했는데, 개인 촬영을 마치고 옆에서 구경하던 해랑과 한이는 ‘진상’, ‘건방지다’라고 표현했다.

‘컬러즈는 가끔 그 건방진 진상을 원한다고.’

시각의 차이에 나는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진 촬영을 마친 후엔 저번처럼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저번에 회사 컨셉으로 길게 이야기했으니 이번에 같은 이야기를 또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주제는 ‘회사’가 아니라 ‘S/S 시즌’이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기억 속에서 여름이 미화되지 않나요? 혹시 멤버분들은 날이 따뜻해지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현실적인 일정 생각 않고 정말 하고 싶은 거요?”

“네! 두 달간 자유로운 방학을 받았다고 치고요.”

미안하게도 회사 입장에선 두 달이나 시간을 빼줄 수는 없지만, 멤버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관심이 있었다.

시간이 되면 활용해서 자체 컨텐츠를 만들 수도 있는 거고.

“피서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오! 나도, 나도.”

해랑이 말하자 멤버들이 괜찮다며 편승하는 바람에 화제가 5명이 다 함께 가는 해외여행이 되어버렸다.

다들 저번 LA에서의 기억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때는 피서가 아니라 피한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땐 겨울이 끝나갈 때였는데 이제 다시 겨울에 돌입하는 중이네.’

시간은 언제 가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가는데, 계절의 흐름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예 더운 나라로 가보고 싶기도 해요.”

“사막으로 갈 거 아니면 웬만하면 한국 여름 날씨랑 비슷하지 않나?”

“사막 여행 가 볼래?”

“난 빠질래…….”

이야기가 이리저리 튀었지만 다들 여름휴가를 상상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시간 되면 또 해외로 나가 보고 싶긴 해.’

멤버들만큼이나 나도 LA의 기억이 좋았으니까.

겨울의 초입이지만 촬영장의 분위기만큼은 벌써 여름이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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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후배들 대하는 거 진심이야

아역들 대할 때처럼 똑같이 둥기둥기해줰ㅋㅋㅋㅋㅋ

└아 한이 저러는 거 어디서 봤나 했더니 웹드 비하인드ㅋㅋㅋㅋㅋㅋㅋ

└어케 사탕 나눠주는 것도 귀엽지ㅠㅠㅠ자기가 좋아해서 들고다니는 거 나눠주는거잖아

└한이 눈에는 다들 애기처럼 보이나봐ㅋㅋㅋ 나도 20초인데 애기처럼 보이겠지?^^

└저 사이에 쉰셋 만호님도 있다는 걸 잊지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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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쉰셋돌>을 본 컬러즈는 기시감의 정체를 금방 알아챘다.

한이가 아역을 대하는 모습과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이다.

‘사탕으로 무마하는 전법이 다 알려져서 이제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겠네.’

컬러즈가 드라마 비하인드와 예능 장면이 비슷하다며 편집으로 붙여서 올려놓자, 각 신셋 멤버의 팬들이 그것을 자기들의 공간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대다수의 아이돌 팬들은 ‘귀여움받는 내 아이돌’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내 아들딸이 밖에서 이쁨받고 다니면 뿌듯한, 그런 기분이려나.

‘내 아이돌’과 ‘남의 아이돌’ 사이의 벽은 높으니 이들이 웹드라마의 시청자로 편입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같은 시기에 방영하는 덕분에 한이가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소하게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예능으로 모노크롬을 알게 돼서 들어온 신입 컬러즈는 한이 드라마부터 보게 될 거고.’

웹드라마라고 해도 1화부터 마지막까지 한꺼번에 공개되는 게 아니라 TV 드라마처럼 업로드 요일이 정해져 있었다.

몇 주에 걸쳐 공개되던 한이의 웹드라마도 분량이 짧아서인지 벌써 마지막 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컬러즈는 한이의 얼굴을 보는 게 가장 큰 목적인 듯하지만, 한이가 나오지 않는 장면도 정성스레 감상을 남기며 시청하고는 했다.

대부분 모노크롬에 관한 글만 올라오던 컬러즈의 공간에 아예 다른 배역에 관한 글이 올라오니 제법 신선했다. 이를테면 이런 글.

[저 상사놈 예전 회사 상사 생각나서 개빡치네 ㅅX]

컬러즈가 이렇게 걸걸하게 욕하는 모습은 꽤나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안 보다가 보니까 오히려 반가운 기분까지 드는 건…… 좀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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