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82화 (182/430)

# 182화

“저번에 화보 촬영 처음이라 하셨는데 재밌게 촬영하셔서 기억에 남았거든요.”

그렇다. 앨범 재킷이나 프로필 사진 등 다른 사진 촬영이야 해봤지만 잡지 화보 촬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모노크롬은 OST 녹음처럼 마이 엔터에 선택지 자체가 없던 스케줄은 아예 진행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뷰이라이브는 ‘스케줄’이 아니어서 멤버들 자율로 할 수 있었던 거고.

아무튼 첫 잡지 화보 촬영은 꽤 즐거운 분위기였던 것이 내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담당 에디터는 이번에도 그런 유쾌한 분위기를 원하는 모양이었다. 화사한 S/S니까!

“기획에 따라 다양한 분들을 섭외하다 보니, 화보 촬영을 어색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그때 촬영하신 것처럼 상황을 상세하게 제시하니까 긴장도 풀리고 생동감 있게 잘 나오더라고요.”

“원래 촬영할 때 모델들이 몰입할 수 있게 상황을 만들고 그러지 않나요?”

모노크롬이 뮤직비디오나 사진을 촬영할 때도 감독이나 포토그래퍼가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자다 일어난 것처럼 나른하게, 이런 것들.

하물며 녹음할 때도 있지도 않은 연인을 떠올리며 부르라고 하던데, 표정과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잡지 촬영은 어떻겠는가.

몰입을 도와주기 위해 자세한 예시를 드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렇긴 한데, 보통 그렇게 구체적인 캐릭터까지 부여하진 않거든요. 화보만의 캐릭터가 있으니까 보는 사람에게도 더 상상의 여지를 준달까요?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멤버들의 소소한 팀장 자리 선점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거창한 해석이 붙었다.

하긴 컬러즈도 화보가 나온 이후로 ‘멤버들이 직장을 다닌다면 무슨 회사에서 일할 것 같냐’, ‘직장 상사, 동료, 후배로 두고 싶은 멤버가 누구냐’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지.

그런 반응까지 포함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좋은 화보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니까 저희 미튜브 채널에 올라가는 비하인드 영상에도 재밌다는 반응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이야기가 빙 돌아서, 다시 그녀가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내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으음. 설정 말이죠…….”

저번 세트장은 업력 오래된 중견 기업 같은 이미지였다. 지금 시기보다는 20, 30년쯤 전 사무실 같은 이미지.

오늘 촬영할 세트는 현대적이고 젊은 사람이 많을 것 같은 분위기니까 딱…….

‘스타트업 회사네.’

그렇다면 직책은 저번과 또 달라진다. 스타트업이라면 보통 사장도 사원도 젊은 사람이 많으니까.

다들 사원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사장일 수도 있다는 거지.

중요한 소품인 책상도 배치가 달랐다. 오늘 세트에 놓인 책상들은 사무실처럼 배치된 게 아니라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사진이 잘 나올 만한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딱히 팀장석으로 추정되는 자리가 없어서인지 멤버들도 이번엔 직급으로 경쟁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권력 쟁탈전 없이 평화롭게 창문 앞에서 광합성 중인 멤버들을 보며 내가 운을 뗐다.

“사장님 할 사람?”

그 말에 멤버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회사 사장님이에요?”

저번에도 한번 겪어 본 멤버들은 내가 이번에도 설정을 짜겠거니 생각했는지 바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무슨 역할을 나눠줄지만 고민했지, 회사 설정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팬미팅에선 컬러즈를 즐겁게 하는 이벤트 회사였고, 이번엔 컬러즈가 아닌 잡지 구독자분들도 보실 테니까, 으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회사?”

“그거 되게…….”

“수상한 회사 같다.”

준해가 차마 잇지 못한 말을 재민이 마무리했다.

낭만과 청춘이 넘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설명이 너무 다단계 회사 같았나?

정확한 사실 없이 추상적으로 좋은 표현만 늘어놓는 곳은 믿기 어렵긴 하지.

“그럼 그냥 무난하게 온라인 쇼핑몰 정도로 하자.”

“사장님 위에 회장님 있고 그런 거 아니죠……?”

“형, 최대주주 하지 마.”

저번에 팀장을 선점했다가 가장 아래 직급이 되어버렸던 준해가 이번엔 확실한 윗사람이 맞는지부터 확인했다.

한이는 해랑이 또 최대주주를 꺼낼까 봐 사전 차단했고.

계기를 던져주자마자 금방 사장 자리에 관심을 보이는 멤버들.

‘이것도 일종의 향상심이니까 좋은 거 아닐까.’

그보다, 사실 나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멤버들끼리 회사를 세운다면 누가 이끌어나가야 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엔 내가 컬러즈의 반응을 자주 모니터링하는 것도 한몫했다.

탈소속사를 외치는 팬들의 최종 소원은 응원하는 그룹이 다른 좋은 소속사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들 알고 있거든. 이 세상에 만족할 만한 소속사가 없다는 걸.’

적지 않은 팬들은 멤버들끼리 자기들만의 소속사를 차려 나가기를 바랐다.

거기에 자금 문제, 직원 문제 없어야 하고 멤버들이 고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팬들도 알고 있어서 이 소망을 입 밖으로는 잘 내지 않는 듯했다.

복권에 수십 번 당첨되거나 땅을 파 석유를 찾으면 소속사도 차려주고 공연장도 세워주겠다며 한탄하듯 말하는 것도 일상 같은 풍경이었다.

그 정도로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 가깝더라도 나에겐 이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이유가 있었다.

‘뉴마와 모노크롬이 좋은 파트너 관계로 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퀘스트 기간이 끝나는 내년 음악대상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내가 모노크롬을 책임지지 못한다.

모노크롬이 인기를 얻고 위치가 확고해지면 뉴마에 남고서도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도 있다.

그런데 5년 차까지 제대로 대우도 못 받고 지내왔던 멤버들이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전부 내 추측일 뿐이니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런 고민은 멤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겨우 안정된 상태인데 내가 먼저 이런 말을 꺼내면 불안해할 테니까.

‘나중에 너무 늦지 않을 때 상황을 봐서, 기회가 되면 얘기를 나눠 봐야지.’

이 밝은 분위기에 생각하기엔 너무 진지한 주제였다.

이사실에서 혼자 차분하게 고민해 보는 게 나으니까 이런 생각은 의식 저편으로 미뤄두고, 나는 다시 촬영 현장으로 주의를 돌렸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멤버들은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전에 뽑았던 반장이랑 비슷한 거 아냐?”

“반장보단…… 담임선생님? 통솔해야 하니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우형의 ‘난 너희를 모아두고 가르치기 버겁다’까지 흘러간 상태였다.

‘내가 혼자서 너무 오래 생각하고 있었나.’

딴생각하는 사이에 본래 화제가 형태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진행된 걸 보면.

그냥 두면 어디까지 이야기가 튈지 몰라서 내가 끼어들어 다시 화제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선생님 얘긴 나중에 하고. 만일 이 중에서 한 명에게 월급 받는다면 누구한테 받고 싶어?”

“그 문제로 가면 역시 장유유서죠.”

한이의 말과 동시에 멤버들의 시선은 우형에게 몰렸다.

신셋의 리더가 ‘인사 담당자’가 된 것처럼 사장이 ‘돈 주는 사람’이 되니까 포기와 선택이 빨랐다.

“떠넘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지목당한 우형도 나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썩 기분이 좋지도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모노크롬의 회사를 이끌어나갈 사람을 멤버 중에서 고르자면 단연 우형이라고 생각했다.

뉴마는 그냥 연장자에게 리더 자리를 준 듯하지만, 우형은 나이를 제외하고도 확실히 리더의 면모가 있었으니까.

다른 것보다 멤버들이 믿고 따르니 말 다 했지.

“그리고 사장 아래로는…… 직급보다는 직무를 정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스타트업이나 젊은 사람들이 많은 기업은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부장이니 차장이니 하는 것보다는 무슨 일을 하는지가 더 잘 와닿을 터.

무엇보다 컬러즈가 커뮤니티에 모여서 상상하던 주제가 떠올랐다.

회사라면 멤버들은 무슨 팀 소속일 것 같냐느니, 대학이라면 무슨 전공이 어울릴 것 같냐느니 하는 것들.

해랑은 돌대회 때문에 체대 선배 이미지가 컸지만 컬러즈들 사이에선 다른 의견도 있었다.

“대학교 창업 동아리에서 시작한 주목받는 청년 기업인 거야. 그래서 다들 전공을 살려서 직무를 맡은 거지. 해랑이는…… 공대 출신 기술팀.”

컬러즈 왈, 과묵하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이미지가 상상 속의 공대생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나.

촬영을 위해 준비된 소품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서 헤드폰을 해랑에게 건넸다.

프로그래머는 왠지 비싼 헤드폰 하나씩은 갖고 있는 이미지란 말이지.

“왠지 평소 해랑이 형 같은데?”

평소에도 자주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해랑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준해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 화보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꾸미고 나온 모습을 평소 모습 같다고 말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말을 바꿨다.

“……그만큼 잘 어울린단 소리였어.”

“그게 뭐야.”

준해의 변명을 듣고 해랑이 피식 웃자 포토그래퍼는 곧장 셔터를 눌렀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로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왠지 해랑이가 요즘 웃음이 조금 많아진 것 같단 말이야……?’

예능 촬영 때문에 연예대상인 만호와 붙어있던 게 원인이려나. 둘이서 무슨 재밌는 촬영이라도 했던 걸까.

평소에도 안 웃는 건 아니었지만 무표정할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왠지 웃는 빈도가 늘어난 느낌이었다.

‘저번엔 차가운 이미지여서 오히려 좋았는데, 오늘 컨셉엔 이쪽이 확실히 어울리긴 해.’

S/S 시즌 테마에 맞춰 현장 분위기 자체가 한층 더 온화한 탓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번에 반깐머리에 금속테 안경을 낀 해랑은 딱 오피스물 드라마의 팀장님 그 자체였는데.

오늘은 덮은 앞머리에 청회색 카디건을 입고 목에 헤드폰까지 걸치니 정말 공대 졸업생 같았다.

‘역시 스타일링은 이런 재미지.’

스타일에 따라서 이미지가 확확 달라지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에 촬영한 게 발매되면 저번 과월호와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해랑처럼 저번 촬영과 이미지가 많이 다른 멤버가 있다면, 저번 이미지와 비슷한 멤버도 있었다.

루즈핏의 반소매 셔츠를 입은 한이는 영업팀 컨셉이었다.

저번 낙하산 사원 컨셉도 꽤나 장난스럽게 진행했는데, 오늘도 한이와 어울리는 유쾌한 이미지였다.

“저 회사 창밖 구경하다가 이런 사람들 많이 봤어요. 한 손에 가방이랑 재킷 들고 커피 마시는 사람들.”

그가 양손에 든 소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한 손엔 테이크아웃 커피, 한 손엔 협찬 브랜드의 가방.

“점심시간인데 가방 들고 있길래 출근하는 건지 퇴근하는 건지 궁금했었거든요.”

“아마 그 사람들이 외근 나갔다가 회사 복귀하기 전에 잠깐 쉬던 영업사원들일걸?”

소소한 궁금증이 풀렸는지 끄덕이던 한이는 잠시 창밖에 시선을 두더니 말했다.

“밖에 날씨 따뜻해 보이는데 저도 그렇게 서서 찍어 볼까요?”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너머에는 휴식 공간으로 꾸며진 테라스도 있었다.

한이는 말을 꺼내자마자 테라스로 향하는 유리문을 열고 나가더니 3초 만에 돌아왔다.

“생각보다 추워서 아까 말은 취소할게요.”

옆에서 ‘앗, 바깥은 추울 텐데…….’ 하고 말리려던 스태프가 그의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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