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81화 (181/430)

# 181화

“장난이지?”

“장난하는 거 아닌데? 진짜 늘었다고.”

류현은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살면서 춤 실력을 칭찬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데뷔 서바이벌 때부터 그에게 춤은 항상 어려운 것이었다.

춤에 관한 미션이 내려지면 겨우 낙제를 면하는 수준에 그쳤다.

[보컬은 정말 좋은데 몸 쓰는 게 너무 서투르다니까.]

[아이돌보다는 솔로 가수 지망으로 바꾸는 게 나을지도…….]

이게 류현이 항상 들어왔던 소리였다. 그래서 차라리 댄스 실력 향상은 포기하고 특기인 보컬에 더 집중했다.

메인 보컬이 센터로 나가서 노래를 부를 땐 움직임이 줄어들었으니까.

아이돌 그룹에서 메인 보컬은 보컬 실력으로 다른 요소들이 커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좀처럼 늘지 않는 댄스 실력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동선 보니까 베터가 누구 밀어주는지 확실히 보이네 ㅎ.. 우리 애는 멤버 아니고 고음 자판기인가요? 신인인데 밀어줘도 모자랄 판에 벌써 멤버 수납할 생각부터 하는게 정상이냐]

센터로 나서는 보컬 파트 외의 부분에선 동선이 거의 뒤쪽으로 빠지는 탓에 팬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을 류현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들어본 적도 없는 춤 칭찬을 듣게 되면 안 믿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멤버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 전까지 근육통 때문에 어기적거리더니.’

거기에 최근엔 내내 얼이 빠져있길래 실수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류현은 묵묵히 잘 따라왔다.

오히려 전보다 덜 힘들어하는 것도 같았다. 원래 힘들면 가장 먼저 드러눕는 것이 그였는데 지금은 멀쩡히 서 있지 않은가.

“너 전엔 이 동작 안 돼서 한참 헤맸었잖아. 따로 연습했어?”

“다들 할 줄 알고 나만 못 했던 건데 그것 가지고 늘었다고 하면 안 되지.”

따지자면 이제야 기본을 하게 된 것뿐이었다.

그것도 발전은 발전이지만 지금 류현에겐 그다지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 그것뿐만 아니라. 흐음.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이상하네…….”

그렇게 말한 멤버는 턱에 손을 대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 표현하기엔 어렵지만 확실히 미미하게 뭔가가 달라진 것이 보였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다른 몇몇 멤버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주로 어릴 때부터 춤을 춰 왔고, 데뷔 서바이벌 때도 댄스 실력으로는 상위권을 차지하던 멤버들이었다.

“요즘 그쪽 연습까지 포함해서 우리보다 배로 연습하긴 하잖아. 팀 미로 트레이닝은 어때? 일반 트레이닝이랑 달라?”

“사실 나도 연습생 하기 전에 댄서 쪽으로 나갈까 해서 어떻게 들어가나 알아본 적 있었는데. 소수정예에 엄청 빡세다더라고.”

팀 미로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활동했기에 춤에 관심이 있는 멤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퍼포먼스 난도만큼 평소 연습도 고강도라는 소문까지 들어서 알고 있을 정도로 관심을 가진 멤버도 있었다.

춤과 관련된 화제에서 중심이 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류현은 조금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

류현은 촬영장인 뉴마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왠지 이곳에선 자신이 작아지는 것만 같아서 우울해졌다.

자신이 인정할 정도로 앞서 나가는 이담이 있었고, 그나마 친구인 제오는 래퍼 라인이 된 도한과 함께 수록곡에 들어갈 가사 작업 중이라고 한다. 래퍼는 역시 제작 과정 참여 비중도 높았고 예능적으로도 잘 풀리는 듯했다.

‘만호 형님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태프들이 그 팀 촬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재밌게 촬영하는 모양.

그 와중에 자신은 뭘 하고 있냐면 재민 아래 남아서 댄스 트레이닝 장면을 또 찍어야 했다.

몸이 유연하지 못해서 안 되던 동작을 억지로라도 어떻게든 되게 하는 재민의 방식이 원인이었다.

[이거 전이랑 후를 교차해서 편집해 넣으면 좋겠는데? 훈련을 통해 성장한 모습이라면서 시청자들한테 보여주는 거지.]

류현은 그저 죽을 맛이었으나 안지택 PD는 이를 청춘답고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재민은 카메라 앞이라고 사리지도 않았다. 정말 평소처럼 그를 굴릴 뿐이었다.

옆에서 재민도 똑같이 움직이는데 자신만 숨차하면 시청자들이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할까 봐 온 정신력을 끌어모아서 진도를 따라갔다.

‘하아. 진짜 죽겠……. 아니지.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지.’

정말로 재민이 했던 말처럼 몸을 고생시키면 잡생각이 없어져서 오히려 마음이 편할 터였다.

적어도 어떻게 해야 방송에 잘 나올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몸만 움직이면 됐다.

덕분에 근육통을 얻었지만 체력도 같이 얻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재민은 체력이 좋아진 것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트레이닝 난도를 올렸으니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댄스 트레이닝 장면은 여기까지 찍으면 될 것 같아요.”

트레이닝하는 장면만 몇 날 며칠 찍을 수는 없는 일. 스태프들은 필요한 분량만큼 나왔다고 판단하고 오늘의 촬영을 마무리했다.

카메라 앞이라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모아 버티던 류현은 그제야 잠시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촬영팀이 철수하는 동안 꿀 같은 휴식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재민이 그를 불렀다.

“잠깐 이리 와 봐.”

예전 같으면 자신에게 좋은 용건일지 나쁜 용건일지를 먼저 예상하고 분위기를 읽었을 텐데, 이렇게 구르고 나면 정말로 생각이 없어져서 그냥 오라는 대로 가면 되었다.

어느새 자신도 익숙해졌는지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재민의 옆으로 다가가니 그는 팀 미로의 단장인 민후와 대화 중이었다.

“우리 안무 있잖아. 여기 이 앉아서 다리 뻗는 부분 수정할까 생각 중인데 네 의견은 어때?”

“네에……? 제 의견이요?”

“응.”

방송에서 제작 과정을 전부 공개해 버리면 완성본을 공개했을 때의 임팩트가 줄어든다. 그래서 이렇게 세세하게 안무를 짜는 것은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하는 일이었다.

류현은 갑자기 자신에게 안무에 대한 의견을 물어오는 재민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제 의견은 왜…….”

“왜긴. 네가 메인 댄서잖아.”

“제, 제가 메댄이요?”

“다 포지션대로 흩어졌고 나랑 남아 있으면 당연히 댄서 포지션 아닌가?”

류현은 귀를 의심하며 재민을 쳐다봤다. 그는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재민이 뭐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란 것은 류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혹시 저 불쌍해서 포지션 하나 주시는 거예요?”

재민은 그 소리에 당황한 듯이 잠시 민후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다시 고개를 바로 했다.

“아니, 지금 네가 진도 제일 빠르기도 하고. 요즘 잘 따라오길래 난 당연히 춤에 의욕 생겨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진도가 빠른 것은 재민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당연한 일이고, 잘 따라간 것은 머릿속을 비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재민은 그런 류현의 모습을 고평가했다.

‘뭐지. 이 무한한 신뢰감은?’

자신은 이곳에서 이기적으로 굴면서 안 좋은 모습만 보였는데, 비난하기는커녕 다른 감정 없이 이렇게 진솔한 태도만 보여주다니.

자존감이 떨어진 와중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인정해 주는 말을 들은 류현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재민은 더 당황했다.

“댄서 하는 거 싫어……?”

댄스 좋은데. 왜 싫지. 하긴 메인 보컬 하고 싶어 했는데 너무 의견도 안 묻고 혼자 정했나.

모노크롬 멤버가 울면 그냥 놀리면 되는데, 류현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울상이 되니까 재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재민의 그런 모습에 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개인적인 일이 생각나서…….”

“트레이닝 한 세트 더 할까?”

뭔가 힘든 일이 있다면 몸의 고통으로 마음의 고통을 잊게 해 주겠다는 소리였다.

슬플 땐 춤을 추라는 섬뜩한 재민식 해결책에 류현은 눈물이 올라오려는 것을 꾹 참고 정신을 다잡았다.

데뷔 전 체중 감량을 위해 온종일 PT 선생님의 감시를 받을 때도 이 정도로 고되진 않았다.

“아, 아뇨! 그보다 아까 안무 얘기 뭐였죠?”

류현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팀보다는 개인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익숙했다.

자신이 먼저 이득을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먼저 나서서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서바이벌을 거쳐 데뷔까지 이룬 그였다.

‘근데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사업하는 곳인데 이래도 되나? 같이 촬영하고 있지만 끝나면 다 업계 경쟁자인데.

그러나 가식 없이 자신을 대해주는 이들을 보니, 복잡한 일은 전부 잊고 그냥 이 분위기에 동화되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

얼마 전에 무사히 마친 모노크롬 팬미팅 . 대표 컨셉은 회사원이었다.

포스터도, 굿즈 인형 옷도 회사원 차림. 그리고 팬미팅 후엔 회사원 컨셉 VCR과 멤버들이 작성한 이력서도 공식 채널과 SNS에 업로드했다.

활동마다 유행처럼 바뀌는 컬러즈의 SNS 팬 계정 프로필 사진은 최근 회사원 모노크롬으로 거의 통일되다시피 했다.

설정이 이어져서인지, 중간중간 이전 잡지 화보 사진이 끼어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그게 영향을 줬는지 이번에 또 익숙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멘즈 서클 편집부입니다.]

연락 내용은 이전과 비슷했다. 최근 활동을 잘 봤으며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

다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F/W 시즌이 아닌, S/S 시즌 오피스룩!

‘S/S 시즌이라……. 화사하고 좋지.’

이제 완연한 겨울이었으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봄이 온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은 연말, 그리고 내년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마침 일정은 쉽게 비울 수 있었다.

신셋의 앨범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는 있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게 아니니까.

S/S 시즌이란 것 외에는 조건이 거의 동일해서, 저번 촬영에 협찬했던 오피스룩 브랜드가 이번에도 콜라보 협찬을 하기로 했다.

‘이전 화보가 괜찮아서 우리를 또 불러주는 거겠지?’

유아이 TV도 그렇고, 모노크롬을 계속 찾아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사업적으로도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도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바로 섭외에 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촬영일이 다가왔다.

“직접 공연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저희도 봤어요. 올리신 회사원 컨셉 영상. 팬분들이 최근에 다시 저희 화보 비하인드 영상을 찾아보셔서 그런지 추천 영상에도 뜨던걸요?”

담당 에디터도 우리 팬미팅 VCR 영상을 봤다고 한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는 뜻일까.

알고리즘의 신비 덕분에 멘즈 서클에서 찍은 비하인드 조회 수도 최근에 다시 상승 중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요즘 팬분들이 멘즈 서클 얘기를 많이 하세요. 최근에 특히 생각난다고.”

“그래서인지 가끔 과월호 재고 문의도 들어와요. 그만큼 모노크롬을 다시 보고 싶단 분들이 많으세요. 아니,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니까요?”

모노크롬을 시차를 두고 다시 보는 사람들은 모노크롬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것을 더 잘 실감하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랜만에 본 어린 조카가 볼 때마다 한 뼘씩 커져 있는 느낌이려나.

“잘 부탁드립니다~.”

메이크업을 완료한 멤버들이 나오며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밖은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지만 따뜻한 날씨의 오피스룩이기 때문에 오늘 의상 중엔 반바지도 섞여 있었다.

저번 F/W 화보는 빈티지한 느낌의 세트였다면, 이번에 화사한 분위기의 세트.

큰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푸르른 화분이 있고, 화이트 베이스의 모던한 업무 데스크까지.

“혹시 오늘도 따로 캐릭터 설정 같은 게 있을까요?”

설정이야 젊은 회사원의 S/S 오피스룩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을 기대하는지 에디터가 내게 기대 어린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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