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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78화 (178/430)

# 178화

혹시 여기에도 깜짝 카메라 같은 게 설치된 거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예능 멤버들.

표정이 좋은 사람은 원만호뿐이었다.

“예전엔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없이 스턴트맨처럼 위험한 데서 구르고 그랬어. 이 정도는 그냥 익사이팅이지.”

“역시 연예대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구나…….”

옆에서 듣던 제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이돌 연습생에게서 나왔다고는 상상 못 할, 연륜이 느껴지는 경험담이었다.

원만호와 안지택 PD가 함께하는 <캠핑투어>도 그의 이런 활동적인 면모 덕분에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래도 귀신은 익사이팅이 아니잖아요. 어떻게 거기서도 안 무서워하실 수가 있죠?”

“원래 연예인들이 영적으로 감이 좋은 사람이 많아. 기운이 좀 통한다고 해야 하나.”

도한의 질문에 만호가 마치 일상 이야기를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하긴 연예인들은 납량 특집 방송에서 귀신 목격담 하나씩은 풀더라.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럴 법한 이야기였다.

만호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주변을 한번 쓱 훑더니 나지막이 한마디를 더했다.

“여기도…….”

딱 거기까지만 말한 그는 씩 웃으며 자리를 떴다.

이쪽에 모여 있던 예능 멤버들과 모노크롬 멤버들, 그리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도? 여기도 뭐요?!’

의미심장한 말만 남기고 떠나지 말라고요!

내 마음속 외침을 밖으로 꺼내기엔 그가 너무 적절한 타이밍에 재빠르게 자리를 옮겨 버렸다.

모두가 똑같이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다가 딱딱하게 고개를 바로 했다.

“아, 잠깐. 예전에 한이가 한 얘기 떠올랐어.”

“뭐, 뭔데요?”

우형이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마침 그 이야기가 떠오른 참이었다.

제오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묻고, 우형은 입에 담기도 싫은지 팔을 쓰다듬으며 대답을 피했다.

대신 모노크롬의 정보에 제법 빠삭한 도한이 대답했다.

‘뉴마 녹음실에서 귀신 봤다고……. 그러고 보니 그게 바로 이 층인데…….’

연습실과 녹음실은 같은 층에 있다. 그리고 우린 연습실에 있고.

하필이면 만호가 마치 귀신이 있다는 듯이 말하고 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다들 원래 무서운 것에 약한지, 아니면 바로 얼마 전에 납량 특집을 하고 온 탓인지 악몽이라도 떠오른 듯 얼굴이 굳었다.

조금 떨어져서 대화를 듣고 있던 류현과 이담이 은근슬쩍 가까이 붙었다.

‘……이런 식으로 똘똘 뭉치게 되는 건가?’

흔들다리 효과랑은 좀 다른 것 같지만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서로 의지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하다.

이들의 물리적, 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 장난이겠지?’

괜히 나까지 섬뜩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어두운 복도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착각이 들기까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있지 말아야지.

***

우리가 팬미팅을 끝내고 오는 동안, 예능 팀에선 이런저런 사항을 해결해두었다.

일단 경쟁심을 유발했던 리더 선정 문제.

‘아무래도 리더라는 호칭에서 권력이 느껴진다는 게 문제였지.’

<아이돌부 방학캠프>에서도 반장을 한 명 뽑으라고 하자 다들 손들고 나서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반장’이 아니라 ‘학급전담근로자’ 같은 이름이었다면?

누구든 하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지지 않을까.

‘사실 프로젝트 그룹의 경우엔 리더가 활약할 곳이 별로 없기도 하고.’

여러 해 활동하는 그룹이라면 멤버들이 의지하는 그룹의 대표로서 나설 일이 많이 있겠지만 이 프로젝트 그룹은 한 번 활동하면 끝.

리더라고 해 봤자 역할은 인사할 때 선창하는 것 정도일 터였다.

[그 정도면 그냥 인사 담당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예? 인사 업무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뇨. 아이돌들 인사할 때 타이밍 맞추려고 리더가 먼저 ‘둘, 셋’ 하잖아요.]

리더 문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안 PD와 그런 대화를 나눴었다.

회사 인사팀에서 하는 그 인사가 아니라 평소에 ‘안녕’ 하는 그 인사 말이다.

[리더란 자리가 좋아 보이니까 다들 남한테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 말에 동의했는지 안 PD는 ‘리더’가 아니라 ‘인사 담당자’로 호칭을 변경했다고 한다.

신인 아이돌 사이에 있는 25년 차 코미디언.

누가 봐도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선배가 껴 있으니, 반대로 좀 더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덧붙여서.

그러자 다들 의욕이 떨어졌는지 리더 자리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서, 그냥 자연스레 만호가 맡기로 했다고.

온갖 공포 상황 앞에서도 끄떡도 안 하는 그를 보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 인식한 듯했다.

‘하긴 좋은 위치는 원만호 씨가 맡는 게 가장 말 나올 구석이 없지.’

같은 멤버라고 해도 방송의 메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룹명.

이건 후보 공모부터 투표까지 시청자들이 주체가 되었으므로 우리가 개입할 부분이 없었다.

정직하게 ‘만호와 친구들’, 만호의 이름과 각 멤버 소속 그룹의 앞글자를 따 ‘원더러브E’, 좀 너무하지만 앨범 하나 나오고 끝이란 의미의 ‘하루살이’ 등 많은 후보가 등록되었다고 한다.

그중에 방송불가인 것들을 거르고 난 후 투표를 통해 깔끔한 그룹명이 당선되었다.

‘인터넷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데뷔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 같은 게 공식 팀명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25년 차 예능인과 20대 초반 멤버들이니 멤버 구성을 정확히 표현하긴 했지만 그룹명만 15글자인 건 좀…….

다행히도 정말 ‘내가 응원하는 그룹’에 대입하여 투표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각 멤버의 팬들이 놀림당할 것 같은 그룹명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컸고.

웃긴 그룹명은 정할 때나 재밌지, 계속 나오면 지루할 뿐이니 멀쩡한 그룹명이라 다행이었다.

우리도 프로듀싱 팀으로서 확인해야 했으니 그룹명 결정 뷰이라이브는 제때 시청했다.

[오오. 저희 팀명은 ‘신셋’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쉰셋돌>의 쉰셋을 멋있게 발음한 건가요?]

[그것도 있고, scene을 set한다. 우리만의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라고 공모해주신 분이 풀이를 적어주셨어요.]

멤버 공개 이후였으므로 다들 저번처럼 얼굴을 가리지 않고 맨얼굴로 출연했다.

흔들다리나 공포의 영화관을 체험하기 전에 진행한 뷰이라이브여서 다들 표정이 밝은 채였다.

[그런데 만호 형님 내년엔 쉰넷인데요?]

도한이 별생각 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아앗;;] 하는 채팅들이 올라왔다.

그룹명이 확정되어서 축하하는 분위기였는데 흥을 깬 것처럼 되어버려서 도한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올해야 쉰셋이지만 올해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앨범 발매는 내년 예정이었으니 방송이 끝날 땐 쉰넷.

만 나이라고 하자니 프로그램명부터 지금 나이인 쉰셋을 너무 강조해 버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으나 만호는 노련한 예능인답게 손쉽게 논란을 종식시켰다.

[내년에 떡국을 안 먹으면 됩니다.]

너무나도 한국인다운 해결책에 채팅창에선 ‘역시 K-아이돌의 미래’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래서 그룹 활동 중에 떡만두국은 금지라는 규칙이 생겼다나.

이렇게 큰 요소 두 개가 해결됐고, 이제 멤버들 사이도 더 악화할 것 같지 않으니 앞으로 방해될 만한 요소는 없었다.

우리 팬미팅도 끝났겠다, 초반부 예능 분량도 많이 뽑았겠다. 이제 지체할 것 없이 ‘신셋’의 앨범 제작에 박차를 가할 시간이었다.

‘연말은 다들 연말대로 바쁘니까 집중해서 끝내야지.’

지금까지는 찔끔찔끔 촬영해 왔지만 이젠 스퍼트를 낼 차례.

앞으로는 제작진이 기획한 코너보다는 제작 과정 위주로 촬영할 예정이었다.

이제야 정말 데뷔 리얼리티다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타이틀곡의 파트가 정해진 지금. 도한처럼 익숙지 않은 포지션을 맡게 된 멤버도 있었고, 댄스 숙달 정도도 멤버마다 달랐으니 단체 트레이닝보다는 개개인 맞춤 코스가 필요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부족하거나 집중해야 할 부분을 개인 PT처럼 도와주기 위해 우리 멤버들이 한 명씩 전담 마크하기로 했다.

필요에 따라 다른 멤버와 작업이나 연습을 같이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담당 멘토 역할이라고 할까.

“우선, 메인 보컬 파트 맡은 이담은…….”

“제가 맡아야죠.”

“응. 좀 신경 써 줘. 생각보다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으니까.”

역시 메인 보컬은 메인 보컬에게 맡기는 게 제일이다.

한이의 힘 빠지게 만드는 화술이 있으면 긴장도 더 풀 수 있을 테고. 어떻게 생각해 봐도 그와 붙여놓는 게 최선이었다.

“제오는 래퍼니까 역시 해랑이가 맡아야 하나?”

“랩은 제가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자기 스타일대로 할 수 있게 맞춰줄 생각이라 꼭 제가 맡지는 않아도…….”

“그러면 제가 맡을게요. 곡에 맞게 랩 파트 넣으려면 소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래퍼는 프리하게 두는 스타일인지 메인 래퍼인 해랑이 아니라 리드 래퍼인 우형이 나섰다.

그렇게 되면 래퍼로 전향한 도한은…….

“도한이 랩 파트도 혹시 도한이한테 맡기는 느낌이야? 전에 들어보니 직접 써본 건 디스랩밖에 없다고 해서.”

세상에 남모를 불만을 품고 있었는지 그의 작사 실력은 디스랩에 편향되어 있었다.

내 말에 다들 그의 디스랩을 떠올렸는지 3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우형이 고민되는 표정으로 다시 대답했다.

“타이틀곡에선 본격적인 랩 파트를 맡은 게 아니라서 직접 쓰지는 않아도 괜찮은데요. 수록곡에선 비중을 좀 늘려볼까 생각했는데…….”

뉴마에서 오랜 세월 연습생으로 지내온 도한.

그 의지력 덕분인지 메인 보컬에 랩도 하고 댄스도 무난하게 따라가는 밸런스 좋은 멤버였다.

더군다나 모노크롬에게 누구보다도 호의적이니 누구와 붙어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럼 도한이는 잠깐 보류하고, 류현은 재민이가 맡았으면 좋겠거든.”

“제가 따로 할 일이 있어요?”

“아니. 너는 그냥 평소대로 하면 돼.”

재민은 내가 뭘 시키는 것보단 본인이 편한 대로 하는 게 그의 스타일에 더 잘 맞을 듯했다.

그리고 류현이 군말 없이 고분고분해지기 시작한 게 그에게 댄스 트레이닝을 받고 나서부터였으니까 제법 잘 따라올 것 같았다.

“만호 씨는…….”

이쪽은 도한과는 반대로 보컬도 조금 봐줘야 하고, 수록곡에선 랩도 하고 싶다고 하며, 무엇보다 댄스를 가장 신경 써서 가르쳐야 했다.

남은 사람은 해랑과 준해. 둘 다 만호에게 댄스를 기초부터 가르쳐주던 멤버였다.

재민에게 굴려지던 나머지 네 명이 본인들과 다르게 상냥한 가르침을 받는 만호를 보고 부러워했다나, 뭐라나.

나는 고민하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적당한 조합을 꺼내 들었다.

“그럼 해랑이가 만호 씨를 댄스 위주로 좀 봐주고, 준해는…… 도한이가 좀 더 평화로운 가사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

내 말에 다들 동의하는 듯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이렇게 한 명씩 배정하고 나니 제법 새롭게 느껴지는 조합이 눈에 띄었다.

‘예능왕과 예능 레벨2의 조합이라…….’

연예대상을 받은 코미디언과 붙어 있으면 혹시 해랑의 예능 레벨이 오를 수 있을까……?

그의 레벨을 꼭 올리리란 사명 같은 것은 없었지만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했다.

***

“어떻게 그렇게 잘생겼어요?”

오늘은 ‘방송에 쓰일 만한’ 연습 장면을 찍기 위해 분야별로 촬영팀이 나뉘었다.

만호가 해랑과 일대일로 남자 처음 꺼낸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예의상 하는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그는 거의 예술품 감상하듯이 해랑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물어보셔도…….”

“여기 비주얼 멤버가 모이는 방 맞죠?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다니까.”

그는 해랑이 자신의 멘토가 된 건 댄스나 랩이 아니라 비주얼 멤버의 역할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며 당당하게 얘기했다.

조금 전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해랑도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나 먼저 비주얼 멤버로서 가르침을 주고 나선 것은 해랑이 아니라 만호 본인이었다.

“그래. 웃는 거 보니까 알겠네. 해랑 씨는 다~ 좋은데 말이에요! 평소 표정이 너무 굳어 있어.”

만호가 해랑에게 ‘아, 얼굴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를 시전했다.

살면서 얼굴 관련 지적을 받아본 적 없는 해랑은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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