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비슷한 얼굴의 둘이 투닥이니까 마치 보송보송한 강아지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노는 걸 보는 기분…….
‘잠깐. 컬러즈의 반응을 하도 보는 바람에 나도 강아지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어.’
사람이다. 사람. 그런데 귀여운 사람.
남매의 대화가 들렸는지 가족들과 대화하던 우형과 재민도 어느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입가에 웃음이 얹혀 있었다.
“그치. 모노크롬이지.”
“사진 찍을 거야?”
준해가 ‘나는 모노크롬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한 덕분에 더 이목이 쏠린 듯했다.
둘은 그런 준해가 귀엽고 웃겼는지 바로 다가왔다.
“내가 사진 찍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고…… 쟤가 날 무시하니까.”
준해는 황당해서 외친 건데 의도치 않게 모노크롬이라는 자부심을 내비친 것처럼 되어버려 민망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웃으면서 준해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내가 찍어줄게.”
“감사합니다…….”
준해도 딱히 동생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 건 아닌 듯했지만, 그래도 모노크롬 멤버로서 빠지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준해는 동생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표정으로 불만을 표했으나 동생은 못 본 체했다.
‘멤버들이 친형제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봐.’
옆으로 가서 나란히 서니 둘이 닮은 구석이 더 잘 보여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사진도 SNS에 올리면 컬러즈가 귀엽다며 좋아할 것 같은데 준해의 동생은 일반인이라 얼굴을 공개하기 부담스럽겠지?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핸드폰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이것을 계기로 사진 찍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소속사 스태프가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이고, 공연기획사 스태프가 카메라를 들었다.
“이사님은 같이 안 찍으세요?”
“응? 나?”
같이 공연 한 건 해냈다는 생각에 스태프들이 모이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우형이 조심스레 물었다.
멤버들과 몇몇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나, 나는 사진은 별로.”
나는 약한 거절의 의미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고생한 스태프들이랑 같이 찍는 건데. 아니, 나도 지금 스태프 중 한 명이긴 하지만.
보통 대표나 임원과는 사진 잘 안 찍잖아……?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카메라를 든 스태프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사진으로 남는다는 게 뭔가 이상한 기분일 것 같아.’
카메라에 익숙지 않던 예전 사람들은 사진이 영혼을 뺏어간다고 무서워했다지 않은가.
그와 비슷한 거지. ……좀 다른가.
아무튼 비현실적인 이유로 좀 내키지 않아서 난 빠지기로 했다.
한차례 사진을 찍은 후에 멤버들은 잠시 뷰이라이브를 진행했다.
공연에서 두 번이나 엔딩 인사를 마쳤지만 귀가 중인 컬러즈에게 잘 들어가라며 오늘의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짧은 뷰이라이브를 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사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민형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숙모가 인사드리고 싶다고 하셔서.”
“……네?”
그와는 항상 일 관련 이야기만 해왔으니 지금 부른 것도 당연히 일 때문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나와서 이해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그의 숙모라 하면…… 아차.
‘방심했다. 방금까지 은근슬쩍 숨어 다니고 있었는데.’
우형의 어머님은 민형의 숙모이기도 했지.
멤버와 같이 있으면 왠지 인사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조금 전까지 스태프 사이에 끼어서 일반 직원인 척 위장하고 있었는데.
우형이 뷰이라이브를 하고 있어서 딱히 연결고리가 없으니 따로 마주할 일 없다고 생각해버렸다.
여기서 내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민형의 뒤에 서 있는 우형의 어머님께 작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그녀가 바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정신이 없다 보니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려서…….”
“예?! 아, 아뇨.”
내가 피해서 그런 건데…….
긴장하고 있는데 우형의 어머님이 내 손을 붙잡았다. 까슬한 듯 부드러운 감촉이 손 피부를 통해 전해져 왔다.
“저희 애 잘 부탁해요.”
자, 잠깐…….
‘나 이런 거 약하단 말이야……!’
이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가 신경 쓰여서 피한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전부터 멤버 부모님께 신경 쓰던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까.
만나지 못하는 엄마가 생각나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고 우물쭈물하는데 우형의 어머님은 계속 손을 붙잡은 채로 얘기했다.
“애가 강단이 없어서…… 혹시 폐만 끼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 아뇨! 우형이 누구보다 잘하고 있는데요.”
예전에 회사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게 어쩌면 아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라고 생각하신 걸까?
걱정과 달리 우형은 확실히 유능하고, 내가 책임자로 있는 지금 이런 걱정은 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우형이가 없었으면 멤버들 이끌고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어느 멤버든 다 그렇겠지만, 모노크롬이 유지되는 데에는 리더인 그의 역할이 특히나 컸다.
혹여나 내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까 봐 ‘작곡도 잘하고, 음악대상과 연예대상도 그의 곡을 탐냈으며 리더로서의 본분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등의 이야기를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마치 이런 아들 칭찬은 처음 듣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얼굴을 보니 뭐라도 하나 더 말씀드려야겠다 싶어서 내 입은 쉬지 않았다.
“그리고 맡으면 뭐든 잘하거든요. 후배들 앞에서도 똑 부러지게 선배 역할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항상 듬직하고 어른스럽게…….”
“걔가 그런 애가 아닌데.”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옆에서 듣고 있던 우형의 누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하는 말이 귀에 콕 박혔다.
‘크흠. 뒤에는 조금 과장했나.’
빠르게 많이 말하려고 커뮤니티에서 본 ‘선배미 있다’, ‘요리 천재다’ 하는 팬들의 주접을 인용해서 읊다 보니 현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섞여 들어갔나 보다.
하긴 가족들 앞에서 아는 척해봤자 갓난아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이들이 더 잘 알 텐데.
팔불출처럼 무조건 다 잘한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민망한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보다 더 자주 보는 이사님이 더 잘 아시겠지. 넌 동생이 잘한다는데 왜 그런 말을 하니?”
동생을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본다며 어머니가 그녀에게 핀잔을 줬다.
‘무서워 보였는데 역시 어머니 앞에선 그냥 잔소리 듣는 딸이구나.’
평범한 모녀의 모습에 내 시선이 못 박혔다.
한 소리 들은 우형의 누나는 기세가 한풀 꺾인 태도가 되었다.
“많이 잘 봐주신다는 건 알겠어요. 뭐, 어릴 때보다야 듬직해지긴 했어요. 옛날엔 맨날 포기할까, 포기할까 그랬거든요.”
그녀가 말하는 어릴 때 우형의 모습이 왠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내가 봐온 그는 뭔가 포기하려 한 적은 없지만 그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그럴 법한 이야기였다.
‘하긴, 데뷔 못 하면 프로듀서 할 거라고 했었지.’
혼자 끙끙 고민하다 가족들에게도 토로했을 어린 그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힘들면 그만두라고도 했는데, 이제는 더 잘하고 싶다 하더라고요. 어릴 때 음악 하라고 지원해줬던 것들 이자 잔뜩 붙여서 다 갚겠다고……. 건방지게.”
……이건 칭찬인가?
좋은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예전에 효도하겠다던 소리가 이거인가?’
포기하려다가도 가족들의 지원을 받아서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던 모양이다. 이젠 안정이 되었으니 열심히 그 은혜를 갚겠다고.
역시 피 이어진 남매인지 냉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웃는 얼굴은 우형과 닮았다.
건방지다는 말을 할 때 갑자기 급정색해서 나도 모르게 또 움찔해 버렸지만.
“말 안 들으면 등짝 한번 때리면…… 아!”
그렇게 말하던 우형의 누나가 어머니에게 약하게 등짝을 맞았다.
농담인 건 알겠지만 어머니 앞이라서 난 서둘러 대꾸했다.
“저희 아티스트 보호차 몸 상할 만한 그런 일은 절대 안 해요……!”
“그럼 때릴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어휴. 얘가!”
그녀는 다시 다가오는 어머니의 손길을 피해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윤희 옆에 있던 준해의 동생에게 다가가는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쳐다봤다.
‘쿠, 쿨하다.’
확실히 우형보다는 민형 타입이었다. 자신만의 확고한 길을 가는 마이웨이 타입.
나처럼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우형의 어머님은 작게 한숨을 쉬다가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들이 많이 감사하다고, 정말 많이 도와주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가요?”
설마 가족들에게 내 얘기를 했을 줄은.
물론 내가 책임자로 부임한 건 큰일이었으니 말을 안 하고 숨기는 게 더 이상하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말 좋은 이야기만 전해줬는지, 손뿐만 아니라 눈에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앞으로도 회사 차원에서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책임감은 원래 있었지만 다시금 이 자리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내 말에 부드럽게 웃는 얼굴을 마주하니 그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항상 플레이와 연관된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어림짐작하며 혼자 느꼈던 이 세상과의 거리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북적북적한 연습실을 보니 다시 평소의 루틴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우리는 우리끼리 다음 일정을 계획하고, <쉰셋돌> 촬영일이 되면 성심성의껏 촬영에 협조하면서 임하고.
팬미팅을 무사히 마치고 상쾌한 기분이 되었는데 예능 멤버들은 왠지 팬미팅 전에 봤을 때보다 멍해진 얼굴이었다.
견제하는 듯한 분위기가 사라진 건 좋은데 왜 이렇게 반쯤 얼이 나간 것 같지?
“촬영하면서 무슨 일 있었어?”
촬영 대기 중인 도한에게 다가가 물으니까 그는 솔직한 촬영 감상을 들려줬다.
“저 사실 선배님 트레이닝이 너무 빡세서 잠시 쉰다길래 좋아했는데 그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희가 어디까지 버티나 실험하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러면서 도한은 예능 멤버들끼리 무슨 촬영을 했는지 주절주절 설명했다.
흔들다리 명소로 찾아간 건 알고 있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안전 장비를 하고 높은 절벽에서 셀카 찍기,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m에서 낙하 훈련 등등.
알차게 잘 보내고 왔나 보군. 정말 심장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는 활동들이었다.
“영화 보러 간대서 이제 좀 쉬는 건가 했는데 공포 영화고…… 더 심한 건 영화관 좌석 한 군데에서 귀신 분장한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저흴 보고 있는 거예요. 이제 겨울인데 납량 특집을 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크, 크흠.”
그 납량 특집을 제안한 게 나였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프로듀싱 팀에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도한의 눈동자가 내 쪽으로 향했다. 이미 그 기획들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 PD 이 사람이. 자기는 좋은 사람 하려고 화살을 이쪽으로 돌린 거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아이디어는 흉가 체험이었고…….”
슬쩍 시선을 피하다가 옆에 있던 류현과 문득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날 보더니 흠칫하며 눈을 피했다. 조금 반항적이었던 기세가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좀 고생하긴 했나 봐…….’
뒷말하는 장면을 내게 딱 걸린 후에 힘든 활동만 이어졌으니 우리가 일부러 고생시킨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제작진과 우리의 의견이 맞았을 뿐이지만.
이미 내가 낸 아이디어였다는 게 밝혀진 시점에서 내가 앙심을 품고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해 봤자 일부러 눈치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날 좀 무섭게 보는 것 같지만…… 예능 아니면 자주 만날 사이도 아니니 상관없나. 우리 사람들한테나 잘하면 되지.’
그런데 옆에서 우리 모노크롬 멤버들이 들었는지 작게 소곤거렸다.
“우리도 혹시 어디 무서운 데 가는 거 아냐?”
“항상 자체 컨텐츠 회의하던데 어쩌면…….”
나 원래부터 그렇게 생각나는 대로 전부 시켜야 직성 풀리는 이미지인가……?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에게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