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우형의 멘트에 진행자 준해가 마이너스 10점을 줬다. 정답을 맞혀서 점수를 얻는 코너는 아니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봐선 일단 우형이는 아닐 것 같아.’
벌써 혼자 떨어져서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하는 상상을 하는 것을 봐선 말이다.
무인도에 떨어진다는 가정은 이번 코너의 주제인 ‘소소한 일상’과는 정반대지만, 결국 묻는 것은 ‘생활력’이니까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면 끼워 맞출 수 있었다.
“난 큰소리로 외쳐서 구조요청 할 거야.”
“그게 가능하면 다 소리쳐서 부르지.”
1위 하면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는지 한이가 어필하고 나섰다.
해랑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어이없는 시선을 보냈으나 그는 자신만만했다.
“메인 보컬이 괜히 메인이 아니에요. 들어봐.”
한이는 들고 있던 자신의 마이크를 내리고 생목소리로 외쳤다.
“살려주세요!”
“이거 끝에서도 들려요?”
해랑이 가장 먼 좌석 쪽을 바라보며 묻자 들린다는 의미인지 응원봉을 크게 흔들었다.
재민과 준해도 도전 정신이 발동했는지 마이크 없이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를 외쳤다.
“밖에서 누가 듣고 무슨 일 생긴 줄 아는 거 아냐?”
공연장이고 방음문도 닫혀 있으니 소리가 그렇게 또렷이 흘러나갈 일은 없겠지만.
‘진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티스트 가둬놓고 공연 시키는 줄 알겠다.’
우형의 저지로 짧은 ‘살려주세요 챌린지’는 종료되었다.
그 이후로도 다양한 질문과 주제가 지나가고, 코너가 마무리되려는 분위기를 보일 때쯤.
“어? 라디오 할 시간이다.”
준해의 멘트에 맞춰 갑자기 멤버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변신 효과음 좀 틀어주세요.”
“샤랄랄랄라.”
처음에 준해가 변신을 펼쳤던 것처럼, 멤버들은 방처럼 꾸며진 무대 한편에 소품처럼 준비되어 있던 옷걸이에서 각자 외투를 꺼내 들어 그대로 홈웨어 위에 걸쳤다.
“라디오?”
“뭐야? 뭐야?”
컬러즈는 멤버들이 무엇을 하려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변신을 하는지 몰라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이내 자기들끼리 이 소품은 챙겨야 한다느니, 그 소품은 어디 갔느냐느니 하면서 허둥지둥 움직이는 멤버들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공연 스태프들도 덩달아 다급한 몸짓으로 방 소품을 치우고 1부에서 썼던 책상과 의자를 밀고 들어와 다음 무대를 세팅했다.
황급하게 변신을 마친 멤버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전광판에 띄워져 있던 배경이 밤하늘 이미지로 바뀌며 갑자기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랑의 목소리.
“……3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황급하게 움직이느라 조금 숨이 찬 듯한 멤버들의 숨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이 정도면 멤버별로 코너가 준비되어 있다는 건 다들 눈치챘겠지.’
2부가 준해의 발표와 이어진 코너였으니, 이번 3부는 해랑의 발표와 이어진 코너였다.
‘말없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겨 컬러즈들이 심장을 부여잡게 만든 해랑의 프레젠테이션.
다만 감동의 여운까지 느끼기엔 해랑이 너무 속사포처럼 글을 읽어내려간 덕분에 소소하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역시 메인 래퍼야.’
최 비서를 ‘저 래퍼라서’라는 한마디로 설득한 그다웠다.
아무튼, 해랑의 발표에서 발전시킨 3부의 컨셉은 바로 ‘라디오’.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와 함께 라디오를 듣는다는 컨셉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게스트로 모노크롬 멤버분들을 모셨습니다.”
“와아아-.”
해랑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조금 어두워진 조명까지. 컬러즈도 환호 소리를 분위기에 맞춰 조절하며 금세 심야 라디오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첫 번째 사연인데요. ‘이렇게적으면누군지모르겠지’ 님이 보내주셨습니다.”
“이름만 봐도 범위가 몇 명으로 좁혀지는데요?”
우형이 그렇게 말하며 동생 라인을 훑자, 눈이 마주친 멤버들은 전부 자기가 아니라며 부인했다.
진행자도, 게스트도, 사연 글쓴이도 전부 모노크롬.
사연은 멤버가 익명으로 적은 것이었으나 닉네임과 내용으로 누군지 알아맞혀 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저는 서울에 사는 평범한 청년입니다. 저희 집엔 가족은 아니지만 저 포함 다섯 명이 살고 있어요.”
“와. 정말 평범한 가정이네요.”
“맞아요. 저희만 해도 다섯이서 살고 있잖아요?”
해랑이 사연을 읽고 멤버들이 리액션을 맡았다.
“그런데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한 명이 옆에 와서 계속 자기 얘기를 늘어놔요. 전 TV에 집중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아-.”
사연이 묘사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짐작했는지 멤버들의 시선이 한 명에게 몰렸다.
컬러즈도 금방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채고 웃었다.
“청취자님의 동거인이 누군지 저는 모르겠지만요. 아마 친근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거 아닐까요?”
시선을 받은 한이가 사연 속 누군가를 대변하고 나섰다.
이 공연장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 중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는 변명이었지만.
“신청곡으로, 김지하의 <말이 없는 너> 들려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정말로 라디오처럼 음원을 틀어주느냐?
‘그건 아니지.’
사실 3부는 ‘신청곡’이란 이름으로 멤버들이 각자 커버 무대를 라이브로 선보이는 코너였다.
스태프가 재빨리 돌출 무대로 나가는 통로에 스탠딩 마이크를 배치했다.
차분한 분위기에 이끌려 조용한 관람 모드였던 컬러즈가 그것을 보고 다시 열렬한 응원 모드로 돌아왔다.
준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 앞으로 자리를 옮기자 함성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 옷이 너무 귀엽다.”
걸어가는 준해의 뒷모습을 보며 우형이 작게 웃었다.
지금 멤버들은 전부 2부의 홈웨어 의상 위에 외투만 걸친 상태.
방금까지 책상에 앉아 있느라 가려져 있던 하의와 실내용 슬리퍼까지 보이니 언밸런스함이 느껴졌다.
의상이 조금 웃긴 것과는 별개로, 준해의 음색이 공연장 전체로 울려 퍼지자 컬러즈는 다시 감상 모드가 되었다.
‘성장형이어서 그런지, 본인이 고른 곡이어서인지, 노래 실력이 더 는 것 같은데?’
모노크롬이 단체 활동 위주다 보니 이렇게 혼자 무대에 서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한 명만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보고 있으면 ‘이렇게 잘했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준해는 ‘메인’이 붙은 포지션은 없지만 항상 그룹의 밸런스를 잘 맞춰주는 역할이었다. 거기에 성장형이기까지.
이 신청곡 커버 무대는 전곡을 부르는 게 아니고 약 1절씩만 부르고 넘어갔다.
맛보기처럼 끝나버리는 무대로는 부족했는지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 뒤에도 보여줄 게 많으니까 어쩔 수 없지.
3부 라디오 코너의 마무리도 역시나 급전개였다.
“그러면 잠시 광고 듣고 가겠습니다.”
해랑의 멘트와 함께 모노크롬은 또다시 후다닥 무대 뒤로 돌아갔다.
두 번이나 겪어서 조금 익숙해졌는지 아까보다는 컬러즈의 웅성거림도 줄어들었다.
곧바로 재생된 VCR은 광고 타임이라는 해랑의 멘트대로 정말 ‘광고’였다.
[하아. 덥다. 야, 재민아. 넌 안 더워?]
[응.]
영상 속에서 한이가 덥다는 듯이 티셔츠 목 부근을 펄럭이며 재민에게 물었다.
그리고 재민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이…… 텀블러가 있으면 언제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거든.]
재민이 꺼내 든 것은 이번 팬미팅 굿즈 텀블러였다. 지금 흘러나가는 VCR은 전부 굿즈를 활용한 가상의 광고였다.
정말로 굿즈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고, 그저 재미를 위해 대놓고 PPL로 보이게 기획한 영상들이었다.
‘애초에 매진될 건 이미 다 매진됐으니까.’
컬러즈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고 싶다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물품들도 아니었다.
VCR을 보며 컬러즈가 장면, 장면마다 폭소하는 동안 멤버들은 의상을 갈아입고 다음 순서를 준비했다.
***
“지금까지 모노크롬이었습니다!”
4부와 5부는 노래와 무대로 이루어진 코너였다.
4부는 우형의 ‘노래를 들려준다’라는 발표와 이어진 코너로 앉아서 부를 수 있는 잔잔한 노래, 혹은 어쿠스틱 버전을 선보였다.
5부는 ‘모노크롬을 초청해 공연을 펼친다’라는 재민의 발표대로 모노크롬 본체의 공연 시간이었다.
남은 체력을 후반에 쏟아부으라는 의미로 댄스 무대 몇 개가 이 5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다양한 컨셉을 거쳐서 마지막엔 모노크롬으로서 엔딩 인사.
‘말이 엔딩 인사일 뿐이고 진짜 엔딩은 아니지.’
이런 공연은 엔딩 멘트를 했다고 정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도 4부를 진행할 때쯤 무대 뒤 대기실로 돌아온 상태였다.
5부의 댄스 무대와 엔딩까지 마치고 들어온 멤버들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소파에 털썩 앉았다.
땀으로 지워진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의상을 갈아입어야 해서 몇몇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참. 꽃다발 있는데 꽃 들고 나갈래?”
대기실 한구석엔 첫 팬미팅을 축하하기 위한 꽃다발이 몇 개 있었다. 회사에서 준비한 것도 있었고, 멤버들이 초대한 손님이 들고 온 것도 있었고.
선물로 들어온 것을 풀어헤치기엔 뭐해서, 회사에서 준비한 꽃다발을 해체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한이가 다른 쪽에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잘 보이게 화환 리본을 달아볼까요?”
한이의 말에 스태프 한 명이 [모노크롬 평생 가자 100회 팬미팅은 우주에서]라는 문구가 궁서체로 비장하게 적힌 화환 리본을 하나 들고 왔다.
반소매 티셔츠 위에 이번 굿즈 후드 점퍼를 걸쳐 의상 교체를 완료한 멤버들의 시선이 한이에게 집중됐다.
“푸하핫! 너 혼자 너무 시선 강탈하는 거 아냐?”
“형도 주목받고 싶으면 하나 달고 나와.”
“아니. 난 꽃만 들고 나갈래…….”
우형이 사양하면서 내 손에 들린 꽃을 몇 송이 받아갔다.
꽃을 귀에 꽂느니 입에 무느니 하면서 어느 정도 체력 충전을 마친 후.
꽃을 든 네 명과 인간 화환이 된 한 명이 관객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섰다.
“마지막까지 즐겁게 가자!”
“오케이!”
우형이 리더답게 외치자 멤버들이 의욕 넘치는 눈으로 바로 대답했다.
공연의 진짜 마무리는 바로 앵콜 무대.
앵콜 무대에서 남은 체력의 티끌까지 소진하기 위해 모노크롬은 다시 컬러즈가 기다리고 있는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
━━━━━━━━━━━━
와 팬미 진짜 기대 이상으로 알찼다ㅠㅠㅠㅠ
공연 시작 시간 빠르길래 빨리 끝나나 했는데 꽉꽉 채워서 진행하려고 그런거였어ㅠㅠㅠㅠ
막차 시간 놓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놓쳤어도 행복했을거야..
└1부 2부 끊임없이 나와서 한 10부까지 기대했는데 월요일의 압박,,,
└3부까진 대충 예상했는데 4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5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네?? ㅋㅋㅋㅋㅋㅋ
└올해 신곡 무대들 많아서 진짜 넘 좋았어ㅠ 다음엔 콘서트 제발..!
└진짜 열심히 준비한거 티나고ㅠㅠ 우형이 안 우는 대신 내가 여러번 울뻔 ㅠㅠ
────────────
나 방금까지 왜 한이가 발표한 건 안 했지 의아했는데 내 핸드폰 갤러리보고 깨달았다ㅋㅋㅋㅋㅋ
└시간 땜에 한이 코너는 줄인 줄 알았는데 핸드폰 갤러리가 왱?
└앵콜땐 촬영할 수 있잖아 팬들이 멤버들 직접 폰으로 찍은 게 사진 선물이었엌
└나도 몰랐다ㄴㅇㄱ 앵콜이 6부였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꽃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길래 귀엽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진 찍으라고 그런 거였냐구ㅜㅠㅜㅠ
└구성 갓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