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74화 (174/430)

# 174화

두 사람의 지향점이 너무나 달라서 계속 대화를 나눠 봐도 결론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이렇게 토론까지 해야 할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그냥 내가 나서서 중재하기로 했다.

“회사 느낌을 내고 싶긴 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그림이 귀여……우니까 그렇게 딱딱하게 맞춤법 안 지켜도 다들 넘어갈 것 같고.”

멤버들을 그려놓은 듯한 그림을 귀엽다고 표현해야 할지 잠시 고민되었으나 아마도 컬러즈는 귀여워하겠지.

맞춤법은 맞추는 게 좋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이 정도로 아예 다르게 써놓으면 몰라서 잘못 쓴 것이라곤 생각 안 할 테니까.

“귀엽게 써도 괜찮다니까요.”

“…….”

최 비서님 알못……이라고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재민은 내가 자기 뜻대로 해도 된다고 편을 드니 당당해진 표정이었다.

원하는 결과를 거머쥐고 유유히 사라지는 재민의 뒷모습을 보는 최 비서의 옆모습에선 왠지 패배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역시 업무 범위가 좀 달랐나 봐.”

PPT를 만들기 부담스러워하는 멤버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건데 다들 걱정과 달리 자기 방식대로 잘 만들었고.

반대로 완벽한 업무 처리를 자랑하는 최 비서에게 ‘프레젠테이션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만 안겨주고 끝나버렸다.

멤버들의 새로운 분야 도전이 아니라 최 비서의 도전이 되어 버린 느낌.

‘5년이 넘게 일하면서 멤버들과 어색한 사이인 건 이유가 있을지도.’

성향이 이렇게 달라서야. 친해지려 해도 친해질 수 없지 않았을까.

아무튼 다시 공연으로 돌아와서.

그런 험난한 듯 수월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프레젠테이션 코너가 시작되었다.

“모노크롬이란 분이 회사로 의뢰를 주셨습니다.”

느닷없이 발표부터 시작하면 전개를 따라가지 못할 테니, 해랑이 설정에 맞게 이 코너가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 먼저 설명했다.

이 블랙 회사는 이벤트 회사고, 모노크롬이 가족 같은 존재인 컬러즈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이곳에 의뢰했다는 내용.

컬러즈가 감동하는 와중에 우형이 질문했다.

“이벤트를 받으실 분이 컬러즈 대리님이에요?”

“아뇨. 대리님 풀네임은 김컬러즈라 다른 사람이에요.”

“그럼 의뢰 대상인 저분은 컬이 성이고 러즈가 이름인가요?”

“어디 컬 씨지?”

“외국 분인 것도 같고…….”

모노크롬도 컬러즈도 6년 차, 여섯 살이라 8세 관람가인 이 공연에 오지 못했다는 설정까지 있었지만 이런 사소한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발표자 여우형입니다. 제가 준비한 내용은…….”

우형의 발표가 시작하고, 슬라이드가 넘어가면서 효과음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큰 타이틀 텍스트가 나올 땐 ‘따란’ 하는 효과음, 사진이 뜨면 ‘차라라-’ 하는 효과음.

그 외에도 ‘삑’, ‘딸깍’ 등 자잘한 소리까지. 아마 PPT를 작성하는 것보다 효과음 넣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것 같다.

“나 저 ‘뾰롱’ 하는 거 미튜브에서 많이 들어봤어.”

“대체 저런 효과음은 다 어디서 구해온 거야?”

“찾아보면 이런 거 모아두는 라이브러리가 있어.”

멤버들은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현란한 효과음에 주목했다.

그런 산만한 분위기 속에 우형은 계속 발표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전 산책하면서 노래 듣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든요. 컬러즈에게도 노래를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컬러즈가 기대 어린 반응을 보냈다.

컬러즈가 오늘 팬미팅에서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노래였다. 다만 지금은 프레젠테이션 시간이지, 노래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 노래를 직접 만들어서 들려준다면?”

“와아아아아!”

해랑이 가볍게 말하자 컬러즈가 더 큰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것도 리허설할 땐 없었던 이야기지만 대본대로만 하는 것도 재미없으니까. 이런 애드립도 공연의 묘미지.

“이렇게 반응이 좋은데, 여기서 작곡가 여우형 씨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씨?”

한이가 부추기듯이 우형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건네고, 재민은 옆에서 말장난에 꽂혔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자작곡으로 한번 표현해 주세요.”

“지금 여기서?!”

준해까지 가세하고 컬러즈도 기대하는 눈으로 지켜보니 우형은 사면초가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나, 나는 무대에 서 있네-. 모두가 나를 쳐다보네…….”

즉석에서 뭘 만들어낼까 궁금했는데, 방금 면접 코너에서 동요를 두 번이나 들어서인지 우형은 동요를 만들어냈다. 악보로 적으면 두 줄밖에 안 될 것 같은 길이였지만.

우형은 부끄러워하며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으나 컬러즈는 마음에 들었는지 길게 호응했다.

‘나중에 공개해야 할 곡 리스트에 하나가 더 추가됐네.’

팬미팅을 주제로 한 동요라니 제법 신선했어.

그리고 한이의 셀카가 가득했던 그 PPT도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유일한 텍스트는 첫 슬라이드의 [발표자: 유한이].

한이는 그 위에도 자신의 셀카를 붙여놓았다.

다음 슬라이드로 넘기자 전광판에 직접 찍은 듯한 꽃 사진이 크게 떴다.

“자. 누구나 좋아하는 꽃!”

“꽃을 선물하자는 건가요?”

로맨틱한 방법에 컬러즈에게서 “오오~” 하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한이의 멘트는 끝난 게 아니었다.

“……을 닮은 한이의 사진을 선물한다.”

“그냥 꽃이 더 좋지 않을까?”

이어서 꽃 사진 위를 덮듯이 그 꽃을 든 한이의 셀카가 나타났다.

멤버들의 반응은 별로였지만 컬러즈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이의 발표는 전부 이런 식이었다. 뭔가 음식 사진이 나오면 그걸 먹는 한이의 사진을 선물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방식.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셀카 대방출이었다.

‘발표 주제대로 컬러즈가 즐거워하니까 나름대로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어진 재민의 PPT도 종잡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함께 게임을 한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등 여러 방법을 그림으로 표현해낸 그.

“이건…… 사람 맞지?”

입체파 화법으로 표현된 그림의 내용을 아는 것이 그린 본인뿐이라 거의 그림 내용 맞히기 퀴즈 코너가 되어버렸다.

뒤로 갈수록 현실성 없는 방법으로 진화해나가다가 나온 마지막 방법은 이것이었다.

“가수를 초청해서 컬러즈만을 위한 공연을 펼친다.”

내용은 둘째 치고 무대 위에 다섯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을 보고 멤버들이 식겁했다.

“이 그림은 누굴 그린 거죠?”

“헤비메탈 그룹인가?”

굵은 매직펜으로 그린 산발 머리의 다섯 명. 머리는 맞는 것 같은데 그 주변에 표현된 게 머리카락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아, 그, 요새…… 있잖아요! 막 방송 나오고 하는.”

“아. 설마 5인조?”

“네! 맞아요. 유명한 분들이죠.”

모른 체하는 멤버들의 추리가 정답에 가까워질수록 컬러즈가 높은 목소리로 호응했다.

“쉰셋돌……?”

“아니! 크흠, 몬클, 쿨럭.”

“모노쿨럭?”

제삼자인 척 모노크롬을 소개하는 대화 내용에 재밌게 웃던 컬러즈.

하지만 다음 슬라이드에서 컬러즈로 보이는 뭔가의 그림이 나타나자 관객석에선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항상 귀엽다, 잘 그린다 칭찬해도 본심은 역시 이거였어…….’

텍스트로는 항상 온갖 형용사를 덧붙여 주접을 떠는 컬러즈지만 현장에 오니 그 속에 담긴 솔직한 반응을 볼 수 있어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멤버들의 발표가 끝난 후엔 댄스 무대가 하나 준비되어 있었다.

정장은 춤추기엔 불편한 의상이지만 수트 좋아하는 팬들을 두고 무대 하나 없이 환복해 버리기도 섭섭하니까.

무슨 곡인지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고 바로 전주가 울려 퍼지자 근처에 있던 한 컬러즈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도 목격한 듯이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수트 이리 미쳤냐고.”

그렇다. 이 회사원 컨셉을 마무리하는 곡은 바로 <이리>.

<이리> 활동 의상은 전부 티셔츠, 점퍼, 점프수트 등의 캐주얼, 테크웨어 계열이었다.

정장을 입고 췄을 때 가장 색다른 무대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고른 곡이었는데 역시 선택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원래 편한 복장으로 추던 춤을 스리피스 오피스룩을 입고 추려면 힘들 텐데도 최선을 다해 댄스 무대를 선보인 멤버들은 잠시 숨을 골랐다.

“헉. 허억……. 회사 생활이 이렇게 힘듭니다.”

“이건 회사 일인 거죠?”

“원래 다들 회사 출근하면 <이리> 한 번씩은 추잖아요?”

한이가 능청을 떨자 멤버들의 말은 무조건 옳다고 하는 컬러즈가 맞다면서 편들었다.

‘모노크롬이 뉴마에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멤버들이 컬러즈와 조금 이상한 회사원의 고충을 동감하며 나누고 있을 때.

우형이 손목시계를 보고 외쳤다.

“엇, 잠깐. 시간이?”

“퇴근이다!”

이 코너의 마무리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퇴근 시간이 되었다면서 급히 칼퇴하는 칼퇴크롬이었다.

퇴근 시간을 준수한다는 점에서 더는 블랙 회사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건 차치하고.

멤버들이 도망가듯이 퇴장해서 비어버린 무대를 보고 웃음 반, 웅성거림 반이 공연장을 메웠지만 곧바로 회사 상황극 VCR이 재생되면서 다들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조명이 켜지자 나타난 것은 카펫과 소파, 소파 테이블 등의 소품으로 방처럼 꾸며진 무대.

‘이른바 ‘칼퇴완료크롬’이지.’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온 듯 편안한 분위기 속에 홈웨어 차림의 멤버들이 앉아 있었다.

컬러즈가 멤버들의 재등장에 환호할 새도 없이 <설렘의 시작> 어쿠스틱 버전 무대가 시작되었다.

“2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준해가 2부의 시작을 고하고, 조금 전 칼퇴크롬으로 당황했던 컬러즈는 그제야 ‘몇 부로 나뉘어 있구나.’ 하고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번 팬미팅의 코너 구성은 전부 처음에 멤버들이 한 발표와 이어졌다.

이건 준해가 발표했던 내용에서 비롯한 ‘같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즐기기’ 코너였다.

“컬러즈에게 ‘일상 주제에 관한 멤버들의 이미지’를 미리 설문을 받았는데요. 멤버들은 컬러즈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맞는지 토론을 나눠주세요.”

이번 코너의 진행자로서 큐 카드를 들고 있던 준해가 코너를 설명했다.

“첫 번째 주제는 짜잔. 컬러즈가 생각하는 ‘가장 실용성 없는 물건을 잘 사 올 것 같은 멤버’는?”

“그래서 컬러즈가 제일 많이 뽑은 멤버는 누구인데요?”

재민이 묻자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정답.”

아무도 직접 말은 꺼내지 않았으나 준해는 그것만으로 정답임을 알렸다.

“나라고?”

“너 놀이공원 가서 외계인 머리띠 같은 거 있으면 사, 안 사?”

“그건 사야지.”

한이의 질문에 재민이 아무 고민도 않고 바로 대답하자 관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애초에 그건 실용성이 없는 물건이 아니에요. 추억이 담긴 물건이지.”

재민이 진지하게 반박하자 관객석에선 “오오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멋진 멘트에 다들 설득당한 듯했으나 바로 준해의 질문이 이어졌다.

“잡화점에 갔는데 강아지 모양 티슈 케이스가 있어. 사, 안 사?”

“그건…… 사야지.”

결국 ‘모든 물건에는 추억이 있다’라는 결론을 내는 재민.

그가 변명을 이어갈수록 컬러즈의 설문 결과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듣다 보니까 연습실 화이트보드에 야광 스티커를 붙인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아.’

재민은 프레젠테이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상에서도 작은 귀여움을 추구한 게 아닐까.

“자. 다음 질문.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살아남을 정도로 생활력이 강할 것 같은 멤버는?”

어디에서 많이 봤을 법한 질문.

하지만 중요한 것은 ‘컬러즈가 생각하는 멤버’를 찾는 것이었다.

고민에 빠진 멤버들 사이에서 우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머지는 죽는 거야……?”

“사람이 왜 그렇게 극단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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