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70화 (170/430)

# 170화

파트 배분에 영향이 갈 테니 제작진이 작곡팀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고 한다. 아마 성운에게도 같은 연락이 갔을 테고.

‘분명 촬영할 땐 메인 보컬 경쟁에 의욕을 보였는데 갑자기 포기하겠다니.’

그것도 멤버가 공개된 다음 날에 바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이사실을 나왔는데, 우형이 먼저 매니지먼트팀 사무실로 올라와 있었다.

우형의 표정을 보니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윤희를 찾은 듯했다.

윤희가 나도 우형과 같은 이유로 찾아온 것을 알고 상황을 설명했다.

“류현이 간밤에 뷰이라이브 방송을 했대요. 예능 멤버로 공개된 겸 팬들하고 소통하려고.”

“……거기서 무슨 소리 했대요?”

류현이 촬영 날에 제오와 뒷말을 했다는 것은 날 포함해서 그 자리에 있던 네 명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혹시 또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나 해서 물어보니 윤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뭐라고 한 건 아닌데…… 그쪽 팬들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SNS에 올라온 클립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어제 했다는 뷰이라이브 영상 일부를 팬이 잘라 올린 것이었다.

[다들 오늘 방송 봤어요? 아, 맞아요. 보컬 맡은 분들이 많아서…… 아이, 다른 분들도 다 잘하는데요. 메보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요. 거기서 메보 안 돼도 전 러너스하이의 메보잖아요.]

이 클립을 올린 팬 계정은 [우리 애 메보 줘라ㅠㅠ]라는 멘트를 달아놓았다.

러너스하이의 메인 보컬인 것으로도 만족한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일부 팬들은 이 말을 ‘러너스하이의 이름을 걸고 출전한 메보가 다른 팀에 밀리는 게 말이 되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밤사이에 러너스하이의 팬들이 메인 보컬 포지션을 두고 말이 좀 많았나 봐요.”

윤희가 슬쩍 보여준 화면으로 그들이 현재 어떤 분위기인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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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류혀니랑 원만호님이랑 투메보로 가면 좋겠당ㅋㅋ

└ㅇㅈㅇㅈ 혀니 말고 누가 또 메보해ㅠㅠ

└ㅋㅋㅋ벌써 케미 기대된다

└1차평가 커트라인 넘은 보컬 현이뿐인데 당연히 메보줘야지 아니면 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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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팬들 눈에는 자기 가수밖에 안 보이는 법이지만, 이건 다른 사람들을 일부러 무시하는 것 같은데.’

러너스하이와 마찬가지로 대형 신인이었던 브이스타일의 제오는 래퍼니까 경쟁 상대가 되지 않고.

이코드도 아이돌로 이름 있는 소속사에서 데뷔해 점점 뜨는 중이라지만, 아무래도 도한이 직설적으로 할 말 다 하는 이미지이다 보니 건드리긴 어렵고.

그래서인지 유독 더클랜을 무시하며 이담은 깔고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팬들 사이에 퍼졌다고 한다.

‘가장 만만해서 맞고 있다는 거잖아…….’

갑자기 하루아침에 변심해서 다른 파트가 더 맡고 싶어졌을 리는 없고, 분명 밤사이에 나온 이야기 때문일 텐데.

이게 그쪽 소속사의 뜻이든, 본인의 의사였든,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대형 팬덤에게 비호감을 사는 상황이 중소 기획사의 신인으로서는 치명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거니까.

윤희의 이야기를 듣고 우형의 눈썹 끝이 더 아래로 처졌다.

“성운 씨랑도 연락해봤어?”

“네. 일부 사람들한테서 말이 나온다고 파트를 바꿔야 하는 건 작곡가로서 내키지 않는다고…….”

성운은 작곡가로서 유감을 표했지만 우형은 작곡가 입장을 떠나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인기에서 밀린다고 원했던 기회를 포기하는 건 너무……, 너무 서럽잖아요.”

우형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활동하지 못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다른 이들의 막막한 상황에 깊이 이입하곤 했다.

이전에 멤버 탈퇴로 흔들렸던 엔피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섰었고, 이번엔 인기도 때문에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린 더클랜의 이담에게 마음이 쓰이는 듯했다.

단순히 파트 하나를 포기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이 달린 일일 텐데, 그는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다.

“일단 방송국에 어떻게 하겠다는 확답은 하지 말고, 좋은 방법이 있을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지만, 방송을 같이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좋지 못한 상황이란 것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이대로 두면 여러모로 멤버들이나 나나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불공평한 일을 묵인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가장해야 한다는 찝찝함.

일하면서 이런 일 하나하나에 전부 마음을 쏟을 수는 없다지만, 감정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걸 추구하는 게 맞지.

그리고 아마 프로듀서 역할인 우리가 그 방법을 찾아내고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컸다.

***

트레이닝을 위해 뉴마의 연습실 층은 촬영일 외에도 주기적으로 오픈될 예정이었다.

다른 예능 멤버들은 자신의 소속사에서 트레이닝을 받겠지만, 만호의 소속사는 가수 소속사가 아니다 보니 그러지 못하니까.

팀 미로의 댄스 트레이닝에 더해 라솔도 때때로 보컬을 봐 주기로 해서 시간이 되는 멤버는 같이 모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친정처럼 생각하는지 편하게 와 있던 도한을 불러 따로 대화를 나눴다.

“저…… 메인 보컬 포기하라고요?!”

“타이틀곡 메인 파트만. 수록곡은 또 파트가 달라질 거야.”

“왜죠? 저 실력으로 탈락한 건가요?”

“네가 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고, 방송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생각하면 그게 나을 것 같아서.”

내 말에 도한이 미간을 좁히며 충격적인 이야기라도 들은 듯이 반응했다.

아니, 본인에게는 실제로 충격적인 소리일 수도 있겠지. 파트를 나눠주는 쪽이 원하는 파트를 못 주겠다면서 자진해서 포기하는 그림을 만들자고 하면.

후렴은 혼자서 다 부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후렴 파트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사람이 가장 인상적이기 마련이고 그게 주로 메인 보컬의 역할이었다.

지금 경쟁이 치열한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저 파트 따내려고 초음파 고음 개인기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건 한번 들어보고 싶……이 아니라 초음파를 낼 줄 안다고 파트를 주는 거 아니라니까.”

한이가 보컬 트레이닝 촬영 때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멤버들도 사정을 알게 되자 어느새 같이 머리를 맞대며 동참한 상태다.

나는 도한의 실망이 더 깊어지기 전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 대신에…… 너한테 랩 파트를 좀 나눠주고 싶은데 어때?”

“갑자기요?”

메인 보컬 경쟁에 껴 있는 도한을 래퍼 포지션으로 이동시키는 것. 그게 내가 떠올린 방안이었다.

그리고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1절 후렴을 이담, 그 뒤의 2절 후렴을 류현, 3절의 킬링 파트처럼 나오는 후렴을 만호에게 배분하는 것까지가 우리의 계획.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도한은 어떤 경위로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알아챈 듯했다.

“제 디스랩이 마음에 드셨나요.”

“최고였지……. 너 아직도 힙합인으로 통하잖아.”

“임팩트가 세긴 셌나 봐요.”

“응. 그래서 이번에도 그 이미지를 활용하면 사람들 인상에 더 잘 남을 것 같아서.”

진지한 아이돌 사업이 아니라 예능이기에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

도한은 <아이돌부 방학캠프>에서 랩으로 장기자랑을 펼친 적도 있었고.

보컬이지만 어느 정도 랩도 가능한 그였기에 떠올릴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후렴은 아니지만 보컬 파트도 주기는 할 거야. 말하자면 서브 보컬에 서브 래퍼? 그런데 그래서 더 주목받겠지.”

“으음.”

도한은 생각에 빠졌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

파트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면서 멤버들에게 각 파트에 이름이 적힌 가사지가 먼저 전달되었다.

류현은 자신의 이름이 어디에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담이 1절 후렴을 포기했다는 정보를 비밀스레 전달받고 안심했는데.

최종 파트를 확인하자 무슨 연유인지 이담이 그대로 1절 후렴을 가져가고 자신은 2절 후렴에 그쳤다.

게다가 벌스의 보컬 파트를 맡은 도한이 뜬금없이 일부 랩 파트까지 가져갔다.

‘뭐야. 장난해?’

얼마나 기대가 모이는 방송인데 이런 장난스러운 파트 배분이라니.

이러면 랩 파트가 나뉜 제오도 불만을 품지 않았을까. 댄스 트레이닝 일정으로 뉴마에 온 류현은 제오부터 찾았다.

남 험담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끼리 이 정도 대화 나누는 거야 괜찮겠지. 그런 생각으로 류현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작게 말했다.

“파트 좀 이상하지 않아?”

“너도 후렴 들어갔고 나 메인 래퍼 파트인 건 변함없는데.”

“넌 랩 독식할 수 있었는데 나뉜 거잖아.”

“원래 서브 랩 파트는 만호 선배나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했대.”

“그냥 쪼개놓고 말만 그렇게 하는 걸 수도 있지.”

전에는 조금만 흔들어도 귀가 팔랑거리던 제오였는데, 왠지 오늘은 굳건한 태도였다.

“너 혹시 뭐 따로 챙겨주겠단 소리라도 들었어?”

“아니, 그건 아닌데 대화해 보니까 별로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전,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대기하고 있던 제오에게 해랑이 잠시 이야기 좀 하자며 다가왔다.

예전에 류현과 뒤에서 몰래 대화하다가 걸린 적이 있었기에 찔리는 마음으로 순순히 따라갔다.

모노크롬 멤버 중에서도 가장 차가운 인상인 해랑을 앞에 두고 한껏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로 다정한 말투였다.

[네 랩 파트는 최대한 네 스타일에 맞추려고 해. 가사지에 쓰인 건 임시로 붙인 거고, 네 의견을 묻고 싶어서.]

유일한 래퍼라는 위치가 깨진 것이 사실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을 아티스트로서 존중해주는 말에 불만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사그라드는 듯했다.

더군다나 사기를 쳐도 믿게 될 것 같은 그 진정성 담긴 눈동자엔 마음의 장벽을 없애는 힘이 있었다.

“역시 선배는 선배인가 봐. 개멋있더라.”

왜 입덕한 거냐고!

류현은 친구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귀가 얇은 성격이 그새 다른 쪽으로 발휘했을 줄이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니 영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제오까지 넘어가 버렸으면…… 남은 건 나 혼잔데.’

나 망한 건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상황에 빠져버려 복잡한 심경으로 있다 보니 트레이닝 시간이 다가왔다.

기초 단계부터 시작해야 하는 만호에겐 기존 메인 댄서였던 해랑과 서브 댄서인 준해, 두 사람이 붙어서 특별 트레이닝을 진행했고, 이쪽엔 민후와 재민이 트레이너로 나와 있었다.

재민은 후배 네 명을 바라보며 인사 대신 가볍게 말했다.

“팀 미로 단장님이 한 말이 있거든.”

“내가?”

“아니, 로아 누나가.”

멀쩡히 팀 미로의 단장으로 서 있는 자신을 두고 굳이 헷갈리게 얘기하다니.

민후는 평소처럼 ‘으이그.’ 하면서 머리를 헤집어줄까 했으나 재민의 아이돌 후배들 앞이라 참았다.

“아무튼. 팀 미로에서 통하는 말이기도 해. ‘몸이 힘들면 잡생각이 안 난다.’라고.”

류현은 재민의 웃는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런 서두를 덧붙이는 건 분명 자신 때문이겠지.

자신이 원하는 파트를 얻고자 행동했던 것을 ‘잡생각’으로 치부해 버리는 말에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정말로 몸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헉, 허억……. 저희, 잠깐 쉬고 하면…….”

“방금 동작 딱 한 번씩만 더 해보고 쉬자.”

무슨 이런 괴물이.

자신들과 같이 계속 움직였는데 훨씬 멀쩡한 재민과 그보다 더 고수로 보이는 민후가 무서워 보일 지경이었다.

자기를 저격한 게 아니었나? 옆을 돌아보니 이담은 땀에 젖어서 쉬자고 말할 기운도 없어 보였다.

공평하고도 무자비한 지도를 따라가기에 급급해서, 류현의 머릿속에 차 있던 사사로운 목적은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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