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해랑이 손으로 뒤쪽을 가리키고, 준해도 빼꼼 고개를 내밀어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천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주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사님은 왜 와 계셔?!”
“네가 출근을 안 하잖아.”
“아직 시간도 안 됐는데 그게 무슨…….”
“저희 회사 인턴이라. 일이 있어서 데려갈게요.”
“어, 어어, 네…….”
엄청난 존재감의 남자가 시선을 마주치며 나긋하게 말하자 부과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마자 준비하는 것도 잊고 쳐다보던 몇몇 학생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미친. 방금 봤어? 눈만 보였는데 대존잘.”
“뭐야. 모델과야?”
“선배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래. 그보다 목소리 들었어? 와. 무슨 성우인 줄.”
“대체 무슨 회사길래 저런 사람이 있어? 엔터사라도 되나?”
“엔터사 다닌다고 연예인이 직접 데리러 오겠냐?”
그들의 추측은 정확했으나 정답이란 사실을 모르고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찰나 스쳐 지나간 목소리와 비주얼에 놀랐던 그들의 감정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나도 인턴 알아볼까 봐. 저런 사람 만나고 싶다.”
“그게 무슨 멜로드라마 보고 대기업 가는 소리야.”
묘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홀린 듯이 서 있던 부과대는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거기 빨리 현수막 달아. 딴짓하지 말고.”
“아, 넵.”
그는 여러모로 주위의 이목을 빼앗긴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괜히 주변의 대화를 끊으며 신경질을 부렸다.
***
“샵에서 모이기로 하지 않았어요? 제가 혹시 시간 잘못 봤나…….”
“아니, 샵 가기 전에 너도 같이 픽업해서 가려고 그냥 먼저 나왔어.”
공연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서 멤버들은 아직 회사에 있었고 잠시 후에 메이크업 샵에서 모일 예정이었다.
해랑이 같이 온 건 대학생 신분의 준해와 뭔가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데려온 것이었고.
사실 다른 멤버들도 재밌겠다며 관심을 보였지만, 우형이 공연하기도 전에 시끄럽게 만들 것 같다면서 해랑 한 명만 보내기로 했다.
준해와 미리 약속한 게 아니라 수업이 끝난다는 시간에 맞춰 연락할 예정이었는데, 연락이 닿기 전에 밖에 있는 것을 먼저 발견했다.
‘그리고 뭔가 불편해 보이길래 끼어들었지.’
다른 학생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내 눈엔 대치하는 것처럼 보여서 해랑을 투입시켰다.
연예인들 사이에 있을 때도 눈에 띄긴 하지만, 비연예인들 사이에 있으면 특히나 더 눈에 띄는 해랑이니까 효과적일 것 같아서.
해랑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온 준해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 큰 눈을 가리는 안경. 빨리 저 안경을 벗기고 싶어.
“나온 김에 홍보팀이나 들렀다 가자. 우리 자컨 찍는 것 때문에 미리 연락했더니 촬영 허가 목걸이 받아가랬거든. 본관 202호로 오라고…….”
“지금 가실 거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원래 직접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온 김에 할 일을 하나 처리하기로 했다.
해랑이 캠코더 대신 가져온 뷰이라이브용 스마트폰으로 셀프캠을 찍었다.
준해는 재학생으로서 이 건물은 뭐고, 이 나무는 축제 때마다 술 취한 사람이 열린다는 소문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간략하게 캠퍼스를 소개했다.
‘완전히 학생 느낌이라 괜히 신기하네…….’
나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둘의 뒤를 따라갔다.
대학생 준해와 함께 하는 캠퍼스 투어의 마지막 스폿은 본관. 우리는 셀프캠을 끄고 2층의 홍보팀으로 향했다.
“아. 연락 주셨던 모노크롬 소속사…….”
축제 시즌이라 일이 많은지 홍보팀 직원은 정신 사나운 책상을 뒤지다가 문득 해랑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혹시 여기 학생이신가요?”
“아뇨. 저 말고 이쪽이.”
아직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을 테지만 ‘학교에 이런 비율의 인재가 있었으면 홍보팀에서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라는 표정이었다.
해랑이 여전히 대학생 모드의 준해를 가리키자 직원은 납득했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내렸다.
준해 역시 아이돌의 비율을 지니긴 하지만, 안경을 낀 데다가 해랑 옆에선 키가 더 작아 보이는 착시 효과가 있어서 완전히 일반 학생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아아. 본관으로 오는 길이 좀 복잡하긴 하죠? 마침 학생이 안내해 줘서 다행…….”
“저희 멤버라서 같이 온 건데요?”
“네?”
“안 그래도 매니지먼트 팀에서 유선으로 연락드렸을 때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다고 해서 혹시나 했었는데……. 저희 멤버가 여기 재학생이라서 촬영 협조 드린 거예요.”
어쩐지 매니지먼트 팀을 통해 전화로 먼저 촬영 협조를 구했는데 ‘잘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알겠다고 홍보팀에 와서 촬영 허가증을 받아가라고만 하더라.’라길래 ‘왜 더 자세히 안 물어보지?’ 하고 의아해했는데.
멤버가 재학생이란 사실을 알렸는데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 어? 어, 잠시만요!”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우당탕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더 높은 사람까지 우당탕탕 데리고 나왔다.
***
“그런 일이 있었어.”
“아, 내가 주인 님 따라갈걸.”
샵에서 합류한 멤버들에게 방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주자, 머리에 핀컬핀을 꽂은 재민이 재밌는 장면을 놓친 것이 아쉬웠는지 무릎을 쳤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회사 명함을 받아가던데? 나중에 학교 홍보 모델로 촬영 가능하냐고.”
“준해 이제 아싸 아니다.”
“난 원래 아싸 아니었어…….”
홍보팀 직원들은 아이돌이 재학 중이란 것과 바로 얼마 후면 졸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졸업해 버리기 전에 빨리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우리를 붙잡으려 했다.
공연 준비가 있어서 회사로 연락하라고 연락처만 주고 나왔지만.
준해는 갑자기 학교의 관심을 받게 되자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했고, 멤버들은 유쾌한 표정으로 그의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먼저 샵에 도착한 멤버들이 세팅을 마치고, 학교에 다녀온 해랑과 준해가 이어서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에 들어갔다.
오늘은 준해의 스타일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깜짝 카메라에 좀 더 극적인 연출을 더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갑자기 아이돌 머리 색을 할 건 아니고 평소에 안 해본 스타일로 조금 변화를 줄 예정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마이 엔터의 스타일링 기능까지 활용해가며 구상해 온 요청사항을 샵 스태프들에게 열심히 전달했다.
이른바, 대학생 준해를 아이돌 준해로 만들기 플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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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ㅏㅏㅏㄱ 미쳤따 오늘 막내 짧머!!!!!!!!
쭌해 사진 봤냐고들 ㅠㅠㅠㅠㅠ(이미지) 완전 애기요크셔테리어 아니냐고ㅠㅠㅠㅠㅠ
└앜ㅋㅋㅋ검색해봤는데 요키 강아지 눈썹 있는거랑 진짜 닮음ㅋㅋㅋㅋㅋ
└울 갱얼쥐 묭실 다녀왔냐구흑흑ㅠㅠㅠㅠㅠ이쁘다 이뻐
└평소 복슬복슬 스타일도 좋은데 앞머리 눈썹 위로 올라가니까 시원하고 똘망똘망해보인다 둘다 좋다 난 못 고른다
└좀 시크해 보이는 스타일 같은데 동시에 귀엽기까지하다니 천재만재임에 틀림없다
└이제 슬슬 강아지별 왕자님인거 들킬 것 같은데 어떡해 나 지금 너무 걱정이야 우리 강아지도 사진 보고 잘생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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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라인업을 보고 모노크롬이 나온다는 사실을 접한 컬러즈.
재학생 관객이 우선시되는 공연이라 일부 컬러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앞 순서로 입장하기도 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컬러즈는 온라인으로 소식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모노크롬이 무대에 올라오자 가장 먼저 퍼져나간 것은 준해의 헤어스타일 변경 소식과 사진이었다.
“야, 근데 모노크롬 진짜 최근에 떴다는데 어떻게 알고 미리 섭외했대?”
“총학에 예지력 가진 사람 있나 봐.”
최근에야 모노크롬을 알게 된 재학생 관객들은 총학생회의 발 빠른 섭외에 감탄했다.
모노크롬의 공연 순서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앞쪽이 아니라 중간 순서로 변경되었다.
섭외 당시엔 예능에 나와서 조금 이름을 알린 그룹 수준이었지만, 그 사이에 1위 가수가 되고 히트곡까지 생겨난 것이 순서 변경에 영향을 줬다.
그래도 앞뒤 진행 순서가 있어서 공연 시간만큼은 크게 조절할 수 없었다. 모노크롬에게 할애된 시간은 20분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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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야ㅑ야ㅑㅇ지금 몬클이들 너의별 부른대ㅠㅠㅠㅠ
└나 왜 회사!!!
└영상 뜨는것만 기다리느라 말라간다,,,
└갓.너.별
└몬클버전인가요.. 라이브 내 귀로 들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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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세 곡에 짧은 토크 시간, 거기에 학교 측의 특별 요청으로 <너의 별>이 추가되었다.
모노크롬을 보기 위해 찾아온 컬러즈뿐만 아니라 재학생 중에도 컬러즈가 있었는지 타이틀곡 무대를 할 때도 제법 성원이 열렬한 편이었다.
‘쟤네가 누군데?’ 하고 심드렁한 표정이던 일부 학생들도 <너의 별>이 흘러나올 땐 뒤늦게 아는 체를 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아티스트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무대였지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마무리 인사에 있었다.
“다들 남은 공연 잘 즐기시길 바라고 저희는 이만 인사드리도록 할게요.”
“그런데 그 전에!”
우형이 리더답게 마무리 멘트를 하고, 곧바로 한이가 계획대로 끼어들었다.
“저희 막내, 현준해 씨가 할 말이 있다죠?”
한이가 건넨 마이크를 준해가 받아들고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여기 단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저와 이름이 같은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섭외된 가수가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흥미로웠는지, 관객들은 조용히 그의 말에 집중했다.
“주변 학생들이 혹시 아이돌이냐고, 모노크롬 멤버가 아니냐고 물어보면 그 학생은 그때마다 동명이인이고 같은 돌림자 쓰는 먼 친척이라 닮은 거라고 했었는,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그렇게까지?”
자세한 변명 내용까지는 처음 듣는 것이라 우형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러나 준해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런데 제가 알아보니까, 같은 항렬에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어요.”
“그 학생은 친척을 사칭한 건가요? 나쁜 사람이네요?”
“아뇨.”
재민이 웃음을 참으며 질문하자, 준해는 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마치 랩을 하듯이 빠르게 말을 쏘아냈다.
“제가 그 학생 본인입니다. 동기들, 4년 동안 숨겨서 미안해. 나 아이돌 맞아!”
그 말을 남긴 준해는 마이크를 다시 한이에게 넘기고 무대 아래로 먼저 도망가버렸다.
그의 양심 고백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멤버들이 크게 웃으며 인사했다.
“지금까지 모노크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멤버들도 준해를 따라 서둘러 내려가 버렸다.
그야말로 칼퇴크롬. 관객들이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모노크롬의 퇴장이 빨랐다.
관객석엔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술렁거림이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뭐, 뭐야?”
“나 방금 제대로 못 들었어. 저 아이돌 우리 학생이야?”
“야! 나 저 사람이랑 교양 같이 들었어! 교양에서 출석 부를 때 왠지 낯익은 이름이다 했는데!”
“나, 내가, 내가 우리 선배 중에 훈남 아싸 있다고 그랬잖아!”
그리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일일 카페 부스를 지키던 준해의 과 학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온 사람들에게 질문 세례를 받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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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혹시 단군대생들 있냐? ㅁㅊ 학교에 모노크롬 멤버 다니는거 알고있었음???
지금 4학년인데 전교생 중 알았던 사람 아무도 없대 미친거아냐?ㅋㅋㅋㅋㅋㅋ
내 동기는 교양도 같이 들었는데 몰랐댘ㅋㅋㅋㅋㅋㅋ 학교 커뮤니티 뒤집어짐ㅋㅋㅋㅋㅋㅋ
└나 단군대생 컬러즈 지금 너무 충격임.. 울 애기가 선배라뇨..
└얼굴을 봤을텐데 어떻게 못알아봐???
└본인이 그냥 닮은사람이라고 아니라고 했댘ㅋㅋㅋㅋㅋ
└아 미친ㅋㅋㅋㅋㅋㅋ그렇다고 다들 그걸 믿은거임? 개웃기네
└교양 같이 들었다던 동기 얘기 들어보니까 걍 수수한 이미지였다는데
└생얼이 많이 다른거아냐?
└몰라 안경이 ㅈㄴ두꺼워서 안경만 기억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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