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이거 하나씩 받아.”
“오, 단체복이다.”
비닐 포장에 담긴 옷을 나눠주자 멤버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로 꺼내 펼쳤다.
등에 은색 자수로 모노크롬 로고가 새겨진 까만 후드 점퍼. 이번 팬미팅 굿즈의 샘플용 소량 제작 버전이었다.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굿즈, 일코도 되면서 팬들끼리는 알아보는 굿즈 종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준비한 것 중 하나였다.
멤버들도 평소에 몸을 움직이기 때문인지 이런 편한 옷을 즐겨 입기도 했고.
‘컬러즈는 평소에도 멤버들 입는 옷을 따라 입고 싶어 했는데 잘됐다.’
멤버들의 의상이나 사복, 액세서리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건 얼마라서 살 수 있겠다, 500원이 모자라서 못 사겠다 하면서 대화하는 게 일상인 그들 아니던가.
멤버들도 같이 입는 옷이라면 분명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지금은 모노크롬 전담팀 단체복이지만 곧 컬러즈 단체복이 되겠지.
“사이즈는 다 똑같은 거예요?”
“맞춰서 가져왔는데 바꾸고 싶으면 말해.”
“전 딱 괜찮아요.”
한이는 사이즈를 체크하려고 바로 입어보고는 마음에 들었는지 벗는 대신 지퍼를 주욱 올렸다.
의상 사이즈도 파악하고 있고, 평소에 크게 입는지 어떤지 스타일은 알고 있으니 예상해서 가져온 것이었는데 다른 멤버들도 문제없는 듯 별말 없었다.
다들 뭔가를 준비해 주면 넙죽넙죽 잘 입고, 잘 먹고.
이건 마치 편식 안 하고 잘 먹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처럼 흐뭇한 기분…….
‘아니, 잠깐. 우형이가 지나가듯이 효도한다고 했던 말이 왜 지금 생각나지?’
부모님들에겐 점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가고 있을 테니 이건 걱정할 필요 없겠지.
아무튼 멤버들과 직원들에게 먼저 옷을 나눠준 이유는, 이 옷을 입은 사람이 뉴마 소속이란 것을 표시하기 위함이었다.
예능 촬영으로 방송사와 다른 회사의 스태프들이 들어올 예정이니, 촬영 시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배려였다.
다른 사람들은 뉴마 건물이 처음이니까 필요한 게 있을 때 뉴마 직원을 찾기 쉽도록.
출연진들이 도착하기 전, 촬영 장비 세팅을 위해 먼저 도착한 방송국 차량이 들어오고 곧이어 로비에도 많은 사람이 오갔다.
“조명 이쪽으로 좀 더 붙여 주세요!”
“뒤에 있는 의자는 잠깐 밖으로 옮겨 둬도 될까요?”
“아, 네!”
연습실과 작업실은 아래층에 모여 있고 사무실 층과는 분리되어 있어서 회사 내에서의 촬영은 큰 무리 없이 진행 가능했다.
촬영 장소는 뉴마에서 가장 큰 연습실. 촬영 장비와 사람들이 들어차니 공간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
QBC 예능국 사람들이 회사로 직접 찾아오니 슬쩍 인사 나누며 영업이라도 하고자 주변을 어슬렁대는 배우팀 직원들도 몇몇 보였다.
‘촬영 때문에 조금 어수선하긴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도 나쁜 건 아니란 거겠지.’
아티스트 팀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화제도 주로 이쪽에 집중된 듯했다.
“나 얼마 전에 로비에서 이라솔이랑 마주쳤을 때 엄청 놀랐는데. 오늘은 원만호 온다며?”
“음악대상에 이어서 연예대상까지 행차하시다니 무슨 일이래?”
“우리 회사에 대상 기운 흐르는 거 아냐? 우리 배우 중에 연기대상 나왔으면 좋겠다.”
대상을 두 명이나 회사로 끌어들인 것에 감탄하는 직원들. 이런 부류의 수군거림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음악대상에 연예대상. 다음은 연기대상을 찾아서 불러오면……이 아니라, 내 목표가 대상 수상자를 수집하는 건 아니었지.
대상의 기운이 흐르는 것 같다는 말에는 나도 흐뭇해졌다.
‘하지만 그 대상 기운은 모노크롬이 음악대상 받는 데 쓸 거야!’
뉴마 소속 배우가 연기대상을 받는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대상의 기운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뺏길 수 없다.
애초에 모노크롬이 불러온 사람들이니 우리가 그 기운을 이어받는 게 합리적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도 촬영 준비에 나섰다.
***
방송국 스태프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라솔과 성운이었다.
성운은 작곡가로서 오늘 촬영 내용을 지켜볼 필요가 있어서 라솔과 함께 왔다.
<너의 별> 1위 때 소식을 전해주며 연락하긴 했지만 실제로 만나는 건 곡 작업 이후 처음.
그래서인지 라솔은 오자마자 날 보고 안부 인사 겸 그 화제부터 꺼냈다.
“최근에 만나는 사람마다 노래 잘 들었단 이야기부터 하던걸요.”
“라솔 씨는 그런 이야기 자주 듣지 않으세요?”
“그런데 이번엔 특히 더요. 게다가 저뿐만 아니라 성운이한테도.”
그 말에 나도 라솔을 따라 성운을 쳐다봤다. 갑자기 자신한테 화제가 돌아오자 성운이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작곡 쪽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많아져서요, 최근에.”
“곡 의뢰가 들어오는 거예요?”
“네. 아니면 인터뷰나.”
우형이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 멤버여서 그런지 뉴마에는 그런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서 몰랐는데, 곡을 만든 이들에게도 주목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게다가 성운은 외부에 작곡가로 더 알려져서 그런 연락을 많이 받은 듯하고.
“그러면 앞으로 성운 씨가 작곡한 노래가 많이 나오겠네요.”
“잘 모르겠어요. 비슷하지 않더라도 그런 분위기의 노래를 원한다는 요청은 많은데…….”
성운은 아주 잠깐 뜸을 들이고는 이어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곡을 혼자서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다르게 말하자면 우형과 함께 만들었기에 그런 곡이 나왔다는 뜻이었다.
성운도 우형과의 시너지 효과를 느끼고 있는 걸까.
최근 들어 느끼는데 모노크롬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꽤 많이 주는 편인 듯했다.
“어? 야!”
사람들이 많이 오가서 방해되지 않도록 잠시 다른 곳에서 대기 중이던 우형은 성운이 온 것을 알아채고는 아는 체를 했다.
<너의 별>을 작업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야’로 변해 있었다.
‘동갑이고 계속 볼 사이면 친구처럼 지내는 게 편하긴 하지.’
처음엔 팀을 이룰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이루고 나니까 두 사람은 의외로 금방 친해졌다.
우형은 라솔에게 인사하곤 할 말이 있는지 성운을 데려가고, 나는 라솔과 둘이 남았다.
“아참. 이사님, 그거 들으셨어요? 저희 컨셉이 있는데, 사업을 다 말아먹고 마지막으로 신인 아이돌 그룹에 사활을 건 기획사라고. 이번 프로젝트 그룹이 잘 안 되면 회사가 망하는 엔딩이래요.”
“그런 컨셉까지 필요한가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예능이니까. 재밌잖아요.”
하긴 다른 회사 연습실에 가서 동료를 캐스팅해 온다는 황당한 설정도 붙었으니 이런 설정이 추가된다고 특이할 것은 없었다.
이게 예능인지 시트콤인지 잘 모르겠지만…….
“모노크롬 후배들이 프로듀싱 팀원들이란 설정이에요. 저는 그 기획사의 대표고요. 그래서 모델을 이사님으로 잡았어요.”
“네……?”
“아이돌 그룹 책임자 이미지를 떠올리니까 이사님부터 떠올라서요. 이참에 이사님처럼 옆에 비서를 두면 어떨까도 생각해 봤는데…… 아, 이건 급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얘기해요.”
대화 중에 작가가 방송 관련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지 라솔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끊겨 버렸다.
날 모델로 삼았다는 것도 특이한데 대체 무슨 이미지를 떠올린 거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다른 출연자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중엔 몇 번이나 이곳에 온 적 있는 라솔과 성운보다도 훨씬 더 이곳에 익숙한 인물이 있었다.
“어, 김도한!”
연기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는지, 촬영 준비하는 것을 구경하던 배우팀 연습생 몇몇이 도한을 알아봤다.
“존버하더니 성공해서 왔구나.”
“존버가 아니라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던 거다.”
마치 금의환향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소속사를 옮겨 이코드로 데뷔한 도한이지만 뉴마에서 지낸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
‘아이돌 단체 예능 촬영 때나 음악 방송에서 만나긴 했지만 다시 뉴마에서 만날 줄이야.’
프로젝트 그룹 멤버 모집 조건이 데뷔 2년 차 이내 신인이라기에 혹시? 했는데, 우리와는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그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도한은 내게도 인사하고 복도에 나와 있던 우리 멤버들에게도 또 폴더처럼 몸을 접어 인사했다.
준해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도한을 보며 새삼스러운 기분을 표현했다.
“와. 얼마 전에도 봤지만 여기서 다시 보니까 새롭다.”
“저도요. 예전에 살던 동네로 돌아온 기분이네요. 하아, 전에 음악 방송 활동 겹쳐서 선배님들 사녹 구경 가려고 했는데 저희 팀장님이 예능 촬영 전에 웬만하면 친분 드러내지 말라고 해서…….”
도한은 그게 억울했는지 멤버들을 보자마자 한탄을 줄줄 읊었다.
전에 1위 응원을 남기고 후다닥 자리를 피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나. 혹시나 친분을 이용해 예능에 캐스팅되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할까 봐.
‘그런 것치고는 같은 그룹의 한우리라는 멤버가 모노크롬 첫 1위 받을 때 울던 게 카메라에 찍혔었는데…….’
나도 처음엔 1위에 집중하느라 못 봤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을 보고 그제야 알았다.
컬러즈라고 선언하길래 그런 줄은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팬심이 깊었던 건 예상외였다.
도한은 자기 얘기를 하고는 멤버들을 빤히 보더니.
“그런데 그거 팬미팅 굿즈인가요?”
“응. 아직 샘플이긴 하지만.”
재민이 자랑하듯이 뒤를 돌아 등에 있는 자수를 보여줬다. 자랑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대놓고 부러워하는 도한.
아무래도 컬러즈가 좋아할 만한 굿즈 선정엔 성공한 모양이었다.
***
오늘 진행할 <쉰셋돌>의 촬영 내용은 ‘연습생 평가’와 ‘앨범 컨셉 회의’였다.
저번에는 그룹 멤버를 모으는 과정과 가상의 기획사와 계약하는 데까지 촬영했다나.
이 방송의 최종 목표는 앨범 활동까지 무사히 마치는 것. 프로젝트 그룹이라 데뷔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근간이 될 앨범 제작이 오늘 촬영부터 시작된다.
연습실 한쪽에 준비된 테이블 뒤에 라솔이 앉고, 그 옆에 보조처럼 우형이 앉았다.
“우형이가 송 피디님 같은 역할이래요. 프로듀서 팀장.”
“하하. 참나.”
송준오 피디는 우형에게 부여된 예능용 설정이 웃겼는지 웃었다.
송 피디가 나와 함께 촬영을 지켜보는 이유는 오늘 촬영이 앨범 제작과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프로듀서로 이름이 실린 건 모노크롬이지만, 큰 부분은 멤버들이 나서더라도 부수적인 부분은 우리 아티스트 팀이 협력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연습생 평가란 이름처럼 진짜 실력 평가의 장이기도 하지.’
우형을 제외한 멤버들과 성운은 오늘 촬영하지 않지만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같이 촬영을 지켜보는 중이다.
인터넷에도 무대나 음원 자료들이 있겠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또 다르니까.
“전 원만호의 <가을 바다> 부르겠습니다.”
“아-. 동명이인이죠.”
촬영이 시작되고, 원만호가 중앙으로 나서며 자신이 예전에 발매했던 곡을 부르겠다고 하자 출연진 한 명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쪽은 연예대상을 받은 유명 코미디언과 나이도, 외모도 똑같은 동명이인이란 설정인가.
만호가 마이크를 들고 감정을 잡자 노래방 기계에서 간주가 흘러나왔다.
라솔과 우형이 평가위원처럼 앉아있음에도, 노래방 기계로 90점 이상을 받아야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
연습생 평가란 이름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예능을 놓치진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다들 집중을 하네.’
제대로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의 라이브는 참고하기 좋은지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대신 프로젝트 멤버 그룹 멤버들을 훑었다.
원만호와 도한은 이미 만났고. 그 옆에는 ‘브이스타일’의 메인 래퍼 한 명. ‘러너스하이’의 메인 보컬이 한 명…….
‘……괜히 신경 쓰이는 구성이네.’
브이스타일과 러너스하이. 둘 다 모노크롬이 <이리> 활동을 할 때 1위를 가져갔던 그룹이었다.
물론 그 사실 때문에 섭외된 건 아닐 터였다. 데뷔 초에 1위 가수 타이틀을 얻었다는 건 주목받는 신인이란 뜻이기도 하니까.
그보다 문제인 것은 이들의 포지션이었다.
프로젝트 그룹의 멤버는 총 다섯 명.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래퍼……처럼 보이지만 ‘더클랜’의 메인 보컬이었다.
도한이 이코드의 메인 보컬이니 이 중에 메인 보컬만 세 명. 가수 출신 코미디언까지 포함하면 보컬만 네 명.
‘내가 한 포지션이 아예 없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이건 너무 극단적으로 편중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