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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59화 (159/430)

# 159화

얼핏 연락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준해가 웃다가 표정을 싹 굳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는 벽에 붙어서 상황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설마 밖에서 싸우진 않을 테고, 상황이 안 좋아진다 싶으면 말릴 수 있으니까.

어쩌다 보니 몰래 훔쳐보는 듯한 포지션이 되어버렸지만 난 원래 지나가려던 길이었어. 분위기가 안 좋아서 차마 저 사이를 뚫고 지나가기 어려웠을 뿐.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 했든, 그쪽이 관여할 일 아닌 것 같은데요?”

“관여할 일 같은데.”

“가족끼리의 일이니까 남이 뭐라고 할 일 아니죠.”

“아아. 가족이라고 생각은 하는구나.”

준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자 연찬은 “하.” 하고 기가 찬다는 듯이 짧은 숨을 내뱉었다.

“형이 뭐, 가족 얘기로 이상한 소리라도 해요?”

“넌 너희 형이 그런 소리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

준해는 다시 입꼬리를 늘였다. 웃기거나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니라, 그저 상대한테 보여주기 위한 웃음인 듯했다.

“너보단 차라리 내가 더 동생에 가깝겠다.”

지금까지 내가 봐 온 멤버들은 남에겐 예의 바르고 착하기만 했는데. 기껏해야 자기들끼리 있을 땐 발끈하는 것 정도.

이렇게 빈정거리는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건 처음 봤다.

좀 대화하다 서로 갈 길 가려나 해서 지켜봤던 건데, 가만뒀다간 감정 충돌만 더 심해질 듯해서 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크흠.”

“아, 이사님.”

준해는 날 보자마자 표정을 바꾸고 눈치를 봤다. 밖에서 외부인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자각은 있는 듯했다.

연찬은 준해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는지 내게 꾸벅하긴 했지만 표정은 상당히 별로였다.

역시 대화를 더 이어나가 봤자 서로에게 좋을 것 없겠어.

“해랑이 찾아왔어?”

“……네.”

아까 연락이 되니 마니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연락이 안 돼서 직접 찾아온 모양이다.

“우리 팀이 요즘 바빠서. 중요한 얘기면 전해줄게.”

“……아니에요.”

“음. 너도 연습생이니 알 테지만 아무래도 연예인 소속사 앞이라 매번 이렇게 찾아와서 만나는 건 어려울 것 같고. 정말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해.”

그렇게 말하며 지참하고 다니는 최 비서의 명함을 연찬에게 건넸다.

내부에서야 여러 사정이 있어서 한정된 팀을 꾸려 일하느라 내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지만, 외부에까지 내 직통 연락처를 아무렇게나 뿌리고 다닐 순 없으니까.

최 비서 개인 핸드폰 번호가 적힌 것도 아니고 업무용 번호니까 부담 없이 편리하게 활용 중이다.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연찬은 결국 떨떠름한 얼굴로 인사하고 돌아갔다.

“준해 넌 왜 나와 있었고?”

“카페 다녀오려고요…….”

우리 인턴은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군.

앞에서 만난 김에 준해가 음료를 주문하고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회사로 들어왔다.

전에 비슷한 일이 있어서인지 내 눈치를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준해 동생이 회사로 직접 전화했던 일 말이다.

이런 일로 뭐라고 할 생각도 없었기에 안심하라는 뜻으로 그에게 말했다.

“웬만하면 연락하거나 찾아오지 말란 뜻으로 비즈니스용 명함 준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준 최 비서 번호로 연락하면 몇 단계나 걸쳐서 해랑에게 전달될 테니, 부담스러워서라도 웬만한 일로는 정말로 연락하진 않을 것이다.

찾아오지 말고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줬으니 앞으로는 직접 찾아오기도 뭐할 테고.

내가 같은 편이라는 것을 이해했는지 준해는 긴장이 풀린 듯이 동그란 눈을 살짝 접으며 웃었다.

“진작 이사님께 말씀드릴 걸 그랬어요.”

“앞으로 그러면 되지.”

전엔 나한테 안 알리고 자기들끼리 해결해보겠다고 퇴근길에 보디가드처럼 붙어 다녔었지.

얼마 전엔 윤희도 내게 믿는다는 말을 해 주기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신뢰도가 쌓이는 게 느껴져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좀 이상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미소로 화답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려 뒤를 돌았는데 준해가 말을 덧붙였다.

나는 다시 방향을 틀어 뒤에 있던 그를 쳐다봤다.

“이사님은 저희 해체를 막기 위해 와 주신 것 같아요.”

갑자기 준해의 입에서 나온 해체라는 단어. 설마 멤버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지라 놀랐다.

해체라고 정확히 표현할 정도면, 혹시 내가 모를 과거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건가?

이 세상의 과거는 내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결과뿐.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재민과 윤환을 교체한 건 플레이어였던 나지만, 재민이 직원의 뒷말을 듣고 잠적한 사정은 내가 몰랐던 것처럼.

‘그런데 난 모노크롬을 해체하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아니면 누가 또 멤버들 앞에서 괜한 소리를 한 건가.

“혹시 회사에서 누가 해체 소리를 한 적이 있었어?”

만일 그렇다면 일단 이사로서 누군지는 알아야 했다. 기존에 있던 아티스트 팀 인원은 높은 확률로 뉴레인으로 옮겼거나 나갔겠지만 파악은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저 누가 언급하고 지나간 게 아니었는지 준해는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계약은…… 저희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계약은 모노크롬 멤버들과 뉴마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멤버들이 계약을 원했는데 진행이 수월하게 안 되었다면, 그건 회사의 의사가 있었단 얘기인데.

내 머리에 복잡한 생각이 들어차는 와중에도 준해는 그 ‘이상한 생각’이라는 것을 계속 이어 말했다.

“이사님이 오신 이후로 어쩐지 항상 저희는 타이밍이 잘 맞아서요. 되게 신기한 것 같아요.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준해와 시선이 마주쳤다.

“뭔가 다른 존재가 저희를 내려다보고 도와주는 것 같다고요.”

***

이사실로 돌아와서 생각에 빠졌다.

준해가 말하는 ‘계약’이란 재계약을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 데뷔할 때의 계약에 문제가 있었으면 해체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을 테니까.

‘재계약할 때도 뭔가 트러블이 있었던 건가?’

내가 뉴마에 온 것은 재계약 기간이 시작되고 난 후이기 때문에 그 전에 그룹 존속과 관련해서 무슨 상세한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지 못했다.

이 세상이 현실이 되면서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생겨났다지만, 해체와 관련된 소리가 나왔다면 그게 내 의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재계약한 것치고 모노크롬 활동 계획이 아무것도 없긴 했었지.’

그래서 내가 처음에 멤버들을 불러서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던 거잖아.

진짜 해체 직전까지 갔다가 뭔가 이유가 있어서 재계약이 된 건가?

내가 생각만 한다고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나는 최 비서를 불렀다.

“혹시 말이야. 모노크롬이 재계약할 때, 뉴마에선 계약에 회의적이었어?”

뜬금없이 작년 얘기를 묻는 내 질문에 최 비서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지 조금 시간을 두고 입을 열었다.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계약이 조금 늦게 처리됐습니다.”

“늦게 처리됐다는 게 무슨 소리야?”

“멤버들 사인을 먼저 받아두고, 회사 직인이 나중에 찍혔습니다.”

그게 뭐야. 계약서부터 들이밀어서 멤버들한테 사인하게 해 놓고 정작 회사는 간 보다가 나중에야 도장을 찍었다고?

멤버들이 회사에 질려서 계약을 거부해도 이해할 판에 뉴마는 어째서 그렇게 고자세로 나왔던 거지.

‘……그룹을 유지하고 싶었던 멤버들만 여러모로 피해자 같잖아.’

뉴마가 아티스트에게 그리 좋지 않은 회사였다는 건 알겠는데 이런 부분까지 블랙 기업 같을 필요가 있나.

내 출근 첫날, 윤희가 재계약 얘기를 하면서 한숨을 푹 쉬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뉴마가 계약을 미룬 이유는 정확히 모르고?”

“모든 건 대표님이 정하셔서…….”

“…….”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그거야. 대표가 나였는데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다만, 하나 걸리는 점은 있었다. 게임 속 시간과 내가 있던 현실의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는 점.

게임 속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으니, 내가 게임을 실제 시간으로 5년 동안 플레이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리스 콘서트 수익을 확인하고, 아이리스의 다음 앨범을 기획하면서 스타일링 세트를 지정했던 것이 마지막 플레이였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왔을 땐 이미 그 앨범이 발매된 상황이었지.’

게임 내에서도 앨범을 기획한 후 실제 발매까진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연말 특별 무대에서 신곡을 처음 공개했다고 했지. 그때 내가 지정했던 스타일링대로 세팅해서 나왔고.

내 마지막 플레이와 내가 이곳에 온 날 사이엔 내가 모르는 시기가 끼어 있었다.

‘그리고 내 의지가 아니었던 일이 하나 더 있었어.’

뉴레인이 뉴마에서 분리된 것. 그리고 배우팀 위주로 돌아가게 된 뉴마에 모노크롬은 소수의 직원과 함께 덩그러니 남았다.

내 플레이가 개입하지 않았던 기간 동안 이 세계의 대표는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이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대표였던 내가 모르는데 누가 알겠어.

게다가 지금까지 직원들과 해온 대화를 떠올려 보면,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제일 옆에 붙어 있었을 최 비서조차도.

애초에 대표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었지. 이건 최 비서 빼고.

“최 비서는 대표가, 아니, 대표님이 지금 어디서 뭐 하는지 알아?”

내가 연달아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게 이상했는지 최 비서는 눈을 몇 번 끔뻑였다. 그래도 별말 않고 바로 대답했다.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해외 출장 중…….”

“아니, 그거 말고. 지금 어느 나라에 있고 자세한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같은 거. ……혹시 연락도 해?”

“아뇨. 회사 운영은 사장님에게 일임하시고 업무에서 완전히 물러나셔서 제게 따로 업무 지시를 내리시진 않습니다. 자세한 출장 일정도 전달받은 것은 없습니다.”

결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으나 대충 예상은 했다.

지금까지 대표는 존재감이 없었고 그래서 나도 신경을 안 썼던 거니까. 모노크롬이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해체할 수도 있었다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퀘스트는 모노크롬을 키우라고 하는데 대표는 모노크롬을 버리려던 것 같지 않은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퀘스트를 시작하기 위한 배경 설정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움직였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모노크롬은 재계약을 했고, 나는 모노크롬만 집중해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얻었으니까.

만일 그렇더라도 꼭 이런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해야 했을까. 생각할수록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최 비서는 혹시 대표가, 아니, 대표님이 일하는 거 보면서 이해가 안 갔던 적은 없어?”

송준오 피디는 대표가 들어오는 일을 쳐냈던 것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대표의 바로 옆에서 일해온 최 비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는…… 대표님이 하시는 대로 따를 뿐이었습니다.”

대표의 의사 하나로 굴러가던 회사. 그게 이 조직의 문제점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일을 이렇게 잘하는데 대표가 이상하게 일하는 건 왜 그대로 따랐을까.’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이 의문을 직접 최 비서에게 물어볼 순 없었다.

‘왜 상사가 시키는 대로 했냐’고 물어보는 거, 사원에게는 진짜 짜증 나는 질문이잖아.

시키는 대로 하면 왜 시키는 대로만 하냐고 하고,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왜 멋대로 하냐고 하고.

사원 입장에 이입하니 내가 더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서 대신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내가 일하는 거 보면서 이해가 안 갔던 적은 있어?”

지금은 익숙해진 것 같지만 초반엔 내가 일하는 걸 뭔가 특이한 생물 보듯이 봤단 말이지.

그가 직접 지적한 건 아니고 나도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만.

“제가 이사님의 업무 스타일을 평가할 자격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사님이 하시는 대로 따르는 게 제 일이고요.”

“말도 안 되게 이상하게 업무를 처리해도?”

“익숙하지 않으셔서 그러신다면 제가 최대한 도움 드리겠습니다만…….”

업무 얘기긴 하지만 사담에 가깝다는 걸 느꼈는지 최 비서도 조금 편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대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는 듯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 제가 모시는 건 이사님이니까 이사님이 하시는 대로 따르는 게 맞습니다.”

어떻게 일하든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그. 상사로서는 고마운 말이었지만.

‘……내가 방금까지 계속 게임 생각을 해서 그런가.’

어쩐지 NPC인 비서 캐릭터가 할 만한 대사로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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