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변명하는 말투였지만 말할수록 관심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자신도 그 점을 알아챘는지 도아는 이제 굳이 에둘러 말하려 하지 않았다.
“배우는 그렇게 따로 채널을 만드는 케이스가 적기도 하고, 아이돌은 이렇게 활동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해서요. 가볍게 보다 보니까 좀…… 재밌어서 금방 다 보게 되더라고요.”
모노크롬 자체 컨텐츠에 대한 감상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다 보면 팬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 꽤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댓글들.
[아이돌 대리 체험 영상.. 이거 보면서 괜히 대기실에서 배달음식시키는 상상함. 방금 상상속 대기실에 후배 인사와서 활동 잘하라고 격려해줌]
[보통 영상에 마 뜨면 다 잘라내던데 여긴 되게 느긋하게 보여주네 왠지 힐링재질ㅋㅋㅋ]
[리얼리티 컨텐츠가 아니라 진짜 말그대로 리얼ㅋㅋㅋㅋㅋ]
이웃의 삶을 조영하는 교양 스타일의 비하인드라서 그런지, 정말 이웃 보듯이 친근하게 보는 사람들.
‘일반인 브이로그인데, 그 일반인이 아이돌이란 특이한 직업을 가진 거지…….’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일반인이라면 보통 재미없으니 다 편집할 텐데 아이돌은 그것조차 컨텐츠로 살릴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그냥 아이돌은 뭐 하고 사나 보러 오는 느낌. 옆집 사는 5형제 보러 오는 느낌?
물론 채널 영상 리스트엔 아이돌다운 컨텐츠와 뮤직비디오 등이 섞여 있지만, 오프 모드의 모노크롬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걸 ‘일하는 모습’으로 따로 인식하는 듯했다.
지금 도아가 말한 것이 그런 반응과 일치해서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한이가 영업하던가요?”
“아, 아뇨! 이건 그냥 그, 개인적인 취미 같은 거죠, 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개인에게 관심이 있고 그런 건 아니에요.”
한이가 아역배우를 붙잡고 모노크롬을 영업하던 게 떠올라서 질문했던 건데 도아는 뭔가를 열심히 부정했다.
나도 열애설 사건을 한 번 맞닥뜨린 경험이 있으니 그녀의 선을 긋는 행동에 동감할 수 있었다. 괜히 말 나오면 불편하고 피곤해지기만 하는 거 알지.
그래서 개인에 관한 이야기는 넘어가려고 했는데, 도아는 ‘배우’ 한이에 관한 화제를 꺼냈다.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혹시 한이 씨는 연기 계속 하시는 건가요?”
“본인이 의사가 있다면 아마도요. 배우분들만큼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하지는 못하겠지만요.”
한이도 연기하는 게 꽤 즐거워 보였고 잘하기도 했다. 그러니 좋은 기회가 또 생긴다면 아마 하게 되지 않을까.
이전에 한이가 ‘뭔가를 이룬다면 가수로서 이루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으니 모노크롬 활동과 안 겹치는 선에서 하게 되겠지만.
도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사고가 좀 갇혀 있었다고 해야 하나. 고지식한 부분이 있었는데 같이 연기를 하고 깨달음을 얻은 게 있어서요. 덕분에……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한이 덕분에요?”
“네. 정말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경험을 살린 덕분인지 다음 작품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예전부터 정말 존경하는 배우님과 같이 작업하게 돼서…….”
살짝 미소 짓는 도아의 표정에선 어쩐지 설렘이 느껴졌다.
‘개인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존경하는 배우님을 얘기할 때의 표정을 보니 호감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처음엔 정말 차가운 인상이었는데 이렇게 평상시에도 다양한 표정을 보일 줄은.
이것도 그 전환점이 계기가 된 걸까?
“그래서 한번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좀 쑥스럽기도 하고, 평소에 장난스러운 분위기라 직접 보면 말할 타이밍이 없더라고요. 괜찮으시면 이사님이 전해주세요. 앞으로 연기 활동 하는 것도 기대되고 그룹 활동도 응원한다고요.”
“전달해 드릴게요. 그리고 초대권은…….”
“크, 크흠. 그건 그냥 잊어주세요. 혹시나 회사 사람이 가면 같이 가 봐도 좋으려나 해서 물어봤던 건데, 말씀드렸던 것처럼 스케줄도 있고. 비밀. 비밀로 해주세요.”
“아, 비밀이면 어쩔 수 없죠.”
모노크롬 사이에 통하는 ‘비밀’을 알아서 말한 것이었는지, 내가 바로 알아듣고 대답하자 도아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다.
“그리고…… 주인님이 소원을 이뤄주신다는 말도 있잖아요.”
“네……?”
갑자기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이 사람, 그냥 모노크롬 영상만 본 게 아니라 컬러즈의 댓글까지 본 건가?
“제가 이뤘다기보다는…… 미신에 가까운 거죠.”
“그래도 행운을 불러오는 건 멋진 것 같아요.”
도아는 뭔가 신비로운 상상이라도 하는지 잠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인가 보네.
“기운을 받아서 저희 드라마도 잘 되면 좋겠네요.”
“저한테 정말 행운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볼게요.”
내가 그녀의 말을 이어받아 대꾸하자 도아가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다음 작품 준비로 볼일이 있는지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웹드라마도 잘 되고, 그녀의 다음 작품도 잘되도록 정말 기도해 볼까.
내가 소속사의 이사라서가 아니라, 우리와 좋은 감정으로 엮인 사람이 잘되면 덩달아 좋은 기운을 받게 되니까.
바로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간 것을 봐선 벌써 장래 유망한 듯하니 내가 기도한다고 큰 영향을 주진 못하겠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상하게 한이는 항상 과거의 추억으로 남는 것 같은데.’
레드……는 잊기로 했으니까 넘어가고.
이번에 한이와 연기해서 영향을 받았다는 도아는 벌써 다음 작품에서 다른 배우와 같이 작업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중이고.
무엇보다 컬러즈도 항상 한이에 의한 기억 조작을 간증하며 ‘과거의 첫사랑이 떠오른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왜…… 항상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만 하는 거지?
‘그래서 자꾸 잘생겼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컬러즈한테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가.’
현재의 첫 번째가 되지 못해서? 그저 그런 장난스러운 말이 습관일 수도 있지만.
의미 부여를 하니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
앨범 활동이 끝나고 현 매니저가 복귀했다.
멤버들도 활동하느라 바빠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준해가 법인 카드를 끼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온 것을 보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어쩐지 뭔가 허전하다 싶었어.”
“내가 없던 것도 아니고 뭐가 허전해?”
우형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준해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니, 내 입이 허전하다고. 나 커피 사다주라. 아아로.”
“난 바닐라라떼.”
“나도.”
“아아 하나 더.”
“아, 진짜 짜증 나!”
오자마자 또 심부름시킬 생각부터 하는 멤버들. 평소에 그렇게 커피를 자주 마시던 것도 아닌데 준해만 보면 커피가 당겼다.
그래도 어딘가 다녀와야 하는 심부름은 하루 한 번 정도면 끝이었고 카페는 바로 회사 건물에 붙어 있었기에 그리 귀찮은 일은 아니었다.
성격상 한번 투덜거려 준 준해는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가야 했다.
‘화이트모카 네 잔…… 아니, 다섯.’
음료 종류를 크게 가리지 않는 것을 알기에, 작은 반항으로 멋대로 멤버들의 주문을 바꾸며 카페로 향하던 그때였다.
“저기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준해는 발걸음을 멈췄다.
젊은 남자 목소리. 게다가 ‘저기요’의 뉘앙스를 들어보니 분명 아이돌인 자신을 알아보고 부른 것은 아닌 듯했다.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판단을 마치고 뒤돌아봤는데.
“……악!”
상대는 자신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른 준해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준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행여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했던 상대를 방심한 채로 맞닥뜨려 버렸으니.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이 얼굴은 분명 해랑의 동생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저 아세요?”
연찬은 준해가 자신을 보고 놀란 게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런 연찬의 반응을 보니 오히려 준해가 더 의아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형과 몇 년이나 함께해 온 멤버를 못 알아볼 리는 없을 텐데.
‘날 못 알아보나? ……아, 안경.’
후드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끼고 있던 마스크는 턱으로 내린 상태.
이목구비는 보일 테니 아마 그가 준해를 못 알아보는 것은 안경이 원인이었다.
멤버들도 ‘안경만 쓰면 다른 사람 같다.’라고 말하며 인정했으니.
안경이 정체를 숨기는 데 효과가 좋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준해가 대답 대신 안경을 슬쩍 내리자 그제야 알아봤는지 연찬이 “아.” 소리를 냈다.
이 반응을 보니 예상대로 뉴마 사원증 목걸이를 건 사람이라서 부른 모양이었다.
“하아. 뭐, 잘됐네요. 물어볼 게 있어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는지 껄끄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던 연찬은 어깨를 으쓱하곤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뭐야, 얘?’
준해는 말로만 전해 듣던 인간 폭탄을 방심한 상태로 마주하는 바람에 심장이 덜컹했다.
그런데 ‘넌 별로 관심 없고 물어볼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대화 좀 하겠다.’라는 듯한 태도는 뭐란 말인가.
불쾌한 기분부터 들어서 일부러 그와 똑같은 아니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해랑의 동료인 자신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정도면 해랑은 얼마나 얕보고 있는 건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까.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찬이 한숨을 섞어가며 꺼낸 본론은 뜻밖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형이 답장이 없어서요. 좀 불러주셨으면 좋겠는데.”
“답장을 안 해?”
준해가 되묻자 연찬은 뭘 두 번씩 묻냐는 듯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구시렁거리며 찾아올 정도면 고작 한 번 연락이 안 돼서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준해는 이해했다는 듯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아-. 형이랑 연락 안 되는구나?”
그 말이 정답이었는지 연찬은 얼굴을 다시 찌푸렸다.
최근 연습실이나 숙소에서, 해랑이 가끔 핸드폰을 뒤집어놓는 장면을 목격했다.
혹시 원치 않는 사람에게 번호가 알려졌거나 스팸 전화가 늘어났나 하여 물어보니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대답만 남겼을 뿐이고.
‘그게 얘였으면 이해가 가네.’
그리고 그건 해랑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전엔 무슨 빚이라도 진 사람처럼 저자세였는데. 그런 모습을 연습생 때부터 봐 왔으니 얼마나 큰 변화인지 준해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제 자신만 좀먹는 관계에 지쳐서 놓아버린 걸지도.
‘이쪽은 못 놓은 것 같지만.’
해랑이 이렇게 나온다면 자기도 눈치 볼 필요 없겠다 싶어서 준해는 일부러 건방진 포즈로 마주 섰다.
비슷하다면 비슷한 전적이 있었던 가출 선배로서 해랑의 마음을 좀 대변해 주기로 했다.
“연락이 안 되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네?”
“굳이 들어야 할 얘기가 아니었나 보지.”
웃고 있지만 분명하게 적대한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연찬은 불쾌한 표정을 지우고 아예 무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상대가 화내건 말건 준해에겐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화내야 하는 건 이쪽 아닌가. 모노크롬의 활동을 방해하듯이 자꾸 멤버의 멘탈을 건드렸던 게 누구인데.
연찬이 그나마 없던 가식도 버렸는지 노려보기에 준해도 똑같이 노려보며 응수했다.
***
“쿨럭.”
왠지 아침부터 잠이 덜 깨서 잠깐 카페를 들렀다가 바로 이사실로 돌아가려는데, 주문하고 커피를 받아 나오는 그 짧은 사이에 밖에는 예상외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 광경을 마주하고 빨대로 들이마셨던 아메리카노가 도로 나올 뻔했다.
‘쟤네 왜 같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