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선택이란 소리에 이선좌의 공포부터 떠올리는 컬러즈. 준해가 그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뒤이어 한이가 ‘화면을 보고 고민할 새가 없으니 구역 위치, 버튼 위치를 파악해둬라’, ‘결제 방식은 무통장입금으로 선택해두고 나중에 바꾸는 게 빠르다더라’ 하며 종이에 적힌 팁들을 차례대로 읽었다.
주인이 윤희와 함께 검색하고, 직원들 경험담을 들으며 긁어모아 온 팁들이었다.
컬러즈는 말로만 들어도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기에 텍스트로 열심히 끄덕거리고, 멤버들은 한이의 강의보다는 채팅에 더 집중하며 소통에 나섰다.
강독으로 변해버린 강의가 끝나고, 우형이 손뼉을 한 번 치며 집중력이 떨어진 멤버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자, 여기서 멤버들이 잘 들었는지 시험을 보겠습니다.”
“시험을 뭐로 봐?”
“실기 시험. 짜잔!”
우형이 효과음과 함께 책상 중앙에 노트북을 펼쳤다. 그 화면에는 예매 연습을 할 수 있는 티켓팅 연습 게임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혹시 사람들이 몰려서 서버에 부담될까 봐 미리 주인이 직원을 통해 사이트 측에서 라이브 방송 송출 허락을 받아왔다.
다만 책상에 노트북 한 대가 올라온 것을 보고 컬러즈는 벌떡 일어났다.
[티켓팅을 노트북으로?]
[노트북안돼ㅐㅐ]
[데탑으루 해요ㅠㅠ]
“와이파이 아니고 제대로 인터넷 선 있어요.”
“이거 좋은 노트북이래요.”
[아 비싼거ㅇㅋ]
[웬만한 컴터보다 사양좋다 다들 침착해]
실전도 아닌데 마치 자기가 하는 듯이 몰입하던 컬러즈는 준해가 랜선이 연결된 것을 보여주고 우형이 노트북 뒷면의 대기업 로고를 슬쩍 비추자 금세 납득하며 차분해졌다.
그냥 접속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니. 그저 연습일 뿐인데도 걱정이 많은 컬러즈를 보면서 해랑이 질문을 건넸다.
“그럼 다들 티켓팅 어디서 어떻게 해요?”
[pc방에 잘되는 자리 가서!]
[퇴근하고 피씨방가면 저녁까지 해결가능]
[집컴퓨터로 친구들 티켓팅 다 잡아줌]
PC방을 식당으로 사용하는 컬러즈, 회사 컴퓨터가 성공률이 높아서 퇴근 안 하고 티켓팅한다는 컬러즈 등 다양한 사례가 우수수 쏟아졌다.
결론은 사람마다 잘되는 환경이 전부 달랐다. 한마디로 운.
그리고 가끔 운이 좋다고 자부하던 우형이 첫 번째 타자로 나섰다.
“저 마우스 클릭은 자신 있어요. 작곡할 때 마우스 맨날 붙잡고 있거든요.”
“그리고 저번에 라디오에서 긴장 푸는 법을 제대로 못 알려줘서.”
그렇게 말한 재민이 어디선가 보온병을 가져오더니 안에 든 것을 컵에 따랐다.
“티켓팅 팁 말고도 긴장 푸는 방법도 알아 왔어요. 효과 있나 실험해 보려고.”
재민에게 컵을 건네받아 한 모금 마신 우형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게? 복합적인 맛이 나는데.”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페퍼민트 차.”
“페퍼민트 맛이 이렇다고?”
“……에 라벤더랑 캐모마일이랑 녹차랑…….”
재민은 들어간 차의 종류 몇 개를 죽 읊었다. 한꺼번에 마시면 효과가 더 좋지 않을까 해서 다 섞어봤다고.
“차분해지는 차니까 이름은 차분차.”
“거꾸로 해도 차분차.”
“메모하지 마세요, 여러분.”
한이와 재민이 또 자기들만의 개그 코드를 공유하는 와중, 해랑이 컬러즈가 [메모메모] 하면서 학습해가는 것을 막았다.
그 후로도 긴장 푸는 방법이라며 초콜릿도 먹고 아로마 향도 맡고 스트레칭도 하고.
거기에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물소리, 새소리와 같은 자연음을 들으며 명상까지 해야 했다.
“자, 도전!”
모든 과정을 거친 우형이 호기롭게 도전을 외치고 화면의 연습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타이머가 작동되고, 시간에 맞춰 아까 배운 대로 예매하기 버튼을 눌렀는데.
“으응……?”
아무 응답 없는 창에 우형 또한 멈춰버렸다.
“왜 아무것도 안 떠?”
그리고 몇 번 더 버튼을 클릭하다가 30초쯤 지나서야 원인을 알아챘다.
“아, 팝업 해제!”
“푸하하, 바보야! 내가 그렇게 강조했는데!”
한이가 그런 우형의 실수를 크게 비웃었다.
실패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컬러즈는 이제 팝업 해제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안 좋은 사례였지만 반면교사로서는 훌륭한 예시였다.
그 후에도 멤버들의 실패는 이어졌다.
해랑은 승부욕이 발동해서 두 번이나 시도했으나 결국 “왜 안 돼?”라며 누구에게 물어보는지 모를 한마디를 남기고 실패.
한이는 “아! 선택된 좌석!”이라는 외침과 함께 이선좌의 아픔을 뼈저리게 통감하며 실패.
동체 시력이 뛰어난 재민이 믿을 만했으나 눈이 빠른 것과 마우스 조작이 빠른 것은 별개였는지 실패.
형들의 기대를 등에 업은 준해가 소심하게 뒷자리를 잡아낸 것이 유일한 성과였다.
“……이게 배워서 되는 게 아니구나.”
“우리가 성공해야 강의가 의미 있었던 거 아닐까?”
[괜차나 마음이 중요한거지]
[몬클 티켓팅 하지마 필요한거 있으면 우리가 잡아줄게]
컬러즈는 현실적이고도 처참한 실패의 현장을 보고 멤버들을 위로했다.
멤버들보단 잘하겠지. 그런 마음이 들어서 오히려 긴장이 풀리는 효과가 있었다.
“우리는 실패했지만…… 다들 파이팅!”
“성공해서 우리 꼭 공연장에서 만나요-.”
공연장에서 만나고 싶은 건 멤버들이나 컬러즈나 마찬가지. 같은 마음으로 멤버들이 응원해 준다는 것이 컬러즈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데엔 실패했지만 다양한 안 좋은 예시를 보여주며 경각심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한 멤버들.
그들은 마치 자녀를 수능 시험장에 보내는 학부모의 심정을 느끼며 뷰이라이브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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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ㅋㄹ 팬미팅 매진됐어?
└ㄴㄴ 아직 선예매밖에 안했는데 뒷자리는 남음
└아제발내자리남아있어야돼
└팬클럽 가입 못 한 사람들 있는거 보면 일예에 좀 몰릴듯ㅋㅋ
└오..생각보다 잘 팔았나보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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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람들 머릿속에 모노크롬의 위치가 인지도 낮은 그룹에 머물러 있는지, 매진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우린 해냈다.’
모노크롬의 공식 팬클럽 회원 수는 몇 년이나 누적된 인원이라 현재 팬덤 크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꼭 뉴마 탓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이탈한 사람도 있을 테고, 돌아온 사람도 있을 테고.
최근 회원 증가세를 고려해서 선예매 구역을 조금 크게 지정했는데 선예매 기간에는 전부 매진되지는 않았다.
‘한참이나 기다려왔던 컬러즈들은 거의 선예매로 자리를 잡았을 테니 자리가 없어서 못 오는 사람은 없단 거겠지.’
험난한 컬러즈 생활을 몇 년이나 버텼는데 자리가 없어서 첫 팬미팅에 못 오면 얼마나 슬프겠어.
만족스럽게 선예매 티켓팅을 마친 컬러즈들은 차분차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으며 명상을 했더니 성공했다며 성공담을 나눴다.
재민의 차분차 레시피는 멤버들이 자세히 알려주겠다며 다시 말해 준 조합이 다 달랐던 탓에, 결국 컬러즈가 마셨다는 차분차도 각자의 레시피가 다 달랐다.
‘……들어간 종류가 다 다르면 그냥 허브차잖아.’
허브차의 효능에 대개 심신 안정이 포함되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게다가 뭐든 멤버의 공으로 돌리는 게 그들의 취미 중 하나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따뜻한 물만 떠 놓고 차분차라며 마시는 컬러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물 떠놓고 기도하는 행위에 가깝지 않나……?’
나름대로 정확한 용도로 물을 사용한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선예매에선 매진이 안 되어서 조금은 빈 곳이 생기려나 생각했는데 일반 예매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선예매 때 좋은 자리를 놓쳐서 취소표나 일반 예매 구역의 괜찮은 자리를 노리고 티켓팅하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전석 매진 기사도 낼 수 있었고, 닫아뒀던 시야 제한석까지 열어서 추가 예매를 진행할지 한창 고려 중이다.
돌출 무대도 있고, 무대를 계속 깊게만 쓸 게 아니면 괜찮겠지.
‘이제야 회사에서도 눈치를 좀 덜 주는 것 같아.’
1위 가수 타이틀도 따냈고, 공연도 매진시켰고. 주목할 만한 결과가 계속 나와주니까 회사에서도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가끔 다른 직원들이 모노크롬 팀 직원들에게 웃으면서 말을 거는 걸 보면 말이지. 아마 ‘1위 했다면서?’, ‘매진됐다면서?’ 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모노크롬 팀 외엔 친분이 없어서 내가 그런 얘기를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서로 불편해하던 사장과도 충돌할 일 없고, 이렇게 인식이 바뀌는 것을 보면 성취감이 들었다.
‘일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다니 살면서 이런 일도 있네.’
과거에 못 했던 것을 여기서 채우고 있는 게 아닐까.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아이리스가 성공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도 그 점은 변하지 않았나 보다.
그게 화면 속이냐, 밖이냐 하는 차이는 있었지만.
아무튼 공연 매진의 영향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웹드라마 공개 전이지만 한이는 가끔 인터뷰 등이 필요해서 배우팀에 호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용무로 여주인공을 맡은 윤도아도 회사에 와 있을 때가 많았다.
거기까지는 별다를 것 없는 일인데.
“혹시…… 회사에 초대권 같은 거 남아 있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아의 목소리가 지나가려던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난 방향을 보니 그녀는 자신의 매니저와 대화 중이었다.
‘매니저, 그러니까 뉴마 직원한테 초대권을 찾아?’
배우팀에서도 가끔 팬미팅을 열기도 하지만 내가 알기로 지금은 기획 중인 공연이 없었다. 소속 배우의 시사회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떻게 아냐면 우리가 공연을 기획하면서 아티스트팀 외의 다른 팀과도 많이 소통해야 했으니까.
그러니 지금 뉴마에서 나올 초대권이라면 모노크롬 공연 티켓밖에 없을 텐데.
남의 대화를 훔쳐 들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려는 방향에 두 사람이 있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모노크롬의 얘기가 맞더라도 내가 대화에 끼어들 상황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가려는데, 도아가 날 발견했는지 “꺅!” 하면서 놀랐다.
이 반응…… 맞지?
애써 모른 체하려고 했건만 날 보고 말았으니 그냥 지나가기가 뭐했다.
잠깐 멈춰서 눈인사를 살짝 했는데 도아의 반응을 보고 그녀의 매니저도 뒤돌아 나를 발견했다.
“아, 이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이렇게 직접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혹시 초대…….”
“아니, 아니! 아니요.”
매니저가 내게 인사하면서 뭔가 물어보려는 것을 도아가 황급히 막았다.
첫인상은 상당히 차가웠던 것 같은데 이렇게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굉장히 의외였다. 배우여서 그런지 금방 차분함을 되찾았지만.
그녀는 이 화제를 끝내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대화가 시작된 이상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궁금했다.
“혹시 저희 팬미팅 얘기하고 계셨나요?”
“아니, 친구가…….”
도아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모노크롬 담당자인 내 앞에서 초대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소리를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자세한 일정은 문자로 보내줘.” 하면서 매니저를 사무실로 돌려보냈다.
나와 단둘이 남자 그녀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크, 크흠. 친분이 있으면 시사회에도 초대하고 그러니까…… 아니, 친분이 있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같은 소속사 사람으로서요. 혹시 자리가 남으면 갈 수도 있다, 그런 말이었어요. 저도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가봤자 초반밖에 못 보고 나올 테고…….”
꼭 안 가도 된다는 말이었지만 말투에선 어쩐지 미련이 철철 넘쳤다.
게다가 스케줄이 있어서 초반밖에 못 본다는 건…… 공연 일자와 시간도 이미 정확히 알고 있단 뜻이잖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 가고 싶은 거 아냐?
회사에서 인사했을 때와 촬영 현장에서 잠시 만났을 땐 모노크롬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이런 쪽엔 별로 관심 없으신 줄 알았어요.”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공연에선 뭐 할지 궁금해서요. 최근에 영상을 좀 봤는데…….”
“영상도 보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