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철옹성 같던 레몬 차트가 모노크롬에게 문을 열어주고, 다른 차트에서도 발매 직후 상위권에 올랐다.
덕분에 2주 차 첫 방송인 <픽스테이지>에서 1위 후보로 오를 것이 예상되는 상황.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게 끝이 아니라 미리 정할 것이 있었다.
“1위 공약이라…….”
각자 생각에 빠져있느라 조용한 연습실에 우형의 혼잣말이 울려 퍼졌다.
음악 방송마다 스타일이 다르지만 1위 후보에 오르면 인터뷰 때 1위 공약을 물어보는 곳이 있었다.
꼭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소통 창구를 통해 팬들에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고.
바로 작년만 해도 모노크롬에겐 먼 세계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컨셉 회의 땐 다들 말 잘하더니.’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앨범 컨셉보단 1위 공약이 더 쉬운 주제일 텐데 멤버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땅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건 우형 본인도 마찬가지였기에 모두의 마음이 이해는 갔다.
한이도 멤버들의 얼굴을 쭉 둘러보고는 다들 같은 상태란 것을 깨닫고 작게 웃었다.
다들 공약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과거를 회상하며 감회에 젖어 있는 표정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지금 다시 정하라고 판을 깔아주니까 진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데뷔 초엔 후보에 오르지 않아도 괜히 상상해 보고는 했다.
1위를 하고 상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신인 시절이란 어쩔 수 없이 꿈이 많은 시기였다.
크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끼리 뭔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2년 차엔 실제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게 마지막 전성기일 줄 알았는데 계기 하나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예전엔 우리 뭐 하자고 했었지?”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 안 나는데…….”
해랑의 질문에 다들 기억을 뒤져봤으나 이미 1위와는 먼 생활을 한 지 오래되어서 풍화되듯 기억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너무 엄청난 공약은 하지 말자. 진짜 받으면 난 다리 힘만 안 풀려도 다행일 것 같아.”
부탁에 가까운 우형의 말에 멤버들도 동의했다.
이렇게 연습실에 앉아서 막연히 머리로 생각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장에선 다를 테니까.
“저희 공약은 멀쩡하게 서 있기입니다……라고 하면 안 되겠지?”
“그건 좀 그렇지.”
우형의 말을 이어받아 재민의 입에서 겨우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바로 기각당했다.
함께해 온 팬들이야 이해해 주겠지만 남들 눈에는 장난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솔직히, 멀쩡하게 서 있을 자신도 없었다.
“대단한 걸 보여주는 것보다 그 상황에 우리가 할 수 있을 만한 걸 생각해 봐야지.”
“맞아. 그리고 거창한 공약 걸었다가 못 보여주면 오히려 아쉬우니까 무난하게 갈까……?”
해랑이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준해도 무난하게 가자고 제안했다.
선거야 유권자들이 공약을 따지고 투표하지만 음악 방송은 1위 공약이 특이하다고 득표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이번엔 저번과 달리 1위의 가능성이 생겼다지만 저번과 마찬가지로 못 받을 상황도 생각해야 했다.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기대가 커지면 실망도 커진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얘기하다 보니 멤버들의 의견은 점점 소심해졌다.
“무난한 거 뭐 있지?”
“무난……한지는 모르겠지만 파트 체인지 어때? 해랑 형이 노래 부르고 한이 형이 랩 해.”
“랩 내가 할래.”
랩 얘기가 나오자 자주 메인 래퍼를 노리던 재민이 나섰다.
원래 포지션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없었기에 우형이 한 사람씩 지목하며 파트를 배분했다.
“그럼 한이가 메인 댄서 해라. 준해가 내 파트 맡고.”
“형은 뭐 할 건데?”
우형이 자신만 빼고 멤버들의 파트를 정리하자 한이가 물었다.
“난…… 멀쩡하게 서 있을게.”
멤버들은 태클을 걸 생각도 않고 끄덕였다.
우형이 제일 걱정이긴 했다. 멀쩡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노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찾아온 활동 2주 차의 첫 음악 방송인 <픽스테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칼퇴크롬을 고수하며 가장 먼저 빠져나갈 수 있는 위치를 선점했던 모노크롬은 엔딩 무대 맨 앞에 섰다.
***
[이번 주 1위의 주인공은…….]
대기실에 있는 스태프들의 시선은 생방송 화면이 송출되는 모니터에 집중되었다.
다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모노크롬! 축하드립니다!]
MC의 멘트와 함께 대기실에 울려 퍼지는 놀람과 기쁨의 환호성. 나도 발표와 동시에 주먹을 꼭 쥐었다.
‘좋았어……!’
대기실을 나서는 멤버들에게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했지만, 솔직히 하루라도 빨리 1위에 오르기를 바랐다.
아티스트에게 1위 가수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이던가. 너무나 오래 기다렸던 목표인데 너무 늦게 안겨주고 말았다.
화면 속 멤버들은 받고 싶다며 기도까지 하고 가놓고는, 실제 상황을 마주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는지 잠시 일시 정지라도 한 듯 멈춰버렸다.
“제가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다고 했……!”
얼떨떨하게 트로피를 받아드는 멤버들을 보며 나는 환한 표정으로 뒤돌아봤다.
다들 성취에 기뻐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멤버들과 똑같이 굳어버린 윤희였다.
“왜, 왜 울어요. 윤희 씨?!”
모든 상황에 달관한 듯 항상 무덤덤했던 윤희의 이런 표정은 처음 봤다. 놀란 듯 손으론 입을 가리고 크게 뜬 눈에선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멤버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함께 고생해 왔던 그녀니까 많은 감정이 교차하리란 것은 이해하지만.
‘이런 모습은 너무 의외라 놀랐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화면에 고정됐던 윤희의 시선은 이내 내게 향했다.
“저 사실…… 이사님이 처음에 하셨던 말씀, 못 믿었거든요.”
“처음에요?”
“제가, 사직서 냈을 때…….”
아. 내 첫 출근 날. 윤희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윤희에게 사직서를 돌려주며 말했었지. 모노크롬이 뭔가 이뤄낼 때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설마 그때 내가 했던 말을 몇 개월이 지나서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나도 진심으로 한 말이었고 잊었으리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이렇게 바로 그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윤희 씨의 현실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갑자기 나타난 나를 믿어달라고 했던 게 큰 도박이긴 했지.’
회사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을 치는 와중에 그녀는 내게 기회를 주기 위해 옆에서 묵묵히 일해 왔다.
내가 모노크롬을 위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는지 지켜보기 위해.
그리고 이 말을 지금 내게 한다는 것은…….
“이제 이사님이 하시는 말씀 뭐든 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이요. 이사님이 사실 신이었다고 해도 믿을게요.”
“그 정도로 믿지는 않으셔도 돼요.”
눈에 맺힌 눈물 탓인지 윤희가 나를 보는 눈이 반짝거렸다.
신이라니 무슨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그만큼 신뢰감이 생겼다는 뜻이겠지만 사람을 그렇게나 믿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했던 말은 진짜예요. 제가 신이 아니니까 어디까지 올라가게 만든다고는 확신 못 하겠지만, 힘닿는 데까지는 지원한다는 거요.”
모노크롬을 키운다는 것은 내게 퀘스트 수행의 일환이었고 현실이 된 죄책감을 메우기 위한 방법이었다.
‘처음엔 그랬지…….’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나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멤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만일 퀘스트가 없었더라도 난 같은 길을 걸어왔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은 몰랐으니까.
윤희의 호의 어린 시선에 미소로 응답하며 나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모노크롬! 축하드립니다!”
MC의 입에서 모노크롬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들이켜는 건지 내쉬는 건지 모를 재민의 숨소리가 멤버들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과거의 기억이 몰려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섯 명이 숨죽이고 1위 발표를 기다리던 데뷔 2년 차의 자신들.
시간이 지나며 기억에서 지워진 줄 알았는데 이리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아쉬워서 애써 마음에서 지우려고 노력했었던 모양이다.
그땐 아쉬운 마음을 애써 감추며 박수로 동료의 1위 수상을 축하했지만 지금은 다른 미래에 와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수상 소감 부탁드릴게요!”
많은 감정이 휘몰아쳐서 움직일 생각을 못 하는 멤버들에게 MC가 트로피와 마이크를 건넸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트로피가 눈앞에 나타나자 준해가 그것을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겨우 먼저 정신을 차린 한이가 MC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아 우형에게 다시 전달했다.
“리더가 해야지.”
‘리더’라는 호칭에 그제야 우형의 눈에도 주변 상황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MC를 맡은 후배 아이돌도, 주변의 가수들도, 그리고 앞에서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컬러즈도.
그렇게 기다렸던 첫 1위 수상 소감 시간을 멍하니 흘려보낼 순 없어서 우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저희가 1위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우선 우리를 가장 응원해주는 컬러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어…….”
감사 인사를 하려니 또다시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이름이 대표로 불렸을 뿐, 정말 많은 사람이 노력해서 받은 트로피라는 것이 와 닿았다.
우형은 1위 공약을 정하면서 미리 외웠던 이름을 하나하나 꺼냈다.
“저희 모노크롬 팀 맡아주고 계신 신…….”
순간 밖에서 주인님이라는 오해받을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이가 뷰이라이브에서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다음 날 바로 이사실로 올라가서 죄송하다고 했던 것도.
혹시라도 잘못 말할까 봐 우형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주인 이사님. 데뷔 때부터 함께해 주신 송준오 프로듀서님. 그리고 우리 매니지먼트팀의…….”
리드 래퍼인 덕분인지 다행히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안 나오기 전에 말할 사람은 빠르게 다 말할 수 있었다.
엔딩 멘트 시간을 확인하고 가장 중요한 이름들을 다시 꺼냈다.
“무엇보다 우리 멤버들.”
우형이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멤버들을 쳐다봤다.
다들 눈에는 눈물이 고인 채 웃음으로 화답했다. 준해는…… 트로피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 울고 있었지만.
“그리고 컬러즈.”
시선을 돌려 관객석에 대표로 와 있는 컬러즈를 눈에 담았다.
오늘 본방송에 와 있는 컬러즈는 스물이 조금 넘었다. 1위 후보인 덕분에 방청 인원이 평소보다 늘었다고 들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노력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었다.
“믿고 기다려준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팬들은 항상 위로 올라가기를 꿈꾸는데, 자신들이 노력해도 팬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서 사실 많이 미안했다.
아마 긴 시간 동안 지쳐서 떠난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 와중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남아주고, 혹은 새로 응원하러 다가와 줬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함께해 줘서 고맙습니다.”
멤버들과 컬러즈를 향한 많은 마음을 담아 우형은 그렇게 말했다.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은 말엔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네! 모노크롬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인사드리도록 할게요. 한 주를 시작하는 <픽스테이지>…….”
MC의 엔딩 멘트가 이어지고 다른 가수들이 박수를 쳐주며 퇴장했다.
자신들을 위해 터졌던 꽃가루가 깔린 무대.
가장 마지막에 서 있는 게 본인들이란 사실이 새삼스레 와 닿아서 멤버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인 준해를 중심으로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
━━━━━━━━━━━━
픽스테 본방 다녀왔는데 몬클리더 1위 받고 통곡하다가 멤버들한테 끌려나감
카메라 꺼지니까 주저앉더라
팬들도 통곡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티슈 꺼내줌 ㅋㅋ
└아 ㅋㅋㅋㅋㅋ 받아서 다행이다
└걔 맞지 통곡팬싸? 의외로 안 울고 말 잘한다 싶었는데ㅋㅋㅋ
└울만하지 ㅠㅠㅠ 6년차에 다시 떠오르는게 어디 쉽나
└팬 아닌데 1위했으면 좋겠더라. 전성기만 지나도 사람들이 망돌소리하면서 끝난것처럼 구는데 이런 케이스도 있어야지
└얘넨 서사가 찐.. 먼가 응원하게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