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48화 (148/430)

# 148화

모노크롬 정규 앨범 발매에 앞서 꼭 좀 와달라고 가장 먼저 연락한 것은 역시나 유아이TV였다.

다만 빠른 텀으로 앨범 발매가 이루어진 탓에 <이리> 때 했던 그림자 컨텐츠들은 또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안무 영상이야 괜찮은데 인터뷰나 퀴즈는 또 하면 좀 식상하겠지…….’

이미 그때 온갖 에피소드를 털어놓고 가는 바람에 더 이야기할 만한 소재가 없었다.

아니, 멤버들이라면 또 새로운 주제를 찾아서 조잘조잘 분량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유아이TV도 그 점을 고려했는지 이번엔 다른 컨텐츠로 우리를 초대했다.

당연히 출연하겠다고 답했고 촬영일이 다가왔다. 만날 때마다 표정이 밝아지는 작가는 전보다 더 기쁘게 우리를 반겼다.

“이제 여름도 다 지나가서 공포 외에도 새로운 레귤러 예능 코너를 만들려고 했는데 아직 기획 단계라 아쉬워요. 모노크롬분들을 꼭 첫 타자로 부르려고 했는데.”

“매번 다른 컨텐츠로 초대해 주시는 것도 신기한데요…….”

모노크롬이 컴백할 때마다 유아이TV도 컨텐츠가 하나씩 추가되는 중이었다.

이번엔 솔로, 듀엣 아티스트를 위한 컨텐츠였던 심화 토크 인터뷰를 기반으로 조금 변형해서 새 코너를 만들어 봤다고.

“그림자 안무 영상도 계속 제작 중인데 반응이 꽤 좋거든요. 모노크롬이 없었으면 못 만들 컨텐츠였어요. 역시 모노크롬으로 시작하면 흥한다는 말이 맞나 봐요.”

“그런 말이 있어요?”

“저희끼리 하는 말이지만요. 진짜 자주 컴백해 주시면 좋겠어요!”

유아이TV의 제작진들에게 모노크롬은 행운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노크롬으로 시작하면 흥한다니. 이번에 토크 인터뷰를 변형했다는 컨텐츠도 잘되면 그 말이 증명되지 않을까?

정말로 그런 신비한 힘이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확률이 높으면 괜히 믿게 되니까. 우형이 여우비를 불러온다고 소문난 것처럼.

“미리 준비해 주신 MR은 이 순서가 맞죠? 타이틀곡이 제일 마지막.”

“네. 맞아요.”

이번 컨텐츠는 우리도 미리 준비할 것이 있었다. 하이라이트 메들리처럼 짧게 짧게 편집한 모든 수록곡의 MR 음원.

이번 컨텐츠의 제목은 ‘하라메 쇼케이스’. 전체 수록곡의 하이라이트 파트를 부르며 앨범을 소개하고 대화를 나누는 컨텐츠였다.

기존 토크 인터뷰 컨텐츠의 MC를 맡은 라디오 DJ 박대웅이 이곳에서도 MC를 맡는다고 한다.

라디오 DJ가 MC를 맡은 만큼, 라디오와 구성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토크를 진행하다 노래를 듣고, 또 토크를 하다가 노래를 듣고. 영상으로 남겨진다는 것과 한 가수의 한 앨범에만 온전히 집중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외부에서 수록곡까지 부를 기회는 흔치 않은데 잘됐지.’

기자들에게 앨범을 소개하는 프레스 쇼케이스도 따로 진행하지만 타이틀곡과 수록곡 몇 개를 제외하고는 직접 라이브나 무대로 선보이지는 않는다.

이 ‘하라메 쇼케이스’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한 곡 한 곡에 집중하면서 모든 수록곡의 하이라이트 파트를 부를 기회였다.

단독 공연을 하더라도 빠지는 곡들이 있기 마련인데 앨범 전곡 소개라니 거절할 수가 없지.

팬들은 무대로 보고 싶은 수록곡을 마음에 하나씩은 꼭 품고 있지 않은가. 짧게라도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할 것이다.

‘어디서 또 이렇게 앨범 소개에 힘을 써주겠어.’

유아이TV의 이번 컨텐츠는 팬들보다 아티스트 소속사가 더 좋아할 만한 컨텐츠가 되지 않을까.

첫 정규 앨범이니만큼 모든 곡에 공을 들였기에 더욱 기대되는 컨텐츠였다.

***

“이번 앨범 . 무려 열두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무슨 컨셉이 담긴 앨범인가요?”

오프닝송으로 <설렘의 시작>의 후렴구를 부르며 인터뷰 촬영이 시작되었다.

MC의 말대로, 이번 앨범엔 CD Only로 담긴 보너스트랙을 제외하고 열두 곡이 수록되었다.

12란 많은 의미가 담긴 숫자였다. 12개월이 모여서 1년. 혹은 시계에 1부터 12까지 표시된 것처럼 시간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리더인 우형이 앨범에 담긴 의미를 먼저 설명했다.

“앨범명이 타이틀곡과 똑같이 인데요. 타이틀곡은 다중인격 컨셉에 맞춰 일인극이란 뜻. 그리고 앨범명의 ‘모노드라마’는 모노크롬의 드라마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모노크롬의 드라마. 모노크롬의 삶을 드라마처럼 조영한다는 의미인가요?”

“저희뿐만 아니라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도요. 일상의 장면들에 이 앨범의 곡들이 배경음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겼어요.”

“아. 일상의 OST를 담은 앨범이다, 그 말씀이시군요.”

“네.”

앨범 소개 순서에선 사뭇 진지했지만, 정말 쇼케이스에서 기자들과 질답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후엔 주로 가벼운 이야기들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이 곡이다!’ 하고 정해진 게 있나요?”

“사람마다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다르니까, 사실 딱 정해진 곡은 없어요.”

“그렇다면 멤버분들이 생각하는 아침의 곡은?”

“하루를 시작하는 곡이니까 <설렘의 시작>?”

재민이 <설렘의 시작>을 꼽자 다들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팬송으로 만들어진 이 곡은 제목대로 하루로 치면 아침, 일 년으로 치면 봄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었다.

다만 딱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처럼 옆에서 준해는 다른 곡을 꺼내 들었다.

“‘일어나다’가 영어로 ‘wake up’이니까 은 어떨까요?”

자신이 <이리>에서 비틀댄다는 가사를 쓴 탓에 비틀비틀주행을 하는 것 같다며 시무룩해 하는 준해를 위해 우형이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곡.

반쯤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그 곡이 정말로 완성되어서 이번 정규 앨범에 수록되었다.

멤버들이 뷰이라이브에서도 몇 번 언급했는지 실제로 트랙리스트에 오른 제목을 보고 컬러즈가 반가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듣기에는 너무 쾌활한 분위기 아니야?’

처음엔 차트 위로 올라가자는 마음으로 시작되었으나 그런 내용을 그대로 가사에 담을 수는 없었고, 고양되는 기분, 신나는 기분을 담은 곡으로 탄생하였다.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자는 의미라면 아침에 어울릴 수도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준해가 을 꼽은 이유를 이어 말했다.

“아침에 해랑 형 귓가에 대고 들려줬는데 잘 일어나더라고.”

“……누구든 그렇게 깨우면 일어나지.”

기상송으로 이미 겪어본 해랑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준해를 쳐다봤다.

잔잔한 알람 소리에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데 빠바밤! 하는 곡을 귓가에 들려주면 누구든 깜짝 놀라서 일어나지 않을까.

‘사실 실제로 컬러즈가 아침부터 찾는 건 타이틀곡인 겠지만.’

앨범을 발매하면 아침마다 커뮤니티에 그런 게시물이 올라왔었지. [다들 스밍 확인하자!]라며 새벽 동안 스트리밍이 끊기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글.

수록곡도 중요하지만 타이틀곡 스트리밍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다들 타이틀곡의 재생횟수가 몇 번으로 찍혔는지, 중간에 횟수가 누락되지 않았는지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그럼 타이틀곡인 는 언제 들으면 좋을까요?”

“제가 작곡하면서 떠올린 이미지는 저녁에 가까웠어요. 저녁에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주변은 조명이랑 사람들로 시끄러운데 차 안은 밖이랑 차단된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아서요. 따지자면 퇴근길?”

우형의 말에 한이가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덧붙여나갔다.

“그 말 들으니까 생각났는데, 직장 다니는 동창들이 그러더라고요. 회사에선 ‘여기 있는 나는 내가 아니다. 다른 자아다.’라고 생각하는 게 멘탈 관리에 좋다고. 퇴근길에 원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지.”

“와. 그 말 엄청 공감 가네요.”

원래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였다는 박대웅이 한이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나도 공감. 그런 생각이라도 안 하면 5년이나 버티진 못했을 테니까.

“말이 나와서 그런데, 멤버분들도 가끔 평소랑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평소엔 상냥한데 특정 상황에선 무서워진다거나.”

“그거 완전 여우 형…….”

“동감.”

“내가 뭘?”

“지금 이러잖아.”

우형이 자신을 지목한 재민을 빤히 쳐다보자 재민이 고개를 뒤로 쭉 뺐다.

우형은 남과 대화할 땐 주로 웃는 상인데, 그 웃는 얼굴에도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곡과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길게 이어진 인터뷰의 마지막 곡은 역시 타이틀곡인 였다.

타이틀곡만큼은 하이라이트 파트가 아닌 완곡. 따로 마련된 세트에서 안무 영상을 겸해 찍는 것으로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

<박대웅의 밤 음악 여행>을 녹음하는 라디오 부스.

DJ를 맡은 박대웅은 오랫동안 심야 라디오를 진행해 오면서 다양한 노래를 소개하고 들어왔다. 그의 DJ 경력을 걸고 웬만한 가요엔 통달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녹음을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대본을 건네주며 작가가 물었다.

“무슨 노래인데 아까부터 그렇게 부르세요?”

“어?”

대웅은 그제야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마음에 드는 곡이 있을 때마다 그가 보이는 습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을 하루 종일 흥얼거리는 것.

“이거 무슨 노래였지? 나나- 나나나나- 하는 노래 있잖아.”

대웅이 같은 멜로디를 흥얼거리자 작가는 고개만 갸웃했다.

“최근에 나온 노래예요? 잘 모르겠는데…….”

“별 보면서 ‘잘 자, 지금 만날까?’ 이런 가사였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네.”

“김 작가님. 우리 최근에 틀었던 곡 중에 가사에 별 들어간 거 있었나?”

“한은아 아니에요?”

“아냐. 멜로디가 다르잖아.”

심야 라디오여서 밤이나 별에 관한 노래는 특히 많이 아는 스태프들인데, 다 같이 머리를 맞대도 좀처럼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장 답답한 것은 곡의 멜로디와 대략의 가사만 기억하고 있는 대웅이었다.

“분명 내가 최근에 들었…… 아!”

대웅은 뒤늦게 자신이 그 곡을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렸다.

라디오가 아니라, 유아이TV의 컨텐츠를 촬영하면서 들은 곡이었다. 모노크롬의 <너의 별>.

‘다들 모르는 게 당연하지.’

유아이TV는 음반 발매에 맞춰 영상을 올리므로 발매 전에 미리 촬영을 진행했다.

그러니 모노크롬은 아직 컴백 전. 자신은 아직 발매도 안 된 곡을 흥얼거렸던 것이었다.

딱 한 번 들었을 뿐인데 마치 여러 번 들은 것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니.

라디오를 진행하며 모노크롬의 노래가 신청곡으로 들어와 한두 번 틀었던 적이 있었다. 전부 올해였고 그 전까지는 이름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큰 기대가 없었는데, 촬영 현장에서 들은 모노크롬의 신곡들이 의외로 전부 첫인상이 괜찮았다. 그중에서도 취향에 적중한 것이 바로 이 <너의 별>.

듣기 좋은 곡과 부르기 좋은 곡은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그 곡은 자신도 부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생각나셨어요? 누구 곡이에요?”

“지금은 말해 줄 수 없어.”

“네에?”

대웅이 뭔가 떠오른 듯이 “아!” 하더니 갑자기 입을 다물자 다들 그의 답만 기다렸다. 그런데 말을 못 해주겠다니.

대웅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발매 전인 곡을 발설하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왜 말을 안 해주세요. 궁금해 죽겠네.”

“한 2주쯤 후 게스트 다 정해졌나? 조만간 컴백하는 그룹이 하나 있는데 꼭 불렀으면 해서.”

“갑자기요?”

혼자만 아는 곡을 부르더니, 뜬금없이 곧 컴백할 그룹을 섭외하자니. 작가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웅은 어딘가 확신에 선 얼굴로 웃었다.

“진짜 괜찮은 친구들 있는 것 같거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