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46화 (146/430)

# 146화

“반짝반짝.”

“쨍쨍.”

“둘이서 뭐 해?”

모노크롬의 첫 정규 앨범 준비가 한창인 뉴마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스 팀과 회의하고 나오는데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니, 복도 끝에 달린 창 앞에 한이와 재민이 서 있었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는데…… 대체 뭐 하는 거지? 계속되는 앨범 준비에 피곤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 중인 걸까.

“저희 팬송 작곡하는 거 있잖아요.”

“응.”

내가 다가가면서 질문하자 재민이 답했다.

“처음이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여우 형이 일단 풍경을 보면서 감수성부터 채우고 오래요.”

“나보다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창작의 고통을 겪는 중이었군.

의태어를 나열하던 건 나름대로 시각적인 정보를 말로 표현해내는 훈련이었던 모양이다.

원래 자체 제작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만, 이번 정규 앨범에 들어갈 팬송은 특히나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게다가 타이틀곡보다도 먼저 수록이 정해진 곡이었다.

[이번 앨범에 타이틀곡 외에, 수록곡으로 꼭 넣고 싶은 곡 있어?]

[정규니까 역시…….]

[팬송이죠.]

몇 곡이나 넣을지, 어떤 느낌의 곡을 넣을지 대략적이라도 틀을 잡아놓기 위한 질문이었는데, 멤버들은 만장일치로 ‘팬송’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준비라도 한 듯이 대답하기에 물어보니 이미 만들기로 한 곡이 있다고 했다.

[올 초에 <기다림의 끝>을 냈었잖아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이어지는 곡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우형은 엔피버에게 곡을 줬을 때부터 새 팬송을 만들 계획을 짰던 모양이다.

‘하긴. 팬들을 생각하며 만든 곡은 도 있지만 그 전엔 <기다림의 끝>이 전부였으니까.’

그 곡은 당시 모노크롬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곡이었으나, 내용이 이별에 가까워서 가사를 바꿀 생각도 했었다.

어찌 보면 컬러즈에겐 마음 아픈 곡. 그러나 좀 더 희망찬 분위기의 새 팬송으로 이어진다면 느낌이 달라지겠지.

[그럼 가사도 <기다림의 끝>이랑 이어지는 거야?]

[조금은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저희 다섯 명이 다 같이 작사하면 어떨까 해요.]

[다섯 명이 다 같이?]

[나도? 작사를?]

곡을 만드는 것까지는 알았는데 작사 얘기까진 못 들었는지 한이와 재민이 매우 놀랐었다.

작곡과 작사를 같이 하던 우형, 원래 랩 메이킹을 하니 가사를 쓸 줄 알던 해랑, 작사가 데뷔를 이미 마친 준해.

남은 건 지금 여기 복도에 나와 있는 두 사람.

“밖에 뭐가 보이기라도 해?”

“으으음. 풀, 하늘…….”

안타깝게도 회사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 삭막한 건물들과 인공 조성된 화단뿐.

그나마 가을이 다가와서 하늘은 평소보다 푸르렀다.

“노래야 많이 불러왔으니까 대충 느낌은 알겠는데, 종이 앞에 두고 생각하려니 영 집중이 안 되네요.”

한이가 팔을 뒤로 뻗어 기지개를 쭉 켜며 하품했다. 웹드라마 촬영도 라스트 스퍼트 중이라 피곤하기는 할 터였다.

재민도 시선은 밖에 두고 있지만 뭔가를 보는 건 아니고 그저 멍하니 햇살만 즐기는 얼굴이었다.

아마 우형도 감수성 충전보다는 잠이라도 깨고 오라고 두 사람을 나오게 한 건 아닐까.

“곡 제목이 뭐라고 그랬지?”

“<설렘의 시작>이요.”

기다림의 끝. 그리고 설렘의 시작.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멤버들 의견으로 최종 결정된 제목이었다. 끝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렘이라…….’

단어 자체로 특유의 풋풋함과 따스한 감성이 느껴졌다.

나는 설렘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언제던가……. 해파리처럼 그냥 되는 대로 일상의 흐름에 떠다닌 지 한참 되어서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감수성이 다 죽어 버렸는지 요즘은 집에서 혼자 영화를 봐도 업무 참고 자료로 보였다.

멤버들은 나 못지않게 힘든 사회생활을 거쳤을 텐데. 역시 아티스트라 그런지 감수성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근데 여기서 이렇게 피곤한 회사원들 지나가는 걸 보면서 설렘과 관련된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나마 푸릇푸릇한 화단 옆에선 근처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인생의 쓴맛이라도 승화시키는지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것보다는…….

“여기서 감수성을 충전하는 것보다 당분을 충전하는 게 더 확실하지 않을까?”

“당분은 언제든 옳습니다.”

“당분…… 아이스크림.”

간식 러버인 한이는 창밖 하늘을 보며 맛있는 것을 떠올리는지 표정이 한결 온화해졌다.

재민은 뭐든 잘 먹긴 하는데 미국에서도 그렇고 아이스크림이 항상 먹고 싶은 듯하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바람 쐴 겸 카페 가서 디저트나 사 오자. 머리를 굴리려면 연료가 있어야지.”

“와!”

“좋아요.”

둘 다 가만히 서서 태양광으로 감수성을 억지로 채우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좋다고 판단했는지 금방 따라나섰다.

“형은 막 먹어도 돼? 춤출 때 자꾸 몸이 무겁다고 하지 말고 가볍게 만들 생각을 해야지.”

“으. 해랑 형 같은 소리 하지 마. 그건 몸이 무거워져서가 아니라 네가 너무 굴려서 힘이 빠진 거야.”

한이는 잔소리는 지긋지긋하단 표정으로 진저리를 쳤다.

시연에게 과자를 넙죽넙죽 받아먹던 한이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멤버들이 자꾸 한이의 다이어트를 감시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촬영하느라 그런지 요즘 살 좀 빠진 것 같던데, 오늘은 머리 쓰는 김에 치팅 데이라고 쳐.”

“와. 들었지? 이게 진짜 설렘의 시작이다.”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이는 퍽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사람마다 다양한 설렘이 있을 수도 있지.’

한이에겐 풍경보다는 먹을 것이 설렘을 느끼게 하는 대상인 거고.

생각해 보면 나도 뒷일 생각 안 하고 카드를 긁을 때면 조금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뭐 하나 살 때도 살까, 말까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던 예전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니까.

이런 생활에도 익숙해져서 소비 습관이 이상해졌는지 뭔가를 살 때 양 조절을 못 하는 문제가 새로 생겨 버렸지만.

덕분에 오늘도 엄청난 간식 양에 눈이 휘둥그레진 멤버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

이번 타이틀곡 의 뮤직비디오 세트는 크게 나누자면 두 가지였다.

일인극이란 뜻에 맞춘 연극 무대 세트와, 여러 방이 있는 집 세트.

그 외에 군무 촬영을 진행할 세트도 따로 마련되었지만, 컨셉에 특화된 이 두 세트가 뮤직비디오에 메인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오늘은 그중 집 세트에서 촬영하는 날.

가구 등으로 공간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이곳에서는 안무 촬영 없이 각자 개인 컷 촬영만 진행했다.

“뭔가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다, 느낌이.”

세트를 둘러본 우형이 그렇게 말하자, 같이 집 구경을 하던 준해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던하고 좋지 않아?”

“너무 각 잡혀 있어서 3D 모델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우형의 말대로 세트 안엔 그레이톤으로 이루어진 가구가 딱딱 각 잡혀 배치되어 있어서 어딘가 서늘함이 느껴졌다.

‘애초에 이 세트는 ‘사람이 사는 집’을 표현한 게 아니니까.’

거주를 위한 집이라기보다는 내면의 자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공간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은 위화감이 느껴진다는 설정.

멤버 다섯 명은 각각 거실, 욕실, 주방, 침실, 서재를 담당해서 그곳에서 각자의 개인컷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촬영 순서 첫 번째는 침실을 담당한 재민. 감독은 콘티를 들고 재민에게 촬영 방향을 전달했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집 안 곳곳을 똑같은 상태로 정돈해 놓는 사람인데, 자기도 모르는 새에 침구의 위아래가 바뀌어서 이상함을 느끼는 거야. 누가 들어올 리 없는데.”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재민을 데리고 미리 짜인 동선 그대로 움직였다.

“여기까지 와서 이불 위에 가위가 있는 걸 발견하고 집어 들면, 밖에서 스태프가 문을 노크할 테니까 고개를 들고 문 쪽을 바라보면 돼요. 표정은 계속 무덤덤한 상태로.”

재민이 알았다는 표시로 끄덕이자 감독은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갔다.

지시대로 집어 들었던 가위를 원래 자리에 고이 내려놓은 재민은 촬영 전에 헤어를 최종 체크 받으며 뒤에 서 있던 내게 말했다.

“이거 진짜로 공포 영화 같지 않아요? 폴터가이스트 같은 거.”

“귀신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좀 으스스하다.”

영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미지에 대한 공포도 공포긴 하지.

지금은 조명이 적당히 비추고 있으나 완성본에선 비가 내리는 날 불이 꺼진 집처럼 어둑하게 편집될 예정이다.

대놓고 무섭게 연출하진 않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선 오싹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뮤직비디오 내용을 직접 겪는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무섭지.’

멤버들의 개인컷 촬영은 공간만 다르고 전부 비슷한 전개로 이어졌다. 책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든가, 처음 보는 신문이 놓여있다거나 하는 식.

하나여야 하는 인격이 둘, 혹은 여럿으로 나뉜 탓에 이 내면의 공간에 침입자가 생겨났다는 내용.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지만 실제 상황으로 대입해 보면 공포로 느껴질 법도 했다.

“그거 아세요? 귀신은 사람이랑 반대로 행동한대요. 이것도 거꾸로 해 놓은 거 보면 귀신이 해 놓은 것 같잖아요.”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로 무섭잖아.”

컨셉 자체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이런 세세한 요소는 뮤직비디오 제작사에서 추가한 것이었다. 그것을 재민이 무서운 쪽으로 해석해냈다.

그런 얘기는 그만둬. 너희는 다섯 명이 같이 살지만 난 집에 가면 혼자란 말이야.

“다른 자아가 이불을 개어놓거나 하면 좋을 텐데.”

“그건 우렁각시지.”

재민의 이야기는 갑자기 민화에 가까워졌다. 물론 뮤직비디오 내용의 다른 자아는 대립하는 존재에 가깝지, 그런 친절한 설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맥 빠지는 대화 전개 덕분에 다행히 돋으려던 소름이 도로 들어갔다.

‘하긴 귀신이 뭐가 그렇게 무섭겠어.’

집에 모르는 귀신이 있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게 더 무섭다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무서운 생각을 애써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으스스한 분위기와 달리, 풀어놓으면 알아서 잘 노는 모노크롬답게 촬영장 분위기는 금세 평화로워졌다.

“아! 좁은데 왜 다 여기로 오는 거야. 저기 소파 있잖아.”

“백해랑, 다리 좀 접어봐.”

재민의 개인컷 촬영이 끝나자 침실은 멤버들의 휴게실로 변모했다.

다음으로 개인컷 촬영 중인 준해를 제외하고, 네 사람은 침실 세트 중앙에 놓인 킹사이즈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세 사람은 등받이에 기대서 나란히 누워있고, 방금 개인컷 촬영이 끝난 우형이 아래 남은 공간에 가로로 엎드리고.

좁고 불편한 모양새였지만 앨범 준비로 바쁜 나날이 이어진 탓에 잠시라도 폭신한 곳에 몸을 뉠 수 있다면 뭐든 괜찮은 듯했다.

‘숙소에서 저러고 지내지 않을까?’

숙소에 출입하는 것은 민형을 포함하여 일정을 함께하는 매니저뿐.

멤버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갔다.

테트리스 퍼즐을 맞추듯이 어떻게든 꾸깃꾸깃 침대에 몸을 걸친 멤버들에게 비하인드용 카메라를 든 민형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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