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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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클 대표곡 뭐냐고 물어보는 글마다 누가 12345 들어보라고 영업하고 다니냐?
애들 음색이나 비주얼 얘기면 이해하겠는데 노래랑 가사가 좋다고? 진심임?
└나도 방금 봄 개열심히 댓글 달고다니네
└우형이가 만든 곡 좋은게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그걸 영업하고다녀
└컬러즈 아닌듯
└뉴마 작곡팀 커뮤하냐
└제ㅔㅔ발 모노필름 들어줘ㅓ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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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의 망령에서 벗어났더니 다시 나타난 <12345>의 망령. 이제 이런 도돌이표도 지겨워질 지경이었다.
이곳이 게임 속 세계관이라 같은 세이브 데이터를 계속 로드하는 것처럼 타임 루프라도 일어나고 있는 건가.
그나저나 느닷없이 <12345>라니.
‘최신곡으로 가장 길게 걸려 있던 곡이니 모노크롬 하면 그 곡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지만…….’
<12345>의 발매 후 해랑의 빨간 머리 색이 다 빠질 정도로 비활동기가 굉장히 길었다.
그만큼 가장 오래 최신곡으로 남아있었고, 재킷 사진 또한 프로필 사진으로 오래 걸려 있었다.
웬만하면 모노크롬과 관련해선 좋지 않은 감상을 삼가던 컬러즈였으나, <12345> 발매 땐 자가복제곡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 또 뻔한 신곡이 나와서 폭발해버렸다……고 윤희에게서 전해 들었었다.
‘나도 1년도 안 지났지만 벌써 악동 소리는 지긋지긋한데 몇 년이나 접했을 컬러즈는 오죽했을까.’
그 때문에 비슷비슷한 자가복제곡 중에서도 특히 <12345>는 컬러즈의 분노 버튼과도 같은 곡이었다.
게다가 그 후에 쭉 비활동기가 이어지는 바람에 ‘뉴마 욕먹었다고 반항하냐?’ 하며 더 분개했다고.
‘왜 그런 거야, 뉴마…….’
플레이어였던 내 자아를 이렇게 ‘예전엔 그랬어요’ 식으로 접하다 보면 그런 생각만 들었다. 나는 당시에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으니까.
세상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아무튼 모노크롬의 대표곡을 묻는 사람에게 그 곡을 들어보라고 추천한다?
‘이건 놀리려는 목적이잖아.’
작년이라면 <12345>를 듣고 ‘모노크롬은 이런 그룹이구나.’ 하고 판단해도 할 말이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새롭게 리뉴얼을 거쳐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중인데.
예능 소식에 기뻐하는 컬러즈도 많았지만, 한쪽에서는 ‘제대로 된 곡으로 먼저 추천 댓글을 선점해야 한다.’라며 <12345> 공격에 대한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위해 기쁜 소식도 미뤄두고 전투태세를 취해야 한다니. 보면 볼수록 팬 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흠.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모노크롬을 알긴 해도 ‘이 노래 부른 가수!’ 하는 대답이 잘 안 나오는 건 맞는 것 같아.’
따지자면 모노크롬의 시그니처인 모노필름 시리즈가 가장 대표곡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데뷔곡인 모노필름을 계속 밀기는 조금 오래되었고, 시퀄은 그룹 재활의 시작 단계에서 나온 곡이라 큰 주목을 받지 못해 대중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모인 지금, 사람들이 ‘모노크롬’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한 신곡이 하나 더 나와준다면.
그리고 그 곡은 실력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 앞 평가대에도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번 첫 정규 앨범에는 많은 게 달려 있었다.
***
“형, 내일까지 촬영 없다 그랬나?”
“오-. 현 매니저. 이제 먼저 형 스케줄 챙길 줄 아는데.”
“아니. 그 느끼한 소리 좀 언제 안 듣나 해서.”
한이는 오늘 드라마 촬영이 없는 날. 그래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오늘 컨셉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연기 공부를 한다더니 뜬금없이 명대사를 뱉고 가는 이상한 부작용이 생겼다면서 준해가 내게 한탄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준해의 정 없는 말에 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대답했다.
“난 장소 이동이 거의 없어서 한 번에 많이 찍을 수 있거든.”
“그래? 아쉽네…….”
“내 얼굴 자주 볼 수 있는데 뭐가 아쉬워?”
한이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준해는 “흐흥.” 하고 작게 웃으며 대충 넘어갔다.
한이가 출연하는 웹드라마는 여주의 집과 직장 그리고 피아노 학원, 이렇게 세 곳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여주는 세 곳을 전부 오가고, 여주의 조카는 집과 피아노 학원을 오가고.
반면에 남자주인공은 주로 피아노 학원에서만 등장했으니 한이의 촬영 일정은 도아나 시연보다 적었다.
드라마 촬영은 스토리 순서대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서 한이는 의상을 몇 번 교체하며 하루에도 여러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연기 레벨 덕분인지 촬영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고.’
덕분에 한이는 다른 멤버들보다 바쁘긴 해도 정규 앨범 준비에 큰 차질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멤버들끼리, 직원들끼리, 계속 정규 앨범을 위한 회의는 진행해 왔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을 종합하여 공통으로 수렴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을 앨범 전체의 컨셉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들 하고 싶은 게 많은지 다양한 의견이 나와서 딱 하나로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생각해 둔 주제를 멤버들에게 던지고 회의를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모노크롬의 ‘모노’처럼 숫자 1이나 하나라는 개념이 들어갔으면 좋겠거든. 하나가 하나가 아니라든가.”
저번의 <이리>가 ‘여름밤’에서 시작한 것처럼, 이번엔 1, 혹은 하나가 중심 키워드.
“하나…… 하나, 하나님?”
내가 제시한 키워드를 듣고 재민은 말장난부터 떠올렸다.
평소에 허다하게 있는 일인지 한이가 작게 웃은 것 빼고는 다들 자연스럽게 한 귀로 흘려들었다.
재민 본인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지 다들 반응을 안 해주는데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
허무해서 오히려 머릿속에 맴도는 ‘하나님’ 드립을 곱씹고 있는데 우형이 입을 열었다.
“전에 이사님이 그런 말씀 하셨거든. 모노로 시작한 소스가 스테레오로 나뉘어서 출력되는 식으로 곡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내,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내가 말한 건 ‘노래를 모노 버전으로 만들면 어떠냐. 그럼 스테레오는 가능하냐.’ 정도였는데 우형은 알아서 과대 해석하고 있었다.
하나를 가르친 것도 아니고, 하나를 물어봤는데 혼자 열을 깨우치는 타입인가.
음악 얘기가 나와서인지 해랑도 집중하면서 앞에 놓인 종이에 펜으로 뭔가를 끄적였다.
그 옆에서 똑똑이 준해가 내 말을 좀 더 확실하게 정리해냈다.
“으음. 하나가 하나가 아니라는 건 하나였던 게 여러 개로 나뉘거나, 여러 개인데 본질적으론 하나라거나. 그런 느낌인 거죠?”
“그래. 바로 그거야.”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내 추상적인 이미지 전달에도 다들 익숙해졌는지 알아서 잘 해석 중이었다.
“나무, 같은 이미지일까요.”
“나무?”
계속 종이 위에 펜을 놀리던 해랑이 지금 대화와 이어지지 않는 나무라는 키워드를 던졌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몰라 그의 앞에 놓인 종이를 보니, 무슨 뜻이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큰 줄기 하나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가 뻗어 나가는 거 말하는 거지. 확실히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느낌이긴 하네.”
해랑의 그림은 하나의 덩어리에서 여러 갈래로 뭔가가 뻗어 나가는, 마치 나무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이전에 예능의 그림 퀴즈를 앞두고 멤버들끼리 ‘그나마 그림은 해랑이 낫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확실히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펜 터치였다.
‘아직 추상적인 이미지긴 한데 확실해서 좋은 것 같아. 뭔가 느낌도 있고.’
나도 지참한 노트에 나무라는 키워드를 적어 넣고 옆에 간단히 나무 그림을 그려 표시했다.
“우리는 사람인데 나무를 어떻게 표현하지?”
“춤에 그런 거 많잖아. 일렬로 서서 팔로 가지 뻗어 나가듯이 하는 거.”
“아. 천수관음.”
한이의 질문에 재민이 뭔가 아는 게 있는 듯이 대답했다.
‘……천수관음이 뭐야?’
또 나만 모르는 건가 해서 슬쩍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본 나는 한이와 같은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천수관음.
재민의 말대로 여러 명이 일렬로 서서 맨 앞의 멤버에 가려진 채로 팔만 움직여 특정 형상을 만들어내는 안무.
시계를 표현하면 시계 춤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그런 스타일의 군무를 전부 총칭해서 이렇게 칭하는 듯했다.
처음엔 뭔가 했는데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일단 지금은 안무를 짤 단계는 아니니까.’
이 얘기는 넘어가도록 하고.
사람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소리에 나무를 그렸던 해랑은 나무줄기 안에 간단하게 사람을 그려 넣었다.
사람의 머리 부근에서 가지가 뻗어 나가는 느낌으로 완성된 그림을 보던 해랑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자아가…… 나뉘는 건 어떨까요.”
“다중인격 같은 거?”
“네.”
내가 되묻자 해랑이 끄덕였다.
나무에서 다중인격을 떠올리다니. 역시 뭔가를 표현하는 데에서 예술성을 발휘하는 해랑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기 좋은 소재 같아. 영화나 연극 같은 것도 많이 나오잖아.”
“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자신이었다든가.”
“그……래. 그런 거.”
왠지 사고가 자꾸 무서운 쪽으로 귀결되는 재민이었다. 평소에 공포 영화만 보고 사는 거 아냐?
공포는 차치하고, 그의 말대로 예전부터 많은 창작물에서 소재로 사용하는 키워드였다.
“범죄물에 많이 나오지 않아요? 착해 보이던 캐릭터가 사실 살인범으로 밝혀지는 거 많잖아.”
“자긴 아무 잘못 없다던 한이 형이 범인이었다거나.”
“너 참 뒤끝 있다.”
준해는 재민이 귀신 이야기를 꺼낸 덕분에 그날 얼굴을 싹 바꾸던 한이의 기억이 또 떠오른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그게 한이 연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면 모르겠는데 범죄가 담긴 내용을 대중음악으로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뭣보다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보여줘야 하는데 뮤직비디오에 15금이 걸리면 안 되니까.
“노래나 뮤비로 범죄자 인격 같은 걸 표현하기엔 살벌하고. 뭔가 자아의 혼란을 겪는 느낌으로 표현하면 좋지 않을까?”
“자아의 혼란…….”
이야기를 듣던 우형이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진지한 표정이 되어 뭔가를 펜으로 표시했다.
내가 봐도 알아보지 못하는 메모인 것을 봐선 아마도 음악적인 부분에서 영감을 받은 모양.
다들 다른 자아는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천장을 보기도 하고 책상을 보기도 하면서 생각에 빠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니라 내 플레이어 자아가 쌓아온 과거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지.
잠시 조용해진 와중에, 준해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저희 타이틀이요. 이걸로 하면 어떨까요?”
준해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한 종이에 손을 뻗었다.
내가 회의 전에 뽑아 왔던 ‘mono’가 붙은 단어들 목록. 그는 그중에 한 단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었다.
“모노드라마.”
모노드라마. 한 연기자가 혼자서 여러 역을 맡는 일인극을 뜻하는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