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내가 라솔에게 우형과 성운을 굳이 ‘팀’으로 묶자고 한 것은 외부에서 보는 두 사람의 이미지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쪽은 음악대상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업계에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인재.
한쪽은 안 그래도 아이돌이라 실력 인정받기가 힘든데 자작곡을 내놓은 지 1년도 안 되는 신입 작곡가.
소속도 다른 두 사람이 한 방송에 작곡가로 나온다면 사람들은 분명 뉴마가 힘을 써서 끼워팔기를 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서로의 음악 스타일이 맞아서 한 팀이 되었다고 하면?
‘잘 몰랐는데 우형에게도 숨겨진 실력이 있었나 보다, 하고 여기겠지.’
물론 실력을 숨긴 게 아니라 항상 드러내고 있었지만, 모노크롬을 잘 접하지 못하던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방송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우형은 역시나 적극적이었다.
“저야 너무 좋은데. 그건 서로의 작곡 스타일이 잘 통한다는 게 전제 조건인 거죠?”
“그렇지. 라솔 씨도 나도 그건 문제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의견도 안 맞고 작곡 스타일도 안 맞는 두 사람을 억지로 한 팀으로 묶기는 어렵다.
그런데 애초에 대중적인 스타일의 작곡이 가능한 우형과, 누구에게나 곡을 잘 맞추는 능력이 있는 성운이라면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안 맞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우형도 동의했으니 우리 쪽은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성운 쪽에선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그렇지. 작곡 스타일은 둘째 치고 성격 차이가 있었지.’
특히나 피하고 싶은 게 많은 성운은 그게 중요한 듯했다.
잠깐 보고 말 사람이면 억지로라도 만날 수 있겠는데,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이면 까다롭게 봐야 하는 성격.
직장 생활도 업무가 고된 것보다 안 맞는 팀원을 만나는 게 더 힘들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회사에서 강요할 수 없는 문제기 때문에, 성운에게는 거절한다는 선택지 또한 있었고.
‘길게 볼 거면 당사자들 의견이 제일 중요하지.’
그래도 초면인 사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딱 잘라 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게다가 우형은 성운이 작업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성운은 우형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번엔 우형의 스타일을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우형이 작곡한 모노크롬 노래는 송 피디가 편곡을 맡기도 했으니, 단순히 곡 정보만 봐서는 편곡 단계에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예 곡 하나를 같이 작업해보고 판단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던데요.]
“아예 곡을 새로 만드는 건가요?”
[네. 데모곡처럼.]
이 일로 라솔과 통화하며 소통할 일이 많아졌다.
라솔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 들었는데, 성운이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음악인은 음악으로 대화한다는 건가.’
우형에게 ‘성운의 마음을 사로잡아라’라는 현실 퀘스트가 새롭게 하나 당도했다.
***
“이 정도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한 거지?”
“네. 말해주신 건 전부 정리했습니다.”
내 물음에 최 비서가 끄덕였다. 내가 가져온 거래 조건들을 최대한 있어 보이는 자료로 정리해 준 것이 그였다.
팀 미로와 라솔의 이야기는 결국 모노크롬으로 통했다.
단장 부부는 재민의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없으면 힘들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민후에게 연락해 물어봤다.
[혹시, 재민이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준다면 방송에도 출연하실 의향이 있으신 건가요?]
[재민이가 다른 그룹과 저희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면요?]
[네.]
[음……. 재민이가 가능하다면야.]
그래서 본인에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레벨 10. 게다가 특유의 친화성이 있으니 다른 그룹과 함께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한 듯했다.
라솔은 우형이 함께 나와주기를 원했고, 우형도 의욕을 보였고.
이렇게 각기 다른 이유로 모노크롬 멤버가 둘씩이나 엮이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지. 아예 이걸 계기로 모노크롬 전원 출연을 노려본다면?’
마침 팀 미로의 단장 부부가 아직 완전히 섭외를 거절하기 전이었다. 그래서 난 방송사와의 교섭권을 내게 넘겨달라고 했다.
로아가 재밌어 보였는데 아쉽게 됐다며 조금은 미련을 보였기에 가능한 요청이었다.
그리고 라솔에게도 같은 요청을 했다.
그녀는 성운을 방송에 내보내서 적응시키는 것이 목표였기에 내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이참에 우형이나 멤버들에게 방송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둘 다 서로에게 나쁠 것 없는 거래였다. 물론 내가 잘해야겠지만.
“후우, 가자.”
라솔의 주선으로 이 기획을 맡았다는 PD와 미팅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오늘은 방송국에 모노크롬 멤버들 없이 최 비서만 대동하고 갈 예정이었다.
우리가 준비할 만한 것은 다 준비했다. 마치 포트폴리오를 들고 면접에 가는 비장한 기분으로 회사를 나섰다.
정규 앨범 준비 중인 지금, 이런 노출 기회를 잡으면 얼마든지 물살을 타고 노를 저을 수 있다고.
“뉴마 엔터테인먼트 신주인 이사입니다.”
“안지택입니다.”
일이 바쁜지 약속 시각보다 조금 늦게 나타난 PD는 설렁설렁한 태도로 의자에 앉았다.
정말 ‘이야기만’ 한번 들어보겠다는 얼굴. 이 미팅 자리를 주선한 게 라솔이라 거절하지 못해서 나왔지만 큰 기대감은 없다는 표정이었다.
“모노크롬이라. 손 PD에게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손 PD는 <최고의 팀메이트>와 <아이돌부 방학캠프>를 기획한 그 손영식 PD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한테 계속 약 먼저 주고 병까지 같이 얹어 주던 그 QBC 소속 PD.
‘모노크롬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어그로 끌기 좋다고……?’
어쨌든 이 안지택 PD가 이 자리에 응한 것에 도움이 되었다면 이번엔 병이 아니라 약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손 PD가 모노크롬을 몇 번 이용했던 사실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일단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우선 라솔 씨에게서도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예요. 유성운 씨 단독이 아니라 저희 멤버 여우형을 포함해서 팀으로 작곡을 맡고 싶다고요.”
“네. 들었죠. 방송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제안 같아서 저희도 잘 검토해 보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봐주신다면 다행이네요.”
성운은 라솔이 추천해서 1순위로 거론되는 것이지, 출연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기획은 작년도 연예대상인 코미디언 원만호, 그리고 작년도 음악대상인 라솔, 이렇게 두 사람이 메인.
나머지 제작 인원은 누가 메꾸더라도 큰 상관이 없었다.
‘하긴 이 세상에 유능한 작곡가와 안무가가 얼마나 많은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그래서 더욱 이런 자리를 통해 우리의 장점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안무팀으로 팀 미로에게도 연락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이쪽도 모노크롬이 함께 나간다면 출연할 생각이 있다고 했거든요.”
성운의 이야기는 라솔에게 들어서 PD도 이미 알고 있을 테고, 이제 정말 우리한테만 있는 패를 꺼내 들었다.
“그쪽 댄스팀이랑은 어떻게……. 아. 그 팀이 안무를 맡은 게 모노크롬이라고 했던가.”
“팀 미로의 보이그룹 안무는 저희가 독점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국내외로 유명한 댄스팀의 활동을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고요?”
안 PD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팀 미로가 해외에서도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대상에 걸맞은 팀을 모으려고 유독 수상 경력이 빵빵한 팀 미로를 골라 섭외 요청을 보냈던 모양이다.
“독점이라기보다는, 저희 멤버 중에 팀 미로 단원이 있어서 모노크롬의 안무만 특별히 맡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맞겠네요.”
“……멤버가 말입니까?”
이 정보까지는 몰랐는지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등받이에 기대 있던 상체가 조금 앞으로 기울어졌다.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실력까지 떨어지는 건 아니란 사실을 알았겠지?
모노크롬이 실력 있다는 것을 이해받고 대화를 시작해야 하니 괜찮은 반응이었다.
“그리고 라솔 씨도 아이돌 기획에는 경험이 없으시죠. 자문을 위해 아이돌을 따로 섭외하신다고 들었는데.”
“네, 뭐. 이곳저곳과 상의 중입니다.”
“어느 정도 연차 있는 그룹들은 시간 잡기가 어렵잖아요? 그것도 장기 프로젝트면.”
내가 이야기를 주도하자 안 PD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아이돌부 방학캠프> 때도 SPID와 유니온맥스가 단체로 함께 나온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던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바쁜 건 메인인 라솔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녀의 역할을 분담할 아이돌을 섭외한다고 했는데.
“저흰 보컬, 댄스, 랩. 모든 포지션으로 전원 출연 가능합니다.”
완전체 출연 완전 가능.
만일 메인 보컬 멤버만 시간이 되어서 섭외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또 랩에 대해 자문할 사람은 또 따로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를 들며 전원 출연의 장점을 어필했다.
“거기에 저희 멤버들이 사용하는 회사 내 작업실이랑 녹음실도 제공할 수 있고요.”
작곡, 작사, 안무, 자문, 작업 공간이 모노크롬 출연으로 한 번에 해결되는 것이다.
거기에 필요하다면 기획도 가능하지, 댄스 트레이닝도 가능하지.
멤버의 보컬 레벨을 올려본 적 있는 한이가 있으니 아마 보컬 트레이닝도 가능할 것이다.
다들 연예인이니 이런 제작 단계를 촬영하기에도 더 수월하고. 작업실에 비연예인이 앉아있는 것보다 연예인이 앉아있는 게 시청자들의 눈을 더 사로잡지 않겠는가.
모노크롬을 섭외했을 시의 그런 장점들을 잘 정리된 자료로 그에게 설명했다.
안지택 PD도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조금은 다른 태도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아예 프로젝트 그룹 제작 과정 전반을 모노크롬이 맡을 수 있단 얘기네요.”
“네. 라솔 씨를 주축으로 프로듀싱 팀을 꾸리는 형태로요.”
프로듀싱 팀은 대개 곡 작업에 한한 경우가 많은데 내가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크게 포괄하는 프로듀싱 팀이었다. 작곡에, 안무에, 그 외 가능한 것들을 다.
다만 우리가 메인으로 나서겠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라솔이 주축이란 것을 강조했다.
안 PD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다시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툭툭 두드렸다.
내 제안이 마음에 들려나? 아니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섭외해서 화제를 끌어모을 기회가 사라져서 별로라고 생각하려나?
“흐음. 일단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안 PD는 마음이 아주 많이 끌리지는 않지만 충분히 알겠다는 듯이 말하고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남았기에 일어서려는 그를 붙잡았다.
“저희가 만든 데모곡인데, 꼭 들어보시고 판단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USB를 내밀었다. 우형이 성운과 함께 만든 곡이 담긴 USB였다.
우형은 그 일로 라솔의 회사를 몇 번 오가며 작업실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데모곡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먼저 곡을 들은 라솔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누가 듣건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분명.]
그녀의 목소리는 확신을 담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말한 것이 기억에 더 남을 테니, 마지막에 꺼내려고 마음먹었던 비장의 패.
안 PD는 USB를 받아들었고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마는 QBC에서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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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원만호 아이돌 데뷔 시동 거는듯 아이돌 소속사에 연락 돌리고있나바
엔터사 일하는 친구가 얘기해줌
└그거 ㄹㅇ로 하는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뷔를 왜 해? 예능?
└작년에 캠핑투어 피디가 원만호 연예대상 타면 소원 하나 이뤄준다고 했는데 원만호가 아이돌 해보고 싶다고 함 ㅋㅋㅋㅋㅋ
└ㅁ친ㅋㅋ재밌겠다ㅋㅋ 걍 소속사 들가서 잠깐 체험만 해보는 건가?
└나중에 더 정보 떠야 알 수 있을 듯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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