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38화 (138/430)

# 138화

“선배, 나한텐 잘생겼다고 안 해줬잖아!”

아주 작은 목소리였는데 한이는 귀가 밝은지 그걸 듣고 입을 떡 벌렸다. 충격이라도 받은 표정.

“사람마다 판단 기준이 다를 수도 있지, 왜 그래.”

“저도 딱 보면 잘생겼다는 생각 들지 않아요? 왜 준해한테만 잘생겼다고 하고…….”

남이 잘생겼다는 칭찬을 들을 때 자기도 같이 듣지 않으면 성미가 안 차는 모양이다.

준해도 아이돌이니 잘생긴 건 맞지만 멤버들 사이에 있으면 귀여운 이미지가 컸다.

컬러즈도 평소엔 그를 귀여워하는 게 기본이었고, 준해 본인도 귀여운 막내 취급 받는 게 익숙해 보였는데.

‘진짜 어린아이 눈에는 좀 다르려나?’

동글동글한 인상이라 오히려 어린아이에겐 좀 더 친근감이 들고 잘생겨 보이는 게 아닐까.

한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준해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시연은 내 다리 뒤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그걸 보고 시연의 어머니가 “어머머.” 하면서 웃었다.

“시연이가 이러는 거 처음 봐요.”

“그간 잘생긴 배우분들 많이 봐왔을 텐데.”

준해의 얼굴이 취향 저격이었나.

낯가리고 무서워하는 것보단 좋아서 부끄러워하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럼 잘생긴 오빠한테 인사하러 갈까?”

내가 묻자 시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수한 모습이 귀여워서 내 입꼬리도 저절로 올라갔다.

시연이 내 바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어정쩡한 걸음으로 다가가자 준해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사님, 뭐 하세요……?”

“선배님이 너 보기 싫대. 아얏!”

한이가 먼저 나서서 장난을 치자, 시연이 작은 손을 뻗어 한이의 다리를 팩 때렸다.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숨어 있긴 해도 준해에게 괜한 오해는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배님?”

“연기 선배님이니까 선배님.”

준해가 ‘선배님’이라는 호칭에 관해 묻고는, 바로 이해했다는 듯이 “아.” 하고 대답했다.

한이와 준해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시연도 내내 숨어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준해는 자세를 낮춰 시연과 눈을 맞췄다.

“한이 형 이상한 사람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기자기하게 잘린 과일이 담긴 컵을 건네주자 시연이 고분고분 받아들었다.

손으로는 과일 컵을 받았는데, 눈은 준해에게 고정된 채였다.

‘이렇게 또 한 명 컬러즈 입덕인가…….’

멤버들의 노력과 얼굴로 컬러즈가 한 명 한 명 늘어나다니 좋은 현상이다.

그럼 우리 신입 컬러즈를 위해 팬 서비스라도 제공해 볼까.

“준해가 시연이 음료도 하나 추천해 줘.”

“으음……. 핫초코? 핫초코 마실래?”

메뉴판을 훑던 준해가 눈을 마주치며 묻자 시연은 뭐든 좋은지 일단 끄덕거렸다.

준해가 직원분께 핫초코를 대신 주문하고 있는데 한이가 그 옆에 바짝 붙었다.

“한이도 골라주세요-.”

“형은 에스프레소 먹어. 에스프레소 쓰리샷 하나 추가요.”

“에스프레소 취소해주세요. 저 자몽에이드요.”

냉정한 반응에 한이도 바로 귀여운 척을 그만두고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룹 밖에서나 안에서나 참 한결같은 성격이라니까.’

커피차는 응원의 의미로 보내는 선물이었으니 인증샷도 필수. 음료를 받아들고 인증샷을 찍는 스태프들도 있었다.

한이는 사진 찍는 사람마다 같이 찍자며 스스로 영업에 나섰고, 같이 사진 요청을 받는 준해도 덩달아 바빠졌다.

오늘은 바리스타 역할로 불러온 건데, 어쩌다 보니 살아있는 등신대 역할로 바뀌어버렸다.

우리도 다른 쪽에서 진행 중인 촬영이 끝나 사람이 몰리기 전에 SNS 계정에 올릴 사진을 찍었다.

“시연이가 준해 옆으로 붙는 게 어때?”

계속 부끄러워하던 시연은 그 말에 내 다리 옆에서 벗어나 준해 옆으로 찰싹 붙었다.

솔직한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었는데, 사진 찍는 카메라 앞에선 프로의 모습이었다. 역시 배우 선배님이라 부를 만했다.

준해는 쪼그려 앉아 시연과 친근하게 붙고, 한이는 뒤에 서서 두 사람 머리 위에 장난스레 과일 컵을 올려두며 웃었다.

사진은 몇 시간 후 모노크롬 공식 SNS 계정에 올라갔고 컬러즈는 역시나 신나서 사진을 이리저리 퍼다 날랐다.

멤버가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기대하던 와중에 처음으로 올라온 촬영장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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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드라마 촬영장에 울 애들 이름으로 커피차ㅠㅠㅠ

그리고 준해 앞치마 누가 입혀주신거죠 감사합니다

└현수막에 들어간 사진 누가 고른건지 단체사진 이쁜걸루 잘골랐다ㅋㅋㅋㅋㅋ

└애기 너무 귀여워.. 귀여운데 부러워..

└나 25살인데 아역배우 하기엔 좀 늦엇나? 졸업 미뤄서 아직 학생이긴 한데

└아무래도 좀 그런 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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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맥스가 되고 싶다던 남자 아역배우. 배우 소속사 사장이 되고 싶다던 시연.

그리고 멤버들과 꼭 붙어있는 시연을 보고 새롭게 아역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컬러즈였다.

***

이번에 로맨스 웹드라마로 첫 주연을 맡은 윤도아.

그동안 그녀는 수사물의 동료 형사나 사내정치물의 냉철한 비서 등, 누군가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가는 작품의 조연을 맡아왔었다.

그런 굵직한 작품의 조연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연기자로서 가능한 장르의 범위가 좁다는 것은 치명적.

그래서 이번엔 웹드라마로 로맨스물에 처음 도전하게 되었다.

자신도 로맨스물 주연으로서는 신인과도 같았기에 상대도 경력 있는 배우가 아니라 아이돌 배우란 것은 이해가 갔지만.

‘……역시 차분한 타입은 아니네.’

한이가 커피차 앞에서 스태프들에게 사진을 찍자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그 생각부터 들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겪어왔던 촬영장은 가끔 농담이 오가곤 해도 기본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더욱 이곳의 촬영장 분위기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아역배우들과 몰려다니며 장난치고 떠드는 한이가 있었고.

회사 내에서 연기 트레이닝을 맡던 선배가 그의 연기를 호평했다는 이야기는 매니저를 통해 들었다.

그러나 도아는 매니저가 자신에게 좋은 작품을 선택했다며 안심감을 주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이돌치고’ 잘한다는 뜻일 수도 있지.’

초반에는 남주도 여주도 서로가 아니라 조카와 엮이는 장면이 많았으니, 아직 한이와 제대로 연기 합을 맞춰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역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을 지켜보니 평소 모습과 별다를 게 없었다.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 법한 과장된 말투와 행동.

물론 아이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 역할이니 대본에 따라 그렇게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모습을 떠올리면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은 크게 안 들었다.

‘시연이랑은 언제 또 저렇게 친해진 거야?’

분명 초반엔 여주와 조카의 촬영신이 많아서 자신과 붙어 다니던 시연이 어느샌가 한이에게 붙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옆에 있는 다른 멤버에게.

시연도 모노크롬의 팬이었던 걸까? 자신이 기억하는 모노크롬은 팬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런 생각들이 이어져 한이의 첫인상은 영 별로였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한이의 이미지가 굳어가던 와중에, 남주와 여주가 엮이는 계기가 되는 장면의 촬영이 시작됐다.

여주의 오빠는 장기 출장으로 7살 조카를 본가에 잠시 맡긴다. 다리가 좋지 않은 엄마를 대신해서 조카의 귀가를 책임지게 된 여주, 양서은.

“서은 씨는 집도 가까우면서 뭘 자꾸 빼려고 그래?”

“아, 제가 술을 잘 못 해서.”

“누군 태어날 때부터 술 잘 마셨나. 다 사회생활 하면서 늘고 그러는 거지.”

하필 집과 가까운 회사에 취직하는 바람에 직장에선 ‘늦게 퇴근해도 되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상사인 김인택이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눈치를 주는 바람에 여주는 오늘만큼은 조카의 귀가를 엄마에게 맡기고 회식에 참석했다.

그러다 등 떠밀리듯이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많이 마셔버린다.

“그러엄……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아…….”

“서은 씨, 집까지 갈 수 있겠어?”

“어머! 저러다 넘어진다.”

회식 자리가 파하고 다들 해산하려는데, 취해서 비틀거리는 여주를 보고 다른 팀원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서은 씨 집이 근처라고 했으니까 제가 바래다줄게요. 다들 다음 주 월요일에 봅시다!”

“네, 팀장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주 서은에게 사심이 있던 팀장 인택은 다른 팀원들을 보내고 서은을 따라간다.

“어, 어디 가. 서은 씨!”

“저기이-, 저희 조카 다니는 피아노 학워언…….”

서은은 항상 귀갓길에 들르던 피아노 학원 간판을 보고 자연스레 그곳으로 몸이 이끌린다.

“하늘아-. 고모 왔어! 고모가 늦어서 미아내……. 허엉.”

“아이고, 무슨 술버릇이. 서은 씨. 지금 학원 불 다 꺼지고 닫혀있잖아.”

“하늘아아.”

서은이 닫힌 학원 문을 두드리며 조카의 이름을 부르자 인택은 그녀를 말리며 부축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과 엇갈리듯이 학원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남주, 박현민이 그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춘다.

원생인 하늘을 항상 데리러 오던 고모라는 사람과 같은 목소리. 뒤돌아보니 확실히 아는 얼굴이었다.

“제가 여기 학원 직원인데 무슨 일이세요?”

“예? 아니, 아뇨.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저희 원생 보호자분이신데…….”

“예에. 그런데 신경 안 쓰셔도 된다고요.”

현민이 참견하자 인택은 갈 길 가라는 듯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툭툭 대답한다.

“아-. 혹시 남자친구분이세요?”

“……그런데요?”

술에 취한 여성이 남성과 단둘이 있는 것은 위험했지만 남자친구라면 상황이 다를 수 있었다.

인택이 남자친구냐는 질문에 긍정하자 현민은 씩 웃는다.

“아닌데. 하늘이가 고모는 애인도 없고 주말에 집구석에만 있다고 했는데.”

인택은 뜨끔해서 기세 눌린 얼굴로 눈치를 본다.

“뭐, 서은 씨랑 아는 사람이세요?”

“거의 매일 얼굴을 보긴 하죠. 오늘도 그 뭐냐, 아버님이 좀 전에 손주분 데려가시면서 따님도 늦어진다고 여기로 마중 나오신다 그랬거든요. 금방 오실 것 같은데?”

“크흠. 그, 그럼 제가 데려다줄 필요는 없겠네. 아버님 오실 때까지 그쪽이 챙겨주세요.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그만.”

그리고 인택은 제 발 저려서 도망가듯 자리를 피했다.

“어머님만 계신 것도 모르면서.”

아버님이 데리러 오신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여기 혼자 남겨둘 수도 없으니 현민은 그녀를 대신 집에 데려다주기로 한다.

서은이 예기치 못한 야근으로 늦어질 때, 그녀 대신 원생인 하늘을 퇴근하는 김에 집에 데려다준 적도 있었고 집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었다.

“아이고, 보호자님. 정신 차리세요.”

서은을 부축하려는데 그녀는 반쯤 잠들어서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현민은 서은을 업고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컷!”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자 방금까지만 해도 인사불성이 된 여주를 연기하던 도아가 한이의 등에서 펄쩍 뛰어 내려왔다.

급하게 내려오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도아를 보고 한이가 더 당황했다.

“괜찮으세요? 그렇게 급히 안 내려가셔도 되는데.”

“아뇨. 무거울 텐데.”

도아의 볼에는 술에 취한 듯이 발갛게 블러셔가 발려 있었지만 반대로 표정은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었다.

“무겁긴요. 멤버들도 몇 번 들어봤는데 그에 비하면 되게 가벼우신데요.”

왜인지 비교 대상이 성인 남성들이었다.

별 의미 없는 위로를 남긴 한이는 분장팀 스태프에게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 받으러 갔다.

‘무슨 향수 냄새가…….’

업히자마자 은은히 풍겨오던 향수 냄새. 향수 취향은 의외로 어른스러울지도.

그런 생각을 하던 도아는 괜히 머쓱해져서 콧등을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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