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37화 (137/430)

# 137화

모노크롬 멤버가 배우로서 스케줄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라 배우 팀에 거의 맡기는 느낌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모노크롬 팀의 책임자로서 돈 쓸 곳이 또 있었다.

아직 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모노크롬의 이름으로 커피차를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커피차와 함께 현 매니저도.’

준해를 한 번쯤 촬영 현장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마땅한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드라마 촬영 현장은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이 많지 않은가. 한이도 첫 연기 도전인데 신경 쓸 게 많을 테고.

우리가 자체 컨텐츠를 찍겠다고 옆에서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도움도 되면서 우리는 우리대로 할 일을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겸사겸사 스태프들에게 모노크롬도 홍보하고.’

촬영 일정과 장소가 알려지기 때문인지, 뉴마의 배우팀은 기본적으로 팬들의 커피차 서포트를 받지 않았다.

응원을 위해 커피차를 보내고 싶어도 보내지 못하는 컬러즈의 마음을 담아 내가 대신 몇 번 더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다음엔 한이의 이름으로 보내고, 뉴마 소속 배우가 같이 촬영하니 뉴마 이름으로 또 보내고. 생각보다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아서 꼭 회삿돈이 아니더라도 내 사비로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돈으로 이렇게 많은 일이 해결되니 참 간편하기도 하지.

내가 촬영장에 도착했을 땐 여자주인공인 윤도아의 개인 신 촬영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한이는 촬영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 중인 듯했는데.

‘근데 저건 뭐 하는 거야?’

한이가 한 남자아이를 붙잡고 사뭇 진지해 보이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누나는 유니온맥스가 제일 멋있다고 했는데. 집에서 맨날 노래 들어요.”

“아냐. 형보다 멋있는 사람 봤어? 대세는 모노크롬이라니까.”

“어, 그리고 유니온맥스는 사람이 많으니까 더 크잖아요.”

“유니온맥스가 여덟 명인데, 네가 들어가면 아홉 명이야. 놀이공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생각해 봐. 둘씩 앉다가 한 명은 혼자 앉아야 돼. 모노크롬에 들어와서 여섯 명으로 짝수 되는 게 훨씬 이득이지.”

아이는 갑자기 숫자 얘기가 나오자 어려웠는지 “으음…….”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유니온맥스에 들어간다는 건 뭐고, 모노크롬 얘기는 또 뭐야?

이상한 토론을 나누던 아이는 한이가 “모노크롬으로 잡아가겠다.” 하며 와락 붙잡자 까르르하면서 도망갔다.

“아이한테 뭘 주입하고 있던 거야?”

“아, 이사님.”

웃으며 아이의 뒷모습을 보던 한이가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온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들었다.

“원생 역할 배우인데 장래희망이 아이돌이래요. 근데 유니온맥스가 되고 싶다길래.”

“아이다운 장래희망이네.”

아이들은 원래 ‘공룡이 되고 싶다.’, ‘경찰차가 되고 싶다.’ 하면서 정확한 직업이 아니라 자기가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것이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다.

꿈이 ‘유니온맥스 같은 멋있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가 아니라 ‘유니온맥스가 되고 싶어요.’인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모노크롬으로 넘어올 것 같아?”

“어어, 생각보다 마음이 확고해서 어렵겠는데요. 그래도 촬영 끝나기 전까지는 설득해 볼게요.”

능청스러운 대답에 픽 웃음이 나왔다.

역시나 특유의 사교성으로 아역들과도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근데 현 매니저도 같이 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주변을 가볍게 훑으며 한이가 물었다. 내가 혼자 들어온 것을 보고 하는 질문이었다.

“조금 이따가 커피차랑 같이 올 거야. 오늘 준해의 역할은 바리스타거든.”

“진짜 알뜰살뜰 다양하게 써먹으시네요.”

한이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아니, 자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란 표정에 가까운가.

‘내가 생각해도 잘 써먹고 있는 것 같긴 해.’

매니지먼트 팀 인턴으로 받은 덕분에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모로 활용하기 좋았다.

촬영은 잘 되어가냐는 둥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이가 내 뒤쪽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선배?”

이렇게 벌떡 일어날 정도면 대선배님인가?

그렇다면 나도 인사는 해둬야겠단 생각에 뒤돌아보니, 가방을 들고 있는 여성이 있었……. 아니, 그 아래.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선배님 촬영 끝나셨어요?”

“으응.”

한이가 자주 이렇게 말을 걸고는 했는지 여자아이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총총 걸어오던 여자아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어서 궁금했는지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단정한 단발에 동그란 눈. 흰색 칼라가 달린 자주색 원피스가 아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나풀나풀 흔들렸다.

“대본 보셔서 아시죠? 조카역 맡은 민시연 선배님.”

“아.”

한이가 아이를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소개했다.

드라마의 내용이나 등장인물도 얼추 알고 있고, 누구와 촬영하는지도 미리 알아봤었다.

프로필 사진으로 봤던 아역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에 겹쳐졌다.

아역배우계에선 꽤 잘나간다는 여자아이였다.

아역배우는 보기에는 그저 귀여워 보이지만, 다들 물밑에서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프로들이었다.

그런 업계에서 자리 잡을 정도면 한이가 선배님이라고 부를 만도 했다.

“소속사 이사님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시연이 엄마입니다.”

“뉴마 엔터테인먼트 신주인 이사입니다.”

한이가 간단히 나를 소개하자, 아이 가방을 들고 따라왔던 여성이 인사했다.

가족인지 매니저인지 긴가민가했는데 어머님이 맞았던 모양이다.

비즈니스적인 인사는 아이보다는 어머님에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는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런데 의외로 시연이 내 소개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사님이에요?”

내려다보니 시연은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것 같아서 난 쪼그려 앉아 시연과 눈높이를 맞췄다.

“이사님이면 엄청 높은 사람이죠? 저도 높은 사람 되고 싶어요. 나중에 크면 사장님 될 거예요.”

“와, 정말?”

아까 유니온맥스가 되고 싶다던 남자아이보다 현실적인 장래희망을 지닌 시연이었다.

배우답게 또랑또랑한 발음으로 내뱉는 포부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네. 이사님도 그러면 나중에 사장님 되는 거예요?”

“어, 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난 사장보다 높은 대표였다가 이사로 떨어진 건데. 다르게 보자면 고작 대리였다가 잠깐의 백수 생활을 거치고 이사로 격상한 것이다.

시연은 마치 시간이 지나면 학년이 오르듯 직급도 오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당장 앞날도 모르는 상태다.

그래도 내가 뉴마의 사장이 될 가능성은 없겠지. 위로 올라가고 싶었으면 이렇게 회삿돈을 펑펑 쓰면서 막 나가진 않았어.

“그럼 선배는 배우 회사 사장님 할 거야?”

“응.”

한이가 시연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존칭은 장난스럽게 말할 때만 쓰는 듯했다.

“그럼 난 아이돌이라 시연 선배 회사엔 못 들어가겠네?”

“아이돌은 아이돌 회사에 있잖아.”

“도아 선배도 나랑 같은 회사인데?”

여주인 윤도아도 같은 소속사라고 하자 시연은 헷갈린다는 듯이 “으으음, 그러면…….” 하고 말을 늘이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 이사님은 아이돌 회사도 하고 배우 회사도 하는 거예요? 큰 회사예요?”

머릿속에서 대화와 이어지지 않는 결론을 냈는지 또 눈을 반짝이며 내게 집중했다.

“으으응. 아주 작지는 않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마주하고 냉정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모호한 느낌으로 넘겨버렸다.

다만 뉴마는 큰 회사라기엔 X소 소리 듣는걸.

어린아이 앞에서 이런 나쁜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소속사를 새로 알아보더라도 뉴마 같은 회사에는 안 들어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엄마. 나 가방.”

시연은 한이 옆 의자에 앉더니 엄마에게 받은 가방을 열어 뒤적였다. 가벼워 보인다 싶더니 가방 안에는 과자만 잔뜩 들어있던 모양.

시연은 과자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안에 든 개별포장된 과자를 한이에게 주고, 나에게도 하나 건넸다.

“과자 먹으면 살찌는데-.”

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장을 뜯어 한입에 넣는 한이. 그러자 시연은 그의 손에 과자 한 봉지를 하나 더 쥐여 줬다.

내가 쳐다보자 “이건 선배님이 주신 거니까 관리랑은 따로 봐야 해요.”라면서 자기는 어쩔 수 없이 먹는 거라는 듯이 말했다.

‘선배님은 변명이고 그냥 간식 러버일 뿐이잖아.’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한이를 보고 시연은 사탕과 캐러멜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과자가 엄청 많네? 단 거 좋아하나 봐.”

“아니요.”

가방에서 계속 새로운 간식이 나오길래 물어봤는데, 시연은 바로 부정했다.

“어른들이 좋아해서 나눠주려고 가져온 거예요. 저는 조금만 먹어도 되는데 어른들은 많이 먹거든요.”

“…….”

자신의 손에 계속 사탕을 쥐여주는 시연을 귀엽다는 듯이 보고 있던 한이. 그는 그 대답을 듣고는 움직임이 멈췄다.

자신이 그 ‘단 거 좋아하고 많이 먹는 어른’의 대표였다는 사실을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걸까.

‘하긴 귀여운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먹으라고 건네주는데 안 좋아할 어른이 어딨겠냐마는.’

한이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들도 고된 촬영 일정 속에 당분이 간절했을지도 모르고.

그냥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는지 한이는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이었다.

한이는 자신이 시연과 놀아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시연이 한이에게 맞춰주고 있었나 보다.

범인으로서 따라잡을 수 없는 아역배우만의 포스가 느껴져서 시연이 다르게 보였다.

그간 좋다고 간식을 넙죽넙죽 받아먹은 게 민망해졌는지 한이가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궁금한 게, 선배 우는 연기 했었잖아. 눈물 연기할 때는 어떻게 해? 안 슬프면?”

한이도 눈물 연기를 해 본 적은 있었다. 팬 사인회에서 늑대 머리띠 벌칙을 걸고 멤버들과. 연기라고 하기에는 거의 장난이었지.

음악에도 문외한이지만 연기에는 더 문외한이어서 나도 이 이야기는 궁금했다.

감정 제어는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인데 아이는 어떻게 하는 걸까.

“으으음. 엄마가 날 보고 싶어 하는데 나는 못 만나는 걸 상상해.”

역시 어린아이에겐 엄마의 존재가 크구나. 엄마가 슬퍼할 것을 떠올리면 자기도 슬퍼지는 모양이다.

아직 부모님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나이인데, 못 만나는 상황이란 얼마나 슬플까.

“이사님도 연기하세요?”

“어?”

“몰입하시는 것 같길래.”

눈물이 나오거나 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봤나 보다.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제일 엄마 보고 싶은 건 아마 나일걸.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란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바뀌는 건 아니다.

“연기에 재능 있으신가 본데요.”

“이상한 소리 한다.”

내 상황이 대입되어서 좀 슬플 뻔했는데, 한이의 실없는 소리 덕분에 그냥 웃으며 지나갈 수 있었다.

나는 주의를 돌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준해도 슬슬 도착하겠다.”

“누구 와요?”

“이따가 동생이 온대.”

“오빠 동생?”

“응.”

한이가 준해를 그냥 친동생처럼 소개했다. 뭐, 동생은 동생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

“내 동생은 막 울고 짜증 내서 같이 놀기 싫어.”

“동생 몇 살인데?”

“다섯 살.”

시연이 동생이란 소리에 자신의 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입을 삐죽였다.

다섯 살……. 나이를 생각해보면 자주 울고 짜증 내는 나이가 맞긴 하지.

“준해도 드러눕고 떼쓰던데.”

“그건 네가 너무 놀려서 그런 게 아닐까?”

대학 졸업반인 스물셋 준해를 다섯 살 아이와 비교하다니. 컬러즈에게도 멤버들에게도 어린아이 취급 받는 준해였다.

과다 업무는 부당하다고 드러눕는 것과, 엄마가 원하는 것을 안 들어준다고 드러눕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아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한 수단이란 점에선 비슷한가?

그런 대화를 나누다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오니, 지정된 장소에 커피차가 자리를 잡고 영업을 개시 중이었다.

오늘의 바리스타 역할을 맡은 준해는 앞치마를 메고 있었다.

음료 제조는 업체 직원분이 하겠지만, 완성된 것을 컵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메뉴도 있었으니 그 부분은 준해가 맡을 예정이었다.

“저 오빠가 한이 오빠 동생이에요?”

“응. 한이랑 같이 아이돌 하는 오빠야.”

시연이 준해를 보고는 거의 내 뒤에 숨듯이 바짝 붙어 섰다.

낯을 가리나? 한이를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준해는 무서운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자세를 낮췄는데.

“잘생겼어…….”

시연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