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안녕. 컬러즈~.”
[(손 흔드는 이모티콘)]
[오빠 아침에 기사 뜬거 봤어요??]
[한이 드라마ㅠㅠㅠㅠㅠ]
화면에 나타난 우형이 인사하자 컬러즈는 할 말이 많았는지 채팅을 와르르 쏟아냈다.
모노크롬은 뷰이라이브를 별일 없이 켜고는 하는데, 오늘은 켜기 전에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아침에 한이의 드라마 캐스팅 소식 기사가 뜬 것.
드라마 캐스팅도 놀라운데 남자주인공이라는 소식을 접한 컬러즈들은 내내 그 소식에 들떠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겪지 못한 다양한 소식들. 컬러즈에겐 놀라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네. 저희도 기사 뜬 거 봤어요. 유한이! 이리 와 봐.”
다섯 명 모두 모여있었지만 가볍게 스마트폰을 들고 찍는 중이라 지금 화면에 비치는 건 우형, 해랑, 그리고 준해.
연습실이라서 다들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드라마는 혼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출연진, 스태프가 많다 보니 개인적으로 많은 정보를 얘기해줄 수는 없었다.
컬러즈가 물어보는데 알려줄 수 없다며 딱 잘라 대답을 거부하기에도 매정하고, 자기도 모르게 스포일러를 내뱉을까 봐 앵글 밖에 서 있던 한이가 화면에 빼꼼 얼굴을 비쳤다.
“내 눈이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로지 당신만을 담기 위함이었어.”
“아, 나 그거 알아! <바이올린의 가을>에 나오는 대사잖아.”
느닷없이 한이가 느끼한 대사를 뱉고 지나가자, 퀴즈 정답을 맞히듯이 신난 재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의 말대로 십여 년 전에 방영한 멜로 드라마의 대사였다. 당시 남주를 맡았던 배우는 현재 천만 관객 영화에 다수 출연한 대배우가 되었기에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대사.
갑자기 들어온 멜로 눈빛 공격에 컬러즈는 온갖 텍스트를 적어 올리며 좋아했다.
반대로 그 채팅창 옆에 비친 해랑은 질색하는 표정이었다. 한이와 룸메인 탓에 다른 멤버들보다 더 시달리고 있는지 안 좋은 쪽으로 표정이 다양해지고 있는 그였다.
그 표정을 보며 우형이 한숨을 쉬었다.
“쟤 연기 공부한다고 재민이랑 같이 드라마를 보더니 이상한 걸 배웠는지 자꾸 저래요.”
“설렌다고요? 하루 종일 저런 소리 들으면 그런 생각 안 드실걸요.”
준해는 닭살이 돋았다면서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컬러즈는 멤버들이 뭐든 잘할 것이라는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에 기대감뿐이었다.
반면에 멤버들은 그 멜로 눈빛이란 게 뭔지도 잘 모르겠고, 평소 장난치는 모습을 봐서 걱정만 들었다.
얼마 전까지 다들 각자의 일로 바빴기에 한이가 제대로 연기 트레이닝에 임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도 걱정의 원인 중 하나였다.
“하아. 저희 애가 촬영장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봐 미리 죄송하고…….”
잘했으면 좋으련만, 모여있을 때면 자꾸 연기로 장난만 치니까 밖에서도 그럴까 우려되었다.
드라마 제작진이 이 뷰이라이브를 보지는 않을 것 같지만, 우형은 마음만이라도 편해지고자 리더로서 미리 사과를 건넸다.
***
결국 한이가 고른 작품은 캠퍼스물이 아니라, 남주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인 그 작품이었다.
원작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기사에 나오는 한두 줄짜리 소개만 봤을 텐데, 컬러즈는 벌써 ‘이건 된다’ 하면서 감탄했다.
‘하긴 그 강력한 멜로 눈빛을 자기들만 알고 지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간 한이가 눈빛을 선보일 만한 곳은 뷰이라이브나 가끔 무대에서 엔딩 요정을 할 때 정도였다.
그리고 보여줄 게 멜로 눈빛뿐이던가. 컬러즈가 그의 연기 실력까지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나도 기대되었다.
카메오 출연 신만 보고 연기 천재라고 칭찬하던 컬러즈도 그가 연기를 제대로 하는 모습은 본 적 없을 테니까.
그간 한이는 연기 실력을 예능이나 상황극에만 사용해 왔다. 그런 상황에선 잘해도 ‘능청맞게 잘하네.’ 정도지 ‘연기를 잘한다.’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에야말로 모노크롬 메인 보컬의 범위를 넘어선, 한이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였다.
<이리> 활동 종료 후, 지금까지는 곡 작업을 하던 멤버들이 바빴는데 이제는 한이가 바쁘기 시작했다.
연기 트레이닝도 계속 받고 대본 리딩도 하고. 나는 아티스트팀 업무만 책임져 왔기에 이런 부분에선 여러모로 배우팀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다.
그리고 특히, 여자주인공도 뉴마 소속 배우로 결정되었다.
최종 캐스팅이 확정된 후, 업무차 회사에 와 있던 그녀와 우연히 마주쳤다.
“아, 이사님. 이쪽이 한이 씨와 이번에 드라마 함께 하게 된 도아 씨입니다.”
“윤도아입니다.”
“신주인 이사예요.”
배우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직원이 지나가던 내게 그녀를 소개했다.
회사에 자주 와 있는 모노크롬이 특이한 거지, 배우들은 회사에 자주 와 있진 않았다.
아이돌은 회사에서 기획, 제작을 하는 데다가 모여서 연습할 일이 많지만, 배우는 매니지먼트와 영업을 회사에 맡기는 것에 더 가까우니까.
더군다나 아티스트팀과 배우팀은 거의 다른 회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따로 굴러가고 있기에, 뉴마의 이사지만 업무는 모노크롬 한정인 내가 소속 배우와는 더더욱 만날 일이 없었다.
나는 한이를 연기 판에 뛰어들게 한 책임자로서 그녀와 인사를 나눴다.
“한이가 첫 드라마라서 나름대로 준비는 많이 했는데, 촬영장에서도 잘 부탁드릴게요.”
“저야말로. 저도 로맨스 주연은 처음이라서요.”
그렇게 말하는 윤도아의 목소리에선 시크함이 묻어났다.
생각해 보면 그간 내가 유독 상냥한 스타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오긴 했지.
딱 한 번 가 봤던 드라마 촬영 현장도 마침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라 밝은 분위기였다.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이라고 해서 나는 막연히 <매일 아침 만나요>의 여주인공이었던 진유선 배우 같은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런데 직접 만난 도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분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한이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까?’
내 좁은 경험에 의하면 이런 스타일의 사람은 활발한 인싸와 의외로 잘 지내기도 하지만, 애초에 상성이 안 맞아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등 극과 극이었다.
연습생 시절 해랑도 한이와 성격이 안 맞아서 다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간 한이의 외향성을 걱정한 적은 없었는데 예상외의 타입을 만나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런 걱정은 너무 과보호려나.’
그도 어른인데 내가 아들을 새 학교에 전학 보내는 학부모 같은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
모노크롬 팀의 책임자로서, 그리고 뉴마의 이사로서 딱히 그녀와 길게 대화를 나눌 용건이 있는 건 아니어서 우리는 서로 그 정도의 가벼운 인사만 마치고 지나쳤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이는 이곳저곳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며 촬영장에 나타났다. 오늘이 그의 첫 촬영일이었다.
웃으며 인사하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었다. 그가 밝게 나타나자 촬영장의 분위기도 조금 더 밝아졌다.
가벼운 분위기보다는 진지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곳은 아역 배우들이 함께 모여있어서 밝은 편이 훨씬 나았다.
“어! 김형운이다.”
“김형운 선배님 아니야. 형 이름 유한이야.”
“유한?”
“한.이.예요.”
한 아역배우가 한이를 가리키며 알아봤다. 알아보는 것까진 좋았는데 잘못 알아봤다.
어리기는 해도 엄연히 배우 업계에 있는 아역배우니,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김형운의 얼굴이 더 익숙하기는 할 터였다.
안 그래도 닮은 꼴로 카메오 출연을 했었는데 어린아이 눈에도 닮아 보일 줄이야.
원래 활동 중엔 앨범 컨셉에 맞춰 헤어스타일을 바꾸던 한이지만 오늘은 드라마 캐릭터에 맞춘 헤어스타일이었다. 앞머리 가르마가 있는 듯 없는 듯 하게 내린 스타일.
머리를 만져준 헤어 선생님이 2, 3년 전 김형운이 맡았던 드라마 캐릭터와 닮았다고 하긴 했었다.
매일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살아오던 한이였기에 그렇게 많이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느낌에서 닮았다는 건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가 형 아이돌이라 그랬는데.”
“춤도 잘 춰요?”
김형운과 착각한 아이 외에도 다른 아역배우들이 한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아이돌이란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는지 그것부터 물었다.
노래를 잘 부르냐고 하면 당당하게 대답했을 텐데. 아니, 다른 멤버들도 없는 김에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렇지. 내가 우리 팀에서 노래도 제일 잘하고 춤도 제일 잘 추고 제일 잘생겼지.”
모노크롬을 잘 모르는 듯하기에 그냥 메인 보컬에 메인 댄서, 메인 비주얼을 다 하기로 했다.
허세 담긴 그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이가 과장되게 악센트를 주며 말하자 아역배우들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본을 보던 윤도아가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주인보다 모노크롬을 마주친 횟수는 적어도, 주인보다 회사에 오래 소속되어 있었던 도아였다.
가끔 사무적인 용건이 있어서 회사에 들렀을 때 몇 번 모노크롬을 마주친 적은 있었다.
TV보다 회사에서 더 자주 본 아이돌 그룹. 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그녀에겐 연습생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같은 회사 소속 연예인이니 지나가듯이 인사나 했을 뿐, 개인적으로 대화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항상 다섯 명이 뭉쳐 다니니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기도 했고.
다만 그중에 유독 목소리가 큰 멤버가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지금 목소리를 들으니 역시나 그게 이번에 상대역을 맡은 한이였다.
도아를 담당하는 메이크업 스태프가 똑같이 소리가 나는 곳을 보더니 말했다.
“어머. 사교성도 좋아. 애들하고도 금방 친해지네.”
그러면서 도아를 쳐다보았다. 애초에 아역배우들과 떨어진 조용한 곳에서 대기하는 중인 도아는 시선을 돌렸다.
“나야 아역들이랑은 겹치는 신이 없고.”
도아와 그녀의 담당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분이 있기에 담당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계약한 것이었다.
그럴 정도로 도아는 사람을 가리는 편이었다.
“시연이랑은 계속 붙어있어야 할 텐데?”
“시연이는 애가 어른스러워서 마음에 들더라.”
두 사람이 말하는 ‘시연’이란, 여주의 조카역을 맡은 아역배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역배우도 정말 또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타입이 있고, 그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타입이 있었다.
시연은 할 말을 또박또박 차분하게 잘하는 편이라서, 아이를 별로 대해본 적 없는 도아도 그나마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남주를 맡은 한이가 해맑은 스타일이었다.
오자마자 아역배우들과 순식간에 친해지더니 시끄럽게 장난치는 모습. 그녀가 그간 봐온 신인 배우의 느낌은 아니었다.
‘아이돌 배우의 데뷔작. 그냥 그 정도려나.’
작품을 들어가기 전부터 자신의 대표 필모그래피가 될 것 같다, 아니다 정도의 느낌은 있는데, 이번엔 후자에 가까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괜히 기대부터 했다가 실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해두기로 하고 관심을 끈 도아는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