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33화 (133/430)

# 133화

“이사님……. 살려주세요.”

“으응……?”

결국 현 매니저는 해랑에게 붙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 같이 MC 대기실에 있었는데 한이와 재민은 방송 시간이 되어 나갔다.

그리고 해랑이 이쪽으로 이동하자 준해는 혼자 남아 있긴 싫었는지 같이 옮겨온 상태.

해랑은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앉아 있었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리듬을 맞추는 것을 봐선 머릿속으로 무대 시뮬레이션 중인 듯했다.

그리고 날 보자마자 도움을 요청한 준해는 뭘 하고 있냐면.

‘귀여움…… 받는 건가?’

MC인 한이와 재민, 그리고 무대가 있는 해랑은 샵에서 헤어 세팅을 마쳤는데 준해는 연예인으로서 온 게 아니었으니 세팅 안 한 머리 그대로였다.

그리고 라솔이 그 준해의 머리를 세팅하듯이 빗겨주고 있었다.

준해는 선배님이 그러고 있으니 마음대로 머리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앉아서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머리가 복슬복슬해서 저희 레미 보는 것 같아요.”

“레미가 누구예요?”

“저희 강아지요.”

모르는 이름이 나와서 물어보니 라솔네 집 강아지란다. 엄마견이 말티푸였다고.

멤버들도 평소에 준해의 머리를 자주 쓰다듬고는 했다.

쓰다듬는다기보다는 옆에 폭신한 인형이 있으면 한번 눌러보는 느낌으로 만지는 모양새였지만.

막내라서 귀여워하는 것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머릿결은 특히 손이 가는 복슬복슬함이 있다나.

“맨날 귀여움이라곤 하나도 없는 애만 보다가 사근사근한 후배들 보니까 너무 좋네요.”

같은 회사의 성운 때문에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옆에선 라솔의 매니저가 온화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묵인하고 있었다.

준해는 해랑이 부려먹으면 드러누웠을 텐데, 라솔 앞이라 드러눕지도 못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고개를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진짜 불편했으면 앞에서 살려달라는 농담은 안 했겠지.’

그래서 나도 라솔의 매니저와 같은 표정으로 이 현장을 묵인했다.

“5분 후에 대기실 인터뷰 들어갈 테니 준비 부탁드립니다!”

나 대신 그런 준해를 도와준 것은 방송 스태프의 스탠바이 알림이었다.

라솔은 아쉬운 듯이 준해의 머리를 빗던 빗을 내려놓았다.

“머리 예쁘게 됐는데. 준해 후배도 옆에 서 있으면 어때요?”

“네에?! 저 메이크업을 안 했어요.”

“아쉬워라.”

라솔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모노크롬 책임자인 나를 향해 물었다.

옆에서 준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라솔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스타일링의 재미를 알았으니 그 마음 이해하지.

모노크롬 멤버들은 아이돌이라 그런지 무엇을 입히고 무슨 스타일을 하든 평균적으로 예쁘게 완성되니 더욱 보람이 있었다.

생방송이라 곧바로 대기실 문밖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대기실에 있던 다른 직원들은 모두 카메라에 안 비치도록 옆으로 피해 있을 예정이었다.

준해가 내 옆에 서 있으려는지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라솔의 말대로 예쁘게 완성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흠. 준해도 매니저이기 이전에 연예인이니 못 나올 건 없지 않을까?’

더군다나 인터뷰 당사자인 라솔이 같이 나와도 된다고 먼저 권하는데, 이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다.

다만 진짜 옆에 서 있는 건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너무 뜬금없을 테니 자연스럽게 화면에 들어가면 좋을 텐데.

그때 마침 대기실 밖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는 MC 중 한 명, 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오른쪽에 서. 나 오늘 왼쪽 얼굴 잘 받아서.”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랑 회의했을 때 한이가 뭐라고 했더라.

‘되돌아가는 길이니까 돌아서 있는 게 어떠냐고 했었지.’

준해는 지금 메이크업은 안 한 상태고 헤어는 라솔의 손을 거쳐 세팅됐으니까…….

내가 라솔과 대화 후에 잠시 안쪽의 상황을 정리하자, 열린 문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보던 재민이 물었다.

“뭐 하세요?”

“그냥. 배경을 좀 꾸며봤어. 너희는 신경 안 쓰고 그대로 인터뷰하면 돼.”

나와 재민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한이도 상체만 움직여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내가 세팅한 배경을 확인한 그는 웃음이 터졌다.

***

“대기실에 나와 있는 한이와-.”

“재민입니다!”

발랄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진행했던 오프닝 소개 이후엔 다시 ‘한이 씨’, ‘재민 씨’ 하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두 사람도 원래 이름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이야 ‘하니’라고 불러도 발음이 같으니 문제없지만, 재민을 ‘쩨미’라고 부르는 건 로아, 그리고 그의 JEM이라는 활동명을 알고 있는 컬러즈뿐이니까.

재민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겐 ‘쟤는 예명이 잼이냐’, ‘재미가 이름이냐’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라솔 선배님이 <뮤직더라이브>에 오랜만에 출연해 주셨는데요!”

“저희가 팬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질문들을 모아, 모아서 빠르게 드려볼 건데, 준비되셨나요?”

“네, 물론이죠.”

한이가 대본을 자연스럽게 읽는 동안 재민은 멘트 내용을 손놀림으로 표현해냈다.

‘모아서’는 주변에 있는 것을 손으로 집는 행동으로, ‘빠르게’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휘리릭 손을 움직이는 것으로.

예능과 댄스가 결합한 댄서다운 진행 방식이었다.

라솔 위주로 돌아가는 인터뷰 내내 해랑은 두 동생의 멘트에 낄 틈을 찾지 못하고 마이크를 들었다 놨다 했다.

말은 못 하고 있지만 화면에 나오는 비주얼만으로도 이미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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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랑이 반깐머리 미 쳤 다

흰셔츠까만바지 무난갑인데 어떻게 이렇게 홀리할수가

└수수한 스타일인데 빛나.. 잘생긴 교생선생님같애.. 나 이렇게 또 기억조작당하는건가

└선배님이랑 키차이 나는거 진짜 ㄱㅐ설렌다고ㅠㅠ

└넌왜그렇게완벽해서날미치게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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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들아 근데 뒤에 앉아있는거 준해 아녀?

└ㅇ에엥???!

└내 심장이 반응하는걸 보면 준해맞는데

└현매니저님 왜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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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둘과 라솔, 해랑의 뒤편.

마치 사색을 즐기는 것처럼 밖을 보며 창틀에 앉아있는 인영이 하나 있었다.

화면이 네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지나가듯이 보면 안 보일 테지만, 대기실이 그리 크진 않아서 잘 보면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리고 화면에 빠져들어 가듯이 집중하던 컬러즈는 그를 곧바로 알아챘다.

[이이게뭐꼬 내 눈 어디에 둬야하는데??]

[뇌 비우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즐기는중ㅇ으음 재밌다]

화면 속엔 꽃병풍이 된 매니저를 포함하여 멤버가 네 명이고, 오디오는 비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컬러즈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고 일단 의식의 흐름대로 이쪽 얘기를 했다가 저쪽 얘기를 했다가 정신없이 감상을 남겼다.

‘이건 꼭 다시 보기로 최소 오십 번은 돌려봐야 한다.’라는 다짐도 빠지지 않았다.

“선배님은 비가 오는 날과 눈이 오는 날, 어느 쪽을 선호하시나요?”

“전 비 오는 날이 좋아요. 빗소리를 좋아하거든요.”

“혹시 그래서 이번 재킷도 비 오는 거리 사진인가요?”

“네! 맞아요.”

“다음은 해랑 씨! 오늘 저녁엔 뭘 드실 건가요?”

“오늘…….”

해랑이 마이크를 들고 대답하려는 순간 한이가 끼어들었다.

“오늘 메뉴는 삼겹살이에요. 저희 이따가 회식할 거거든요!”

“와아~.”

“저도 껴도 되나요?”

“선배님은 물론 환영이죠!”

해랑은 자신도 모르게 잡힌 회식 소식에 당황해하며 그대로 멈췄다.

어느샌가 라솔까지 이 장난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해랑 씨에게 질문인데요.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저 알아요. 눈 감은 채 냉장고로 걸어가서 물 마시기!”

“뭔…….”

정말 같이 지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TMI였다.

이런 식으로 해랑의 대답을 한이가 전부 가져가 버리자 해랑은 추임새 같은 짧은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이는 정확한 정보만을 말했으니,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제대로 되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번 <되돌아가는 길>은 어떤 곡인지 궁금합니다!”

“살면서 항상 앞으로만 나아갈 순 없고 가끔은 되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런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쓴 곡입니다.”

“네에! 선배님의 감성이 물씬 담긴 곡, 저도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이라솔 선배님과 피처링으로 참여한 모노크롬 해랑 씨의 라이브 무대를 보고 싶으시다면 그대로 채널 고정!”

시간에 딱 맞춰 인터뷰가 끝나고, 방송 송출 화면은 다음 팀 무대로 전환됐다.

스태프에게 제대로 쓰지도 못한 마이크를 반납한 해랑이 한이와 재민에게 매서운 눈길을 보냈다.

재민이 그 시선에 지레 찔려서 먼저 변명을 내놓았다.

“우리가 형 캐릭터 잡아주려고 열심히 회의해서 생각해낸 거야.”

물론 그런 소리는 통하지 않았다.

“현 매니저! 여기 누가 가수 때린다, 아야!”

“다 모노크롬인데 난 누구 편을 들어야 돼?”

재민은 몸이 가벼운 메인 댄서답게 금세 도망가버리고 한이만 붙잡혀 해랑에게 등짝을 맞았다.

말려달라고 준해를 애타게 찾았지만 돌아오는 건 방관뿐.

‘역시 자기들끼리 두면 잘 놀아.’

인터뷰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시끌벅적한 대기실을 지켜보는데, 해랑을 피해 다니던 한이가 내 뒤에 와서 숨었다.

“이사님. 회의에 저만 있었던 거 아니잖아요…….”

분명 회의엔 세 사람이 있었는데 한 명은 도망치고 한 명은 구경하고 있으니.

웃으며 도망치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순식간에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기 레벨 때문인가. 장난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절로 안타까움이 드는 표정이었다.

“뭐어……, 한이가 혼자서 한 건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디어는 내가 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나서자 해랑은 그제야 한이를 쫓는 것을 그만뒀다.

이런 모노크롬의 평소 모습이 재밌었는지 라솔도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이돌 친구들은 같이 다니면 정말 재밌겠어요.”

“다섯 명이니까 조용할 새가 없긴 해요.”

다른 그룹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멤버들끼리 이렇게 잘 맞으면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절친 다섯 명이 모여 있는 느낌이려나.

‘가끔 싸우는 경우도 있겠지……?’

하물며 가족도 안 맞으면 다투곤 하는데.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멤버들을 모아서 내내 붙어 다니게 하면 많은 고충이 있을 듯하다.

송 피디의 말로는 모노크롬도 예전엔 다투기도 했다고 하고.

6년 차가 될 동안 다들 서로에게 많이 적응되어서 그런지 지금은 다들 둥글둥글해진 모습이었다.

서로 등짝을 좀 때리곤 해도 이 정도면 그냥 장난이지.

“그리고…… 정말 오신다면 저녁은 저희 법카로 책임질게요.”

인터뷰에서 나온 회식 얘기였다.

내일도 라솔과 해랑은 음악방송 출연 스케줄이 있었으니 거창한 회식은 아니고, 그냥 다섯 명이 같이 나온 김에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고 가볍게 한 얘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법인카드를 긁기 위한 변명이었다.

“어머, 아니에요. 방송이라 그냥 농담한 건데.”

“저희 회사에서 소진해야 할 예산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물론 그런 예산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냥 최대한 그때그때 쓸 수 있는 대로. 내가 그렇게 정해놨다.

더군다나 그녀가 누구인가. OST도 음원 차트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솔로 가수 아니던가.

뉴마도 조금씩 드라마 제작 지원을 하던데, 그런 명품 발라더와 친하게 지내는 것 가지고 불만을 보이진 않겠지.

모노크롬에게 좋은 선배기도 하고, 여러 기회를 만들어줘서 감사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사실 제가 무대 전날에는 식단 관리를 해서요.”

“그, 그렇군요.”

그렇지. 그녀도 연예인이지. 너무 일반인스럽게 회식에 초대해 버렸나.

내가 아쉽다는 표정이자 라솔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다음에 식사 한번 해요. 업계인으로서 얘기도 좀 나누면서.”

“저야 너무 좋죠.”

이전에 대화를 나눴던 것 때문인지 그녀는 나를 완전히 업계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공부를 좀 더 하고 있어야겠다.’

라솔은 그럴 생각이 아니었겠지만, 나는 혼자 숙제 거리가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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