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32화 (132/430)

# 132화

<뮤직더라이브> 방송일이 되어 모노크롬 다섯 멤버가 총출동했다.

스페셜 MC인 한이와 재민. 라솔과의 무대가 있는 해랑. 현 매니저는 당연히 끌고 가고, 우형도 따로 일이 있었다.

“엔피버는 이번 주가 컴백 스테이지야?”

“네. 무대는 본방송에서 하고요.”

내 질문에 우형이 바로 대답했다.

한이와 재민이 받은 MC 대본을 확인했기 때문에 나도 대략은 아는 이야기였다.

대본에는 이번 주에 컴백한 엔피버와의 인터뷰 코너도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는 우형이 엔피버에게 준 바로 그 곡이었다. 제목은 미정이었는데 같이 회의하면서 엔피버 멤버들이 붙였다고.

“오늘만 부르는 거라고 했나?”

“원래 서브곡이 따로 있는데 오늘이 컴백 주 마지막 무대라서 특별히 넣었대요.”

“잘됐다. 신경 많이 쓴 곡이었잖아.”

음악방송은 한 가수가 무대를 하나씩 하는 게 기본이지만, 컴백 스테이지에서 두 곡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 타이틀곡이 아닌 다른 곡을 서브곡이라 하는데, 엔피버의 경우 활동하는 서브곡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이번 <뮤직더라이브>에서만 우형의 곡을 부르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만든 곡을 다른 가수가 부르는 건 처음이라 떨리는지 우형은 내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앨범 활동 중도 아닌데 멤버 다섯 명이 다 일이 있어서 오다니.’

예전과 비교하면 이제 우리도 방송국에 오가는 일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엔피버를 격려하러 가는 우형은 잠깐 들르기만 하면 됐지만, 리더로서 멤버들도 응원하고자 방송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겠다고 했다.

엔피버에 관한 화제가 끝나고 잠시 조용해지려는 찰나, 한이가 침묵이 내려앉기도 전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우리 현 매니저는 어디 있을 거야?”

한이의 질문에 멤버들의 시선이 준해에게 모여들었다.

MC 대기실이 따로 마련되었고, 해랑은 라솔과 함께 대기해야 하고, 우형은 따로 다닐 곳이 있고.

“형이랑 준해랑 MC 대기실로 모여!”

“으음…….”

모노크롬 멤버만 있는 MC 대기실이 편하기는 할 것이다. 재민이 통 크게 자신들의 대기실을 모노크롬 대기실로 양보했다.

그러나 준해는 고민에 빠졌다.

“뭘 고민해?”

“어디가 나을까 생각 중이었어. 두 명과 한 명 중에.”

준해는 한이와 재민, 그리고 해랑을 순서대로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심부름시키는 사람이 두 명이 있는 곳과, 한 명이지만 대선배가 함께 있는 곳.

막내가 아니라 매니저 입장이라면 고민스러울 만도 하다.

“왜. 사람 많은 게 재밌잖아.”

“그냥 날 놀리는 게 재밌는 거잖아!”

“어쩔 수 없다. 나랑 다니자.”

“형도 별로야.”

옆에서 듣던 우형까지 이 준해 쟁탈전에 끼어들었다.

남들이 보면 사이좋은 모습이지만 당하는 쪽은 영 못마땅한 상황.

‘진짜 친형제 보는 것 같아.’

몇 년 터울이 있는 늦둥이를 귀여워하는 형들 같은 모습이었다.

해랑도 빠지지 않고 말없이 그를 툭툭 쳤다. 자기가 있는 대기실로 오라는 뜻.

준해가 황당한 목소리로 다른 멤버들을 보며 말했다.

“이 형 심부름시키는 거 진짜 어이없는 거 알지.”

“해랑이가 어떻게 하길래?”

“제일 키 크면서 저보고 높이 있는 물건 집어달라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그건…… 너무하네.”

내가 묻자 준해는 속에 담아두고 있었는지 바로 일러바쳤다.

그건 정말 부려 먹는 것 외에 아무 목적도 없는 잔심부름이잖아. 게다가 팀 내 최장신이 키로 놀리다니.

그 당사자인 해랑은 시선을 창밖으로 두고 딴청을 피웠다. 예능 레벨은 낮지만 모노크롬 내에서 가끔 이런 웃긴 행동을 하는 그다.

다른 멤버들도 생각나는 게 있는지 고자질 시간이 펼쳐졌다.

“근데 얘 진짜 일 안 해요. 막 맨날 드러눕는다고 협박한다니까요?”

“물도 챙겨주고 커피도 사다주고 했잖아.”

“이제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가 복수하잖아. 전에도 물 좀 달라고 했더니 6시 넘었다고 막 생수병을 강속구로 던지더라니까. 나 완전 정통으로 맞았어.”

“받으라고 했는데 형이 안 받은 거잖아!”

“근데 숙소에서도 불 꺼달라고 준해 부르는 건 형이 좀 잘못했어.”

낮에는 매니저인 내가 밤에는 아이돌 그룹 막내? 컨셉을 확실하게 지키는 준해였다.

현 매니저는 퇴근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모양이지만, 퇴근 후에도 종일 붙어 있어서 그런지 온갖 에피소드가 튀어나왔다.

‘알아서 화목하게 잘 놀고 있나 보네.’

컨텐츠도 차곡차곡 쌓이고 뷰이라이브에서 말할 이야깃거리도 많아지고.

준해에겐 졸업이 달린 중대한 문제였지만 우리와 컬러즈에겐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방송국에 도착한 멤버들은 다들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

사전 녹화를 마치고 본방송 전까지 대기 중이던 엔피버의 대기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니저가 먼저 나가 누군지를 확인하고, 곧이어 멤버들 모두가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형님!”

우형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자 쉬고 있던 엔피버 멤버들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형들 오늘 MC라서 같이 오신 거예요?”

“응. 그것도 있고, 너희도 보고.”

“크윽. 감동이에요.”

멤버 엔제이가 가슴에 양손을 얹고 온몸으로 감동을 표현해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우형은 또 웃음이 흘러나왔다.

곡 작업을 위해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어쩐지 병아리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우형의 눈에는 준해도 아직 어린애인데, 엔피버는 리더인 종훈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이 준해보다 어렸다.

처음엔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줄 알았을까.

멤버가 탈퇴한 그룹. 예능 촬영 전 출연진을 알고 나서 가장 신경 쓰이고 궁금했던 그룹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인사도 하기 전에 강제로 물에 빠진 기억이 아직도 선연했다.

‘……그 생각 하니까 갑자기 또 잊었던 배신감이 올라오려고 하네.’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면 뒤끝도 그런 뒤끝이 없으니 다시 기억 속 동산 하나에 고이 묻어놓았다.

과거는 어쨌건, 이렇게 무대를 앞둔 가수와 작곡가로 만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설마 본방송에서 부를 줄은 몰랐어.”

“팬들한테 직접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저희도 이제 또 시작이니까. 딱 지금이 들려줄 시기라고 생각해서요.”

또 다른 시작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기다림의 끝>을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도 그런 기분이었던가.

이번에 엔피버에게 준 는 앞으로 같이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곡이니, <기다림의 끝>과는 조금 다르긴 했다.

모노크롬도 달라진 모습에 적응하는 중이니 이 상황에 맞는 새로운 편지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노래가 너흴 만나서 다행이었어.”

“혀엉…….”

어쩌다 보니 갈 곳을 잃고 잠들어 있던 곡이었는데 마침 필요한 사람에게 잘 전해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노래를 통해서 좋은 감정을 교류하기를 바랐다. 모노크롬과 컬러즈가 그랬던 것처럼.

엔피버도 비슷한 길을 걸었던 선배가 이렇게 찾아와 격려해 준다는 것이 감동인지 우형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가끔 팬분들이 SNS로 질문하시더라고요. 작곡가가 형 맞냐고.”

엔피버의 새 앨범 홍보 기사에는 우형의 이름이 작곡가로 소개되었지만, 타이틀곡도 아니고 수록곡이라 그리 중요하게 언급되지는 않았다.

예능에서 모노크롬과 엔피버가 동맹을 맺어 함께 다니는 것을 본 이후로 모노크롬 멤버의 이름도 알게 된 엔피버의 팬덤, 엔러브.

그들은 [이거 혹시 모노크롬 리더분…?] 하며 컬러즈가 있는 공간으로 찾아와 곡 정보를 확인하기도 했다.

기사를 미리 본 컬러즈는 우리 애가 맞다며 반갑게 대답했다.

뉴마의 자가복제곡은 지긋지긋하게 들어왔기에, 처음 들은 곡도 이미 들었던 곡인 듯 따라 부를 수 있었던 컬러즈였다.

그런 상황에 우형이 단비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자작곡을 들고 나와줘서 얼마나 좋았던가.

그리고 엔피버에게 곡을 줬다는 소식에 우형의 작곡 활동이 더 확대된 것을 실감했고, 다른 소속사에서도 능력을 인정한 것 같아서 기뻤다.

“마침 오늘 부르니까 방송 끝나고 인사하면서 알려주면 되겠다.”

“내 이름은 별로 중요한 정보도 아닐 텐데.”

최근 들어 자신의 실력이 어디쯤인지 가늠이 안 되어서 생각이 많아졌던 우형이었다.

그가 특유의 자신감 없는 멘트를 꺼내자 엔피버 멤버들은 손을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팬들이 노래 진짜 좋다고 형한테도 감사하다고 했었어요.”

“맞아. 좋은 형 생긴 것 같아서 그것도 좋다고.”

엔러브는 예능에서 엔피버의 동생미를 이끌어 내준 모노크롬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예능에서의 인연을 잊지 않고 곡까지 줬다고 하니 더욱 호감을 보일 수밖에.

“오늘 무대도 엄청나게 기대 중이래요.”

“나도 기대하고 있을게.”

잠깐 인사하러 온 것이었지, 소중한 휴식 시간을 계속 잡아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우형이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고 인사하려 하자 엔피버의 리더인 종훈이 뭔가 생각난 듯이 입을 벌렸다.

“아, 맞다! 형도 오늘 어디 방송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어……. 그…….”

<미래의 당신을 만난다면>의 출연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의 곡 작업은 끝마친 뒤였다.

그러나 곡에 관한 소개나 정보 등으로 연락할 일이 있을까 봐, 촬영일엔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미리 얘기해 뒀었다.

혹시 몰라 지나가듯이 한 이야기였는데 설마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방송일까지 알아뒀을 줄은.

“ZBS 맞죠? 몇 시지? 저희도 꼭 챙겨 볼게요!”

“아, 아니! 너희 내일도 스케줄 있고 바쁘잖아. 안 봐도 돼.”

“아니에요. 바빠도 형님 나온 건 잠깐이라도…….”

“정말로 안 봐도 돼. 오늘 방송은 없다고 치자. 아니, 내가 안 나온다고 생각하면 돼. ‘생각하면 돼.’가 아니라 안 나와. 그 방송은 그냥 잊어.”

우형은 갑자기 말이 빨라졌다.

그리고는 무대 힘내고 남은 활동도 열심히 하라며 빠르게 인사를 끝마치고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엔피버 멤버들은 우형이 나가고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능 촬영 때, 엔피버의 탈주 후 남겨진 모노크롬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

“오늘 <뮤직더라이브> 스페셜 MC를 맡게 된 모노크롬의 하니!”

“쩨미입니다!”

생방송 시간이 되어 카메라가 돌아가자 큐 카드를 든 한이와 재민이 발랄하고도 발랄한 말투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얼마 전에 재미니, 하니하니, 하며 요상한 이름 소개법을 창조해내더니, 정말 방송에서 그 비슷한 별명을 사용했다.

대본엔 없던 건데 나서서 작가에게 허락을 받아낸 듯했다.

‘역시 예능 투톱다워.’

둘 다 예능 레벨은 7. 그런데 두 사람이 붙어 있을 때의 시너지가 예능력을 더욱 살려주는 것 같았다.

수치로 정확히 나오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예상일 뿐이지만.

이 시너지 효과로 예능 레벨 2도 잘 커버해 주겠지?

MC는 내내 나오는 게 아니라 무대 중간중간에 나오니, 방송 시간 내내 모니터 앞에 붙어서 모니터링할 필요는 없었다.

오프닝 멘트 이후 첫 무대가 시작하는 것을 본 나는 해랑이 있는 라솔의 대기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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