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해랑의 피처링곡 녹음일이 되자, 라솔과 함께 일한다는 작곡가가 드디어 뉴마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유성운입니다.”
힘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인사하는 그는 끌려온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실제로 끌려왔을지도.
라솔은 우형이 그의 대타로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굉장히 미안해했다.
방송계는 원래 이런저런 변동도 많고 문제가 생기면 당장 당일에도 사람이 바뀌곤 하는 곳이라 그녀도 이런 상황은 많이 봐왔을 텐데.
연예인 입장이 아니라 실무자 입장이 되니까 책임감을 더 무겁게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견학 가능하냐고 물어본 것을 잊지 않고 바로 다음 작업일인 오늘, 그와 동행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네.’
라솔도 대화하면서 ‘걔’라는 호칭을 쓰고는 했으니 그녀보다 젊은 사람일 것은 예상했다.
뉴마의 작곡가라 하면 모노크롬 작곡 멤버를 제외하고 송준오 피디가 대표적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작곡가란 직업이 송 피디 같은 이미지로 정착되었는지, 유성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생각보다 젊다’였다.
내가 그를 계속 쳐다보니까 나이에 따른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줄 알았는지 라솔이 소개를 이어나갔다.
“우형 후배랑 동갑이라. 그냥 편하게 대하셔도 돼요.”
“아. 우형이랑 동갑.”
나보다 한 살이 어리단 것이었다.
‘그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이 계속 설득했다는 이유도 좀 알 것 같아.’
당장 아이돌로 데뷔시켜야 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전체적으로 준수한 느낌.
제작진도 카메라 마사지를 좀 받으면 스타성은 확실히 챙길 수 있겠다 싶어서 계속 본선에 진출하도록 설득했던 게 아닐까.
다만 외부 활동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이 맞긴 맞는지, 정리가 덜 된 애매한 길이의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계속 스타일링에 신경 쓰니까 이런 것부터 눈에 들어오네.’
요즘 TV에서든 일하면서든 연예인을 볼 때면 가장 먼저 스타일링을 체크하곤 했다.
머릿속에 많은 자료를 쌓아둬야 나중에 모노크롬 스타일링에도 참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를 싱어송라이터, 연예인으로 인식했는지 그것부터 눈에 띄었다.
물론 가수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거지, 그냥 작곡가라고 생각하면 평범한 스타일이긴 했다.
사람을 겉모습부터 훑는다는 게 좋은 습관은 아니겠지만 스타일링에도 한 발 걸치고 있으니 마냥 무시하지도 못하겠고. 일종의 직업병이 된 것 같았다.
오늘 작업실에 모인 멤버는 같이 작업하는 해랑, 견학하러 온 우형, 두 사람이었다.
유성운은 멤버들과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모니터는 이쪽을 메인으로 확인하시면 되고…….”
이 공간에 가장 익숙한 우형이 장비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견학하는 김에 보조 엔지니어 역할을 맡은 듯했다.
여러 번 회의하며 만들어진 곡이 이제 마무리 단계라, 오늘은 녹음을 거친 후에 편곡 방향을 잡는다고 했다.
‘여긴 전문가들한테 맡기면 되겠고.’
음악과 관련된 부분은 내가 낄 수 없어 인사만 나누고 나는 다시 이사실로 올라왔다.
조금 시간이 지나 커피와 간식이라도 리필하려고 다시 찾아갔는데 왠지 아까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녹음이 끝났는지 다들 녹음 부스에서 나와 앉아 있었는데, 우형은 세 사람 뒤에서 서성거리고만 있었다.
“우형이는 왜 이러고 있어?”
“형이 자꾸 귀찮게 해서 좀 떨어져 있으라고 했어요.”
해랑이 우형만 홀로 떨어져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멤버들끼리 있을 때 귀찮으니 좀 떨어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귀찮게 한 대상은 아마 해랑이 아니라 유성운인 듯했다.
‘우형이가 초면부터 그렇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성격은 아닐 텐데.’
파워 인싸인 한이나, 웬만하면 친근하게 다가가는 재민이라면 몰라도.
라솔은 그런 우형이 신경 쓰이는데 해랑까지 나서서 그를 차단하니까 어쩔 수 없었는지 머쓱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된다고 했는데 해랑 후배가 신경 쓰지 말라고 하네요.”
그저 등 돌리고 앉지 않은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였다.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끼리는 그냥 느낌으로 통하곤 한다.
해랑도 원래 남과 많이 엮이는 것은 피하는 타입인데, 유성운도 비슷한 타입이란 걸 바로 알아채고 그런 듯했다.
같이 놀고 싶은데 끼지 못해서 주위만 맴도는 느낌으로 서 있는 우형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자, 라솔의 화살은 성운에게로 향했다.
“어휴. 넌 미안하지도 않니?”
이쪽은 왠지 라솔이 보호자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남매 같은 느낌……?
그녀는 계속 ‘우형이 대신 방송에 나가서 도움을 줬으니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라.’라는 느낌으로 그를 타일렀다.
‘방송은 사실 우리도 원한 거라 그렇게 빚진 것처럼 생각 안 해도 되는데…….’
방송 출연 기회를 얻어내면서 견학까지 시켜달라고 거래한 건 내 이득에 따라 행동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오기 싫어하는 유성운이 끌려온 것이라 조금 양심에 찔렸다.
“일단 작업이 제일 중요하니까, 성운 씨가 편한 대로 하게 해주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성운은 날 슬쩍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하며 감사를 표했다.
우형은 계속 어슬렁거리게 둘 순 없어서 신경 안 쓰일 만한 곳에 앉아 있게 했다.
얼마 전 방송 촬영 후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인지 더 물불 안 가리고 배우려고 드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오늘 이 견학은 마침 딱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보니까 좀 참고가 되는 것 같아?”
“네. 스타일이 좀 다르셔서, 오히려 제 스타일이 어떤지 알게 됐어요. 저는 처음부터 맞춰서 만들지, 편곡 단계에선 많이 안 건드리는 편이거든요.”
아티스트에 맞춘 기획. 송 피디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간접적으로 했던 말과 비슷했다.
우형은 먼저 그 노래를 부를 가수를 확실히 파악하고 나서 곡을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엔피버와 작업하면서 그가 막혔던 부분도 그것이었다. 아직 완벽히 파악하지를 못한 상태로 작업에 들어가서 좀 헤맸었다고.
“처음엔 선배님 음역대에 맞췄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톤의 베이스를 추가해서 좀 더 해랑이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만드는 거라든가, 거의 작곡 수준으로 세세한 편곡을 추가하시는데 그게 바로바로 나온다는 게 신기해서…….”
우형은 음악 얘기가 나오자 할 말이 많아졌는지 나에게 또 길게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고개 끄덕이기.
“원래 자기 노래 만들던 사람이면 곡을 거의 완성하고 녹음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그게 아니면 이쪽이 더 빨라서요.”
우형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지 화면에 몰두하던 성운이 입을 열었다.
성격은 달라도 음악인이라는 부분에선 또 통하는 모양이다.
라솔과 성운, 우형과 해랑. 자체 제작이 가능한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뭔가 자기들만의 암호 같은 용어를 써가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음악인들의 대화란 이런 거구나. 나도 음악을 듣듯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분위기만 느끼면서 동조하는 척했다.
“그런데 여기 사운드는 독특한데 이펙트를 넣으신 건가요? 아니면 다른 사운드를 아래에 깔아두신 건지…….”
열심히 대화를 나누던 우형이 갑자기 의자를 끌고 앞으로 나가면서 질문을 쏟아내자 성운이 다시 입을 닫았다.
지금 우형 눈엔 작곡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듯했다.
“질문을 하더라도 제자리에서.”
“앗, 넵.”
사실 견학을 요청한 거지,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작업해달란 얘기는 아니었던지라 성운이 우형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줄 의무는 없었다.
그가 또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나는 우형의 의자 등받이를 붙잡고 다시 뒤로 오게 했다.
우형도 자신의 지식욕이 앞섰다는 걸 자각했는지 다시 떨어져서 작업을 지켜봤다.
그런 우형을 보면서 라솔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우형 후배 성격을 얘한테 좀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외부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운의 성격을 답답해하던 라솔이었다.
그래서 우형이 방송에 대신 나간 건데, 여기서도 이렇게 성격 차이를 보이니 그게 다시 와 닿은 듯했다.
‘나도 조금 동감.’
성격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그에게서 실력을 나눠 받으면 좋으련만.
전체적인 작곡 실력은 내가 판단할 수 없지만, 분명 뛰어난 작곡가고 우형이 못 가진 스킬을 지닌 건 확실했다.
‘어떻게 두 사람의 좋은 부분만 잘 합칠 방법은 없으려나?’
이제 겨우 초면인 사이에 그런 것까지 바라긴 어려우려나.
해랑의 피처링 작업도 이제 끝물이라 앞으로 또 만날 일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우형도 조급한 마음으로 자꾸 질문을 쏟아내는 걸까.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가서, 나는 집중한 우형의 얼굴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
라솔의 회사에도 작지만 작업실은 있었다. 회사 규모는 작아도 소속 가수만 세 명이니 이런 공간은 빼놓을 수 없었다.
라솔은 작업실에서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성운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또 안 간다고 할 거지?”
자신의 바쁜 일정 때문에 해랑과의 피처링 작업은 시간을 쪼개면서 작업을 진행하느라 조금 오래 걸렸다.
그런데 완성도를 내고 싶은 욕심은 나서, 장소를 제공해 준 뉴마 엔터테인먼트에 방문하고 또 방문했다.
이제는 뉴마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게 간판도 외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오늘 작업하면 정말 완성에 다다를 것 같았다.
“하아. 오늘만 하면 끝날 것 같으니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갈게요.”
“뭐?”
분명 평소처럼 안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정말 바로 동행하려는 것처럼 의자에서 일어나 볼캡을 썼다.
“갑자기 왜 또 마음이 바뀌었어? 불안하게.”
“가자면서요.”
한다고 해 놓고 안 한다. 안 간다고 해 놓고 간다.
라솔도 힘든 일은 다 피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새로운 공간에 나가기 두려운 마음도 이해는 갔지만, 이렇게 밥 먹듯이 변덕 부리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순순히 따라나서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이번 변덕은 또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불안감도 같이 들었다.
수상하게 보는 라솔의 시선에 성운은 간단한 이유를 덧붙였다.
“그냥. 음악 얘기 말고 다른 말 안 해서요.”
그간 성운을 부르는 곳은 대부분이 ‘라솔의 후배’, ‘음악대상과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란 식으로 그를 대해왔다.
안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불편한데, 자꾸 라솔과의 인연의 끈으로 자신을 이용하려는 느낌이 드니 더욱 불편했다.
내세울 만한 자신만의 경력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아직 자신은 남들에게 ‘지금 알아두면 미래에 좋을 투자처’로 보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안 좋기도 했다.
그런데 저번에 한 번 억지로 간 뉴마 엔터에선 정말 곡 작업 얘기만 하다가 왔다.
한 명이 과하게 작곡 얘기를 하고 싶어 하긴 했지만, 옆에서 다른 사람이 적당히 쳐내 주는 것도 편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저 때문에 불려 오신 것 같아서……. 혹시 불편하면 제가 안 와도 된다고 했다고, 그렇게 말하고 안 오셔도 돼요.]
편곡 작업은 꼭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이사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귀찮게 안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안 와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부담 없이 갈 마음을 먹은 성운. 그는 원래 기분파 청개구리 스타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