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한차례 소개 및 토크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각자 준비해 온 영상을 다 같이 보며 코멘트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오늘의 메인인 천영 학생은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니까 잘 알겠지만, 시청자 중엔 싱어송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아는 사람들도 많을 터였다.
그래서 다섯 명의 게스트는 모두 다른 주제를 맡아 영상을 준비해왔다.
한 사람은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하면서 있었던 일을 지인과 함께 대화하면서 풀어내기도 하고, 알앤비 가수는 싱어송라이터의 ‘싱어’ 쪽에 초점을 둬서 가수로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우형은 작업 장비 및 간단한 작업 과정을 소개하는 담당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저희 모노크롬이 소속된 뉴마 엔터테인먼트의 작업실입니다.]
영상 속의 우형이 카메라를 보고 인사한 뒤 크지 않은 작업실을 전체적으로 비췄다.
“회사에 작업 공간이 있다는 게 좋네요. 전 처음에 옥탑방 원룸을 얻어서 시작했거든요.”
“천영 군도 작업 공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죠?”
“네. 제 방에 있는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작곡도 하고 그래요.”
“데뷔하면 이렇게 회사에서 작곡 활동을 지원받는 경우도 있겠네요.”
다섯 명의 게스트는 전부 싱어송라이터로 묶였지만 각자 분야가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인지 다들 아이돌은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는 기분으로 영상을 감상했다.
[이건 간단하게 가이드 작업할 때 사용하는 마이크인데…….]
작업실에 있는 장비를 소개하던 우형은 순간 장비들의 가격을 떠올렸다.
회사에 있는 것들은 전부 상업 음악을 만들기 위한 전문가용 장비.
아직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에게 이게 과연 도움이 되는 정보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형은 주제를 조금 틀었다.
[제가 작곡을 처음 시작할 때 쓰던 게 있는데요.]
지금은 아이리스 팀이 빠지면서 모노크롬이 작업실을 독점하고 있을 뿐이지, 예전엔 이렇게 내내 작업실을 쓰진 못했다.
그래서 다른 컴퓨터에도 연결해서 쓸 수 있도록 사비로 구입한 첫 장비, 마스터키보드가 있었다.
지금 쓰는 회사의 장비와 비교하면 엉성한 초급용 장비지만 왠지 정이 들어서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아! 저도 맨 처음에 저 브랜드 키보드 썼어요. 저가 키보드 중엔 그나마 제일 무난하거든요.”
우형의 옆에 앉아 있던 인디밴드 출신 게스트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송이라 브랜드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입문용이나 취미용으로 자주 추천되는 브랜드였다.
그녀는 방금까지 우형이 회사에서 모든 지원을 받아 작곡을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여 조금 거리감을 두고 반응했었다.
그러나 자신도 초반에 쓰던 장비들이 그대로 화면에 나오자 갑자기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좋은 장비를 사서 오래 쓰는 게 좋다는 말도 있는데, 전 시작할 땐 상황에 맞춰 구하고 여유가 생기면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무료 작곡 프로그램이나 무료 가상 악기도 있다면서 모니터를 비추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 기반도 없는 사람들에겐 실용적인 정보. 키보드를 보고 반가워하던 게스트가 우형의 옆에서 “맞아, 맞아.” 하면서 공감했다.
천영 학생도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집중했다.
“지금 쓰는 키보드가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주신 건데, 좀 더 큰 거로 새로 사려고 알아보던 중이었거든요.”
마침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정보라는 뜻이었다.
이건 편집이 안 될 것 같아서 우형은 속으로 안도했다.
우형이 준비한 영상이 현실편이었다면, 초반부터 천영 학생의 무한한 호감을 받았던 박형주의 영상은 이상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직종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나 잘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며 꿈을 심어주는 내용.
그는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오래 몸담았던 경력을 살려 현재 대형 소속사 전속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었다.
영상은 그의 곡을 받았거나 프로듀싱을 받은 가수들의 인터뷰였다.
그와 절친한 가수 후배의 인터뷰 후에, 한 아이돌 그룹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러너스하이입니다!]
촬영 일자 기준으로 데뷔한 지 한 달이 지났을까 말까 한 신인이지만 우형은 보자마자 그들을 알아봤다.
알 수밖에 없었다. 모노크롬이 이번에 <이리> 활동을 하며 1위 후보에 오르기 전에, 여러 음악방송에서 1위를 가져가고 활동을 종료했던 그 초대형 신인이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인. 아마도 시청률을 위한 VCR 출연인 듯했다.
[박형주 피디님이라고 부르는데, 가수 대선배님이시니까 선배님이라고 부를 때도 있어요.]
[저희 연습생 때부터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작곡을 할 줄 안다면 가수 활동을 하면서 프로듀싱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이미 그의 팬임을 밝힌 천영 학생은 자신도 나중엔 후배 육성에 힘쓰는 대선배가 되고 싶다며 감탄했다.
[데뷔하자마자 1위 가수라는 소중한 타이틀을 얻어서 감개무량하죠. 저희만 열심히 해서 얻었다기보다 팬분들, 그리고 선배님처럼 많은 분이 도움을 주신 덕분입니다.]
[저희도 1위를 할 줄은 몰랐거든요. 대기실에 돌아왔는데 선배님이 딱 인자하게 서 계셔서 와, 이분만 믿고 가면 되겠구나…….]
최단 기록을 세우며 첫 1위를 따간 신인 그룹이라 데뷔 활동부터 1위에 올랐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세트장 내에서도 화제가 1위로 옮겨갔다.
“정말 옛날이지만 저도 처음 1위 했을 때 엄청 기뻤던 기억은 남아 있어요.”
“우형 씨는 어떠셨어요?”
“아, 저흰 아직 1위를…….”
“아…….”
분량을 챙겨주려는 건지 아이돌과 관련된 화제에 계속 우형을 지목하며 말을 걸어주던 MC.
다만 안타깝게도 저 신인이 1위를 받은 후 바로 다음 주에 모노크롬이 1위에 실패했다는 정보는 미리 준비되지 않은 듯했다.
“실력도 있는 것 같고, 열심히 하다 보면 곧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하하. 감사합니다…….”
당당하게 1위 가수를 배출해낸 박형주가 격려를 보냈다. 그가 봐온 아이돌은 빠르건 느리건 첫 1위는 따냈다.
물론 그 밑에 주목받지 못하는 수많은 그룹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의 활동 범위에선 마주칠 일이 없었으니까.
1위는 우형도 절실하게 바라는 바라 그의 가벼운 말이 가슴을 쿡 찔러왔다.
오늘 게스트 중에 아이돌 노래를 담당해서 작곡 중인 사람은 박형주와 우형, 두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얘기가 나올수록 자꾸 사소한 이야기에도 비교가 되곤 했다.
“형주 씨가 작곡하신 아이돌 노래도 굉장히 많은데, 특히 이 곡은 팬들이 손꼽는 명곡이라고…….”
“와, 선배님. 거의 히트곡 제조기 아닙니까?”
“지난 5년간 차트 1위를 달성한 곡이 무려 하나, 둘, 셋, 넷…… 이렇게나 많아요.”
차트 순위는 팬들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주제. 그런 대화에 나서서 낄 수가 없어서 우형은 웃기만 했다.
“첫 일본 진출한 앨범이 오리온 차트 1위에…….”
“해외 유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면 해외 인기도……”
다들 차트든 음악방송이든 1위를 한 번씩 거쳐본 사람들이라 그런지, ‘싱어송라이터’ 특집이 점점 ‘잘나가고 성공한 싱어송라이터’ 특집으로 바뀌고 있었다.
물론 꿈을 지닌 학생에겐 멋진 미래를 상상시켜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현실에는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고 우형은 그간 이 성공하지 못한 부류에 속해 있었다.
지금껏 1위를 하지 못한 모노크롬. 그리고 그 모노크롬의 리더로서 이 주제에서 소외되는 상황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다들 주변 게스트에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형은 가장 후배였기에 재빠르게 가장 대선배인 박형주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어어, 그래요. 어! 천영 군.”
“저 사인 한 장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두 장만요. 저희 엄마도 갖다 드리게요.”
우형이 인사하는 동시에 천영 학생이 박형주에게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다.
인사를 채 마무리하지 못한 우형이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세트를 나오다가 촬영 내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인디밴드 출신 게스트와 눈이 마주쳤다.
촬영 초반엔 신기한 아이돌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돌도 고생이구나…….’ 하는 시선이었다.
이런 이미지로 끝내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우형은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작게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세트 밖에서 촬영을 지켜보던 준해와 눈이 마주쳤다.
“……가자.”
우형은 준해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두 사람은 대기실로 돌아가기 위해 복도를 걸었다.
“……형. 혹시 나만 기분 나쁜 건 아니지?”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그렇게 대답하려던 우형은 준해의 마음도 이해가 가서 어깨동무한 팔로 그의 어깨만 팡팡 두드렸다.
원래 다른 사람의 자리에 원해서 대신 들어간 것이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민감한 화제를 빼주기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어가고 싶은 학생으로서도 알고 싶은 얘기들이었을 테고.
학생의 관심사에 따라 이리저리 화제가 바뀌는 것도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하필 그의 최대 관심사는 1위 가수까지 배출한 프로듀서인 박형주였고, 우형은 그런 성공 이야기에 잘 끼지 못하는 존재였을 뿐.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그를 들러리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게 맞긴 한데…….’
솔직히 말해서 우형 자신도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예전 같았으면 자주 상처받는 자존심 같은 건 그냥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지키고 싶었다.
***
<미래의 당신을 만난다면>은 가볍게, 혹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잔잔하게 흘러가는 방송이었다.
그래서 별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늘 매니저로 붙은 민형과 함께 다시 회사로 복귀한 우형과 준해는 왠지 표정이 밝지가 않았다.
“무슨 일 있었어?”
준해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퉁명스러운 표정이고, 우형은 웃는 듯 아닌 듯 오묘한 얼굴이었다.
‘……우형이가 잔심부름 많이 시켜서 싸웠나?’
몇 시간 전. 내가 먼저 회사로 복귀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계속 심부름을 하니 마니 투닥거리고 있었으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준해가 요즘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을 땐 주로 멤버들이 부려먹을 때였고.
그런데 우형이 예상외의 말을 꺼냈다.
“……저, 진짜 잘하고 싶어요.”
우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조금 억눌린 목소리에 내 시선은 그에게로 향했다.
우형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평소 그는 대개 성격만큼이나 표정도 온건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분하다는 표정…… 아니, 패기가 생긴 표정?
딱 잘라 어떤 것이라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해 보이는 감정이 그 얼굴에 담겨 있었다.
“촬영하면서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뭔데?”
“아뇨. 별일은 아니고…… 그냥 여러 사람 사이에 있으니까 저도 좀 더 성장하고 싶어서요.”
싱어송라이터들 사이에 섞여 있다 보니 스스로가 비교된 걸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우형의 마음속에 있던 어떤 버튼 하나가 눌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