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17화 (117/430)

# 117화

그림자란 물체가 광원에 가까울수록 커지고, 멀어질수록 작아진다.

멤버들이 스크린을 앞에 두고 춤을 추면, 뒤로 움직일수록 조명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그림자가 커진다는 것.

이러면 현실과 원근감이 반대가 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멤버들은 스크린을 등진 상태로 안무를 진행하게 되었다.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치는 형상이 좀 달라져서, 안무 제작에 참여한 메인 댄서 재민이 카메라 옆에 서서 감독처럼 체크에 나섰다.

“동선을 바꿀 필요는 없는데, 좀 더 일렬로 붙는 게 나을 것 같아. 해랑 형, 한이 형 뒤로 한 발짝만 더 오고. 어.”

재민은 대형 체크를 마치고는 자신도 스크린 너머에 가서 섰다.

그리고 시작된 첫 번째 녹화. 그림자만 나오기 때문에 얼굴이나 특정 멤버를 클로즈업할 필요 없이 전체 대형만을 촬영했다.

평소 무대처럼 표정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그만큼 안무와 제스처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중간에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하는 것도 부담감이 있을 테고.

‘생각보다 난도가 높네.’

평소 안무 영상에 효과만 추가된 느낌 아닐까?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실루엣으로 보다 보니 사소한 움직임까지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역시 춤에서 전체적인 중심을 잡는 것은 메인 댄서인 재민이고, 같이 메인 댄서였던 해랑은 큰 키에 길쭉한 다리 덕분인지 서 있는 것부터가 태가 달랐고.

리드 보컬 느낌이 더 크지만 서브 댄서 포지션도 맡은 준해의 춤선도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평소 얼굴을 보고 있을 땐 몰랐는데.’

준해는 이목구비가 동그란 편이라 평소엔 귀여운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무대를 보면서도 그의 춤에 대해선 그리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파워풀 계열인 해랑과 달리 준해는 부드러운 음색만큼 움직임도 유연했다.

그리고 우형과 한이가 딱 그 중간 지점에 있어서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아 보였고.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이런 것들이 보일 정도면 아마 팬들 눈에는 포인트가 더 잘 보이겠지.

그림자 안무 영상 컨텐츠의 첫 촬영이라 조금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던 작가도 홀린 듯이 이 무대를 감상했다.

“와. 세트 체크하려고 제작진끼리 리허설할 땐 느낌이 잘 안 나서 걱정했는데. 진짜 춤추시는 분들은 다르네요.”

“저도 모노크롬 무대는 맨날 보고 다니는데, 이거 정말 색다른 것 같아요. 진짜 춤선만 집중해서 보면 이렇게 이미지가 다를 수도 있구나 싶어서.”

“그쵸?! 업계에서 전문으로 일해 오신 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마음이 놓여요.”

이 사람, 날 무슨 전문 프로듀서인 줄 아는 거 아냐……?

이사라고만 소개했으니 업계 초짜인 내 사정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외부에는 전문가처럼 보이는 게 나으니까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겠지.’

양심은 조금 아프지만 굳이 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가끔 이렇게 아프니까 아직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버티고 있구나, 내 양심.

‘팀 미로랑 빠르게 계약해서 안무 맡긴 것도 다행이야.’

그렇게 공들여 만든 안무를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다행이고.

마침 컴백 프로젝트 기간에 팀 미로의 댄스 경연 대회가 있던 것은 하늘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덕분에 그들과 먼저 만날 수 있었으니.

팀 미로의 단장인 민후는 아이돌 안무 시안 쪽으론 자신이 안 선다는 표정이었지만, 정작 함께 일을 해 보니 예상대로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더군다나 재민이 모노크롬과 팀 미로 양쪽과 호흡을 맞춰봤기 때문에 그 중간에서 조율하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멤버들은 ‘너무 네 난도에 맞추는 거 아니냐’며 툴툴대면서도 잘 따라갔다.

힘들어서 불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재민이 ‘혹시 이런 거 가능?’ 하면서 예시로 보여주는 게 일반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동작인 경우가 많아서인 듯했다.

‘멤버들이 잠도 줄여가면서 연습한 보람이 있었어.’

그렇게 완성된 <이리>의 안무도 노래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스타일이었다.

곡의 흐름에 맞춰 색이 바뀌는 조명이 그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었다.

이것도 컬러즈와 모노크롬의 대표색을 표현한 느낌이라 마음에 들기도 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연달아 롱테이크로 안무 영상을 찍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멤버들이 인사하고는 철퍼덕 앉아 쉬었다.

잠깐 재정비 겸 휴식 타임을 보낸 후에는 세트를 이용한 그림자 인터뷰라는 게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한 명은 스크린 앞에 앉고, 나머지 네 명은 스크린 뒤에 앉아 변조된 목소리로 앞담(?)하는 시간.

‘확실히 이런 세트는 그림자극 아니면 예능용이야.’

나도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스크린 뒤에 앉은 사람이 정체를 숨긴 채로 얘기하거나 노래를 하면 누군지 맞히는 게임이었던가.

기껏 공들여 만든 세트를 안무 영상 하나에만 쓰기엔 아까우니까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연계 컨텐츠.

‘분량이 늘어나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지.’

우리도 안무 영상만 촬영하고 돌아갔으면 아쉬울 뻔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예정에 없던 분량이 추가되는 일이 생겼다.

저번 ‘귀신의 집’ 촬영 땐 한이의 배신으로 분량이 늘어났는데, 이번에도 한이의 장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거 늑대 같아?”

어느새 안무 영상으로 소진된 체력을 회복했는지 한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세트 곳곳을 흥미롭게 살펴봤다.

그러다 조명 앞에서 손으로 특정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스크린 반대편에 있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그림자놀이였다.

“아니. 한이 형 손 같은데.”

어딘가 엉성한 탓에 준해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늑대는 이게 늑대지!”

“아악!”

옆에서 손 그림자 장난을 구경하던 재민이 한이한테 달려들었다.

맹수라는 점을 온몸으로 표현한 듯한데 그림자만 보면 그냥 사람을 물어뜯는 사람 같았다.

“……좀비 아냐?”

전에 좀비 영화 개봉한다고 멤버들한테 같이 보자고 하더니 정말 보고 온 걸까.

내가 좀비를 언급하자 한이를 물어뜯은 재민 좀비가 스크린으로 다가와 손을 짚었다.

한이도 금방 역할에 몰입한 듯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있더니 비틀비틀 일어나 스크린을 두드렸다.

물론 제작진이 공들여 만든 비싼 세트였으니 진짜 두드린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도록 팔만 움직인 것이었다.

“으으. 야, 진짜 무서워. 하지 마.”

무서운 것에 약한 우형이 두 좀비의 모습에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마치 갇혀있는 좀비가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쓰는 듯한 모습. 그림자만 보이니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그럼 이거 맞혀볼래?”

재민이 그렇게 말하며 한 발짝 물러나서 발로 바닥에 뭔가를 그리는 시늉을 했다.

아니, 춤인가?

“……SPID 저번 타이틀이잖아.”

“흐흐. 맞아. 그럼 이건?”

안무가 맞았는지 해랑이 금방 알아보고 맞혔다.

재민은 이번엔 또 다른 안무를 흉내 내며 문제를 내고, 한이도 옆에서 같은 춤을 따라 하며 출제에 동참했다.

“아! 저거 나 고등학생 때 엄청 유행했던 노래였는데 뭐지?”

“저 노래가 형 고등학생 때 나왔다고? 나 초등학생 때였는데.”

“…….”

갑자기 훅 들어온 준해의 한마디에 우형이 또 세대 차이를 실감했는지 조용해졌다.

아무튼 이것을 시작으로 모노크롬의 텔레파시가 다시 발동했다.

재민은 각 세대 아이돌뿐만 아니라 해외 댄서의 춤까지 따라 하기 시작했다.

뇌를 공유하는 것도 아닐 텐데 멤버들이 어떻게 알아맞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저건 문제를 내자마자 안 보고 맞히는 수준인데요?”

“저희 애들이 좀 신기하죠…….”

나와 같이 멤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작가가 또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눈을 반짝였다.

“……뒤에 일정 있으신 게 아니라면 혹시!”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유아이TV 채널에 업로드된 안무 영상 맨 뒤에는 업로드 예고가 붙었다.

[헐 뭐야 2편도 있어요??ㅠㅠㅠㅠㅠㅠㅠ 아낌없이 주는 유아이..]

[나중에 올라올 영상‘들’이라니 3편도 있는 건가요?!!!]

안무 영상 하나, 그림자 인터뷰 영상 하나로 계획되었던 유아이TV의 이번 모노크롬 영상은 그림자 퀴즈라는 컨텐츠가 하나 더 추가되어서 총 3편이 되었다.

<아이돌부 방학캠프>의 그림 연상 퀴즈에 이어서 그림자 퀴즈까지 감상한 컬러즈는 표현력 천재, 퀴즈 천재 등등 ‘천재’가 붙은 온갖 수식어를 나열하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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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클이들 사실 친형제아냐?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잘 맞을리 없다

└거의 소울메이트자너ㅠㅠ

└이정도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다 맞힐듯

└문제 내는것도 내는건데 맞히는 게 진짜ㅋㅋㅋㅋㅋㅋ진기명기

└영업글 쓸라고했는데 다 짜고치는거 아니냐고할까봐 걱정돼.. 아니 우리애들은 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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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리> 활동은 총 3주. 정확히 말하자면 2주하고 5일이었다.

이렇게 하면 결방 때문에 한 번 쉬어야 했던 ZBS의 <가요차트> 외엔 전부 3번씩 나가고 활동 종료를 맞이한다.

그리고 3주 중에 이제 2주차.

예능 덕분에 모노크롬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져서, 컴백 첫 주차 무대들도 조회 수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노크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함께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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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모노크롬 좀 괜찮던데 왜 작년까진 이름도 거의 못들어봤지

└소속사가 수납왕

└누가 뉴마가 얼마나 ㅈ소인지 정리해놓은 거 있더라(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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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ㅋㄹ 남아있는게 용할지경.. 진짜 멤버들 의지로 버틴듯

└왜? 뭔일있었음?

└멤버 탈퇴 두번(한번은 부상땜에 퇴출;), 개인팬덤때문에 내부분열, 소속사가 후배돌한테만 투자함, 컨셉똑같은 디싱만 몇년, 공식스케줄 거의없음, 가수레이블 분리하는데 멤버 한명만 데려감 등등

└워.. 험난하다

└요새 거기 회사 일 잘하는 것 같던데

└윗사람 갈아치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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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도 최근 뉴마를 향한 태도가 많이 유해졌지만, 원래 분노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도 분통 터지고, 곱씹을수록 더 화나고.

가끔 잘하면 칭찬해주기도 하지만, 원래 팬들이란 소속사를 감싸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뉴마의 만행을 숨길 생각이 없는 컬러즈는 뉴마가 모노크롬의 앞길을 얼마나 막아왔는지 열심히 알리고 다녔다.

최근엔 그래도 뉴마가 일을 못하진 않았기에 그룹의 인지도도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모노크롬을 향한 관심이 커진 덕분에, 그 모노크롬을 방치했던 뉴마의 악행이 같이 퍼져나갔다.

즉, 일을 잘할수록 일을 못하는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자리 잡는 이상한 순환.

‘이건 뭐, 평생 가는 거라고 생각해야지.’

나중에 후회한다고 과거에 잘못한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모노크롬과 컬러즈에게 용서받으려고 잘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과거는 내가 바란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건 뉴마 직원으로서 하는 생각이고.’

뉴마가 일을 못했기 때문에 모노크롬의 매력이 알려지지 못했다.

이 점을 알리고 나서는 것은 모노크롬을 생각하면 좋은 방향 아닐까?

그런 방해와 시련을 딛고도 그룹을 유지해왔단 점이 사람들에겐 더 긍정적으로 비칠 테니까.

그러나 말이 이렇게도 전달되고 저렇게도 변하는 커뮤니티 특성상, 뉴마와 모노크롬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돌고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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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이 이만큼 기사회생한 경우도 별로 없을듯ㅠㅠ

└지금 플타고 있는 망돌이 ㅁㄴㅋㄹ 말하는 거야?

└ㅇㅇ근데 탈망돌중

└망돌망돌 거리지마라 듣는 망돌 기분나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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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소속사 얘기엔 크게 관심이 없었는지 어느샌가 뉴마 얘기는 쏙 빠지고 ‘내내 공백기였던 모노크롬’에 대한 얘기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들아. 그걸 대체 왜 ‘망돌이었대.’로 요약하는데?!’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오랫동안 뜨지 못한 아이돌’ 이미지로 정착 중이라니.

난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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