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TV 예능 출연에는 이점이 또 하나 있었다.
모노크롬이 나올 때면 배경음악으로 모노크롬의 노래가 자주 깔린다는 점.
다른 그룹 분량에도 해당 그룹의 노래가 사용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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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브금 컬러즈ㅠㅠㅠㅠ 제작진분들 신경 많이써주신듯ㅠㅠ
└시작부터 이리 틀어주셔서 감동했잖아
└야.. 우리도 방송점수라는걸 따는구나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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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점수란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선정하는 기준이 되는 점수 중 하나였다. 음원 점수, 투표 점수 같은 것.
<아이돌부 방학캠프>에 출연한 다섯 그룹 중 지금 활동하는 것은 모노크롬이 유일했다. 따라서 방송 점수를 신경 쓰는 것 또한 컬러즈뿐이었다.
‘사실…… 1위를 노렸으면 애초에 활동 시기를 지금으로 잡지는 않았겠지.’
현재 모노크롬을 제외한 활동 그룹 중엔 1위 예상 팀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인기 그룹 컴백이 겹치기도 하고, 대형 소속사 신인도 데뷔하고.
커뮤니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1위 후보 박터진다’랬던가.
‘물론 우리도 1위야 하고 싶지. 하고 싶은데!’
다른 그룹과 활동이 겹치는 것을 피하려다간 우리 컴백은 언제 하겠어. 1년 내내 컴백 그룹은 끊이지 않는데.
일단 그 전에 인지도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으니 우리에겐 이게 최선이었다.
슬프지만 본격적인 1위 계획은 다음에 짜도록 하고, 나는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아이돌부 방학캠프> 1편은 숙소 집합 전까지 방송되었다.
우형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고, 모노크롬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나머지 그룹은 숙소를 향해 달려가는 바로 그 장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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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음주 예고야?? 한시간반 호로록이네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ㅋㅋㅋㅋㅋ
└솔직히 인원 너무 많아서 정신없긴 했는데 편집으로 잘 엮은듯ㅋㅋㅋㅋ
└약간 돌대회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이건 걍 다섯팀 리얼리티 모아둔느낌ㅋㅋ
└팬입장에선 돌대회보다 훨낫다
└팀마다 캐릭터 안 겹쳐서 좋더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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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에 1시간 반이 조금 넘는 분량.
시작할 땐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기대치가 충족되었는지 방송이 끝났을 땐 재밌었다며 감상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다섯 그룹의 팬덤은 재밌었던 포인트를 곱씹고 되새김질하며 바빴고.
컬러즈 또한 ‘우리 애는 소중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게 기본 스탠스였는데 우형이 세 번이나 물에 빠진 것은 즐거워했다.
그리고 컬러즈를 포함한 각 팬덤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방송이 끝나자마자 온갖 캡처와 움짤, 클립 영상 등을 올리며 자신의 그룹을 영업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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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찰랑찰랑비틀대는어쩌구 하는 노래 제목이뭐냐
최근에 티비에서 몇번 들었는데 제목을 모름
└가사만 보면 트로트인데
└ㄴㄴ아이돌노래
└설마 착란속에 비틀대는 이거 말하는거? 모노크롬 요즘 활동하는 곡인데(가사 캡처)
└아 이거맞는듯 ㄳ
└찰랑찰랑 미쳣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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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위, 올라왔대.”
“또, 또요?”
내가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알려주자 우형이 놀란 듯도 하고 당황스러운 듯도 한 얼굴로 대답했다.
100위. 스트리밍 플랫폼인 레몬의 실시간 차트 순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평일의 케이블 음악 방송을 마친 지금.
1위부터 100위까지만 표시되는 이 차트에 모노크롬의 <이리>가 100위로 올라와 있었다.
이것을 두고 ‘또’라고 표현한다니 무슨 일상처럼 차트에 진입하는 가수 같지만…….
‘대체 뭐야, 이게.’
실시간 차트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갔다가. 또 들어갔다가 나갔다가…….
<아이돌부 방학캠프> 방영 이후로 이런 현상이 패턴을 알 수 없게 반복되었다.
컬러즈는 언제나 그렇듯 발매 이후로 스트리밍 유지 중이었으니 컬러즈의 화력만으로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
아마 예능을 보고 ‘모노크롬은 누군데?’ 하고 관심을 가졌거나, 음악 방송을 보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구더라?’ 하는 사람이 우연히 몰릴 때마다 반짝 진입한 게 아닐까.
그 사람들이 스트리밍을 상시 유지해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몰리지 않으면 다시 차트 밖으로 나가고.
‘줬다가 뺏는 것도 아니고.’
물론 한 번이라도 100위권 안에 들어준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데, 마냥 기뻐하기에는 또 금방 차트 밖으로 나가버려서 흥이 식어버리곤 했다.
컬러즈도 차트인의 기쁨과 차트아웃의 슬픔을 반복해서 겪느라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래도 가시적인 결과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확실히 있었다.
[차트아웃하더라도 100위 근처에서 버티고 있단거지?ㅠㅠㅠ계속 힘내자]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니 컬러즈는 다시 으쌰으쌰 힘을 내서 스트리밍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저번 한이의 OST를 포함해서 모노크롬의 곡이 차트 진입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안타깝게도 현재 컬러즈만의 화력으로는 진입이 어려워 보였다.
저번에 드라마 시청자층 버프가 들어왔던 것처럼 다른 이유로 유입된 사람들이 있어야 겨우 차트에 발을 걸치는 느낌.
‘이 상황에 인지도 올리는 걸 우선한 건 정답이었겠지.’
한이의 OST 진입 순위가 더 높긴 했지만, 그땐 발매 직후였고 인기 드라마의 OST로서 오른 것이기도 하니까.
이번엔 정말 모노크롬의 노래로서 차트에 눈도장을 찍었다는 게 의미 있었다.
발매 직후도 아니고 1주일이 지나 차트에 오르고 있다는 건 확실히 예능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뜻이고.
‘뭣보다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했으니까.’
내려가는 주식 그래프를 보는 것 같아 멘탈을 위해 봉인해뒀던 마이 엔터의 인지도 수치.
그 수치를 이번에 눈 딱 감고 봉인 해제하여 확인해봤다.
저번에 700대였던 모노크롬의 인지도 수치는 현재 1200대.
저번처럼 반짝 화제로 잠깐 올랐다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아예 네 자릿수를 기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점점 올라가는 쪽으로.
‘언제 다시 내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지금은 물 들어오고 있단 거지.’
그러나 전에도 말했다시피 인지도란 긍정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을 둘 다 아우르는 개념이었다.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상승세를 이어가서 그나마 이 정도인데, 상위권 성적만 보던 사람들 눈엔 성에 안 찬 모양인지 별 볼 일 없는 성과처럼 언급하곤 했다.
모노크롬은 이 성적에 어떻게 SPID, 유니온맥스와 같이 공중파 예능에 꽂혔냐는 식.
커뮤니티 한구석에선 역주행도 아니고 비틀비틀주행이라며 놀림당하기까지.
“비틀댄다는 가사 쓰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이번 타이틀곡에 해랑과 함께 작사로 참여했던 준해는 어쩌다 그 비틀비틀주행이란 얘기를 들었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사소한 말이 자꾸 복선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괜히 징크스처럼 영향을 줬을까 봐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막내가 시무룩하게 있으니 다른 멤버들이 그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나섰다.
“다음엔 이란 제목으로 노래 하나 만들자.”
“올라간다, 올라간다, 하늘 위까지…….”
우형이 곡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자 준해는 멜로디도 없이 벌써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왠지 처량하게 들리는 건 내 기분 탓인가.
“한이 형 옥타브도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올리는 거야. 올라간다, 아, 악-! 이렇게.”
“녹음 한 번 하고 다시는 못 부르겠다.”
올릴 수 있는 건 전부 올리고 싶은지 재민이 아이디어를 얹었다.
예시로 들며 고음을 내지르는데 성대가 받쳐 주지를 못하는지 끝으로 갈수록 점점 무음이 되어갔다.
“그 정도면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게 옥타브가 아니라 얘가 되는 게 아닐까.”
“그거 지금 디스랩이야?”
해랑이 덧붙인 한마디에 한이는 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UP’이라 하면 나는 멤버들 레벨이 오를 때 캐릭터 옆에 표시되는 마크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진짜 만들었다가 작사 레벨 오르는 거 아냐?’
꾸준히 복선 회수를 하는 준해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곡을 만들면 꼭 앨범에 넣어주겠다고 말하자 멤버들은 웃으면서도 조금 더 진지하게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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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커뮤니티에서 모노크롬에게 보이는 반응은 ‘누구더라?’, ‘불쌍하다.’ 정도.
그들에게 모노크롬은 그냥 변방에 있는 그룹. 가끔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며 아는 척도 한번 하고 지나가는, 그 정도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 예능 출연으로 ‘쟤넨 뭔데?’가 살짝 추가되었다.
‘그래서 안 좋게 보는 거 아닐까 해서 조금 심란했는데…….’
우리를 향한 이런 반응은 약과였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노크롬에 대한 반응 위주로 보고 있어서 몰랐는데, 내가 모르는 곳에선 더 큰 소란이 일고 있다는 것을 윤희를 통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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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핃애들도 안해서 그렇지 하면 잘한다고요ㅠㅠ
우리 애들이랑도 동맹해줘요 ㅠㅠㅋㅋㅋㅋㅋㅋㅋ
└걔네만 겉돌던데 친한 그룹 없어서 그런거아님?ㅠ
└방송을 안 본거냐 눈이 어떻게 된거냐? 존ㄴ 잘놀았는데요?
└웬 ㅄ땜에 글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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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앓는 글만 올려도 물을 흐리는 댓글들이 하나둘씩 달린다나.
‘아니, 우리는 화목하길래 다른 쪽도 다 화목한 줄 알았지…….’
팬이 많으면 비례하여 안티 또한 많았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이렇게 체감된 것은 처음이었다. 모노크롬에게 붙는 분탕은 아주 적은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SPID랑 유니온맥스 팬덤 일부는 서로 물밑에서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고요.”
윤희가 내가 모르는 팬덤계 현황을 알려주었다.
물론 팬덤이 한 몸이 아니니까 일부분이겠지만, 평소에도 두 그룹은 자주 비교당하곤 해서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최고의 팀메이트> 방영 이전의 컬러즈와 윤환 팬덤 같은 사이?
“저희는 그나마 조용해서 다행이네요…….”
“어그로들도 기왕 건드릴 거면 타격감 있는 그룹 건드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
그러니까 삥 뜯는 일진들도 좀 돈 나올 구석이 있어 보이는 애를 건들지, 500원도 없을 것 같은 초등학생 꼬마는 잘 안 건든다는 소리였다.
그 꼬마가 모노크롬이고.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평화로운 건 좋긴 한데 인기가 미미하단 것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기분.
그러나 이런 흐름이 의도치 않게 우리에게 순풍이 되었다.
<아이돌부 방학캠프> 1편 방송이 끝난 후에는, 1편에 해당하는 미방영 분량이 짧게 짧게 크롭되어 웹으로 공개됐다.
컬러즈가 해랑의 동화책 낭독 풀버전에 취하고, 방송에 미처 다 나오지 않았던 재민의 그림에 놀라는 사이.
SPID와 유니온맥스의 팬덤은 인원이 많은 만큼, 다른 그룹 영상에 나온 최애의 모습을 재빠르게 찾아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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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nn:nn~ ㅁㄴㅋㄹ분들이랑 만남
nn:nn 뒤에 지나가다가 브이(ㅋㅋㅋㅋ)
(링크)
nn:nn ㅇㅋㄷ분들이랑 동맹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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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 중인 그룹의 조회 수를 늘리고 싶진 않았는지, 일부러 다른 세 그룹 위주로 정리한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게다가 티를 내지 않으려는 건지 상대 그룹의 영상을 한두 개 정도 껴두는 치밀함까지.
‘이렇게 계획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SPID와 유니온맥스의 조회 수 경쟁이 펼쳐진 와중, 어부지리로 조회 수가 크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게 바로 모노크롬이었다.
모노크롬은 엔피버와 아예 붙어 다녔고 우형은 여기저기 흑기사 활동까지 펼쳤으니.
인원이 많아서 한두 명 정도 자리를 비워도 괜찮았는지 가끔 유니온맥스 멤버가 은근슬쩍 모노크롬의 동태를 살피러 오곤 했는데 그것도 미방영 분량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모노크롬은 본방송에서도 그랬지만 미방영 분량에서도 이곳저곳 침투해 있었다.
그리고 다들 모노크롬은 경쟁에 위협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모노크롬의 영상은 거리낌 없이 추천하곤 했다.
‘이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도 아니고…….’
고래 싸움에 다른 피라미까지 그쪽으로 다 몰려가는데, 새우인 우리는 옆에서 떡밥만 주워 먹는 상황.
등 터질 일이 없다면, 새우로서는 그리 나쁜 환경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