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11화 (111/430)

# 111화

팬 사인회 장소는 소규모 공연이나 모임이 가능한 다목적 홀이었다.

무대 뒤쪽엔 하얀 스크린이 펼쳐져 있고 앞엔 단차 있는 좌석이 깔려 있었다. 무대가 있는 것만 빼면 작은 상영관 같은 구조였다.

아직 시작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스태프는 자리를 세팅하고 일부 팬들은 지참한 카메라를 세팅했다.

나는 무대 옆, 장막으로 가려진 곳 뒤에 서서 틈새로 컬러즈들이 앉아 있는 바깥 상황을 엿보는 중이었고.

‘모노크롬도 역시 있구나. 사진 찍는 팬들.’

내가 현실의 컬러즈를 직접 보는 경우는 대부분 음악 방송에서였다. 음악 방송은 당연히 촬영, 녹음 금지.

물론 모노크롬의 출퇴근길에도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출퇴근 통로가 정해져 있다 보니 워낙 여러 그룹의 팬들이 섞여 있어서 컬러즈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는데.

‘사진 촬영 금지였던 돌대회에서도 멤버들 사진이 찍혔고.’

그땐 나도 계속 현장에 있었는데 언제 찍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찍는 장면을 본 적이 없어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정말 팬이 찍어 올리는 건지 궁금하던 참.

팬 사인회는 촬영 금지가 아니었기에 오늘은 컬러즈들도 당당하게 카메라를 들고 왔다.

‘……출국할 때 아무도 없었던 거 생각나네.’

그땐 오랜 비활동기 끝에 곡 하나가 겨우 나왔을 때였으니, 컬러즈도 모노크롬이 갑자기 출국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물론 소속사 직원으로서, 공항까지 팬들이 찾아와서 비공식적인 사진을 찍기를 기대한다는 것도 좀 이상하긴 했다.

초상권이니 뭐니 하는 문제가 있기도 하고, 다른 인기 그룹의 경우 사생활 침해 문제가 심하다는 듯도 하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금지할 수는 없는 게, 보통 회사와 팬들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선이 있었다.

이미 정착된 문화 중 하나였기에 엔터 업계 초짜인 내가 뭐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다만 지금은 멤버들 모두 내 손길이 닿은 스타일로 세팅한 상태였으니 사진이 잘 나오기를 바랄 뿐.

“왜 그러고 계세요?”

숨어서 팬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서 뒤돌아보니 윤희가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좀, 팬들은 뭐 하나 궁금해서요.”

“그런데 왜 숨어서 보세요? 어차피 직원들 다 왔다 갔다 하는데.”

윤희의 말대로였다. 우리 스태프들뿐만 아니라 팬 사인회를 주최한 음반사 스태프까지 돌아다니며 자리를 세팅하고 현장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나 한 명 섞여 있어도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왠지 컬러즈 앞에선 저절로 숨게 돼서…….”

“무슨 잘못이라도 하셨어요?”

작은 생수병 다섯 개를 들고 지나가던 민형도 그런 내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한마디를 던졌다.

잘못. 잘못이야 했지. 그런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회사가 예전에 모노크롬을 방치하고 막 굴려 먹은 전적이 있어서 대표 딸인 나는 팬들 앞에 나서기가 무섭다?

윤희도 민형도 뉴마에서 일했으니 그 시절을 잘 알 테고 회사에 안 좋은 기억이 있을 텐데.

굳이 지금 그 기억을 상기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그냥 아무 대답이나 꺼냈다.

“제가 좀 내성적이에요.”

“……네.”

내가 진지한 대답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민형은 바로 관심을 끄고 다시 자신의 할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윤희는 안 좋았던 예전 회사 이미지가 아니라 다른 걸 떠올린 듯 작게 웃었다.

“컬러즈도 주인님이라면 반가워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 호칭 좀.”

내가 부끄러워하자 윤희는 그냥 장난이었는지 재밌다는 듯이 웃고 지나갔다.

발음으로는 잘 구별이 안 되지만, 왠지 어감이 ‘주인 님’에서 점점 ‘주인님’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괜히 놀림거리만 늘어난 느낌이야.

“주인 님, 뭐 해요?”

다시 커튼 틈새로 바깥 상황을 엿보는데 이번엔 익숙한 ‘주인 님’이 들려왔다.

역시 부르던 애가 부르면 자연스럽게 넘어가겠는데, 자꾸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이상하단 말이지.

슬쩍 뒤돌아보니 무대 위로 나가려던 멤버들이 수상한 내 모습에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컬러즈가 무서운데 궁금은 한 걸 어쩌겠는가.

난 계속 여기서 지켜볼 예정이라 다들 신경 쓰지 말고 각자 할 일을 해 주길 바랐다.

“아니. 신경 쓸 것 없어. 파이팅.”

“……네. 파이팅.”

내가 어물쩍 넘기며 파이팅 포즈를 지어 보이자 맨 앞에 서 있던 우형도 어정쩡하게 같은 포즈를 지었다.

그리고 드디어 멤버들이 컬러즈 앞의 무대로 나가 섰다.

***

“블랙 앤 화이트! 모노크롬입니다!”

멤버들이 인사하자 컬러즈는 환호성으로 그들을 반겼다.

입장할 때부터 ‘촤라라락’ 소리를 내며 연사하던 카메라들은 마치 기자처럼 멤버들의 인사 모습을 담았다.

화보 촬영은 카메라 하나만 집중하면 되고, 음악 방송은 불이 들어오는 카메라 위주로 신경 쓰면 되는데 이렇게 여러 카메라가 동시에 자신들을 찍는 현장은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오래간만인 팬 사인회 현장에 잠시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소통해오던 팬들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생소하게 느낄 필요는 없었다.

토크 시간은 사인이 끝난 후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기에 곧바로 메인인 사인회부터 진행됐다.

“안녕하세요.”

“허헉. 안녕하세요.”

현재 앉은 순서는 해랑, 한이, 준해, 재민, 우형.

사인을 받으러 올라온 1번 컬러즈는 해랑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머리가 백지가 되어 준비했던 말을 전부 잊을 뻔했다.

새벽에 사전 녹화도 다녀왔기에 멤버들 실물 영접은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하지만 해랑과의 일대일 아이 콘택트는 심장에 무척이나 해로웠다.

“저 그거 궁금했는데. 오빠 이름 한자 진짜 이리 랑이에요?”

“아. 그거…….”

해랑은 사인을 하다가 그 질문을 듣고 옆을 슬쩍 쳐다보았다.

바로 몇 시간 전 있었던 컴백 인터뷰에서 이리 랑이라며 거짓된 정보를 말한 게 준해였고, ‘아니요.’라고 대답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려던 해랑을 방해한 게 한이였다.

옆에선 바로 그 두 사람이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장난이에요. 사실은 물결이란 뜻이에요. 바다의 물결.”

나지막하게 이름의 뜻을 설명하는 목소리. 컬러즈에겐 그 목소리가 마치 시처럼 들렸다.

기억조작은 한이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해랑에게서 30년 전 짝사랑하던 문학동아리 선배와 같은 아련함이 느껴질 줄이야.

물론 해랑을 오빠라고 부르는 컬러즈였으므로 30년 전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느낌이 그랬다.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뭔가에 집중할 때 예민해 보이곤 하는 해랑이었기에 인상이 차갑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그의 인상은 예상외로 부드러웠다.

얼마 전 믹스테이프 덕분에 해랑에게 팬들의 응원이 조금 더 와 닿았고, 그게 표정에 드러난 덕분이었다.

그러나 컬러즈는 그런 이유까지 알 리 없었다. 그저 미소 지으며 자신을 보는 눈빛에 홀려서 버벅이는 일이 없도록 온 정신을 집중할 뿐.

대기 중인 컬러즈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또 SNS에 실시간 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을것 같아서 1번 안뽑은거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ㅠㅠㅠ보고있으니까 개부럽다 애들이 다 올망졸망 1번분만 쳐다보고있음ㅋㅋㅋㄱㅇㅇ]

첫 순서인 컬러즈가 다음 순서로 넘어가기 전까지 다른 멤버들은 좌석에 있는 다른 팬들과 소통하거나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번 컬러즈에게 시선이 주목되는 효과가 있었다.

5대1 압박 면접과도 같은데 면접관들이 좋아하는 가수인 상황.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1번을 기피하는 팬들도 꽤 많았지만, 오늘의 1번은 다행히도 프로 컬러즈였다.

그녀는 이번 앨범에 어떤 점이 기대되었고, 현재 스타일이 잘 어울려서 좋고, 부먹인지 찍먹인지 궁금하고, 여기까지 오는 데 무슨 일이 있었고 등등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

“재민아아…….”

이미 재민이 복귀한 지도 몇 달이 지났건만 그의 부상과 탈퇴, 그리고 복귀까지 지켜본 컬러즈는 재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간의 설움이 터져 나왔다.

모노크롬이 다시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볼 땐 무척 신나고 즐거웠는데 예전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들 이제 괜찮아졌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모습을 보니 또 눈물이 났다. 물론 좋은 쪽으로.

“왜, 왜요. 슬픈 일 있었어요?”

“아니이……. 이렇게 재민이 다시 볼 수 있으니까, 아휴. 나 진짜 할 말 많았는데…….”

“다시 봤으니까 앞으로 계속 보면 되지.”

사인 시간이야 정해져 있었지만 시간이 칼처럼 잘리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멤버 개개인에겐 다음 순서가 올 때까지 비는 시간이 종종 생기곤 했다.

앞 순서 컬러즈에게 인사해주며 사인을 마친 우형은 옆에서 재민과 컬러즈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을 꽉 쥐었다.

‘아……, 큰일 났다.’

슬픔이란 쉽게 전염되는 감정이었다.

슬픔뿐만 아니라 여러 복잡한 감정이 담겼겠지만, 바로 눈앞에서 컬러즈가 글썽이는 것을 보니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우형은 특히나 눈물에 약했다. 남의 눈물이든 자신의 눈물이든.

한 무리의 팬덤과 한 무리의 그룹으로서 뭉쳐서 대화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일대일 대화는 멤버들에게도 컬러즈에게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즐거운 이벤트가 되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모노크롬과 컬러즈는 좋지 않은 기억을 공유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직 다양한 상황에 면역이 부족했던 탓에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이 상황을 맞이해버렸다.

“그만 울고요. 하고 싶었던 말 있어요?”

“허엉……. 다음에, 끅, 먹방 또 해주라. 허헝.”

“푸핫. 다음에 뭐 먹었으면 좋겠어요?”

“끄흑, 재민이 다 먹어.”

재민은 기특하게도 방긋방긋 웃으며 마지막까지 우는 컬러즈를 잘 달래며 보내줬지만, 우형은 그렇게 능숙하지 못했다.

자신의 순서로 넘어온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우형은 눈에 힘을 주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약한 눈물샘을 이렇게 원망한 적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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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돌 팬싸갔다가 멤버 울렸다

내돌이 예전에 회사때문에 좀 힘든일 있었거든.

ㅎㅏ.. 사인받다가 그 생각나서 울컥하는바람에 얘기도 제대로 못하고..

다음 순서였던 리더가 사인해주다가 내가 계속 우니까 자기도 그때일이 생각났나봐

막 달래주더니 결국 같이 울었음 ㅠㅠㅠㅠㅠ

왜울어요 울지마요 하는데 아니 내가 할말인데요 ㅠ

사인한거 막 흔들려서 미안하다고 다시 해주겠다 그랬는데 괜찮다고 걍 받아옴

ㅅX 할말도 다 까먹고 중간부터 멘탈터져서 오늘 뭐하고왔는지 모르겠다.

근데 집으로돌아와서 사인해준거 다시보는데 앞으론웃게해줄게 이러고 적어줬더라

아니 위엔 자기도 울면서 사인하느라 다번졌으면서

그거보고 내돌한테 평생 뼈묻기로 결심함

└엥ㅋㅋㅋㅋ 좀 구라같은데 소설이면 잘썼다야

└오늘 팬싸한 돌 누구있지

└터치유 오늘 막팬싸랬는데 혹시 거긴가?

└ㄴㄴ터치유는 오늘 그런일없었음

└이거 뭔데 인기글 떠있냐 실화임? 주작임?

└댓글 앞으로 넘겨보면 글쓴이 인증 있음ㅋㅋㅋㅋㅋ

└그래서 울었다는 돌이 누군데

└모노크롬 여우형

└제목 어그로인줄 알았는데 이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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