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야 근데 매니저 왜 애들한테 반말 찍찍하냐;
└우형이 사촌형님이시래
└아… 어쩐지 반말이 친근하니 보기좋더라고
└태도전환 속도 보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루 애들도 편하게 대하는게 눈에 보여서ㅠㅠ 오래 같이 일해주셨으면…
━━━━━━━━━━━━
***
소속사 직원으로서는 팬들에게 이름이 안 알려지는 것이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멤버 혈연이라면 또 달랐나 보다.
얼마 전 한이의 괴담쇼 뷰이라이브에서 민형이 ‘녹음 재개 전에 세팅해 놓으라’고 지시하던 목소리가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그 때문에 몇몇 컬러즈는 ‘왜 우리 애들한테 명령하냐’는 투로 불만을 표출했으나 그가 우형의 사촌 형임을 알게 되자 곧바로 모든 것을 용서했다.
멤버의 혈연이란 노골적으로 인기도를 이용하려 하거나 따로 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팬들에겐 호감 테두리 안에 있었다.
“부럽네요.”
모노크롬의 매니저인 그와 함께 앨범 활동 스케줄을 정리 중이었는데, 커뮤니티에 언급되고도 태평하기만 한 그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부럽다는 뜬금없는 소리에 수첩을 정리하던 민형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뭐가요?”
“민형 씨는 팬들한테 알려져도 좋게 봐주잖아요. 회사 관계자한테는 진짜 마음 안 여는데.”
민형도 내 얘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떠오르는 얘기가 있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매니지먼트팀 다른 직원들도 그런 비슷한 얘기 하더라고요. 배우 쪽은 그런 일이 좀 덜한데, 아이돌 맡으면 팬들이 금방 이름까지 다 외운다고요. 그런데 저는 친척이니까 별일 없겠다고.”
“아……. 확실히 배우 쪽이랑은 그게 좀 다르겠네요.”
아이돌은 특히 팬과의 거리감이 가까워서일까.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관해 최대한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물론 그 ‘알고 싶다’가 지나치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걸 제외하더라도 그냥 평범하게 알 수 있는 정보라면 빼놓지 않고 알고 싶어 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정보엔 그 아이돌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 관한 것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일을 잘하고, 저 사람은 부주의하고, 이 샵은 별로고, 괜찮고, 이런 평가들이 쉽게 나오곤 했다.
‘하긴 배우 쪽 팬들은 출연 작품 감독이나 작가 얘기를 더 많이 하지, 소속사 얘기는 잘 안 하는 것 같아.’
얼마 전 한이의 카메오 출연으로 드라마 시청자층의 반응을 보고 나서 느낀 점이었다.
아이돌 팬이나 배우 팬이나 같은 ‘팬’이니 비슷할 것 같은데 성향이 제법 달랐다.
배우는 아이돌 그룹보다 소속사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느낌이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은 데뷔 때부터 어느 소속사에서 만든 그룹이라고 소개되기도 하고, 같은 소속사 그룹들끼리 묶여서 언급되는 일도 꽤 많지 않은가.
많은 활동을 팬들과 함께하다 보니 소속사와 팬덤 사이의 상호 피드백도 많은 편이고.
‘모노크롬 팀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그런 이유도 좀 있었으려나.’
실상은 모르겠지만 내가 사장과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어쨌든 그런 점에서 민형을 매니저로 데려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친척이면 정말 동생 챙기듯이 잘 챙겨줄 것 같은 이미지여서 그런지 팬들도 어느 정도 안심하며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편하게 대하니까.’
혼자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는 다시 일에 집중하려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날 다시 흘끔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제가 어떻게 봤는데요?”
“애들이 그러던데. 가끔 부모님 같은 눈으로 보신다고. 지금 딱 그런 눈이었어요.”
“…….”
멤버들을 보면서 종종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얼굴에 다 드러났나.
“애들 보는 거야 그럴 수 있는데. 저까지 그렇게 보셔서 좀 웃겼네요. 무슨 은사님인 줄.”
지금도 ‘기특하다’까지는 아니어도 흐뭇한 마음으로 보던 게 티가 났나 보다.
그는 그런 내 시선이 재밌다는 듯이 픽 웃었다.
“잘 데려왔다,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요.”
“뭐…… 칭찬이면 감사히 들을게요.”
민형은 그런 말을 남기고 멤버들에게 정리된 스케줄을 전달해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입가를 꾹 누르며 이사실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나이 차가 별로 안 나는 젊은 쪽이라면 모르겠는데 송 피디님 앞에서도 이런 표정이었던 거 아니겠지?
나라도 나이 차 나는 고등학생이 날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으면 ‘얘 뭐지.’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나이 생각 안 하고 너무 상사 위치에 취해 있었나.’
가끔 어른스러운 사람들을 보면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어른스럽고 위엄 있는 상사 이미지는 이미 그른 것 같았다.
***
컬러즈가 설레고 기대하며 앨범을 기다리던 와중, 그 축제 분위기가 잠시 주춤한 것은 컨셉 티저 이미지가 떴을 때였다.
대개 ‘미래’를 표현하는 의상들은 효율성, 기능성을 중시하고는 했다.
예를 들면 주머니와 벨트, 지퍼 등이 많이 달린 테크웨어 같은 것.
이번 <이리>도 근미래적인 배경을 컨셉으로 잡았기 때문에 그런 스트릿 패션을 활용했다.
그리고 영어가 바코드처럼 적힌 티셔츠와 점퍼 의상을 본 일부 컬러즈의 반응은 이러했다.
━━━━━━━━━━━━
저거 악동 아냐?
12345때랑 뭔가 의상 비슷
└뉴마가 또
└아니 그래도 이번 의상이 확실히 더 이쁘긴 한데ㅠ 아니 왜 악동 스타일이냐고요
━━━━━━━━━━━━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패턴에 난 머리를 짚었다.
무려 반년 동안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잊을 만하면 또 나타나는 악동의 망령.
컬러즈에게 ‘악동’ 알레르기가 있다면 내게는 슬슬 ‘악동 알레르기’ 알레르기가 생길 것만 같았다.
‘아니. 컬러즈들아, 제발…….’
컬러즈도 간절했지만 나도 그에 못지않게 간절했다.
제발. 제발 뉴마를 조금만 더 믿어줘…….
컬러즈들의 의견은 ‘몇 년간이나 고집해 올 정도로 악동 컨셉을 사랑하는 뉴마가 악동을 쉽게 버릴 리가 없다’였다.
‘그건 내가 이 회사에 오자마자 버렸어!’
아마 이런 반응은 가사까지 나오는 뮤직비디오 티저가 떠야 사그라들 듯했다.
컬러즈가 말하는 악동 컨셉이란 활발 청량 컨셉의 캐주얼한 의상, 비주얼뿐만 아니라 장난꾸러기 연하남 느낌의 곡 가사를 포괄해서 말하는 것이었으니.
이번 <이리>는 따지자면 판타지 컨셉에 가까웠고 가사를 보면 악동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소한 요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야생의 컬러즈는 이미 ‘악동일 경우’를 추측하며 컨셉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
늑대 컨셉 진짜 좋은데ㅠㅠ..
멤버 프로듀싱이면 걱정 없는데 뉴마가 또 예전처럼 만들었으면 남자는 다 늑대고 넌 순진한 양 이래놨을 거 아냐. 가사는 또 지켜보다가 뺏기는 내용 100퍼
└남자는 늑대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뉴마감성잘알 거의 뉴마학석박사급
└양 빼앗기면 늑대컨셉이 아니라 양치기 컨셉아니냐
└제발 더이상 곡에 손대지 말고 멤버들한테 맡겨ㅠㅠㅠ
━━━━━━━━━━━━
……이런 예상.
그간 비슷비슷한 곡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탓에, 컬러즈는 뉴마의 저예산 자가복제곡의 패턴을 이미 파악 완료했다.
사실 내가 나서서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런 반응을 계속 지켜보는 건 사서 걱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쩔 수 없다.
‘난 원래부터 커뮤 중독이었다고!’
내가 지금 커뮤 중독이 된 건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내가 원래 커뮤 중독이었기 때문이다.
마이 엔터 유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느라 더 아이리스 키우기에 몰두하지 않았던가.
‘그때 이 세상의 다른 커뮤니티에선 ‘아, 또 악동이야!’ 이러고 있었겠지……?’
때는 같은 청량이라도 의상 스타일이 달랐기에 악동이 아닐 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번 의상은 하필 악동 스타일과 겹쳐서 좀 더 절실해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불안함에 휩싸인 컬러즈가 있다면 냉철한 컬러즈도 있었다.
━━━━━━━━━━━━
야 근데 우리가 걱정하는 그런게 아닐수도 있는게
우리 머릿속에 악동이 각인돼서 그렇지 그냥 보면 의상 엄청 이쁘거든?
게다가 티저부터 퀄이 다르고. 진짜 악동이더라도 예전같은 그런 악동은 아닐거임
└ㅇㅇ올해들어 계속 괜찮았는데 갑자기 퇴화하는 게 오히려 이상
└애들이 요즘 의상 신경 많이 쓴다고 말했었고ㅠㅠ 티저 봐도 돈 안 들인 것 같진 않아서 나도 여기 동의
└주인님 제발
━━━━━━━━━━━━
“푸읍.”
반쯤 체념하며 스크롤을 내리다 눈에 들어온 단어에 나는 마시던 물을 다 뱉어버릴 뻔했다.
‘여기서 갑자기 내 이름을 왜 불러……?’
잡지에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이 떴다가 총괄 프로듀서로 알려진 내 이름.
대표 욕에 묻혀 잊힌 줄 알았는데 의상 얘기가 나와서 생각났던 걸까.
일단 ‘신주인’이란 사람이 회사의 높은 사람이란 걸 알았으니, 이 악동의 굴레를 끝내줄 사람이라고 희망을 걸었을지도.
‘으으음……. 어디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
뉘앙스를 보니 이건 정확히 날 콕 집어서 부탁하는 게 아니라, 그저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하는 것도 같았다.
갑자기 앨범에 적히기 시작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신주인’이란 이름.
일단 회사의 높은 사람 같고. 일단 그 이름이 들어갔을 때 나빴던 기억이 없었고.
그러니 나라는 사람을 의식해서 불렀다기보다는 뭔가 절실할 때 신을 찾듯이 그런 느낌으로 말한 게 아닐까.
비유하자면 ‘하나님’ 같은 용도로 내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이후로도 ‘주인님’을 찾는 댓글이 종종 보였고, 팬매니저인 윤희도 그걸 봤는지 풋 웃었다.
“주인님 정도 호칭이면 선방했는데요?”
“아니, 어감이 좀…… 이상하잖아요.”
내 이름을 밈으로 쓸 거면 적어도 띄어쓰기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남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윤희는 그 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뒤에 ‘님’이 붙은 게 어디예요. 그래도 높임말이잖아요.”
……다른 소속사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불리고 있길래.
‘대표야’처럼 동네 친구같이 불리고 있는 걸까.
대표에게도 비속어에 가까운 호칭이 붙은 것을 본 적이 있기에 할 말이 없어졌다.
‘확실히…… 그런 것보단 ‘주인님’이 나은 것 같긴 해.’
대표 욕을 하도 봤더니 다른 호칭은 상대적으로 괜찮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름만 알지, 나란 사람의 본체를 아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허상의 존재처럼 부르기만 한다면 내 이름 정도는 내줄 수도 있었다.
“앨범 보고 나면 컬러즈가 주인님을 더 믿게 되겠네요.”
“……그건 전후 관계가 좀 잘못되지 않았어요?”
컬러즈가 내게 기도했기 때문에 컨셉이 바뀐 게 아니라 그냥 애초에 악동 컨셉이 아닌 건데.
그리고 뮤직비디오 티저까지 뜨고 악동 컨셉이 아니란 것이 확실히 밝혀졌을 때, 윤희의 말대로 ‘주인님’이란 호칭은 토템처럼 정착되어 버렸다.
━━━━━━━━━━━━
ㅁㅊ 주인님이 소원 들어주신거래ㅋㅋㅋㅋㅋㅋ 주인님 다음엔 섹시컨셉 부탁드립니다
@주인님이 누군데?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