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06화 (106/430)

# 106화

다른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돈 들였구나’ 하고 느꼈던 요소가 바로 스포츠카였다.

보통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게 ‘집’과 ‘차’였으니까.

그렇다고 집을 사서 뮤직비디오에 넣을 수도 없었고, 돈 쓴 티를 내겠다고 지폐 휘날리는 장면을 넣으면 오히려 과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이 스포츠카.

더욱이나 이번 <이리> 뮤직비디오는 근미래적인 도시 배경을 그리고 있어서 스포츠카라는 아이템을 도입하기에 아주 적절했다.

사람들이 미래를 상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이동수단의 변화이니까.

“오. 오오. 문 위로 열려.”

이번에 준비된 것은 검은색 매끈한 차체에 문이 날개처럼 열리는 모델이었다.

디테일 하나하나에 멤버들이 “오오.” 하면서 생생한 리액션을 보이니, 구도를 잡던 담당 스태프가 웃으면서 차에 대한 설명까지 해 줬다.

멤버들은 모터쇼에 온 것처럼 구경하고 그 옆에선 한이가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하긴 연예인이면 스포츠카 탈 일이 많이는 없겠지.’

물론 돈 많이 버는 연예인은 스포츠카도 몇 대씩 있을 테고 개인적인 용도라면 얼마든지 타고 다닐 수 있겠지만, 연예인으로서 활동할 땐 따로 회사 차를 타고 다니지 않던가.

멤버들이 스케줄 이동 시에 주로 타고 다니는 것 또한 ‘연예인 밴’이라 불리는 차량이었다.

스태프도 동승하거나 의상을 함께 싣기도 하니 내부 공간 넓고,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창문에 선팅 처리까지 되어 있는 정석적인 연예인 차량.

그런 차량은 이런 스포츠카와는 다르게 디자인보다는 기능성이 메인이었다.

“이런 스포츠카는 얼마나 해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멤버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던 스태프의 입에서 억 단위 금액이 나오자, “우와.” 하면서 다가갔던 우형이 “우와…….” 하면서 물러났다.

물론 우리가 그 집 한 채 가격을 지불한 게 아니라 촬영용 렌트에 보험을 들었을 뿐이지만, 렌트비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탕진 하나 추가.’

이런 탕진 요소들은 세트뿐만 아니라 나중에 CG 연출로도 들어갈 예정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도시 야경이라든가 전광판, 홀로그램 같은 것.

현실에 없는 것을 무에서 유로 창조해내는 작업이다 보니 비싸기도 비쌌다.

사이버펑크 ‘느낌’을 내기 위해서는 그런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필요했고, 제작비도 비례하여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뭐, 이건 제작사 쪽에서 알아서 잘해 주겠고.’

스포츠카가 있는 곳 말고, 그 옆의 세트에선 다른 촬영이 준비 중이었다.

뮤직비디오의 시작이 될 장면. 저번 해랑의 믹스테이프 <미드나잇 블루> 뮤직비디오와의 연결고리가 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느낌으로 구상했기에 이번 <이리>의 오프닝 장면 또한 해랑이 주인공.

멤버들이 스포츠카를 구경하는 동안 살짝 흐트러진 헤어스타일로 세팅을 완료한 해랑이 위치에 가서 섰다.

‘저번이 ‘백해랑’이었다면 지금은 딱 ‘아이돌 해랑’이네.’

같은 구도지만 분위기와 디테일이 달랐다.

<미드나잇 블루>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은 해랑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뒤의 창문에 달이 떠 있는 장면.

지금은 의자가 난간으로 바뀌고 달 또한 조명으로 대체했다.

어두운 벽면에 원형으로 비치는 핀 조명이 달을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인공조명이 달빛을 대신하는 도시의 밤’이라는 설정이 고스란히 이 장면에 담겨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더라. ‘달은 없는데 달이 있는 것처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던가.

중언부언하면서 설명에 애쓰던 나의 의도를 제작사는 잘 알아채 주었다.

뒤에 전광판을 세워 가짜 밤하늘 영상을 띄우는 방안도 있었으나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심플한 핀 조명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배경이 밤이니까 특히 조명을 많이 써 달라고도 했고.’

이번 뮤직비디오에 메인으로 이용하는 조명은 두 가지. 네온사인과 핀 조명이었다.

네온사인은 컬러즈의 공식색인 시안, 마젠타, 옐로 색상으로 배치했고, 지금처럼 어두운 배경에 비치는 핀 조명으로는 흑백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렇게 모노크롬을 표현하는 요소를 앞으로도 하나씩 유지해갈 생각이었다.

이전엔 컨셉도 중구난방이고 특징으로 내세울 만한 요소가 없어서, 그룹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웠으니까.

“내가 최고다, 세상이 다 내 거다! 다 내 발밑 아래다~.”

“푸하. 세상이 다 내 거래.”

촬영 감독이 해랑에게 집중하며 마치 주문이라도 걸듯이 ‘내가 최고’ 느낌을 요구했다.

그 주문에 따라 해랑도 여유로워 보이면서도 조금은 불량해 보이기도 하는 표정을 지어냈다.

차 구경을 마치고 어느새 이쪽으로 다가온 멤버들은 그런 컨셉이 재밌었는지 촬영을 구경하며 웃었다.

그리고 화면 밖에서 멋대로 해랑에게 대사를 붙이기 시작했다.

“야, 돈 좀 있냐?”

“잘 간수해라.”

“흐, 너네 자꾸 웃기지 마.”

우형은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런 동생들을 말리면서도 자신은 마음껏 웃었다.

왜 저렇게 촬영 중인 해랑을 웃기려고 하는 건지.

‘믹스테이프 뮤비 찍을 때 우형이 멤버들 오겠다는 걸 말렸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였어…….’

시끄럽게 할 것 같아서 못 오게 했다는데, 그 걱정이 바로 여기서 재현되고 있었다.

잠시 조명의 위치를 조정하느라 틈이 났을 때 해랑은 멤버들에게 눈을 흘기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장난스레 짜증 냈지만 이전에 혼자 촬영하느라 낯가리며 머쓱하게 서 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훈훈한 장면이었다.

이후엔 세트에서 각자 개인 컷을 촬영한 후 또 단체 안무 촬영의 시간. 환청처럼 들리던 ‘다시 갈게요.’의 향연이었다.

곡 컨셉에 맞춰 한층 파워풀해진 안무는 물론 팀 미로와 재민의 합작이었다.

“나 오늘 돌아가면 잠 진짜 잘 잘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끌어 모아 체력을 쏟아낸 멤버들은 돌아가는 밴 안에서부터 곯아떨어졌다.

***

[20**.**.** COMING SOON #monochrome #IRI]

이번 앨범 예고는 이미지와 날짜만 먼저 공개했다.

함께 올린 사진은 검은 바탕 중앙에 달을 표현한 하얀 원이 있고, 그 위에 ‘IRI’라는 영문 타이틀 명만 적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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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인갑다ㅠㅠㅠㅠㅠㅠ

울 몬클이들 열일한다ㅠㅠㅠ♡♡

└날씨 꿉꿉해서 내내 기분 별로였는데 보자마자 함박웃음 ㅜㅋㅋㅋㅋ 몰랐는데 나 행복하네 세상이 아름답네

└이렇게 살아갈 이유를 또 하나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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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가 아니고 아이리 아냐?

└아이리가 뭔데

└내 친구 게임닉네임

└오 그런가?하고 솔깃해서 들어왔더니 이게 뭔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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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이리오너라

└업고놀자

└냉큼 이리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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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세 번째 앨범.

컬러즈는 이제 ‘앨범이란 게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체념 섞인 소망이 아니라 ‘다음 앨범 언제 나올까?’라는 기대감을 품을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앨범 예고가 뜨자 또다시 축제 분위기로 들떴다.

타이틀이 ‘이리’여서인지, 컬러즈 사이에선 앨범 발매를 기다리는 멘트가 금세 ‘이리 오너라’로 정착했다.

‘그 ‘이리’는 생각도 안 해 봤는데.’

나름 새로운 방향의 접근이었다.

아이돌 노래 제목은 한국어 제목과 영어 제목 의미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도 많던데 우리도 <이리(come here)> 같은 거로 해 볼 걸 그랬나.

그러나 영어로 뜻을 한정해 버리면 오히려 원래 의미인 늑대가 지워질 테니 이건 그냥 생각에만 그치기로 하고.

‘이리 오너라’ 하면서 놀던 컬러즈는 이젠 [진짜로 양반 컨셉인 거 아냐?] 하면서 창의적인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역시 창의력 하나는…….’

누가 봐도 말은 안 되는 예상이었지만, 말이 안 되더라도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미 요소인 듯했다.

양반 컨셉은 역시 안 하겠지만……. 뭐, 비슷하게 귀족가 도련님 같은 의상은 언젠가 입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아이디어 목록에 하나하나 키워드를 적립해가며 컬러즈의 반응을 보다 보니 재밌는 발상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A4용지 몇 장과 펜을 들고 연습실에 있던 재민을 찾아갔다.

“재민아. 너 전에 그림 그렸던 거 있잖아.”

“그림이요?”

“방학캠프 촬영할 때. 그림 퀴즈 했던 거.”

“아.”

뜬금없이 내가 그림 얘기를 꺼내자 눈만 끔뻑이던 재민.

내가 바로 예능 촬영 얘기를 꺼내자 그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SNS에 올리게 늑대 하나만 그려줄래?”

“그거야 쉽죠.”

재민은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흔쾌히 종이와 펜을 받아들었다.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종이를 올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마치 몇십 년간 그림 외길만 걸어온 화백처럼 펜 터치가 과감했다.

밑그림도, 구상도 필요 없는지 그의 손에선 바로 그림이 완성되어갔다. 이것도 어떤 의미로는 재능이 아닐까.

“역시 제 그림이 대충 보면 엉성해 보여도 디테일이 살아있죠?”

라고 말하면서 재민은 갈기 같은 것을 한 올 한 올 추가해 나갔다.

저번에 촬영할 땐 제작진 뒤에 있느라 그리는 과정은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손을 댈수록 그림이 더욱 괴상해지는 타입이었다.

“으응. 딱 내가 원하던 거야.”

애초에 잘 그린 그림을 원해서 재민을 찾은 게 아니었으니 잘된 일이었다.

과한 디테일이 추가될수록 늑대의 형태를 벗어나는 그림을 보며 나는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칭찬했다.

멤버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찰떡같이 정답을 알아맞힌 이후로 그림에 자부심이 생겼는지 재민 또한 뿌듯한 얼굴이었다.

재민이 완성한 입체파 작품은 디자인팀에서 깔끔하게 스캔, 정리 과정을 거쳐 모노크롬 공식 SNS 계정에 올라갔다.

[컨셉 스포 by재민 #monochrome #IRI]

아직 <아이돌부 방학캠프> 방영 전이었기에 컬러즈들은 재민의 그림 실력을 잘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올라온 그림에 컬러즈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ㅔ? 늑…대?]

[늑대:죽..여줘..]

[아무리봐도 우리집 다육이랑 똑같이 생겼어(사진)]

[재민아 이게뭐야? 공포 컨셉이야?ㅠ]

[이 그림엔 사실 엄청난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거꾸로 돌려보면 마치 나무와도 같은 형상을 띠고있는데요. 그런 것을 미루어보면 어 이게 뭐지?]

‘이리’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 자체로 늑대를 의미했기에 컬러즈는 다들 늑대 컨셉이라고 80%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민의 컨셉 스포 그림이 오히려 그런 컬러즈들에게 혼란만 가져다주었다.

‘푸핫. 공포 컨셉이래.’

나는 컬러즈가 재민의 그림에 남기는 코멘트를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준해의 모기 컨셉에 이어서 재민의 공포 컨셉. 멤버들이 아이디어 회의에서 말했던 것을 하나씩 복선 회수 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상 컨셉으로 아이디어라도 낼걸.’

물론 그건 컨셉이 아니라 실제로 이뤄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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