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04화 (104/430)

# 104화

음악대상이 내 목표였으니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지 당연히 알아보기는 했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그해에 음악인으로서 뛰어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사실뿐이었다.

‘하긴 대상 선정 기준이 명료하게 딱 정해져 있었으면 대상 학원이라도 있었겠지.’

심사위원도 매번 다르고, 당시의 시류도 반영해야 하는 등 복잡한 기준이 적용되니 정리해서 수상 기준을 밝히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래도 대상을 받은 장본인은 뭔가 드러나지 않은 정보나, 혹은 대상 수상자로서 알게 된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여 조심스레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방금까지 날씨 얘기나 하면서 가벼운 대화를 하던 차라, 라솔은 내 이러한 질문 또한 스몰토크로 받아들인 듯했다.

“음악대상이요? 음. 그냥 후보로 선정되고, 이름이 불리면 놀라면서 받는 거죠.”

“그, 그렇군요.”

시상식 얘기를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그녀 스타일의 조크인가…….

하긴 지금까지 이런 질문은 숱하게 받아오지 않았을까.

굳이 답변을 바라기보다는 대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꺼내는, 화제 전환 정도의 질문.

그녀에겐 그저 ‘밥은 드셨어요?’ 정도의 인사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예상외의 대답이 나오는 바람에 내가 오묘한 반응밖에 하지 못하자, 라솔은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다시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니, 그런 의미로 물어보신 게 아니라면. 으음. 사실 앨범 판매량으로 치면 저는 아이돌 친구들과는 비교도 안 되죠.”

신곡이 나오면 음원 차트 최상위권 한 자리는 반드시 차지하는 라솔.

아마 이건 겸손이 조금 섞였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연기대상이 올해의 배우를 뽑는 시상식이라면 음악대상은 올해의 음악인을 뽑는 시상식이었다.

그해에 가장 앨범을 많이 판 가수를 뽑아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말이다.

가수가 아니라 ‘음악인’인 이유는, 꼭 연예인인 ‘가수’로 범위를 한정하지는 않는다는 게 주최측인 QBC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주최가 방송국이다 보니 역대 수상자를 보면 가수의 비중이 높긴 했다.

“후보로 선정됐다고 들었을 땐 저도 놀랐어요. 어느새 올 한 해를 이렇게 달려왔구나 싶어서.”

그녀는 당시 일을 떠올리자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는지 금방 감회에 젖어 들어갔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이야기는 너무나도 의외의 내용이었다.

“사실 저, 은퇴하려고 했었거든요.”

“은퇴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놀라고 말았다. 대상과 은퇴. 너무 정반대의 단어였으니.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공백기가 좀 있었어요. 그동안 힘든 일 여러 개가 좀 겹쳤거든요. 당시 소속사랑도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었고, 결혼 생활도 별로 좋지 못했고. 결국 전부 다 안 좋게 끝나버렸고요.”

만나기 전에 나도 벼락치기 하듯이 라솔에 대해 알아보기는 했다.

일 년 정도 활동이 없었던 시기는 확인할 수 있었으나 그런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디선가 기사는 났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밖에 공공연히 얘기할 내용은 아닌 듯했다.

이미 지난 일이어서인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와 달리, 나는 차분하게 들을 수 없었다.

인생에 한두 번 있어도 힘들 일이 한꺼번에 몰려서 왔다니.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녀가 은퇴까지 고려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다 버리고 도망간 적이 있었으니.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사적인 얘기 꺼내게 되신 것 같아서…….”

“아뇨. 굳이 숨긴 것도 아니고.”

좋지 않은 기억을 꺼내게 한 것 같아서 사과하자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신감도 없고, 지쳐서 다 포기하려고 했는데. 운 좋게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남아있어서.”

라솔은 옆에 앉아 있는 자신의 매니저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만날 약속을 잡을 때 우리를 초대하기엔 회사가 작다고 해서 그녀의 소속사에 관해서도 조금 알아봤었다.

대상 정도 되는 가수니까 대형 소속사에 속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라솔을 포함해 아티스트 세 명만이 속해 있는 소규모 회사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마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회사를 꾸린 게 아닐까.

라솔이 매니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지만, 매니저가 라솔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동창이나 친구처럼 보일 정도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딱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반겨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응원에 보답하고 싶어서 활동을 거듭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와…….”

고난 뒤의 성공. 위인의 자서전에서 봐야 할 것 같은 이야기였다.

이 사람은 이겨낸 사람이구나…….

“이사님도 그런 적 있으셨어요?”

“네?”

“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요. 여러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은 표정에서부터 드러나더라고요. 제 이야기를 듣고 자기 모습처럼 이입한다고 해야 하나.”

순간 뜨끔했다.

이런 대단한 연예인도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일로 힘들기도 하구나 싶어서 확 이입된 건 사실이었다. 그게 표정에서 다 보였나 보다.

“대상을 받았다고 해서 거창하게 성공한 인생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실패한 부분도 그대로 남아있고. 그래도 제일 성공한 건, 그냥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요. 팬분들도 있지만…… 정말 한두 명이라도 곁에 있다는 게 대상보다 기뻤어요.”

그래도 역시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그녀와 나 사이에 선을 긋고 있었는데 그녀의 기준은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소박했다.

음악대상이라는 겉으로 보이는 목표 지점은 그녀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아마 그런 제 이야기를 좋게 봐 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대답이 좀 멀리 나갔죠? 원하시는 대답은 못 드린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제가 대상을 받을 줄은 몰랐으니.”

“아뇨. 제 질문이 조금 바보 같았네요…….”

정말 단순한 질문을 했다는 걸 자각하고 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난 무슨 대답을 바랐던 걸까. 몇 월엔 앨범을 몇 장 팔고 다음엔 몇 장 팔고 이런 거?

대상의 정확한 기준은 그녀도 모르는 일이니 원하는 대답은 얻지 못했지만, 대신 인생의 교훈을 배운 느낌이었다.

“……사실 이렇게 제안 드리기 전에 모노크롬에 관해서도 조금 알아봤거든요. 해랑 씨가 어떤 배경에서 그런 곡을 만들었나 해서.”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 여운을 곱씹고 있던 나는 갑자기 나온 모노크롬 이야기에 다시 그녀에게 집중했다.

“으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저랑…… 좀 비슷했던 것 같아서. 그래서 좀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녀는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지 주저되는지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까 해랑이 있을 땐 하지 않았던 얘기였다. 아마도…….

‘……옆에 이사인 내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비슷하다는 건, 회사와 문제가 있었다는 부분을 말하는 것 같으니까.

그녀는 트러블이 있었던 회사를 떠났지만 모노크롬은 아직도 뉴마에 남아 있는 상태.

그런데 지금은 왜 갑자기 내게 이런 얘기를 해 주는 걸까.

“제가 그랬던 것처럼 모노크롬도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네요.”

“네?”

그녀는 웃으며 테이블에 올려뒀던 한 종이를 다시 집어 들어 살짝 흔들어 보였다.

뽑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도 빳빳한 상태인 내 명함이었다.

“저도 겪어봐서 알죠. 그런 솔직한 곡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 여기도 보통은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보니 좀 알 것 같아요.”

“어, 그…… 으음…….”

부끄러워졌다. 마치 모노크롬의 재활이 내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최근엔 도와주고 있지만 그전까지 몇 년 동안 힘들게 한 것도 전부 나라고 말할 수도 없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데 다행히 날 도와주듯이 해랑과 송 피디가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해랑이 조금 빨개진 내 얼굴을 이상하게 쳐다본 듯도 했다.

***

라솔과의 미팅을 마치고 다 같이 회의실에서 나오는데, 밖에서 기웃대던 멤버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 멤버들 인사. 물어봤어야 했는데.’

다른 대화를 하느라 잊고 있었다. 지금 물어보기에는 이미 어정쩡하게 마주쳐 버렸고.

“저……희 멤버들인데 인사드리고 싶어 해서…….”

“아, 그럼요! 못 만나고 갔으면 섭섭할 뻔했네요.”

다행히 라솔은 모노크롬에게 호의적이었다.

조금 전 내게 해준 이야기는 꼭 해랑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모노크롬 전체에 관한 것이었으니.

라솔이 가볍게 눈인사하자 멤버들은 일렬로 서서 제대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모노크롬입니다!”

“반가워요. 사진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 다들 훤칠하네요.”

“저희도 TV로만 뵌 선배님인데 이렇게 직접 뵐 수 있을 줄은……. 혹시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사교성 만렙인 한이도 대선배님과 직접 마주하는 건 긴장되는지 한결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인 요청까지. 진짜로 팬인가 봐.

“그럼 저도 받아야겠는데?”

“저, 이거…….”

라솔이 대답하자 준해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뭔가 하고 보니까 증정용 앨범. 홍보용으로 돌리고 다닐 때처럼 이미 멤버들의 사인이 완료된 상태였다.

내가 미리 챙겼어야 했는데. 준해 나이스.

멤버들은 사인 앨범과 라솔의 사인을 교환할 수 있었다. 원하는 사인을 얻은 한이가 “예스!” 하며 좋아했다.

“기회가 되면 모노크롬이랑도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희야 얼마든지……!”

하고 환영하려던 한이는 잠시 눈동자를 돌려 나를 먼저 쳐다봤다.

모노크롬의 스케줄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 나한테 먼저 허락을 구하려는 것 같은데.

‘당연히 나도 환영이지.’

내가 미소 지으며 끄덕이자 그도 같이 미소 지었다.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달려가겠습니다.”

비장한 각오에 라솔도 웃어 보였다.

“그땐 제가 모노크롬 곡에 피처링 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이 말엔 모노크롬의 작곡가인 우형이 반응했다.

“그러면…… 정말 너무 영광입니다!”

항상 자신감이 떨어지는 우형이지만 이런 기회는 역시 놓치고 싶지 않은지 이번엔 빼지 않았다.

라솔과 멤버들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마중할 때처럼 로비로 나가 그녀를 다시 배웅했다.

그녀와의 작업은 이제 시작이었으니 아마 앞으로도 몇 번 만날 일이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라솔과의 만남은 내게 리프레시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막연하기만 했는데 목표에 대한 조금 더 확실한 이미지가 생겼고, 모노크롬의 활동도 뭔가 궤도에 오른 듯한 느낌.

앞으로의 길이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는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