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우와. 그쪽에서 직접 연락한 거예요?”
마치 연예인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뒤늦게 이라솔이란 이름에 반응하니 송 피디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역시 이사님도 아시죠? TV라고는 전혀 안 보시는 어르신이 아니고서야. 주변에서 이라솔 씨를 모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알죠. 음악대상.”
“음악대상이란 것 외에는…….”
“……음악대상.”
엔터사 이사로서 설마 그 정도로 연예계에 무지하지는 않기를 바란 듯했지만 미안하게도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내겐 그냥 인간 음악대상 같은 존재였으니까. 모노크롬이 가야 할 미래에 먼저 도착한 사람.
엄청 대단한 사람이란 건 알겠는데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몰랐다.
송 피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야기를 마저 이어나갔다.
“지금 당장 같이 작업하자는 건 아니고,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네요.”
“회사랑요? 아니면 해랑이랑요?”
“백해랑이랑요.”
뭔가 예술가끼리 통하는 대화를 나누려는 건가. 잘 모르겠지만 멋있다.
유명한 사람이 먼저 찾았다니까 역시 모노크롬도 연예인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당연한 소리긴 한데, 원래 친분이 있거나 사건으로 엮인 게 아닌 생판 초면인 연예인이 이렇게 먼저 모노크롬을 찾는 일은 처음인 것 같았으니까.
“그럼 해랑이한테 제가 말할게요. 저도 꼭 한번 뵙고 싶어서요.”
“잘 모르신다더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건 정말 내 개인적인 일이었다.
“그럴 일이 좀 있어요.”
그 이유를 알 리 없는 송 피디는 피처링 얘기를 전하고는 다시 프로듀스팀으로 돌아갔다.
내가 전년도 음악대상을 만나고 싶은 건 둘째 치고, 이건 해랑에게도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해랑이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섭외를 거절하고 나서 ‘실력이 안 되니 도망간 것’이라는 반응도 당연히 없지 않았다.
내가 신경 쓴다고 없어질 말도 아니었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는 했지만, 내 의지대로 억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린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부탁을 안 들어줬다고 성격 나쁘다고 욕먹는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괜히 찜찜하던 차였는데.
‘그래. 실력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면 되지.’
***
이라솔과의 만남은 뉴마에서 이뤄졌다.
이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은 우리였으니, 우리가 찾아가도 되고 이쪽으로 모셔도 되고 편하신 대로 맞추겠다고 답변을 보내 놨었다.
아무래도 대선배님이니 직접 찾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했는데, 회사가 작으니 뉴마로 찾아오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헉! 진짜요?”
이라솔이 직접 찾아온다는 소리에 모노크롬은 다들 놀라워했다. 가장 눈을 반짝인 것은 한이였다.
“저 학생 때부터 선배님 노래 진짜 많이 들었거든요. 진짜 존경하는 선배님인데. 실제로 찾아오신다니.”
“한 번도 뵌 적은 없어?”
“언제 한 번 행사 때였나. 멀리서 본 적은 있었는데 저희랑은 무대 시간도 차이가 있었고……. 저희는 구석에서 구경한 적만 있어서요.”
“음…….”
무대 시간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아마 이라솔은 거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모노크롬은 초반 들러리에 가까웠다는 얘기겠지.
‘갑자기 또 짠해지려고 하네…….’
나는 이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 근육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튼 모노크롬에겐 연예인의 연예인 같은 존재인 듯했다.
올해로 데뷔 16년 차를 맞은 이라솔은 감성이 돋보이는 발라더로 유명했다. 이것도 뒤늦게 알아본 정보.
다들 신기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역시 같은 보컬이어서인지 한이가 특히 큰 반응을 보였다.
“선배님 사인 받아도 되나?”
“부담스러워하시지 않을까……?”
“다 같이 인사드릴 수 있을지 슬쩍 물어볼게.”
좋아하는 가수를 보는 소년 팬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멤버들의 모습에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기대하는 모습을 보니 만남 장소를 뉴마로 잡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사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사인 요청은 역시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려나?’
얼마 전 이코드 멤버에게 사인 요청을 받아 당황하던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분위기 봐서 슬쩍 물어봐야지.
그리고 이라솔이 찾아오겠다고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나는 모노크롬 팀의 담당자로서 로비로 내려가 먼저 그녀를 맞이했다. 외부인은 로비에서 신분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녀는 외부인이라기보다는 우리 손님이니까.
매니저를 대동하고 시간에 맞춰 찾아온 그녀는 여유 있는 분위기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음악대상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가수라 그런가. 뭔가 빛이 나는 것 같아.’
벌써 16년 차 가수이니 나와는 나이 차가 조금 나겠지만 겉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품이라고 해야 하나, 인생의 관록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어른스러운 여성 연예인을 보고 ‘언니’라고 자주 부르곤 하는데 딱 그 심정. 인생 선배로 삼고 싶어지는 분위기?
멤버들에게 전해 들은 그녀가 정말 ‘연예인!’이란 느낌이어서, 나까지도 그렇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어머. 이렇게 젊으신 분이 이사님이시라니…….”
“이사치고는, 좀 어리긴 하죠?”
낙하산이라서 그렇습니다…….
팀 미로의 로아와 처음 만났을 때가 데자뷔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딱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그녀는 나와 인사하고는 눈으로만 건물을 살짝 둘러보았다.
사무실 한 층 정도를 사용하는 작은 회사라면 나처럼 젊은 사람이 임원 자리에 있다 해도 크게 놀랍지 않겠지만, 뉴마는 그보다는 좀 더 규모가 컸다.
중소 소속사이긴 해도 나름대로 건물이 있으니까.
내 능력으로 올라온 자리는 아니라 조금 머쓱해졌다. 그녀 앞에 선 내가 조금 애 같아지는 기분.
나도 좀 더 사회생활을 하면 저런 여유 있는 분위기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미리 비워놓은 회의실에 그녀와 함께 도착하고 곧이어 해랑도 송 피디와 함께 나타났다.
해랑의 표정이 원래 그렇긴 한데 지금은 조금 더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보였다. 낯가림을 최대한 숨기려는 표정.
‘……왜 이렇게 면접 분위기 같지?’
혹은 ‘선생님, 저희 애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재능이 있어 보이나요?’ 하고 학부모 상담을 하러 온 것 같기도 하고.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아는 사이였기에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해랑 씨의 믹스테이프를 들었거든요. 이번 그 일 때문에.”
“이번 일이라고 하시면…….”
“그, 래퍼…….”
“아. 계기가 어떻든 들어주셨다면 저희에겐 좋은 일이죠.”
라솔은 우리 앞에서 그 일을 언급하는 게 조심스러운지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랑의 믹스테이프 발매 후 이어졌던 그 디스 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별로 타격이 있던 일은 아니라 나는 괘념치 말라는 뜻으로 손을 가로저었다.
‘……이거 지오엘한테 디스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디스 건의 최대 수혜자는 도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노이즈마케팅의 효과를 만만치 않게 받고 있었다.
“첫인상은 좀 독특했어요. 그래서 곡을 쭉 한번 들었는데, 듣고 나니까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지 알 것 같더라고요. 조금 서툴기는 한데, 아니, 미안해요. 완성도를 말하는 건 아니라.”
“아닙니다.”
라솔은 해랑의 믹스테이프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다가, 혹여나 자신의 표현이 불쾌했을까 봐 마음에 걸렸는지 해랑을 보고 가볍게 사과했다.
그만큼 아티스트로서 해랑을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 나도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뭔가 말하고 싶다는 게 전해져서. 그래서 한번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조금, 통하는 감성이 있을 것 같아서요.”
역시 관록 있는 아티스트답게 믹스테이프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집어냈다.
그리고 피처링 제안을 한 건 단순히 노래의 랩 파트를 맡아달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의미가 담긴 곡을 만들고 싶어서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먼저 대화해 보고 싶다고 했던 것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의 중간 지점을 찾아가면 좋겠다는 의미였고.
“그런데 역시 아이돌 후배님들은 바쁘기도 하고…….”
“아니, 아, 그, 조금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걱정하실 만큼은 아닙니다.”
기회를 놓친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서 순간 아니라고, 한가하다는 대답이 튀어 나갈 뻔했다.
스케줄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우선 우리는 모노크롬의 앨범을 준비해야 했다.
게다가 너무 매달리는 태도를 보이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었으니 나는 급히 말을 바꿨다.
다행히 라솔은 내 얼버무림을 미소로 넘기고 이어서 말했다.
“당장 일자를 정해서 내고 싶다는 건 아니고요.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서로한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그려질 때 내고 싶어요.”
자신에게 맞추거나 우리한테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가 괜찮을 때 내고 싶다는 말. 그건 우리에게도 좋은 조건이었다.
여유롭게 진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니 나도 괜히 조급해지려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알아보니까 공개된 자작곡이 믹스테이프랑 예전에 했던 무대뿐이더라고요. 어떤 스타일인지 조금 더 알고 싶어서 직접 만나봤으면 했어요.”
무대라면 쇼케이스 팬미팅에서 선보였던 해랑의 개인 무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스타일……이라고 하시면?”
“음. 곡 스타일도 좋고, 그냥 대화하면서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알아가도 좋고요.”
그 대답에 나는 해랑을 잠깐 쳐다보았다. 방금도 낯가리면서 들어온 해랑. 아직도 조금 긴장한 상태로 보였다.
아마 그녀가 알고 싶다는 해랑의 스타일을 보여주려면 대화보다 노래가 빠르지 않을까.
곡을 공개하고 청자들과 소통한다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겨나서인지 믹스테이프를 낸 후에도 그는 틈틈이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곡을 직접 들어보는 게 빨라서, 해랑은 조금 대화를 나눠본 후에 송 피디와 함께 데모 파일을 가지러 잠시 나갔다.
손님만 두고 회사 사람들이 다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대로 남아 라솔, 그리고 그녀의 매니저와 함께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요즘 날씨가 꽤 덥다느니 하는 크게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머릿속 한구석에는 계속 같은 말이 맴돌았다.
‘음악대상. 부럽다. 물어봐도 되려나.’
옆에 그녀의 매니저도 있는데 이런 개인적인 용건으로 질문해도 될까.
대화하면서 보니까 두 사람은 비즈니스로 엮인 사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편한 사이로 보였다.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했고.
처음부터 그녀를 만나보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기에 나는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음악대상은 어떻게 받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