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102화 (102/430)

# 102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캐시카우는 소속 그룹 중 가장 돈을 잘 버는 그룹을 뜻했으니 뉴마의 상황과는 좀 다르긴 했다.

가장 수익이 잘 나는 그룹은 아이리스였고 모노크롬은 간 빼 먹힌 벼룩이었으니.

악동도 나름 아이인데. 뉴마는 아이의 코 묻은 돈을 빼앗아 회사를 운영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악동 컨셉이 처음엔 잘 먹혔기에 내가 그걸 계속 유지했던 것도, 어찌 보면 예산과 관련이 있었다.

판타지 컨셉이었다면 세트도 필요하고 CG도 필요했을 텐데, 악동 컨셉은 굳이 그런 비싼 것들 없이도 가능하긴 해서.

배경은 장소 섭외로 때울 수 있으니 비싼 세트 덜 지어도 되고, 의상도 굳이 따로 제작 안 해도 되는 캐주얼 스타일.

CG도 필요 없고 댄스 파트 위주면 큰 연출도 필요 없어서 뮤직비디오 제작비가 크게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절약한 만큼 그나마 곡에는 투자해서 처음엔 잘 먹혔던 게 아닐까…… 하는 가정.

만약 모노크롬이 몇 년 동안 악동이 아니라 판타지 컨셉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돈 들였는지 안 들였는지 티가 팍팍 나는 그런 컨셉을 저예산으로 말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역대급 저예산 그룹이라고 조롱을 받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더 최악인 경우를 생각해 봤자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니 이건 넘어가고.

아무튼 모노크롬이 저예산으로 굴러간 건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간 그래왔다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리스한테 투자했으면 모노크롬한테도 투자할 수 있어야죠.”

“아니, 아이리스는 그만큼 수익이 있지 않았습니까. 수익이 있어야 그만큼 투자를 할 텐데…….”

“반대죠. 투자를 해야 수익이 나죠.”

나야 모노크롬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은 아니라지만, 사장이 이러는 건 뉴마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태도는 아니었다.

아이리스도 데뷔 초엔 수익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보고 투자해서 결실을 본 거지. 그것도 모노크롬을 굴려 가면서.

그런데 사장이 모노크롬을 대하는 태도는 나무에 열매가 열리기도 전에 땔감이 필요하다고 가지를 다 잘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

“장기적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네요. 지금 당장 큰 수익이 안 들어온다는 건 알겠는데 그것도 회사 탓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작 잘해 줬으면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노크롬은 데뷔 이래로 투자한 것 이상의 돈을 벌긴 했다. 그만큼 굴렀으니.

이제 번 만큼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해도 회사에선 할 말이 없단 소리다.

‘모노크롬이 잘나가면 어쨌든 뉴마에도 좋은 거잖아.’

아무리 사장이 배우 매니지먼트에 치중하면서 다른 데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모노크롬이 뉴마 소속이고 내가 모노크롬을 담당하는 이사인데 뭐 어쩔 거야.

“그래도 회사라는 게 이익이 있어야 굴러가는 것인데……. 그, 뮤직비디오도 제작비가 많이 든다고 하시는데 얼마 전엔 수익도 포기하시고…….”

아. 이건 해랑의 믹스테이프를 무료 음원으로 낸 것 때문에 하는 소리인 듯하다.

뮤직비디오까지 찍어놓고 음원으로 수익을 안 내서.

라이브 클립 비슷하게 찍은 거라 뮤직비디오라고 하기엔 얼마 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까부터 계속 내 앞에서 모노크롬은 돈을 못 벌어온다는 소리만 하고 있다.

“뉴마가 지금 모노크롬한테 지원해 줄 수 있는 여력이 없을 정도로 사정이 안 좋단 말씀인가요?”

계속 모노크롬만 후려치길래 내가 똑같이 회사 자체를 건들자 사장은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에겐 대표 딸이 자신의 운영 능력을 평가하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아니라.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보자고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네. 예산안은 저도 충분히 생각 중이에요.”

이번 예산안은 좀 무리수를 던진 거라 그렇지 않아도 다시 손보려던 참이었다.

어차피 같은 생각인데 괜히 불편한 서론만 길게 들었잖아.

내내 언짢은 표정으로 듣던 내가 결론에는 협조적으로 나오자 사장은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리고, 큼. 배우 쪽 활동도 시키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회사에서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까까진 모노크롬을 애물단지 취급하더니 갑자기 지원해주겠단 소리를 꺼내고 있다.

“그, 회사에서도 웹드라마 몇 개에 제작 투자 예정인데, 괜찮으면 캐스팅 쪽으로도 밀어볼 수 있고……. 요새 아이돌은 연기 활동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아하.

‘아이돌 배우가 탐난 건가.’

이번에 한이의 드라마 출연은 상황이 여러모로 잘 맞아떨어져서 이례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 좋은 반응을 보니 조금 관심이 생겼나 보지.

제작사 측에서는 아이돌 배우에게 호의적인 편이라고 들었다. 팬층이 확보된 신인 배우라는 것이 어디 흔한가.

한이는 어차피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 만일 한이가 배우 활동을 한다면 뉴마와 수익 배분이 이루어지니 뉴마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대표는 OST도 이유 없이 쳐내던 사람이라 그런 대표한테는 이런 소리도 못 꺼냈을 터.

‘그런데 내가 한이에게 드라마 촬영을 시키니까 기회라고 생각한 거겠지.’

같은 건물에서 일하면서도 안 부딪힌다 싶더니, 정말 철저하게 배우 매니지먼트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경영팀이 날 꺼려서 위치상 그나마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장이 직접 나선 줄로만 알았는데, 굳이 직접 찾아온 이유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입을 다문 채로 크게 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배우 활동 쪽은 저도 고려는 해보고 있으니까 당사자랑 얘기해 볼게요.”

“커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산 쪽은 경영팀과 잘 대화 나누실 수 있도록 얘기해 두겠습니다.”

내가 한발 양보하니 상대도 일보 물러섰다.

사장은 이것으로 할 말은 다 했는지 거의 도망가듯이 자리를 피했다. 서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나는 억지 비즈니스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사실을 황급히 벗어나는 사장을 배웅했다.

그리고 사장의 뒷모습이 복도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얼굴을 싹 굳혔다.

“모노크롬 전담팀 말고, 회사에서 또 누가 찾아오면 웬만하면 메일로 하라고 해줘.”

“……네.”

최 비서도 밖에서 내가 사장과 신경전을 펼친 것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회사에 모노크롬도 나도 속해있는 이상, 원하는 걸 요구하려면 뭔가를 내주기도 해야 했다.

‘쉽지 않네.’

가끔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에 막힐 때마다 대표가 아니란 점이 아쉽기도 했다.

언제는 대표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다가, 언제는 또 아쉬워하다가. 너무 욕심이겠지.

‘어쩔 수 없이 수익을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 해.’

모노크롬의 컴백 프로젝트는 마치 새로 데뷔시키듯이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이리저리 급하게 준비하느라 굳이 앨범 판매에 열을 올리진 않았다.

물론 내 목표를 위해서도, 수익을 위해서도 인지도를 올리고 팬을 확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일단 수익만 생각하자면 당장 판매량을 올리는 방법이 있긴 했다.

‘팬사인회 같은…….’

컬러즈의 소비로 뉴마의 자금을 채운다는 게 조금 찝찝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모노크롬에 투자하는 게 컬러즈가 바라는 일일 테니까.

버는 족족 탕진할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앨범 일정이 잡히고, 유아이 레코드를 비롯한 음반사와 팬사인회 이벤트를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었다.

유아이 레코드에서 운영하는 유아이TV 채널은 여름이 다가와서인지 모노크롬으로 시작한 납량 컨텐츠가 잘 되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채널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안무 영상을 찍어준다고 했었는데.

다행히 잘 되어가는 덕분에 이번 앨범 활동 때 따로 안무 영상 컨텐츠를 촬영하기로 했다.

이렇게 모노크롬을 소개할 여러 루트가 확보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범위가 늘어나고 있는 건 컨텐츠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얘기를 나눠봤는데 회사에서도 허락해 주면 자기도 꼭 하고 싶다고 해서요.”

우형이 이사실로 찾아와 조심스레 꺼낸 얘기는 ‘엔피버에게 곡을 주고 싶다.’였다.

얼마 전 예능 촬영 날 계속 붙어 다니다가 친해졌는지 따로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하긴 작곡 멤버가 꼭 그룹 안에서만 활동해야 한다는 제약은 없지.’

모노크롬의 리더이기도 하지만 작곡가이기도 한 그에게는 분명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난 좋은 것 같은데. 네가 너무 바쁘지 않겠어?”

“일단 저희 준비, 활동 기간엔 안 겹치고요. 곡도 예전에 1차로 완성은 해 놨고 편곡 방향은 이미 머릿속에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요.”

“음. 그런데 원래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만들었던 거야?”

지금까지 들었던 우형의 자작곡은 전부 모노크롬이 부를 것을 상정하고 만든 곡이었기에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조금 의외였다.

지금도 우형은 모노크롬의 앨범에 들어갈 곡을 작업 중인데 이미 완성된 곡을 다른 그룹에 준다는 건 이유가 있는 걸까.

“지금 모노크롬은 부르지 못하는 곡이라, 엔피버한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엔피버는 부를 수 있는데 모노크롬이 부르지 못할 이유라면…….

‘……엔피버는 4명이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형이 이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이해가 됐다.

4인조의 위기에서 두 번이나 빠져나온 그룹의 리더였으니 아마 더 마음이 갔겠지.

촬영 날 만났던 엔피버 소속사의 매니지먼트 실장을 떠올렸다. 모노크롬에 제법 호의를 보인 사람이었으니 얘기해 보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다.

“알았어. 회사끼리도 공식적으로 얘기해 보고 알려줄게.”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뭐 있어. 네가 일한다는 건데.”

“꼭 이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우형은 말을 하다 말고 미소 지었다.

“……효도할게요.”

“뭐? 어, 으응.”

갑자기 뭔 소리지. 곡을 제공하는 대신 저작권료를 받아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소리인가.

전에 준해 가출 사건 때 내가 멤버들을 모아서 한 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뭐, 효도하면 좋지.’

내가 끄덕거리니 우형은 그 표정 그대로 인사하고 나갔다.

왜 나를 보고 다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나름의 목표가 있나 보지.

‘음. 그럼 이건 내가 연락 한번 해 보고 자세한 건 송 피디님한테 적당히 맡기면 되겠다.’

그렇게 정리하고 있는데 그 송 피디가 나를 먼저 찾아왔다.

“아, 송 피디님. 우형이한테 벌써 얘기 들으셨어요?”

“여우형이요?”

음? 바로 찾아오길래 그 얘기를 하러 온 줄 알았는데.

“여우형은 모르겠고, 백해랑한테 피처링 제안이 와서 말입니다.”

“피처링이요? 누군데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예전에 먼저 연락을 줬던 그 레이블 사장, 알픈이었다.

그런데 거절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벌써 또 연락을 줬을 것 같진 않고.

“이라솔 씨 말입니다. 저도 처음엔 연락받고 좀 놀랐네요.”

“이라솔?”

“이라솔 씨 모르십니까?”

그…… 사람 이름인 걸 보니까 일단 아이돌 그룹은 아닐 테고.

아이돌은 열심히 외워서 조금 알지만, 아이돌 외 가수 쪽은 아직도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잘 모르는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가.

어디서 들어봤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데,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음악대상!”

이라솔. 내가 이 세계에 와서 제일 처음 들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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