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이틀간의 촬영, 그리고 주말 이틀.
휴일이 늘어난 것은 아닌데 닷새 만에 회사로 출근하니 휴가라도 지내다 온 기분이었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월요일인데도 싱글벙글한 내 표정에 최 비서가 웃으며 말했다.
표정에 감정이 너무 드러나는 것 같지만 기분이 좋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더 좋았어.’
카메오 출연을 결정하며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기존 드라마 시청자층의 반응이었다. ‘주인공 이야기가 보고 싶은데 갑자기 얘는 뭐야?!’라고 생각할까 봐.
그런데 ‘로맨틱코미디’의 ‘코미디’에 치중한 연출, 그 옆에서 뜬금없이 전개되는 두 주인공의 감정신, 갑자기 흘러나오는 새 OST까지.
의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배치된 이 모든 요소가 시너지를 일으켜 한이의 뜬금없는 등장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융화될 수 있었다.
로코만의 코믹함이 좋아서 드라마를 챙겨 보던 시청자들은 이 카메오 신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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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누가 촬영목격짤 김형운 두명이라고 했던 거 저거였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뒤돌아보기 전에 나도 속음
└얼마 전에 여기 올라오지 않았나 카메오분이랑 닮았다고
└작가님 혹시 여기 보고 계세요? 제발 꽁냥씬 좀 더 주세요
└아 나도 그 글 봤는데 그게 저 사람임?ㅋㅋㅋ 사진으로는 모를이었는데 영상으로 보니까 느낌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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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사실 시트콤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 전작에서도 개그씬 좋아한다고는 생각했는데 이걸 이렇게ㅋㅋㅋㅋㅋ
└웃음소리만 넣으면 그냥 시트콤임ㅋㅋㅋㅋㅋㅋ
└진짜 저세상 연출ㅋㅋㅋㅋㅋㅋ 엄마랑 보다가 개터졌다
└둘만 로맨스 찍고 남들은 짜식은 눈으로 보는 게 너무 웃김ㅋㅋㅋㅋ(카메오:으;;)
└ㅋㅋㅋ 저 상황에서 안 터진게 진짜 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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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의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이 다들 한이를 좋게 봐 주는데 기분이 좋을 수밖에.
더군다나 방영일이 아이돌 단체 예능 촬영 중이었던 덕분에 다른 아이돌, 더 나아가 그 팬들까지 이 화제에 가세했다.
드라마 팬들은 내가 보는 드라마가 언급 많이 되니 좋고, 아이돌 팬들은 내 가수가 자신들처럼 평범하게 TV를 시청한다는 사실조차 공통점으로 느껴져서 기쁘고.
이 관심의 흐름을 타, 한이의 OST 발매 또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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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드라마의 신박한 ost 홍보
(이미지)
이번에 방영된 매일아침만나요 12화
여주가 남주 찾아와서 붙잡는데 다른 사람임
갑자기 잘생겼다느니 대화하기 시작;
사실 뜬금없이 나온 장면이라 보다가 좀 당황했음
엑스트라 아니고 새 캐릭터인가? 했는데
(영상)
??노래 부르면서 퇴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분뮤지컬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검색해보니까 진짜로 ost 부른 가수였음ㅋㅋㅋㅋㅋㅋㅋ
[(연예)모노크롬 유한이, ‘매일 아침 만나요’ OST 가창+카메오 출연]
(이미지)
마무리는 주변 상관 안 하고 지들끼리 세기의 로맨스 찍고 있는 우리 남여주짤로^^
(+인기글 올라갔네
다음달에 진유선 주연 영화도 개봉하니까 관심 부탁)
└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배우가 불렀다는거지?
└ㅇㅇ배우는 아니고 모노크롬 멤버 유한이
└와중에 노래는 또 좋아서 웃김
└아니 홍보를 이렇게 한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
└ost는 잔잔하게 뒷배경으로 까는거 아니냐고요 이건 그냥 입에 쑤셔넣는 수준ㅋㅋㅋ
└촬영클립 올라왔는데 배우들도 빵터졌더랔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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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선 짧게만 지나갔던 카메오 신.
음악방송이 끝나면 인터넷에 무대 영상이 따로 올라오듯이, 드라마도 방영된 후 채널에 따로 영상이 올라왔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 새가 없었다.
드라마 본편 클립 영상에, 촬영 비하인드 클립까지.
촬영 비하인드를 통해 배우 진유선과 한이의 대화 장면이 애드립이었다는 게 시청자들에게 알려졌다.
[유선 언니 애드립 치고 웃을 법도 한데 끝까지 몰입하는 것 봐ㅠㅠ 역시 갓유선]
‘갓유선’이라는 댓글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배우 김형운 닮은꼴이 아니라 모노크롬 한이로서 시청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재치 있는 애드립 덕분이었으니까.
드라마 본편 클립은 아예 이번에 있었던 일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아이돌들이 PICK한 화제의 그 장면! “연예인 닮으셨어요” 진유선 앞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
……이란 소개글이 붙은 이 클립은 여러 아이돌 팬덤까지 가세하여 조회 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저번에 녹음 현장에서 봤던 그 인기 클립 조회 수가 45만 회에서 그새 49만 회로 올라갔는데, 지금은 이 카메오 출연 신이 빠르게 추격 중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한이가 부른 OST <너로 시작하는 하루>의 음원 발매, 그리고 녹음 스케치 영상까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공중파 방송국의 시원시원한 일 처리. 엔터 업계 종사자로서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드라마에서 노래 자체는 웃긴 연출에 조금 묻히긴 했지만, 특히 괄목할 만한 성과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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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돌 오스트 레몬실시간차트 진입했다ㅠㅠㅠㅠㅠㅠ
끝자락이긴한데 ㅠㅠㅠㅠㅠ 아 진짜 진입 생각도 못했어서 안 믿겨ㅠㅠㅠㅠ
└오 ㅊㅊㅊ
└최근 오스트 발매면 그건가? 연예인 닮으셨어요ㅋㅋ노래 좋더라
└ㅇㅇ마즘ㅠㅠㅠㅠ알아봐줘서 고마워ㅠㅠ 진짜 차트 뜨는 거 보고 밥 먹다가 벌떡 일어남ㅠㅠ행복해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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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메이저한 플랫폼은 ‘레몬’.
커뮤니티에서 가수의 성적을 얘기할 때면 들고 오는 것이 바로 이 레몬의 차트 순위였다.
물론 차트 순위가 ‘좋은 노래’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우리처럼 팬덤과 대중을 잡아야 하는 아이돌 업계에선 이 차트에 입성하는 것이 또 하나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노크롬은 다른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차트에는 얼굴을 빼꼼 비치곤 했지만, 레몬의 이 철옹성 같은 관문은 아직 뚫지 못했다.
그리고 방영 다음 날 발매된 한이의 OST 음원 <너로 시작하는 하루>가 무려 이 레몬에서 차트인.
우리의 고인물 외딴섬 팬덤 컬러즈가 아무리 스트리밍을 하고 다운로드를 해도 뚫리지 않던 그 관문이 시청자를 비롯한 대중을 등에 업자 뚫린 것이다.
덕분에 컬러즈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간 노력해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지친 마음도 있었는데 이번에야 그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일 터였다.
물론 그룹 곡 차트 입성이란 과제는 아직 남아 있지만.
‘이게 시작이 아닐까.’
지금까지는 인지도가 부족해서 대중의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 많은 이들에게 평가받을 자리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아마 반응이 나쁘지 않을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다음 앨범 발매 시기를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방영에 맞춘 거고.
바로 며칠 전만 해도 잘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어서 혼자 천장에 대고 한숨을 쉬었는데,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린 건 아니라고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이러니까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지.’
앞으로 갈 길은 멀었지만 우리 메인 보컬의 진가가 많이 알려지면 모노크롬 유입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달달한 사랑 노래라 지금이 봄이었으면 조금 더 순위가 오를 수도 있었을 텐데.
컬러즈는 몇 년이나 기다려온 차트인을 나는 반년 만에 봐서 쉽게 생각하는 걸지도……. 그래도 지금은 희망 회로 돌리며 행복을 만끽하고 싶었다.
‘OST 가창 섭외 또 들어오는 거 아냐?’
한이의 대중적인 보컬 스타일이면 어디든 무난하게 잘 어울릴 테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그렇게 싱글벙글하여 설레발 치고 있는데, 찾아오란 섭외 연락은 안 찾아오고 사장이 또 찾아왔다.
***
“크흠. 사람도 충원됐는데 매니저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이사실로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번에 찾아왔을 때 내가 부재중이었던 일에 관해서였다.
물론 스케줄엔 매니저도 동행했지만 왜 굳이 나까지 스케줄에 따라나섰냐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왜 자기가 찾아왔을 때 없어서 번거롭게 두 번 찾아오게 만들었냐, 이 말이야?’
사원이었다면 ‘찾아오실 걸 전날 밤 꿈에서 미리 예지하고 자리에 딱 붙어 있다가 반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면서 굽신굽신했겠지만, 그새 임원 마인드에 적응됐는지 고개를 숙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수그리고 들어가면 모노크롬도 만만하게 볼 것 아닌가.
“그러게요. 충원해도 부족하더라고요. 사람이.”
사장은 전부터 내가 모노크롬 전담팀에 특혜를 주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태도였다. 팀을 개편하거나 연봉을 올리는 것 등.
은근슬쩍 내게 눈치 주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결국은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였다.
처음부터 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충원해도 부족하긴 했으니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아니, 기본적인 지원은 해야 일이 돌아갈 거 아니야.’
사직서를 제출할 때 윤희의 마음이 이랬겠지. 또 뒤늦게 그녀의 말에 절절히 공감했다.
회사에 대해 잘 모르던 당시에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었는데, 회사에 적응될수록 그 말의 진가를 더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어쩜 그리 촌철살인 같은 말을 잘해 줬는지.
사장은 ‘전에는 사람 없어도 잘 굴러갔는데 왜 굳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화는 많이 안 해 봤지만 전형적인 사장 마인드를 지닌 사람 같았으니까.
“예산안 말입니다만. 회사에서 이렇게 억 단위로 턱턱 투자한 적이 없었고…….”
내가 인력 얘기에 퉁명스럽게 나오자 사장은 더 얘기해봤자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참나. 대체 얼마나 깎으려고 하는 거야?!’
그렇겠지. 억 단위로 턱턱 투자한 적이 없겠지.
뮤직비디오 제작도 안 하고 디지털 싱글로 회사 인력만 돌려서 한 곡씩만 내고는 했으니 당연히 억 단위로 자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모노크롬에게는 말이다.
‘……내가 그랬지만!’
이런 죄책감은 혼자 있을 때 감내하기로 하고.
내 비정상적인 플레이로 인해 생겼던 일인데, 사장이 원래 그게 일반적이라는 듯이 말하니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말은 저렇게 하는데, 이 회사에서도 억 단위로 턱턱 투자하곤 했다.
“아이리스는 싱글을 내도 기본이 억 단위였는데요?”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하자 사장은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었다.
이사니까 당연히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정보지만 내가 이걸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야 알지. 기본 지출 단위가 억으로 넘어갈 땐 나도 큰맘 먹고 했으니.’
내가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전부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이건 기억한다.
사람의 씀씀이란 처음 큰 단위를 넘어가기가 어렵지, 한 번 넘어가면 금방 적응하여 그게 기본이 되곤 한다.
대표였던 내 씀씀이가 기본 억 단위로 커진 것은 분명 아이리스를 키우면서부터였다.
실제로 돈을 들인 티가 나야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 쉬워서인지 아이리스는 신인상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모노크롬은 그러질 못했잖아.’
플레이를 시작하면 기본으로 제공되는 금액이 있어서 데뷔 땐 나름대로 있는 돈을 알뜰살뜰 투자해서 성의 있게 제작했다.
그런데 플레이해 보니 생각보다 수익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내 투자는 점차 소심해졌다.
최저한의 안전망이 없으면 불안한 타입이라 여유자금을 만들어놓고 나서 투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모은 돈은 결국 모노크롬이 아니라 아이리스에게 들어갔다.
‘요즘 커뮤니티 보면 이런 걸 한 단어로 표현하던데.’
캐시카우……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