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떡볶이 요리 대결의 최종 우승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떡 없는 계란볶이였다.
맛은 평범했는데 옆에 폭탄이 있던 탓에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계란이 가장 인기가 많았던 탓이다.
이를 만든 유니온맥스 리더는 1등 소감으로 “제 요리를 돋보이게 해주신 우형 선배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멘트를 남겼다.
‘나름 이름은 남겼으니 성공한 건가.’
일단 1위 할 수 있으면 1위부터 노리자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던 나였지만, 우형의 요리도 방송을 생각하면 재밌었으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 괴식으로 1등을 노리는 건 불가능하기도 했고.
우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 만족스러웠는지 아쉽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모든 게임이 끝났기에 포인트 최종 결산의 시간이 찾아왔다.
“가장 적은 팀부터 발표해 볼까 하는데요. SPID! 4천 포인트입니다.”
“우리 0포인트였는데 4천 포인트는 언제 생겼어?”
주방에 있느라 4천 포인트의 출처를 알지 못한 SPID의 리더가 물었다.
모노크롬과 달리 포인트에 큰 미련이 없던 SPID. 게임에서 힘을 다 빼지 않아 체력이 남아돈 멤버들이 자유투 경기에서 분발한 덕에 얻은 포인트였다.
“이코드 7만 9천 포인트, 엔피버 9만 5천 포인트입니다.”
작가의 포인트 순위 발표는 계속 이어졌다.
‘아직 모노크롬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포인트 순위로 1등, 혹은 2등이라는 것.
두 팀은 기도하듯이 손을 모은 채로 작가의 이어지는 발표를 기다렸다.
“유니온맥스가 16만 천 포인트. 모노크롬이 18만 4천 포인트로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와!”
“아, 아쉽다.”
재민과 준해가 양손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유니온맥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무래도 멤버가 8명이다 보니 5명보단 기동력이 떨어진 것이 영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포인트 어디에 쓰는지는 안 알려주셨잖아요.”
“이걸로 순위 정하는 거 아니었어?!”
SPID 쪽에서 나온 질문에 유니온맥스가 반응했다.
‘이걸로 1위 정하는 게 아니었다고?’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포인트를 많이 얻어야 우등반이 되는 줄 알고 멤버들도 열심히 포인트를 모으고 다닌 건데.
“지금부터 알려드릴 건데요.”
제작진은 손글씨로 쓴 듯한 메뉴판을 하나 꺼냈다.
“오늘 숙소엔 각 그룹당 10인실과 침낭이 기본 제공됩니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나머지 옵션들은 이 메뉴판대로 포인트로 지불하시면 됩니다.”
오늘 남은 촬영 일정은 1일 차를 되돌아보는 토크 시간뿐. 그 이후엔 숙소에서 휴식.
그리고 그 숙소에 필요한 것들이 그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매트리스, 베개, 이불부터 숙면을 돕는 아로마 향초, 무드등, 클래식 CD 등등.
각 객실에 달린 에어컨은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방식인지 리모컨까지 메뉴에 포함되어 있었다.
‘근데 미러볼은 대체 어디에 필요한 건데……?’
그 사이엔 미러볼이나 축구공과 같이 휴식이 아닌 오락용 아이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메뉴판 중 가장 비싼 것은 에어컨 리모컨이 기본 제공되는 트윈베드 2인실. 한 객실당 5만 포인트.
침낭에서 자고 싶지 않다며 우는소리를 하는 SPID 옆, 그들보다 더 심각한 표정의 그룹이 있었다.
바로 열심히 포인트 1위를 다투던 모노크롬과 유니온맥스.
“오늘 다 쓰고 끝나는 거예요?”
“네.”
“우등반은요?”
“포인트와는 상관없습니다.”
우등반을 정하는 데 포인트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단 점을 알게 되자 포인트 하위권 그룹들이 신나게 반응했다. SPID는 제일 크게 웃는 바람에 해랑의 째림을 받았다.
나도 멤버들도 아무 의심 없이 포인트로 최종 순위를 정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가 예능 경력이 별로 없어서 순진하게 생각했던 걸까.
‘아니, 그렇다기에는 유니온맥스도 같이 속았잖아.’
우리가 순진한 게 아니라 제작진이 일부러 그렇게 믿도록 유도한 거겠지.
<최고의 팀메이트> 제작진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팀 아닌가. 그 허 찌르기 잘하는.
일부러 포인트 사용처를 맨 마지막에 알려준 것을 보면 이런 반응을 노렸을 가능성이 컸다.
마지막 토크 타임을 위해 제작진이 현장을 정리하는 동안 각 그룹은 포인트를 어떻게 소진해야 할지 회의에 나섰다.
“우리 너무 많이 벌었다…….”
모노크롬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5명이니 2인실이 3개면 끝. 그러고도 3만 포인트가 넘게 남았다.
“미러볼 궁금한데.”
“자는데 반짝거려서 뭐 하게.”
떡볶이를 먹고 눈물을 흘리느라 메이크업을 다시 수정받던 재민.
재민이 미러볼에 관심을 보이자 잠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랑이 단번에 쳐냈다.
‘예능용으로는 재미있겠지만.’
숙소 내 객실에선 셀프캠 촬영만 있을 뿐, 카메라는 따로 달리지 않을 예정이었다.
잠깐의 여흥이겠지만 어차피 포인트가 남아도니 지불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다른 분량을 뽑아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데 반대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SPID 멤버 몇이 모노크롬 옆으로 다가왔다.
“포인트 좀 남으면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유니온맥스도 모노크롬과 포인트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그쪽은 멤버가 8명이었으니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포인트가 남아도는 모노크롬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게임 다 끝났는데 뭐로 갚을 건데?”
“사랑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형이라고 부르라느니 유치한 조건을 달며 투닥거리는 모노크롬과 SPID를 두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팀별로 모여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그 옆에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한 팀이 더 있었다.
“뭔가 문제 있어요?”
모노크롬을 담당했던 작가가 진행 대본에 뭔가를 적었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기에 다가가서 물었다.
더 뒤쪽에선 손영식 PD가 다른 제작진들과 회의 중이었다.
“으음. 문제는 아니고요. 경쟁 포맷으로 짰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은가 해서 조금 얘기를 나눴어요.”
각 팀이 똘똘 뭉쳐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청춘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다는 듯.
<최고의 팀메이트>에선 다들 팀의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아마 그런 모습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처음 제작하는 아이돌 단체 예능.
아이돌이란 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특수한 집단이라 예상대로 통제가 안 된다는 게 제작진이 놓친 부분이었다.
‘우리도 좀 책임이 있나.’
작가가 말한 ‘경쟁’이란 단어에 내심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다른 쪽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동맹에 흑기사에 포인트 대여까지.
서로서로 도와주다 보니 여러모로 제작진의 예상과는 다른 그림이었을 것이다.
‘흐음…….’
나는 현장을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포인트가 남아도는 모노크롬과 포인트가 부족한 네 팀……. 뭔가 할 만한 게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이런 거 가능할까요?”
***
“여러분, 포인트 모자라시죠?”
“네에…….”
원래 1일 차의 마지막 촬영으로는 수련회의 꽃, 캠프파이어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뭔가 거창한 일을 벌이려는 건 아니고 그냥 편안하게 쉬는 그림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캠프파이어에 약간의 변형이 생겼다.
“긴급 코너가 추가되었는데요.”
아까 분명 마지막 게임이라고 해놓고 자유투 경기가 추가되더니 또 뭔가가 추가되고.
그러나 포인트 얘기로 서두를 꺼낸다는 것은 포인트를 얻을 새 수단이 있다는 뜻.
갑작스러운 안내였지만 다들 집중하여 이어지는 작가의 말을 기다렸다.
“모노크롬 배 장기자랑입니다!”
“장기자랑……?”
“모노크롬이 2인실 두 개에 매트리스를 추가해서 총 11만 포인트를 사용하셨는데요. 남은 7만 4천 포인트를 건 장기자랑 대회입니다.”
캠프파이어 말고도 수련회에선 꼭 하지 않던가. 장기자랑 대회 같은 거.
내가 아이디어를 내자 제작진은 예상하던 경쟁 포맷과는 좀 달랐지만 경합하는 모습도 좋겠다고 판단해 도입해 주었다.
현장을 따로 세팅할 것도 없이 마이크와 오디오만 따로 준비하면 된다는 편의성도 한몫했고.
‘왠지 다들 아까보다 더 의욕적인 것 같아.’
포인트를 뭘 위해 모으는지 정확히 몰랐기에 초장부터 게임보다는 방송, 예능에 집중한 그룹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포인트를 어디에 사용하는지도 알았고 목적이 확실했다.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잘 때만큼은 편하게 쉬고 싶어! 그러려면 포인트가 필요해!
‘모노크롬 배’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모노크롬은 심사위원단으로 나섰다. 방금 요리 대회에 쓰인 테이블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조촐한 심사위원석이었지만.
그리고 호기롭게 나선 장기자랑 첫 번째 참가자는…….
“저는 랩 하겠습니다.”
“와우.”
“힙합인!”
이코드의 도한이었다.
‘쟤 무슨 랩에 한이라도 품었나.’
어디서 들었는지 몇몇 출연진이 그를 ‘힙합인’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으로 피스 사인을 그려 호응했다.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도한의 별명이었는데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퍼진 모양.
해랑이 엮였던 게 큰 이유였겠지만 어쨌든 전체 아이돌 래퍼를 대변하면서 나선 게 그였으니 모두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메인 보컬이면서 별명이 ‘힙합인’이라니,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그가 유명 래퍼의 곡을 능숙하게 커버하자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스태프들도 같이 손을 들어 보이며 호응하는 가운데, 손 PD가 흐뭇하게 이 장면을 쳐다보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이런 그림을 노리고 섭외한 건 아니겠지.’
커뮤니티 화제성을 시청률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처음 도한네 그룹인 이코드도 같이 촬영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내심 그런 생각은 들었는데. 저 웃음을 보니 왠지 내 예상이 맞을 것 같았다.
‘뭐, 우리도 나쁠 것 없었고 다들 좋아하니까 잘된 일이지.’
도한이 무대를 끝마치고 제작진과 심사위원인 모노크롬, 관객석에 있는 출연진들에게 폴더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엔피버의 엔제이라는 멤버.
“너희 아까 우리 배신했잖아!”
“배신이라뇨. 동맹이 마침 그때 끝났을 뿐.”
그가 중앙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자 준해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이어서 나오는 “형.”이라는 소리에 준해는 금방 진정되었다.
‘와. 컬러즈 공식 23개월 준해가 형이라니.’
역시 아이돌의 평균 연령은 내 생각보다 낮았다. 고등학생 때 데뷔한 준해조차 형 소리를 들을 정도이니.
준해는 특히 팀의 막내여서 그런지 형 소리에 약한 듯했다.
아까 SPID랑 투닥거리던 것도 그렇고, 남자애들에게 ‘형’ 호칭이란 대체 뭘까.
“저는 저희 어머니 애창곡을 부르겠습니다.”
“오오.”
“효자다. 효자.”
그의 선곡은 트로트.
다들 ‘어머니’란 소리에 감동했다는 얼굴로 응원하고, 모노크롬도 더는 그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까 떡볶이에 할머니 사연 판 것도 쟤네 리더 아니었어?’
그룹 특색 같은 건가. 혹평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면 제법 영리한 방법이긴 했다.
각양각색의 아이돌이 모인 만큼 다양한 무대가 펼쳐지고, 현장에 있는 모두는 포인트가 걸린 대회라는 것도 잊고 신나게 즐겼다.
“자. 그럼 장기자랑 순위는…….”
모든 장기자랑 순서가 끝나고, 해랑이 제작진과 미리 준비한 멘트를 읽었다.
“……제작진분들의 투표로 정하겠습니다.”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거 아니에요?!”
“나 그래서 심사위원석에 열심히 아부 떨었는데!”
모노크롬한테 잘 보이려고 애썼는데 순위는 결국 스태프들이 정한다는 소리에 다들 벌떡 일어났다.
이게 바로 <최고의 팀메이트> 제작진들 특기인 뒤통수 반전 전개.
그런데 어쩌겠는가. 아이돌이 같은 아이돌을 평가한다는 게 방송상 쉽지 않은 것을.
‘마지막까지 알차게 예능이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1일 차의 촬영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