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96화 (96/430)

# 96화

“그렇게 첫째 돼지의 지푸라기 집은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저런.”

“세상에.”

스태프 옆에 앉은 해랑이 동화책을 읽자 나머지 모노크롬 멤버들 뒤에 서 있던 엔피버 멤버들이 열심히 리액션을 하며 몰입했다.

예능이란 게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등의 편집이 들어가야 발랄하고 신나지, 정작 촬영 현장은 뭔가 빠진 듯이 조용하고 부족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두 팀이 함께 다니니 오디오가 잘 비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모노크롬이 게임을 할 때면 엔피버가 관객처럼 리액션을 하고, 엔피버가 게임을 하면 모노크롬이 리액션을 하고.

나름대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전략적 동맹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왜 동화책을 읽고 있냐면.

“아기 돼지 삼 형제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여기서 질문입니다. 둘째 돼지가 집을 지으면서 사용한 나무 종류 두 가지는?”

“어…… 도토리나무!”

“아, 참나무!”

“그거 두 개 같은 거야!”

“함정이었다고?”

……이런 스피드 퀴즈 게임이었기 때문에.

엔피버가 먼저 진행했다가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실패한 게임이었는데 모노크롬과 다시 설욕하러 찾아온 것이다.

이번엔 동맹 관계인 해랑이 대신 구연자로 나선 덕분에 엔피버는 4명이 다시 도전하여 전보다 나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모노크롬은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해 주고 포인트를 나눠 받는 동시에 어떤 게임인지 먼저 파악할 수도 있는 것이 이점이었다.

“형 기억나는 거 없어?”

“미안. 나 잠깐 졸았어.”

“이런. 패스!”

다만 메리트가 생긴 것과 게임을 잘하는 것은 달랐다.

재민은 앞서 엔피버의 순서까지 동화 두 편을 연달아 듣자 영 집중을 하지 못했다.

‘하긴 어린애들 재울 때 동화책 읽어주잖아.’

집중력이 문제라기보단, 해랑의 미성이 범인이었다. 해랑이 나긋나긋한 저음으로 동화책을 읽으니 저절로 목소리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를 구연자로 고른 것은 패착이었다. 꼭 ASMR을 듣는 기분이라 내용은 뒷전이었으니.

듣기 좋은 목소리에 제작진까지 온화해진 분위기 속에서 멤버들만 마음이 급했다.

“막내 돼지가 첫째 돼지의 집에 찾아갔을 때 노크를 몇 번 했을까요?”

“아. 아까 뭐라고 했더라. 똑. 똑. 똑……. 세 번!”

“정답입니다.”

“오. 똑똑했어.”

제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문제를 맞혀야 하는 게임.

디테일을 기억하며 들어야 한다는 엔피버의 충고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너네 왜 포인트 털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아.”

“그쵸?”

그래도 게임 내용을 모르고 임하는 것과 알고 임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동맹이라는 무기를 얻은 모노크롬과 엔피버는 차근차근 게임을 수행해 나갔다.

***

엔피버 다음으로 포인트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룹이 있었다. 바로 SPID.

엔피버가 초장부터 의욕 넘치게 게임을 하다가 포인트를 소진했다면 SPID는 설렁설렁하느라 포인트 소진이 느렸다.

그런데도 벌써 바닥이 드러난 이유는 이들의 방송 스타일 때문이었다.

“야. 우리 상쾌하게 커피 한 잔씩 때리고 시작하자.”

성실한 그룹이 있다면 자유로운 분위기의 그룹도 있었다. 그리고 SPID는 영락없는 후자에 속했다.

실제 현금 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는 포인트를 환전해서 쓰라는 작가의 설명이 있었던 참.

SPID는 기본 제공되는 포인트를 받자마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그 이후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SPID는 엔피버와 마찬가지로 입수의 위험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부터 요구 사항은 포인트 벌어 온 사람만 말할 수 있다.”

“어! 저기 모노크롬 지나간다.”

“엔피버도 있는데?”

오프닝 시간 내내 승부를 펼치다 겨우 연장자 라인 중 한 명인 이문영이 반장 자리를 쟁취했건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산만하게 자기 할 말만 하던 SPID 멤버들은 근처를 지나가는 모노크롬을 목격했다.

어째서인지 엔피버와 함께 다니고 있고, 분위기가 좋은 것을 봐선 자신들처럼 포인트가 바닥나지 않은 듯했다.

“모노크롬한테 포인트 빌려달라고 할까?”

SPID와 모노크롬은 데뷔 동기였기에 해랑을 제외하더라도 멤버들끼리 전부 아는 사이였다.

멤버들은 모노크롬의 리더인 우형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렸다. 일단 불쌍한 척하면 빌려줄 것 같은 타입이었다.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

포인트 없이는 벌칙과도 같은 힘든 게임만 연달아서 해야 할지도 모르는 한시가 급한 상황.

문영이 오늘의 반장답게 먼저 나서서 모노크롬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 팀 반장 백해랑이라서 형 마음대로는 못 빌려준대.”

그리고 돌아온 그의 손엔 어쩐지 빵이 들려있었다.

“백해랑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지, 왜 그냥 와?”

“안 빌려줄 것 같아서…….”

촬영 중이라 자세히 말은 안 했지만 SPID 멤버들과 해랑은 한때 함께 지냈던 사이.

아닌 건 아닌 해랑의 칼 같은 성격을 모두가 알았기에 아무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야. 내가 다녀올게.”

이번엔 해랑의 절친을 자부하는 하범이 나섰다.

모노크롬 담당 작가까지 합세한 대화가 이어지고 하범이 가져온 결론은 “이자까지 쳐서 갚는다면 빌려주겠다.”였다.

이번 촬영에서 이미 경쟁은 포기하고 재미 위주로 나가고 있던 SPID는 별 고민 없이 빌리기를 결정했다.

그런 SPID가 마침 다음으로 도착한 게임 지점은 가위바위보였고, 그들은 운으로 한탕 하려다가 빌린 포인트마저 탕진하고 말았다.

준해처럼 말리는 멤버가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문제점이었다.

그렇게 결국 입수 지점까지 몰리게 된 SPID는 입수를 마친 유니온맥스와 마주쳤다.

“그쪽 팀도 다 탕진했어요?”

“저희는 도장 깨기 중인데요!”

유니온맥스는 포인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온 게임을 정복 중이었다.

그 말을 들은 SPID는 기함했다.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끌려왔는데 이들은 자발적으로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니.

“우리는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어차피 안 되겠다.”

“모노크롬한테 또 빌리면 안 되나?”

“갚을 능력이 있어야 빌리지.”

“유니온맥스한테 빌려서 모노크롬한테 갚자.”

돌려막기까지 손을 대려는 위험한 발상.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던 유니온맥스는 모노크롬의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모노크롬 포인트 많이 벌었대요?!”

“아까 보니까 다른 팀까지 거느리고 다니던데요.”

SPID 멤버가 아무렇게나 꺼낸 말은 과장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손잡고 게임 빠르게 파악하고 다녔나 봐.”

“그런 방법이……!”

대회가 아니라 예능이어서 그렇게 온 힘을 바쳐서 촬영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유니온맥스도 모노크롬과 마찬가지로 우등반을 노리고 있었다.

인원수도 가장 많고 나름대로 성적을 내고 있었기에 안심했는데, 안 보이는 곳에 복병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강력한 라이벌이 있음을 알게 된 유니온맥스는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우리도 어디랑 동맹해야 하는 거 아니야?”

“SPID랑?”

“으음…….”

방금 마주친 SPID는 아무리 봐도 게임에는 의욕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들의 눈에 마침 들어온 것은 지나가던 이코드.

출연 그룹 중 가장 연차가 낮은 이코드는 ‘다른 팀 카메라에도 많이 비치자.’를 목표로 열심히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유니온맥스도 최근 있었던 도한의 디스 사건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두 팀이 보통 사이는 아닌 듯하여 유니온맥스는 조심스럽게 이코드에게 접근했다.

“혹시 모노크롬이랑 동맹인 거 아니면 저희랑 동맹 맺을래요?”

인기도로 따지자면 SPID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유니온맥스였으니, 이코드로서는 이런 식으로 자주 엮여서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환영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동맹을 맺은 두 팀은 게임 정보를 교환하고, 이코드는 모노크롬 동세 파악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은 채로 유니온맥스와 다시 갈라졌다.

“모노크롬 선배님들, 1등 해야 되는데?”

“한우리. 너 지금 컬러즈 아니라 이코드야.”

캐나다 출신인 한우리는 한국에 미처 적응을 다 하기 전에 뒤늦게 회사에 들어온 김도한과 붙어 다니더니 어느새 모노크롬에 푹 빠져 버린 상태.

그러나 이들의 최종 목표는 어디까지나 분량 잡기였다.

“그럼 우리 양쪽 스파이 하자.”

이미 컬러즈의 정체성이 커져 버린 한우리도 납득시킨 이코드는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모노크롬의 동맹을 시작으로 전체적인 게임의 판국이 바뀌어갔다.

***

“이사님…….”

“……어쩌다 또 그렇게 젖었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내내 움직였으니 중간중간 휴식이 필요했다.

정오를 넘기고도 몇 시간이 지난 시각. 제작진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촬영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멤버들이 대기 중이던 곳 한구석이 어수선하다 싶더니 우형이 또 젖은 채로 나타났다.

뒤에서 준해가 웃긴다는 얼굴로 수건을 들고 있는 것을 봐선 멤버들이 또 우형을 희생시킨 모양.

해랑이 멤버들을 굴리겠다고 했던 공약을 잘 실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코드 애들이 갑자기 몰려와서요…….”

이코드는 게임을 제대로 하고는 있는 건지 아주 빨빨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때때로 모노크롬을 만나면 신나게 응원을 하다 가곤 했다.

여기저기 다 얼굴을 비치고 다니는 것 같더니 어디서 우형이 엔피버 멤버 대신 입수했다는 소문을 들은 듯했다.

우형은 어째서인지 공식 흑기사로 절찬 활동 중이었고. 전부 자의가 아니고 타의인 것 같지만.

“또 빠질 거면 그냥 그 상태로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 그렇죠.”

“아니, 농담이었어! 돌아와!”

혼자만 비라도 맞은 듯이 푹 젖어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서 농담했던 건데 터덜터덜 돌아가려 하기에 서둘러 불러 세웠다.

계속 움직여야 하는데 캐리어를 끌고 내내 멤버들을 쫓아다닐 순 없었기에, 근처 주차장 회사 차량에서 대기하던 스타일리스트에게 찾아가 옷을 챙겼다.

“유한이 옷으로 주세요.”

“이번엔 한이가 던졌어?”

“네. 하아……. 또 빠지면 재미있겠다고.”

리더 외에 반장이라는 지위가 생기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리더의 지위가 격하했다.

우형의 의상을 교체한 후 바로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남은 시간이…… 한 시간 정도? 한두 곳은 더 돌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지막 스퍼트 가자!”

“와아!”

오후 5시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그 이후엔 숙소에서 후반부 촬영을 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

해랑이 남은 시간을 가늠하며 말하자 나머지 멤버들과 엔피버도 의욕을 불태웠다.

제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각 그룹이 서서히 중심 지점인 숙소 근처로 모여든 탓에 뒤로 갈수록 마주치는 빈도가 높았다.

그리고 5시가 가까워지자.

“포인트 갚으러 왔는데요!”

이전에도 본 얼굴인 SPID의 윤규가 모노크롬을 찾아왔다.

“왜 그렇게 기분 좋아 보여? 포인트 많이 벌었어?”

“아니. 우리 7명 중에서 6명만 입수하면 다 갚을 수 있길래 가위바위보 해서 한 명만 살아남기로 했거든. 내가 이김.”

“보너스 포인트 아깝다.”

“그럼 나 대신 너 입수할래?”

“아니.”

SPID는 이미 포인트를 더 벌기는 포기한 모양이었다.

재민은 전원 입수 포인트를 아까워했지만 본인이 나설 것은 아니었기에 금방 발을 뺐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해랑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날 본다는 건…….’

아마 의상이 신경 쓰여서겠지.

눈빛이 통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숙달된 멤버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아, 진짜 좀!”

“와~. 우리 보너스 포인트다.”

“흑기사 멋있어요!”

우형이 물에 던져지자 옆에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던 SPID 멤버들이 환호하며 신나게 구경했다.

그리고 곧바로 제한 시간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5시 정각이 되었습니다. 숙소 앞에 멤버 전원이 도착하는 순서대로 추가 포인트입니다!”

“야! 의상은 숙소 가서 갈아입자!”

세 팀이 모여 있는 현장 속 한 작가가 새 지령을 알렸다.

승리하겠다는 의지는 없었지만 쉬엄쉬엄한 덕분에 체력이 남아도는 SPID가 먼저 달려나가고.

“선배님들! 동맹은 여기서 끝입니다!”

“뭐? 야!”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엔피버의 탈주.

두 팀이 순식간에 사라진 현장에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린 우형과 모노크롬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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