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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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목격뜬거 유니온맥스랑 스피드랑 또 누구 있음?
└헐 두 그룹 같이 나온대? 개쩌네
└엔피버 목격 뜸ㅇ
└모노크롬, 이코드
└ㅋㅋ;유니온이랑 스핃 빼고 맨 듣보들만 모아놨네. 1군 젤 먼저 섭외하느라 제작비 다 떨어졌나?
└니 정신머리는 3군
└냅둬 쟤네는 섭외 못 됐나봐ㅎ
└?내가 유니온이나 스핃 팬이면 어쩔라고.ㅋ
└애쨀래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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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모노크롬!”
촬영 준비 중에 뒤에서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노크롬을 부르기에 지나가다 알아본 일반인인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김도한!’
지금 커뮤니티에서 ‘진정한 힙합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전 뉴마 연습생!
모노크롬 그룹명을 말한 것은 그가 데리고 온 듯 보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메이크업이나 헤어, 의상을 봐선 아마 아이돌. 도한과 같은 그룹 멤버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안녕하세여.”
도한이 모노크롬에게 다가가 그 특유의 폴더 인사를 하자 뒤의 멤버도 따라서 허리를 숙였다.
아까 모노크롬을 영어 발음으로 부르던 것도 그렇고 지금 이 어색한 한국어 발음도 그렇고.
‘외국에서 살다 온 멤버인가?’
다른 아이돌 그룹엔 종종 이렇게 한국어보다 외국어가 더 익숙한 멤버가 있고는 했다.
모노크롬이야 다들 한국 태생에 한국에서 모든 교육 과정을 거쳐서 가장 명문대인 준해가 얼렁뚱땅 영어 담당을 맡아 버렸지. 원어민 수준에야 못 미치지만.
“내가 그랬잖아. 선배님들이랑 아는 사이라고.”
“어. 이제 믿어.”
모노크롬도 긴 시간 뉴마 연습생이었던 도한에게 아는 체를 하며 인사했다.
그러자 도한은 어딘가 뿌듯한 얼굴로 말하고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대체 무슨 대화야.’
왜 바로 앞까지 찾아와서 아는 사이라고 자랑하는 걸까.
후배로서 인사하러 왔다기에는 보통 후배들이 선배를 보는 눈 같지가 않았다.
방송국에서 모노크롬의 후배 그룹은 여럿 봐왔지만 저건 흡사…….
‘컬러즈가 멤버들을 보는 눈빛에 가까운 것 같은데.’
동경의 눈빛을 넘어선 팬의 눈빛.
도한이야 원래 모노크롬과 아는 사이였다지만 그가 데려온 다른 멤버가 특히 그랬다.
그리고 내 통찰이 틀리지 않았는지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인해 주시면 안 돼여?”
“으응……?”
후배가 인사를 하러 오면 우형이 리더로서 자상한 얼굴로 먼저 나서곤 했다.
그러나 이런 패턴은 처음이었는지 미소에 당황이 서린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최고의 아이돌.”
사인을 요청했던 그가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도한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고 우형은 더 모르겠단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옆에서 보는 나도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기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맨날 선배님들 영업했어요. 저 공식 컬러즈도 가입했거든요. 전에 쇼케이스도 응모했는데 떨어지더라구요. 그리고 선배님 전엔 죄송했습니다.”
“어…….”
음? 컬러즈? 쇼케이스?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도한은 해랑에게 저번 일을 또 사과했다.
전에도 그랬는데 도한은 한 번에 말하는 내용이 많아서 ‘어? 어어? 으응.’ 하고 지나가게 되는 느낌.
해랑도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 속도에 따라가지 못했는지 얼떨떨한 반응밖에 남기지 못했다.
“이번에 제가 디스 껴들어서 곤란하셨던 건 아니죠?”
그렇지. 지금 그와 가장 먼저 할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화제에 멈춰버린 해랑 대신 준해가 대답했다.
“완전 속 시원했는데. 랩…… 장난 아니더라.”
“별말씀을요.”
준해는 말하다가 그 비속어 발음의 가사가 떠올랐는지 ‘장난 아니더라’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칭찬했다.
처음에 디스 당했을 때 씩씩거리더니 감명 깊게 들었나 보구나.
촬영을 준비하는 스태프들 옆에서 모노크롬과 이코드 멤버 두 명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데, 칭찬받아 콧등을 문지르던 도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이번엔 방향을 틀어 나한테 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더니 다른 멤버에게 나를 소개했다.
“은인이시다.”
“은인이 머야?”
“고마운 사람.”
옆 멤버는 은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지 뜻을 물어보고 도한이 풀어서 설명했다.
저 멤버의 질문이 곧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고마운 사람이란 뜻이야 잘 알지만, 갑자기 나한테 은인이라니 뭔 소리야?
“내가……?”
“그때 회사에서요. 이 길이 아닌가 싶었는데 잘할 거라고 말씀해 주셔서 자신감 많이 얻었어요. 소속사도 이쪽으로 알아봐 주신 덕분에 데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그, 어어…….”
회사는 최 비서가 알아봐 온 곳 중에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데로 골랐을 뿐이었는데.
연습생으로 장기간 방치시킨 플레이어로서 미안해서, 그리고 뉴마에서 그만큼 버틴 것을 보면 보통 근성은 아니겠다 싶어서 칭찬했던 것이 마침 그에겐 필요했던 한마디였던 모양이다.
‘타이밍이 좋았나 보네.’
우연이든 아니든 좋게 받아들여졌으면 다행인 일이다.
그것보다 그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너 혹시 회사에서 안 혼났니? 디스랩…… 회사 사과문도 올라왔던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도한은 아직도 ‘불쌍한 신인’ 이미지로 통하고 있지 않던가.
안 그래도 신인이면 회사에서 힘도 없을 텐데 이런 일을 터트려버렸으니.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그는 주변을 조금 둘러보더니 말을 꺼냈다.
“그게, 비밀인데요.”
주변에 오가는 스태프들이 많아서 신경이 쓰였던 걸까. 도한은 조금 더 가까이 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몰래 대화하는 듯한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올리기 전에 허락받았어요.”
“뭐……?”
“아무래도 이제 그룹이니까. 만들어놓고 좀 걸려서 물어봤는데. 조금 고민하다가 잠깐만 올렸다가 지우라고 하더라구요.”
“그럼 그때 사과문도 미리 얘기된 거야?”
도한은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눈을 마주치며 살짝 끄덕여 보였다.
“우와…….”
엔터 업계는 이렇게 일하는 거구나…….
안 그래도 커뮤니티에 도한의 그룹인 이코드에 관한 언급이 많아지긴 했다.
‘이게 바로 노이즈마케팅……?’
그러나 아이돌에겐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
나였으면 허락을 해 줬을까?
‘아니. 절대 못 했을 것 같은데.’
디스랩에 거친 표현이 들어있던지라 나였다면 오히려 실수로라도 밖에 새나가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계획적으로 공개한다는 제법 대담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관리하기 어려운 연습생을 떠넘긴 기분이라 미안한 마음이 내내 남아있었는데, 그 아이돌에 그 소속사라고 해야 하나.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너 정말…… 잘 맞는 곳에 잘 찾아간 것 같아.”
“크흠. 덕분이죠.”
연습생 신분으로 오랜 기간을 뉴마 한 곳에서 버틴 도한이었지만, 결국 뉴마가 담지 못할 그릇이었을지도…….
맞는 소속사를 잘 찾아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여러 의미로 감탄하자 도한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는지 쑥스러운 듯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전에 뉴마 회의실에서 봤던 그 표정. 그러나 그땐 만년 연습생이었다면 이번엔 데뷔해서 함께 같은 프로그램 촬영을 준비 중이란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진짜 다행이다.’
나름 뉴마의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잘나가는 졸업생을 보는 모교 선생님 같은 마음으로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지나가던 재민이 지나가다 한마디를 얹었다.
“너도 주인님단이냐?”
“주인님이요?”
“아니. 내 이름이야.”
재민은 외부 스태프가 들을 땐 안 그러더니 같은 아이돌이 있을 땐 이 호칭을 고집하곤 했다.
그리고 ‘주인님단’이 대체 뭐냐고.
“김도한! 한우리! 작가님이 설명해 주신대. 빨리 와.”
“알았어!”
이코드의 멤버로 보이는 또 다른 아이돌이 이쪽으로 와 있는 두 사람을 부르며 찾아왔다.
‘한우리’란 이름은 아마도…… 저쪽에서 정말로 모노크롬에게 사인을 받는 저 멤버겠지.
도한은 또 폴더 인사를 하며 자신이 데려온 멤버를 챙겼다.
“야! 우리 가야 된대. 사인은 나중에 받고 일로 와. 감사합니다, 주인 님.”
“으응? 그, 그래…….”
뭐가 감사한지는 몰라도 대화보단 촬영이 우선이었기에 대충 알았다고 하며 보내주었다.
‘……정신없다.’
후배의 인사는 받아봤어도 사인 요청은 처음 받아보는지 멤버들도 만만찮게 정신없어 보였다.
“다른 쪽도 슬슬 촬영 시작하려나 보네요. 저희도 잠깐 설명해 드릴게요.”
<아이돌부 방학캠프>라고 제목이 붙은 이 프로그램은 그룹마다 촬영팀이 따로 붙었다.
이코드 멤버가 설명을 들으러 돌아가는 것을 보고 모노크롬 담당 작가도 종이를 들고 다가왔다.
모든 팀이 각기 다른 지점에서 동시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 진행 과정 설명 또한 얼추 같은 시간에 진행하는 듯했다.
작가는 들고 있던 한 지도를 펼쳐 들며 설명에 나섰다.
지도는 현재 촬영지인 이 동네의 지도. 곳곳에는 빨간 깃발 모양의 마크로 몇몇 지점이 강조되어 있었다.
“여기 표시된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시면 되고요. 빨간색 표시가 된 위치로 가시면 게임을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게임 내용은 도착하시면 현장 스태프가 알려드릴 거예요.”
지역 관광진흥부서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스페셜 방송. 오늘은 우리가 와 있는 마을 하나 전체가 촬영지였다.
관광 마을로 개발 추진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곳답게 자연과 한국적인 민가, 작은 상가들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뉴트로 감성?’
아직은 한적한 곳이지만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방송을 타고 나면 많이 알려져서 입소문이 나지 않을까.
무엇보다 출연 그룹의 팬들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의 여행으로 확실히 찾아올 테고.
그러나 지금의 이 한적한 분위기도 제법 운치 있었다.
“그리고 저희가 그룹마다 같은 반이라는 컨셉이라, 반장을 한 명 정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지금 바로 정하면 되나요?”
“먼저 정해주시는 게 좋아요. 오프닝 촬영 후에 모든 팀이 동시에 출발할 예정이라, 나중엔 정할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서요.”
귀중한 촬영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미리 정하는 게 낫다는 소리군.
나는 옆에서 같이 작가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던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반장 하고 싶은 사람?”
내가 묻자 모노크롬 전원이 손을 들었다.
그래. 권력욕 어디 안 가지.
“한 명씩 자기가 반장 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봐.”
“저 리더니까…….”
“우우-.”
“양보해라, 욕심쟁이야!”
우형이 리더임을 내세우자 준해가 야유하고 한이가 옆에서 우형의 손을 끌어내렸다.
팀원들 민심도 별로고 리더니까 탈락.
이번엔 우형 옆에 서 있던 다음 순서 재민을 쳐다보자 재민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냥요.”
“패기 뭐냐.”
한이가 내가 하고 싶은 소리를 대신했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었다.
당당하기만 했다. 탈락.
“반장이면 반의 얼굴이니까 저?”
“그럼 해랑이 시켜.”
방금 자기 손을 끌어내린 복수인지, 그렇게 말하는 한이 옆에서 우형이 가장 먼저 태클을 걸었다.
한이도 결국 민심을 얻지 못해 탈락.
“저 막내니까 해 보고 싶어서요.”
“으음.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엔 가장 합리적인 이유였어.”
내가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이자 준해는 표정이 밝아지며 기대감을 보였다.
막내니까 한 번쯤은 형들 위에 군림하고 싶을 수도 있지. 일단 보류.
“마지막으로 해랑이는?”
“저는…….”
준해보다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준해로 거의 확정인 상황.
내가 물어보자 해랑은 크게 고민 않고 원래 그럴 계획이었다는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멤버들 굴리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