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90화 (90/430)

# 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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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엘이 누군데. ㅅX GOL때리네..

굳센 잡초는 무슨 GOL초나 해라

└고집불통 GOL통

└라임보소ㅋㅋㅋㅋㅋ

└잡초 뽑아버려

└김매기해버려

└컬러즈 믹스테이프 하나 뚝딱 완성

└우리도 이제 MIC스틸러 나갈수 있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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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왜 사냥해요

호랑이는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보호해야할 환경부 지정 1급 멸종위기종입니다

└더 나쁜놈이네 밀렵꾼 신고하고온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의거해서 MIC 평생 압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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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도한은 ‘힙합’ 앞의 ‘에스’를 따로 발음했지만 발음이 빨라서 결국 귀에 들리는 건…….

‘이거 욕한 거 맞지……?’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은 여기 모인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한테 우선 직접 들어보라고 한 거였구나.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래도 돼요?”

“안 될 건 없는데 웬만하면 이러진 않죠.”

네. 그런데 왜 이랬을까요?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 멤버가 유명 래퍼에게 느닷없이 사이버 죽빵을 날리다니.

그것도 본인 일이 아니라 연습생 시절 소속사 선배가 엮인 일에 말이다.

‘뭐, 뭐지. 해랑이랑 친했었나?’

내가 도한의 존재를 안 게 분명 모노크롬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다가 걸렸던 사건 때문 아니었나.

몸을 90도 이상으로 접으며 몇 번이나 사과를 한 덕에 해랑과 준해도 넘어갔던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서 자기 일처럼 발끈하고 나선 걸까.

‘아니지. 원래 이런 성격이라 그때도 욱해서 말이 튀어나온 거고 지금도 욱한 걸 수도 있지.’

그러나 말실수라면 충동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디스랩까지 준비해서 업로드할 정도면 단순히 욱한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얘 래퍼 포지션도 아니잖아!’

얘기를 들어 보니 도한의 그룹엔 메인 보컬이 두 명인데 도한이 그중 한 명이었다.

메인 보컬이 갑자기 프로 래퍼 상대로 맞디스랩이라니.

“저희가 여기서 뭐 입장 표명을 하고 나서야 하는 건 아니죠……?”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서 혼란스러웠으나 어제 나서지 않기로 한 이상 지금도 우리가 나설 일은 아닌 듯했다.

일단 다 같이 파악하고 있어야 했기에 모인 것일 뿐.

“네. 뭐 어제랑 똑같이 해랑이가 직접 나설 게 아니라면야. 회사가 나서야 한다면 저희가 아니라…….”

“저쪽 소속사겠죠.”

윤희가 대답하자 이어서 민형이 가볍게 정리했다.

윤희는 같은 엔터 업계 사람으로서 도한네 소속사 직원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말을 흐렸지만, 민형은 그냥 마음 편하게 외부인으로 있기로 한 모양.

그러나 내겐 편히 마음을 놓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보낸 연습생인데…….’

물론 이제는 그쪽 소속 아티스트지만 어쩐지 짐을 떠안긴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굴 모를 도한네 소속사 직원들은 아마 지금 우리처럼 회의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회의 파할 거지만.’

미안합니다. 이 일은 저희가 나설 건 아닌 것 같아요.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우린 마음 한구석으로 애도를 표하며 각자 업무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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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도한아ㅠ.. 이제 신인인데 좀만 참았으면 좋았을걸.. 돌판 오랜만에 돌아온거라 오래오래 보고싶은데 좀 걱정된다

@멤버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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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마와 모노크롬은 이 상황에서 한발 뒤로 물러났지만, 아이돌vs래퍼라는 특수한 디스전에 인터넷 커뮤니티는 예상대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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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습생 시절 의리 지킨 아이돌

1. MIC스틸러 심사위원인 지오엘이 출연 거부한 아이돌(모노크롬 백해랑)을 디스함

(오디오 클라우드 링크)

2. 여기서 갑자기 이코드(E-code)의 도한이란 멤버가 지오엘을 디스

(오디오 클라우드 링크)

이코드는 올해 막 데뷔한 신인이라 지오엘이랑은 접점이라곤 없었음

대체 누군데 뜬금없이 나타나서 디스하나 했더니.

(이미지)

알고보니 도한이 모노크롬 소속사인 뉴마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이었음

연습생 시절 소속사 선배라 자기가 나선 거ㅇㅇ

(발췌 이미지) 데뷔후 인터뷰에서도 모노크롬 언급

더 놀라운건 래퍼도 아니고 메인보컬이란 점임

오디오 클라우드 링크는 언제 지워질지 모르니까 들으려면 빨리 듣는 게 나을듯

└그와중에 제목 반+GOL이냐? 케팝의 미래가 밝다

└뿌뿌뿌뿌~~~

└지오엘은 왜 gol임? 진짜 그 골때린다 할때 골임?

└아니 원래 goal인데 지오에엘 어감 안좋다고 지오엘이라고 줄인 것 같던뎈ㅋㅋㅋ

└급발진 뉴마종특이냐

└크으 이게 힙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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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한의 그룹, 이코드의 소속사는 제법 이름 있는 중형 소속사여서 데뷔부터 바로 붙은 팬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컬러즈는 코어 판이라 소수정예 느낌이었다면 이쪽은 신인이라 아직 팬들도 어수선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와중에 이런 폭탄 같은 사건. 아직 팬덤 이름도 정해지기 전인 그들은 걱정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다행히 상황은 그리 나빠지지 않았다.

먼저 가만히 있는 상대에게 디스를 시작한 것이 지오엘이어서 사람들이 도한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어째 신나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돌 래퍼를 디스한 전적이 여러 번 있어서 아이돌 팬들이 벼르고 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팬들이 커뮤니티에서 지오엘을 욕해도 타격이 안 갔는데 현직 아이돌이 직접 나섰으니.

갑작스러운 공격에 매운맛으로 돌아와 있던 컬러즈 또한 아군 등장에 기꺼이 마음의 문을 열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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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애들 후배였다고?

오늘만큼은 너도 내새끼해

└ㅋㅋㅋㅋㅋㅋㅋㄹㅇ 타돌 노관심인데 급호감이네

└아이돌래퍼 찐래퍼 나누는 거 같잖았는데 아이돌한테 발리는 거 보니까 기분이 좋다^^

└온실속에서 튼튼하게 자란 화초한테 처맞아봐라 더 아프지

└지뭐시기 디스뜨고 하루종일 표정 개안좋아서 친구가 무슨일있냐 그랬는데 맞디스 듣고 박수치면서 웃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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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 마음 열기 쉽지 않은데…….’

공통의 적이 있으면 빨리 친해진다고 했던가.

게다가 도한이 데뷔 후에도 모노크롬을 여러 번 언급했는지 컬러즈는 도한을 거의 동료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에 올라왔던 도한의 디스곡은 다섯 시간 만에 내려갔다.

다음 날엔 도한의 소속사인 이엠유 엔터테인먼트의 짤막한 사과문이 떴다.

[도한 군의 음원이 상대 아티스트분께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통감하며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저희 이엠유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소속 아티스트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고뇌하면서 이 사과문을 썼을까. 내가 다 머리가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 편해지고자 상황을 반쯤 외면하고 있었지만 동종 업계인으로서 이입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사과문에 도한 개인에게 크게 책임을 묻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도한의 디스랩이 삭제되고 사과문이 올라온 후에도 파급력은 여전했다.

[래퍼가 되고싶었던 한 신인의 꿈이 지ㅗ엘에게 짓밟혔다ㅠ]

[지오엘도 사과해라. 진정한 힙합인이라면.]

소속사의 사과문이 뜨자 도한의 이미지는 ‘그저 주변인을 지키고 싶었던 순수한 어린 양. 어쩌면 래퍼의 꿈이 있지 않았을까. 회사한테 혼났을듯. 불쌍함.’이 되어 있었다.

지오엘이 인터뷰에서 말한 ‘진정한 힙합인이라면.’이라는 멘트는 이미 커뮤니티의 최신 유행어가 되어 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오엘의 디스랩 또한 비공개되더니 곧이어 그의 소속 레이블에서도 사과문이 올라왔다.

[저희 소속 아티스트의 발언으로 타 아티스트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따끔한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욱 성장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 아래엔 ‘대표 알픈(R.Fn) 김리훈’이라며 예명과 본명이 함께 적혀 있었다.

‘여긴 대표도 래퍼인가?’

일이 일단락되어가는 것 같길래 조금 편한 마음으로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보니 그 대답을 자연스레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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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픈도 고생한다

아이돌이랑 피쳐링 자주 하고 그랬는데 소속 아티스트가 갑자기 아이돌을 이유없이 깐다? 개민망하지ㅋㅋㅋ

└애초에 알픈이 유니온맥스 멤버랑 친척관계라ㅇㅇ 레이블 사무실도 자주 놀러가서 지오엘이 모를 수가 없는데ㅋㅋ

└헐 ㄹㅇ? 난 처음알았음ㅋㅋㅋㅋㅋ

└친아이돌 대표 밑에서 어찌 저런 반아이돌 래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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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게 매우 호의적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다음 날은 우리 프로듀스 팀에도 그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해랑의 이번 믹스테이프를 들어보았고, 현재 기획 중인 곡이 있는데 괜찮다면 함께 작업을 해 보고 싶다고.

“그런 연락이 왔다는데. 할래?”

피처링 작업 제안은 처음이었지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괜찮은 제안이었다.

음악과 관련된 활동이라면 해랑도 큰 부담이 없을 테고.

피처링 파트는 온전히 맡겨주겠다고 하는 것을 봐선 해랑의 음악 스타일 또한 존중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해랑은 잠시 고민하더니.

“좋은 기회지만, 이번 일 때문이라면 거절하고 싶어요.”

방송 섭외를 거절할 때만 해도 머뭇거리던 그가 이번엔 확고하게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해랑의 눈을 나도 똑바로 마주했다.

저번에 프로그램 섭외를 거절하고 어쩐지 중심이 조금은 잡힌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또한 예전보다 조금은 더 중심이 잡힌 듯한, 자신이 생긴 눈빛이었다.

“알겠어. 좋게 말해서 이번엔 거절하는 거로 해 둘게.”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거절을 선택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모습.

확실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미안하게 되었다며 피처링 제안을 거절하자 이 알픈이라는 대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이 ‘오히려 이쪽에서 미안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가 있다면 그땐 잘 부탁하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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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아. 작년에 MIC 스틸러에 출연했던 것 때문에. 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은 저도 얘기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요즘 팬분들이 많이 걱정해 주시는데, 전 아무렇지 않아요! 저희는 저희 길을 잘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니라면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방송에서 지오엘에게 직접 디스 당했던 몇몇 아이돌 래퍼들은 뷰이라이브 혹은 개인 SNS에서 이 디스전 사건과 관련된 얘기를 슬쩍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심사위원이었던 그의 혹평은 도움 되는 얘기도 아니라 무시하기로 했다는 말을 순화해서 하기도 하며.

‘……디스전은 아직도 안 끝났다고 할 수도 있겠네.’

랩의 형식이 아니라도 말이다. 방송에선 어쩔 수 없이 당했으나 반격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다.

회사 이름으로 사과문이 올라왔지만 그에게 당했던 아이돌 팬들의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지오엘은 회사 차원의 사과문이 나온 터라 다시 나설 수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쪽은 입을 봉쇄당하고 한쪽만 비난을 퍼붓는 상황.

‘이 상황 어디서 본 것 같아…….’

저번 스캔들 건이 데자뷔처럼 기억을 스쳐 지나갔다.

입장문 내놓고 가만히 있었는데 벼르고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알아서 집중 사격하던 기억.

그때도 해랑은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엮인 거였지.

해랑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 괜히 사건에 휘말릴 때가 많은 듯한 기분이었다.

‘태풍의 눈이라고 해야 하나.’

비 온다는 날에 안 온 적이 꽤 있었다는 것도 설마……. 하는 황당한 생각도 떠올랐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우형이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것도 사실이어야 했다.

‘한 명은 태풍의 눈에 한 명은 신선……. 무슨 판타지도 아니고.’

어쨌건 이번 태풍은 제삼자인 듯 제삼자가 아닌 오묘한 기분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이번 일을 크게 만든 장본인을 예능 프로그램 촬영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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