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89화 (89/430)

# 89화

“아이돌 음악을 프로듀싱하고 싶어서 회사로 오신 거라든가.”

돈이 남아도는데 마음대로 한번 프로듀싱해 보기엔 기반도 인지도도 부족한 모노크롬이 마침 적당해서 뉴마에 남겨두고 키우는 게 아닐까 하는 가정.

이 상황을 굳이 논리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다면 그것도 아주 신빙성이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주인이 멤버들을 대하는 태도는 그 정도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 것치고는 다른 방송에 나가는 건 좋아하셨고…….”

“음악 쪽도 다 우리한테 맡겨주시잖아.”

처음 자작곡을 냈던 우형에 이어 두 번째 작곡 멤버인 해랑도 동의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처음 와서 자신이 이쪽 일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방송국과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스케줄 때문도 아니고, 돈 때문도 아니라면 이번엔 정말 해랑이 안 내켜 하니까 거절했다고밖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윽고 사고는 ‘왜 우리한테 잘해주실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주인의 말과 행동을 생각해 보면, 모노크롬에게 수익을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주인에겐 지금까지 못 해줬던 것을 보상하는 의미로 하는 행동들이었지만 그걸 멤버들이 알 리는 없었다.

“뭔가 좀…… 아들 키우는 것 같지 않아?”

“…….”

준해의 표현에 멤버들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마땅한 말을 못 찾았는지 다시 입을 닫았다. 이상한 말인데, 또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았다.

딱히 갚을 것을 바라지 않고, 책임지고 지원하면서 성장하기만 바라는 것. 그러다 잘되면 뿌듯하고.

어느 쪽이냐 하면 회사라기보다는 부모의 입장에 가까운 것 같긴 했다.

“물론 감사한 분이지만 얼마 전까지 생판 남이었는데……? 그리고 왜 우리를?”

사소한 것을 걱정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주로 우형이었지만 회사 상대로는 모두가 그런 태도였다.

멤버들로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주인이 모노크롬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대체 무엇인지.

주인 입장에선 장단점을 재보고 계산해서 한 선택이, 비인간적인 플레이를 현실로 겪어온 멤버들에게 혼란만 가득 안겨주고야 말았다.

***

방송계는 어디서 무슨 일로 엮일지 모른다.

‘이걸 계속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 업계 일에 미숙한 건지 항상 방심하다가 뒤통수 맞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뜬금없이 한 래퍼와 모노크롬, 정확히는 모노크롬의 메인 래퍼인 해랑이 엮였기 때문이었다.

모노크롬 전담 직원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그들을 이사실로 불러 모은 건 나였지만 모두가 모일 때까지 난 여전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우리 머리채를 왜 잡았대요?!”

“머리채…….”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들을 만한 어휘는 아니어서인지 민형이 작게 따라 말했다.

커뮤니티를 자주 봐서 점점 인터넷 말투가 옮는 것 같은……. 아니,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상황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뜬금없이 머리채를 잡혔다.

‘우리 애를 왜 디스하냐고, 갑자기!’

래퍼 ‘지오엘’의 오디오 클라우드 계정에 <사냥꾼>이라는 곡이 등록된 것이 발단이었다.

그러니까 타임라인대로 정리하자면.

해랑이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출연을 고사했고,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 출연을 거절했다는 내용의 기사 몇 개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업로드되었다.

이 단계에서 컬러즈는 섭외가 들어갔었다는 소식에 놀랐지만, 해랑의 선택을 존중하려는 의미인지 딱히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출연한다면 관심을 가지겠는데 어쨌든 안 나간다지 않는가.

‘그래서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 상황에 한 래퍼가 디스랩을 올렸다.

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래퍼 ‘지오엘’이 말이다.

“저번 시즌에도 아이돌 래퍼한테 디스를 많이 했다던데요.”

“저희는 출연한 것도 아니잖아요.”

“흠. 타이밍이 안 좋았다고 해야 하나.”

먼저 나섰던 민형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자 최 비서가 먼저 태블릿으로 기사를 하나 띄워 보여줬다.

[‘MIC 스틸러’ 지오엘…‘아이돌 래퍼에게 유감 없어’]

저번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 다시 심사위원으로 섭외되면서 어느 연예부 기자와 한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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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번 시즌에 아이돌 출신 출연자에게 혹평한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시즌5에도 아이돌 래퍼가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A. 아이돌 래퍼에게 유감은 없다. 실력으로 겨루는 자리에서 출신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니까.

편견이 없기에 객관적으로 심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돌을 의식했다면 오히려 몸을 사리지 않았겠는가.(웃음)

평가받는 것이 두려워서 출연을 망설이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진정한 힙합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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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 안 좋긴 했네.’

인터뷰가 없었다면 그저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출연을 고사했다는 소소한 정보로 끝났을 텐데.

이렇게 인터뷰를 해 놓은 상태라 해랑이 그의 말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프로그램은 아직 섭외 단계였고 다른 아이돌에게도 출연 섭외가 갔는지는 몰라도 기사가 뜬 아이돌은 해랑뿐이었으니.

‘혹시 내가 너무 빠르게 결정해 버려서 기사가 가장 빨리 난 건가?’

물론 그가 디스랩에서 해랑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출연 거절 기사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이런 내용의 디스랩이 올라왔으니 정황상 그 대상이 해랑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가사 중의 ‘꽃은 꽃밭에나 모여 살겠지.’라는 부분.

“저번 시즌에서 아이돌 래퍼한테 그랬나 보네요. 온실 속의 화초가 야생에서 자라온 잡초를 이길 수 있겠냐고.”

“온실 속이라니…….”

“연습생 시절부터 트레이닝 받아서 올라온 아이돌이 자기 눈엔 그렇게 보인단 거겠죠.”

이어지는 윤희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돌을 계속 ‘보기 좋은 꽃’에 비유해 온 듯했다. 자기는 야생 속에서 굳세게 자라온 잡초고.

“그리고…….”

최 비서가 또 태블릿 화면을 내밀었다. 그는 말로 전부 설명하지 않았지만 화면을 보고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꽃밭.

그가 가리킨 것은 저번 라이브 클립 영상 섬네일. 그 영상은 아직 모노크롬 공식 채널 메인 페이지 상단에 있었다.

‘아니, 이건 진짜 기분 나쁜데?’

팬들 보여주려고 만든 컨텐츠를 이런 식으로 깎아내리다니.

뭔가 기분 나쁠 만한 요소가 랩 여기저기 숨어 있는데 어딘지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는 게 억울한 점이었다.

일단 내 눈에 보이는 제일 기분 나쁜 부분은 여기.

[난 lip한 비트 위의 사냥꾼. 발밑엔 호랑이의 가죽.]

“여기 호랑이란 거, 해랑이 이름 의식해서 쓴 것 같지 않아요?!”

어감이 비슷하잖아. ‘랑’ 자가 들어간단 점에서.

이름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글자인데 화초, 잡초 얘기하다가 갑자기 호랑이 사냥꾼 얘기라니.

내가 분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옆에서 윤희가 모범 해석을 내놓았다.

“그거네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 자기가 사람이고 호랑이를 사냥했다 이거죠.”

“그 호랑이가 해랑이고요?”

“네. 난립한 비트라는 건 아마 아이돌을 포함해서 개나 소나 랩 한다면서 돌려 깐 것 같네요.”

컨텐츠 수급으로 온화해진 컬러즈를 따라 한결 온화해졌던 윤희의 말투에 다시 날것의 표현이 돌아왔다.

숨겨진 뜻이 정확히 뭔지 몰라 모호하게만 기분 나빠하던 나와 달리, 윤희는 이 은유와 비유들을 논리적으로 해석해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그녀가 처음 사직서를 내면서 불만 사항을 우다다다 토해냈던 것이 지금 뜬금없이 생각났다.

혹시 남모르게 래퍼를 꿈꿨는데 내가 붙잡는 바람에 아직 회사원으로 남아있는 건…….

“커뮤니티 자주 보다 보면 디스는 일상처럼 보거든요. 반어법은 패시브고, 팬덤 코스프레에 의도적으로 오타 내기 등등 아주 창의적이에요.”

윤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교묘한 뜻이 담겨 있는 텍스트를 일상처럼 봐 와서 속뜻 알아맞히기를 잘했던 거군.

내가 본 거라곤 ‘난 잘 모르겠는데 너네가 그렇다면 그런가 보지 뭐ㅎ’ 하면서 은근히 깎아내리는 것 정도였는데.

‘난 저 경지까지 못 올라갈 거야…….’

출근 첫날에 그만두겠다는 그녀를 붙잡아서 다행이었다. 진심으로.

‘그럼 해랑이를 공격한 건 일단 확실하다는 소린데.’

정확한 언급 없이 비유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쪽이 아니라고 발뺌하면 끝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저격당한 것이 맞는지 확실히 확인하고 대응을 할지 말지 고민하자는 회의 자리였다.

‘사무직끼리 회의실에 모여서 랩 분석을 하고 있다니.’

황당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방송에 나가지 않고도 디스를 당하는 상황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분은 나쁜데 여기서 맞디스를 하기 시작하면 해랑이 피하고 싶었던 물고 뜯기를 프로그램 밖에서 그냥 하게 되는 꼴이고.

그렇다고 저번 스캔들 건처럼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면 온실 속의 화초라는 그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꼴 같았다.

‘뉴마가 온실에 비유되다니 무슨 소리야.’

이보다 황당한 소리가 더 있을까. 그 어디보다 야생이었는데.

아니, 야생은 아니지. 인간의 자본주의가 낳은 사각지대였지…….

제발 각자 자리에서 서로 신경 안 쓰고 각자의 음악을 하면 좋으련만.

“하아……. 저희가 나선다고 뭐 좋아질 일은 없겠죠?”

“마음이야 답답하겠지만 회사로선 무반응이 제일이죠.”

윤희의 말 그대로였다. 예전 스캔들 건이야 우리가 나설 필요가 있었지만 이번엔 상대가 연예인.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라 회사가 나서기엔 명분이 부족했다. 그저 기분만 나쁠 뿐.

디스 당한 당사자인 해랑이 나서겠다고 하면 상황이야 달라지겠지만.

“……아뇨. 별로 반응하고 싶지 않은데요.”

“역시 그렇지……?”

해랑을 찾아 의사를 물었지만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사태를 마주한 멤버들은 기분 나빠하기보다는 “예? 갑자기 저희를 왜요……?” 하고 의문스러워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아이돌치고 워낙 활동 범위가 좁았는데 느닷없이 힙합계에서 디스가 날아왔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당연.

준해는 기분 나쁜 게 더 컸는지 씩씩거리긴 했지만 내 앞에서 불평을 토로하진 않았다.

‘준해도 은근 발끈하는 편인 것 같아. 잘 참긴 해도.’

당사자인 해랑과, 간접적으로 같이 디스 당했다고 할 수 있는 멤버들이 그냥 넘어가고자 하는데 내가 뭐라고 열을 내겠는가.

참을 인도 세 번을 새기라는데 일단 지금은 한 번.

그냥 꽁한 마음만 하나 생기고 마는 것으로 나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진짜 발끈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다음 날, 모노크롬 전담 직원들은 또 모여야 했다.

“……이건 또 뭐래요?”

처음 지오엘의 디스랩이 뜬 것도 인터넷 정보에 가장 빠삭한 윤희가 소식을 찾아 들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하……. 이사님. 이것 좀 보세요!” 하며 이사실을 찾아왔다면 오늘은 “이사님……? 이거?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 하면서 찾아왔다.

그녀가 날 찾은 이유는 이것이었다. 외부에서 이 상황에 동참하는 디스곡이 또 올라왔다.

제목은 <반골>. 올라온 오디오 클라우드 계정 이름은.

“dohan? 도한이라면…….”

분명 낯익은 이름이었다.

내가 잠시 기억을 뒤지고 있으니 최 비서가 도움을 주듯이 작게 속삭였다.

“저번에 소속 옮긴 연습생 이름입니다.”

“아! 맞아. 김도한.”

나로 인해 생긴 업보 중 하나.

최 비서를 통해 다른 소속사를 알아봐 줬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데뷔했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마침 보이그룹을 인원 맞춰 준비하던 곳이었는데 무슨 사정인지 데뷔조 한 명이 결원돼서 곤란하던 참에 그 자리에 급하게 들어갔다고 했던가.

여러모로 타이밍이 잘 맞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의 이름이 여기서 다시 들리다니.

윤희가 내게 확인해야 한다며 들고 온 것을 보면 이번 일과 관련된 게 분명하니 일단 곡을 들어봐야 했다.

[진골 성골 따지길래 지금이 신라인가 했네

Korea가 Kpop이면 신라에선 Shiphop…]

“……세상에.”

신인의 패기에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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