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87화 (87/430)

# 87화

[백해랑 Mixtape <미드나잇 블루(Midnight blue)> 20**.**.** 7PM]

해랑의 믹스테이프 공개일이 결정되어서 모노크롬 공식 SNS 계정에 예고를 올렸다.

함께 올라간 이미지는 이번 믹스테이프의 재킷 이미지. 그 위엔 제목인 ‘Midnight blue’와 ‘produced by 백해랑’이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잡지 발매와 재민의 예능 프로그램 이후로 새 활동에 관한 공식 정보 공지는 오랜만인 기분이었다.

그간 멤버들이 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다음 활동을 위한 준비 위주였기 때문에 새로 던질 떡밥 거리는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멤버들이 뷰이라이브 등으로 소통을 이어오긴 했지만, 최근의 떡밥 투척 속도에 익숙해진 컬러즈들이 슬슬 말라가려는 기미를 보이던 참이었다.

그리고 오늘. 갑작스러운 믹스테이프 공개 소식에 컬러즈는.

[몬클이들 요즘 다양하게 나타나줘서 다음은 뭘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건 또 무슨 떡밥이야 행복해ㅠㅠㅠㅠ 근데 믹스테이프가 뭐예요??]

가수와 팬덤이 닮은꼴이라는 것을 여기서 또 느끼게 되었다.

뭔지도 정확히 모르고 일단 환영하는 모습. 이건 멤버들이나 컬러즈나 똑같았다.

그러나 컬러즈에겐 처음 접하는 형식의 음원 발매이기도 했으니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나도 송 피디님한테 설명을 들으면서도 아리송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믹스테이프란 건 이런 걸 뜻한다는 거죠? 네. 그럼 저런 건 믹스테이프가 아닌 건가요? 그것도 맞습니다. 라는 대화를 반복했었지.

그리고 내가 이해한 바로는, 내는 사람이 믹스테이프라고 이름을 붙이면 그냥 그게 믹스테이프였다.

우리야 무료 음원으로 발매했지만 유료 앨범이 믹스테이프일 수도 있고, 자작곡을 말하는 것일 수도, 다른 사람이 만든 베이스에 랩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뜻은 다양했다.

개개인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 다르고 광범위했기에 검색만 해서는 어떤 것인지 잘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믹스테이프란 게 뭔지 아는 컬러즈가 간단한 설명에 나섰다.

한구석에선 일단 지갑 챙기면 되냐며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모든 글은 ‘그러니까 우리 애 자작곡 나온다는 거네ㅠㅠ’로 귀결되었다.

‘팬 입장에선 믹스테이프건 아니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회사 입장에선 믹스테이프라는 틀을 잡아놓고 세세하게는 어떤 형태로 낼지 제법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컬러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영하며 축제 분위기를 만끽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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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랑이 자작곡이라니 세상마상

쇼케팬미 때 해랑이 무대보고 진심 심장이 너무 떨려서 다음날 건강검진 다녀왔잖아

심각한 몬클중독이라고 당장 입원해야 된다는거 겨우겨우 뿌리치고 나왔는데 이번엔 심장이 남아날지 모르겠다

└나 지금도 1일1쇼케무대 하는중인데 아직 안 쓰러짐 오히려 건강해진 기분ㅇㅇ

└22중독이라뇨 이게 디폴트입니다만?

└진지하게 해랑이 목소리에 누가 마약탄 거 아냐? 신고당하면 어떡해ㅠㅠ해랑이 무죄

└미안 내가 이미 신고했어.. 혼인신고..

└뉴마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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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가 욕으로 쓰는 표현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이건 차치하고.

쇼케이스 팬미팅 때 처음 공개했던 해랑의 자작곡이 퍽 인상 깊었는지, 컬러즈는 새 자작곡이 나온단 소리에 자연스레 그날의 추억을 다시 떠올렸다.

‘나도 현장에서 들었었지.’

컬러즈의 숨 들이켜는 소리.

차분한 분위기 속에 울려 퍼지는 그의 낮은 목소리는 확실히 임팩트가 있었다.

아직 제목만 공개되었기에 컬러즈는 어떤 곡일지 기대감을 부풀리며 함께 올린 이미지에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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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이미지도 진짜 미친 거 아니냐고ㅜㅜㅜ

지금 당장 액자에 넣어서 미술관에 전시해야 함

└홀리하다 진짜

└흐릿해서 아쉬운데 그마저도 분위기가 너무 찰떡..

└사진작가님도 해랑이 얼굴 보고 손이 떨리신 거 아닐까

└ㄹㅇ 나도 전에 퇴근길 사진 찍으려는데 막상 얼굴 보니까 없던 수전증 생겨서 사진 다 흔들림ㅠ

└비주얼 보고 개안하기vs눈부셔서 시력상실 플러스마이너스 쌤쌤이라 겨우 시력유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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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와 함께 올라간 재킷 이미지는 청회색조의 아무것도 없는 배경 속에 해랑이 검은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초점이 뚜렷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찍은 사진은 마치 그의 의식 속을 추상적으로 담아낸 듯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모습을 찍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해랑의 말에 포토그래퍼도 알았다며 촬영 사인을 주고받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촬영된 사진은 해랑이 표현하고 싶었던 느낌을 잘 담아 감각적으로 완성되었다.

‘그 예술적 재능을 발휘한 건가……?’

곡 작업도 그렇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말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데에 능한 것 같았다.

그리고 축제 분위기로 온갖 주접을 떨며 공개를 기다리던 컬러즈는 곡이 공개되자마자 침착한 자세로 바뀌어 감상했다.

아마 컬러즈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내용이 꽤 무거울 터였으니까.

완성된 뮤직비디오는 먼저 공개된 이미지처럼 화면이 흐릿하기도, 일렁이기도 하며 불안정한 느낌이 강조되었다.

한쪽에선 담담하게 랩을 뱉다가, 한쪽에선 혼란스러운 듯이 방을 서성이다가.

이런 장면들이 서로 교차하며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꿈의 시점과 현실 시점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었다.

라이브클립이 아니라 뮤직비디오라고 칭한 이유가 바로 이런 연출이 들어갔기 때문.

‘이것도 어찌 보면 연기라고 해야겠지.’

컨셉을 잡아 만든 곡이 아니라 온전히 해랑의 이야기를 담은 곡.

많은 부분을 해랑의 판단에 맡기자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느낌을 몸짓으로 표현해냈다.

한이가 대사가 있는 연기를 잘한다면, 해랑은 뭔가 ‘표현’해낸다는 말이 더욱 어울렸다.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이런 표현력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었다.

화보 촬영이 아니라며 아쉬워하던 감독도 그런 모습에 감화되었는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느낌 좋은데 조금 더 클로즈업으로 가도 될까요? 지금 행동으로 하는 걸 표정으로 대신하는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내내 정처 없이 헤매는 모습을 연기하던 그에게 감독은 조금 다른 표정 연기를 요청했었다.

막연할 수도 있는 그 요청 사항을 해랑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할까. 그의 해석이 궁금해서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더니 그는.

‘……조금 소름 돋았지.’

예상외로 카메라를 직시하며 나른하게 씩 웃었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나는 순간 머리끝이 쭈뼛 섰다. 갑자기 인격이 한순간에 바뀐 것 같았으니까.

어둡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밝은 미소라는 부조화. 그게 오히려 위태롭고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연상하게 했다.

[……이건 제가 뭔가에 홀리는 기분이네요.]

나만이 느낀 감정은 아니었는지 촬영한 것을 모니터링하던 감독은 그런 감상을 내뱉었다.

그 표정 연기가 특히 인상 깊었는지 촬영한 많은 장면 중에서 그 장면은 빠지지 않고 뮤직비디오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여긴 내가 요청한 장면.’

이전에 해랑이 만든 세트리스트처럼, 그라데이션식 연출을 활용한 것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해랑은 몸의 중심을 잃고 까무룩 잠이 들듯이 풀썩 침대에 쓰러진다.

곧바로 화면이 전환되고, 해랑은 재킷 이미지처럼 다시 방 중앙의 나무 의자에 앉아있다.

그리고 그 뒤엔 창밖에 떠 있는 달.

모노크롬 다음 앨범의 뮤직비디오는 바로 이 장면과 같은 구도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

마치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처럼, 해랑은 밤하늘을 배경 삼아 거실에 앉아 있었다.

준해가 이전에 이 모습을 보고 무섭다며 뭐라 했지만. 한밤중,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어두운 거실은 생각을 정리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었다.

지금은 믹스테이프가 공개된 지 몇 시간이 지난 후.

실시간 소통을 가장 많이 하던 우형도 자작곡이 발매될 때면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반응을 잘 확인하지 못했지만, 해랑은 모든 댓글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정 있어서 유학 중도포기한 후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 부정당한 기분이라 다 때려치우고 싶고 주변에 화도 많이 냈거든. 근데 노래 듣고나니까.. 누구나 살면서 그런 일 한번쯤은 겪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주변도 좀 둘러볼 생각이 드는 것 같아. 노래내줘서 고마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저도 그랬거든요 눈뜨면 병원 침대라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싶어서 다 꿈이었으면 좋겠고ㅠㅠ 지금은 좀 괜찮아졌는데 공감돼서 댓글 달구가요]

[괜히 울적할 때 있었는데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다…]

누구는 미래가 불투명해서 힘들 때, 누구는 아팠을 때, 혹은 지칠 때, 좌절했을 때, 우울할 때.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꺼내기 쉽지 않았을 이야기일 텐데, 좋아하는 가수와 팬의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마음을 터놓고 담아두었던 얘기를 꺼냈다.

당사자가 볼지 안 볼지 모르는데도, 혹은 보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거는 팬들.

입장이 바뀌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마음으로 자신들을 보는지 100퍼센트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들에겐 마음의 벽을 세워두지 않는다는 게 새삼스레 실감 났다.

부족하게나마 위로를 주기 위해 공개한 곡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에 또 위로를 받는 것은 자신이었다.

[힘든 일 있을때 멤버들 보면서 많이 위안 받아. 덕분에 행복했던 만큼 해랑이도 행복한 일만 많았으면 좋겠어]

많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조차 혹시 부담이 될까 조심스럽게 건네는 사람들.

이런 관계가 또 있을까.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자 한다면 아마 끝도 없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걸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매여있지 않아도 될 관계가 있다면, 반대로 붙잡아야 할 관계는 이런 게 아닐까.

미안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 절절히 실감된 것은 데뷔 이후로 처음인 듯한 기분이었다.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지금껏 혼자서만 담아두던 말들이었는데. 지금은 공개하기를 잘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가 어떤 모습이든 주변에 기꺼이 있어 주는 인연들.

아마 오늘은 인생의 많은 전환점 중에서도 큰 전환점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해랑은 평소처럼 창밖으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여느 날과 똑같이 어두웠지만 오늘만큼은 핸드폰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별과 달을 대신했다.

***

믹스테이프 공개 후, 해랑이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컬러즈도 있었다.

‘그런 반응이 걱정돼서 해랑이 처음에 공개하고 싶지 않아 했었지.’

그러나 그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곡이고 들려주고 싶어서 공개하게 되었다는 소개글을 보고 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목적대로 위로를 받는 컬러즈가 많이 보였다.

거기에 매력 레벨 10이 영향을 줬는지 지나가다 섬네일 얼굴에 이끌려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은 댓글 분위기에 동화되어 소소하게 자신의 얘기와 함께 잘 들었다는 말을 남기고 가기도 했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생각에 만족스럽게 ‘한 건 완료’ 체크를 하려던 참이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엔터 업계는 특히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업계여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반응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었다.

특히나 외부와 엮여 어떤 의외의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는 점이 제일 불안했다.

그리고 지금. 믹스테이프란 것은 아이돌계보다는 힙합계 활동에 가까웠는지, 예상치 못한 쪽에서 연락이 왔다.

“뭐야, 이게? 래퍼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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