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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81화 (81/430)

# 81화

“노래 잘 부르는 친구 있거든요……. 하니인가, 허니인가?”

진유선, 그러니까 여주인공은 모르는 사람을 붙잡은 민망함을 무마하려는 모양새로 말을 꺼냈다.

“아.”

여전히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하듯이 위쪽만 쳐다보던 한이는 그녀가 말하는 게 누구인지 자기도 안다는 것처럼 반응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걔 별로던데.”

자연스럽게 자기 디스로 맞받아쳤다.

진유선이 애드리브를 내뱉을 때부터 무슨 소릴 하려나 하는 눈으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제작진들은 마이크에 들어가지 않게 소리 없이 웃었다.

애초에 한이가 특별출연하는 신은 재미를 위해 넣은 장면이라 이런 대화가 들어가도 끊지 않고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 그래요? 그냥, 연예인처럼 잘생기셨길래.”

여전히 연기 중인 진유선은 옆머리를 긁으며 머쓱한 대화를 칭찬으로 마무리 지었다.

졸지에 남주 닮은꼴이자 모노크롬 멤버 닮은꼴 역할이 된 한이.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지금 이곳에선 모노크롬의 멤버 유한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모른 체해야 했다.

대신 한이는 별 의미 없는 느낌으로 가볍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까 닮았다던 그 ‘아는 사람’도 잘생겼나 봐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이 씨가 더 잘생겼다느니, 형님이 더 잘생겼다느니 하면서 김형운과 칭찬 릴레이를 하고 왔던 참.

진유선, 아니, 그녀가 연기하는 여주인공은 당황했다.

“잘생겼……, 네?! 아니, 그게.”

착각할 정도로 닮아서 한이를 붙잡았는데 얼굴 칭찬부터 해버렸으니.

얼굴 잘난 사업가로 유명한 남주인공. 그와 앙숙 같은 사이였던 여주인공은 이전까진 계속 ‘내 취향은 아니다’라며 그에게 선을 그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잘생겼다는 말이 튀어나오다니.

그저 카메오 특별 등장 신을 살리기 위한 애드리브로 시작한 대화였는데, 여주인공 입장에서 보자면 모순된 태도였던 것이다.

두 주인공은 내내 투닥거리는 사이였다가 이제야 서로의 감정을 자각하기 시작한 상태.

어찌 보면 눈에 콩깍지가 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입으로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혼란스러운지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여주인공의 시선이 허공을 헤맸다.

“컷!”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방금까지 유지되던 어색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현장엔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아하하! 저 방금 한이 씨한테 말렸잖아요.”

“대본에 없는데 저 말 너무 많이 했죠.”

“제가 먼저 시작했는데요. 와, 설마 반격당할 줄은 몰랐네?”

처음 준비된 대본에 대사라고는 여주에게 붙잡힌 후 “누구세요?”, 아는 사람을 닮아서 착각했단 소리에 “아, 네.” 정도가 끝이었다.

연기 경력이 없는 한이를 부담 없이 섭외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애초에 크게 연기라고 할 만한 부분은 없었기에.

애드리브를 받아치느라 대본에 없던 대사를 더 한 한이가 눈치를 슬쩍 보니, 방금 찍은 장면을 확인하던 PD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선 씨 방금 감정선 좋아서 그대로 써도 될 것 같은데.”

재밌는 장면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진유선이 몰입을 깨트리지 않고 이어간 덕분에 소소한 감정 연기가 하나 추가되었다.

애초에 짧은 장면이고 다른 장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가볍게 추가된 카메오 신이어서 이 정도 수정은 허용 범위 내였다.

그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던 한이는 방금 촬영분을 그대로 쓴다는 소리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전 NG인 줄 알았어요.”

“NG인 줄 알았으면서 계속 연기를 했어요?”

이번엔 PD가 놀랐다는 표정을 했다.

“지금 보니 한이 씨 거의 프로시네!”

“이야. 이걸 끌고 가네 싶어서 감탄했는데.”

그 옆에선 진유선이 호들갑을 떨면서 한이를 치켜세웠다.

OST 홍보라는 목적도 있었지만 큰 대가 없이 선의로 결정했다고 할 수 있는 카메오 출연.

선뜻 출연을 수락해 준 상대에게 호의적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초면인 상대와 상의되지 않은 애드리브를 주고받는 건 제법 재밌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짧은 카메오 촬영은 마지막 장면만을 남겨두었다.

다음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면 문 앞에 남주가 서 있는 장면.

서로를 찾던 두 주인공은 길게 시선을 교환하며 둘만의 세상에 빠지고, 한이는 그 옆에서 ‘뭐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슬쩍 빠져나가면 되는 장면이었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 한이는 카메라를 가리지 않는 동선으로 화면을 빠져나가는 것만 신경 쓰면 되었다.

밖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장면을 촬영해야 했기에 한이와 진유선은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 대기했다.

제작진이 촬영 구도를 잡으며 조명을 세팅하는 사이 진유선이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촬영 많이 해 봤어요? 카메라에 잡히는 게 능숙하네요.”

처음에 자신이 한이를 붙잡는 컷을 찍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었다.

뛰어나게 연기할 필요도 없었고 다들 기대하지 않았건만, 자신이 붙잡아 당황하는 표정이나,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잘 잡힐 만한 구도로 움직여 서는 노련함.

한이가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처음 한 생각은 ‘오, 자연스럽네?’였다.

1~2분 정도로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제법 준비를 많이 해왔겠구나 싶었다.

‘최대한 맞춰서 하려고 했는데.’

드라마 촬영 현장이 처음인 사람은 대본에 없는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기 마련.

처음엔 부담감을 가질까 봐 미리 준비된 대본에 따라 최대한 순조롭게 촬영을 끝내려 했었다.

그런데 촬영 전에 대화해 보니 성격이 상당히 서글서글한 편인 것 같았고, 이 코미디 신 자체도 재미있었고.

왠지 장난기가 발동해서 애드리브를 내뱉었던 것이다.

“으음. 이런 촬영은 뮤직비디오 정도? 많이 다르긴 하지만요.”

“하긴 아이돌이면 카메라는 익숙하니까 긴장은 덜 될 수도 있겠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간 모노크롬은 활동이 제한적이어서 이런 촬영용 카메라에 익숙해질 새가 없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만큼 익숙해 보인다는 칭찬이었으니 한이도 그 점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더 긴 장면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주인공들한테 중요한 장면인데 제가 길게 나오면 안 되죠.”

“에이. 진지하게 갈 거면 처음부터 이런 장면 넣지도 않았어요.”

“두 분. 밖에서 신호하고 3초 후에 문 열릴 테니 준비해 주세요.”

“네.”

대화 중에 스태프가 지시 사항을 전하고 촬영을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두 사람만 남은 엘리베이터 안.

여주인공이 기자 역할이어서일까, 그녀는 계속 질문을 건넸다.

“대본 상관 않고, 한이 씨라면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아요?”

“으음.”

밖에서 스태프의 신호가 들려오고, 한이가 대답을 내놓기 전에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은 남주인공.

두 주인공은 눈이 마주치고, 말이 아닌 시선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한이는 느닷없이 시작된 로맨스에 눈치를 보다가 자신이 껴 있을 자리가 아닌 것을 알아채고 슬그머니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간다.

이것이 대본에 적혀 있던 지문이었다.

지문대로 두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한이는.

“(네 앞에서 하얘진 내 머릿속이~)”

이번에 부른 OST를 흥얼거리며 능청맞게 카메라 앵글 밖으로 빠져나갔다.

“……푸흡.”

여전히 카메라 앵글 안에 잡힌 진유선은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다가 못 참았는지 결국 웃음이 터졌다.

NG가 나자 김형운도 웃으면서 카메라를 뒤돌아봤다. 촬영장 전체에 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하하하! 아, 웃지 말걸. 지금 진짜 웃겼는데!”

“저 지금 누가 타이밍 맞춰서 OST 튼 줄 알았어요.”

두 주인공이 서로의 눈을 보고 처음 감정이 통하는 장면.

확실히 OST가 삽입될 만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앵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던 한이가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 다시 돌아왔다.

“이건 다시 찍어야 하죠?”

NG를 유발해서 미안하다는 표현으로 허리를 숙이고 눈썹을 찡긋거리며 PD에게 확인을 했다.

같이 웃던 PD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지금 것도 그대로 가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카메오 출연 신 같은 경우는 모르는 시청자가 보면 뜬금없는 내용도 약간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로맨틱 코미디라면 더욱 그랬고.

PD는 차라리 한이가 OST를 부른 가수임을 더 드러내는 게 낫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아예 이 부분에 OST를 이어서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까 그거, 조금 더 뻔뻔한 느낌으로 다시 갈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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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아침만나요 촬영목격짤떴는데

(이미지)

김형운 두명임 ㅇ0ㅇ

└도플갱어ㄷㄷ

└저화질 감안해도 왜 머리스타일까지 똑같냐ㅋㅋ 한명은 누구야?

└스턴트맨 아닐까?

└로코 실내촬영에 뭔 스턴트맨ㅋㅋㅋㅋㅋㅋ

└오른쪽이 찐형운 맞지?

└둘중에 한명은 나랑 결혼하면 되겠다

└쌉소리 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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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의 촬영은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 속에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나대로 모노크롬 앨범도 열심히 돌렸고.

‘오늘 스케줄은 대성공.’

나는 마이 엔터 대신 스케줄의 성공도를 혼자 자체 평가했다.

특별 출연이라 손님 대하듯이 우쭈쭈 해 주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스태프들의 평이 괜찮았다.

뮤직비디오 단독 샷을 찍을 때도 연기를 잘한다 싶었는데, 실제로 배우 사이에 있는 것을 봐도 딱히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PD님이 너 연기해도 잘할 것 같다더라. 한번 제대로 배워볼래?”

“글쎄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요새 아이돌들은 다양하게 활동하잖아.”

돌아가는 차 뒷좌석에 앉아있던 한이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괜히 아이돌이라서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요. 확실하게 잘하지 못할 거면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아이돌은 뭔가를 잘해도 아이돌이고 못해도 아이돌이다.

어떤 분야에 나서든 아이돌이니 못할 것이라는 편견 어린 시선과 아이돌이니 웬만큼은 잘해야 한다는 기대를 동시에 받고는 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잠깐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룹 활동에 지장 가는 건 별로기도 하고요.”

“그래?”

하긴 내가 가수 영역 밖의 개인 활동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그룹 활동만큼은 아닐 터.

내 목적은 아이돌 그룹인 모노크롬을 키우는 것이니까.

한이도 같은 생각인 것은 다행이지만, 가수 외 활동은 소심하게 지원해줄 수밖에 없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 활동이 인지도를 높이거나 그룹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가수가 아니라 아이돌 그룹이지 않은가.

멤버 다섯 명을 자로 잰 듯 균등하게 성장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

개개인의 역량을 하나하나 살리는 것도 그룹을 키우는 길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다인원 그룹을 이끄는 것은 여러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으음. 다른 활동엔 크게 욕심은 없는 거야?”

어느 쪽에 두각을 보여서 빵 터질지 모르는 일이니, 전부터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있나 궁금하여 꺼낸 질문이었다.

그룹을 우선하고 싶다는 말이, 이제야 겨우 받은 그룹 활동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른 활동은 포기해도 좋다는 뜻이라면 좀 안타까우니까.

‘애초에 내가 그룹 활동 기회를 다시 빼앗을 것도 아니고.’

다른 활동도 부수적으로라면 지원해 줄 수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면 하고 싶긴 한데, 최종적으로 뭔가 이루는 건 가수로서였으면 좋겠어요.”

메인 보컬인 만큼 가수로서의 꿈이 큰 걸까.

내가 걱정한 이유 때문은 아니고 나름대로 확고한 목표가 있는 모양이었다.

한이가 그 말을 끝낸 후 뒷자리에서는 잠시 들려오는 말이 없었다.

성격상 먼저 대화를 끝낼 한이가 아니었기에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근데 확실히 이 얼굴이면 배우 해도 꿀리진 않겠죠?”

“……거울 보고 있었니.”

왜 멤버들이 놀리는지 알겠다니까.

자기 입으로 ‘잘생겼죠, 잘생겼죠.’ 하니까 괜히 심술부리고 싶은 느낌.

뒤를 돌아보니 한이는 핸드폰 셀카 모드로 얼굴을 관찰하고 있었는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앞을 향했다.

“이 얼굴을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해요. 연기도 배워볼까요?”

“생각 있으면 말해.”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한이다워서 웃었다.

색다른 경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온 유쾌한 퇴근길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에, 마이 엔터에는 연기 레벨 항목이 생겨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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