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정말요? 몰랐어요.”
“특히 옆선이 닮았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하긴 내 기억에도 그 김형운이란 배우는 정석적인 배우상이었지. 한이도 처음부터 느꼈지만 딱 배우에 어울릴 만한 얼굴이고.
옆선이라는 소리에 한이는 곧바로 엄지와 검지로 V자를 만들어 콧대 옆에 가져다 댔다.
“닮았나요?”
“오오. 느낌 있다. 느낌 있어요.”
한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옆태를 자랑했다.
주연 배우를 닮았다는 이야기는 일단 잘생겼다는 평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
한이는 예전부터 외모에 대한 칭찬은 숨김없이 좋아하는 편이었다.
‘한이랑 거의 처음 일대일로 대화했던 게 자기는 안 잘생겼냐며 물어봤을 때였던가.’
프로필 사진 촬영 때였다.
그 이후로도 해랑 옆에서 비주얼 얘기를 꺼내는 것은 주로 한이였다.
굳이 그룹 내에서 비주얼 1위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도 얼굴이 잘난 것을 알아서 농담조로 꺼내는 식.
가진 자의 자신감, 이란 느낌?
한이가 이야기를 잘 받아주니 스태프도 신나서 멘트를 이어나갔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드라마 한 장면 따라잡기! 어떠신가요?”
“어떤 장면을요?”
촬영 현장이 아니라 녹음 현장이라 대본이 준비되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스태프는 이미 준비된 것이 있다는 듯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첫 주 방영분 클립 중에 가장 조회수가 많이 나온 영상이 이거거든요.”
그녀는 드라마 클립이 올라온 채널을 뒤적거리다가 한 영상을 찾아 화면에 띄웠다.
[파파라치를 피해 숨은 김형운. 진유선에게 “잠깐만…”]이라는 제목으로 올라간 클립 영상.
검색 유입을 위해서인지 배역 이름이 아닌 배우의 본명으로 제목을 적은 점이 특이했다.
유명 배우는 뭐가 달라도 다른지 그 2분 남짓한 짧은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45만 회.
“결벽에 가깝게 깨끗한 사생활에 집착하는 남주가 파파라치 눈을 피해서 여주랑 같이 숨는 장면이에요. 여주도 기자라 이때까지는 둘이 사이가 안 좋았거든요.”
스태프는 어떤 장면인지 간단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카메라 앞 의자에 앉아 있던 한이도 잠시 일어나 영상을 함께 확인했다.
영상 속에선 여주인공으로 보이는 배우가 남주인 김형운의 뒤를 투덜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짝사랑 10년 한 게 뭐가 그리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춘기 남학생이에요?]
[제발 좀 조용히 합시다, 김 기자님. 이상한 소문 나니까 따라오지도 마세요.]
[사진 지워준다니까 그러네. 새 플래그십 발표회 초대장 한 장만 주세요. 이거 그렇게 특혜 아니…….]
이때, 파파라치로 보이는 수상한 누군가를 발견한 남주인공은 급히 여주인공의 팔을 이끌고 옆의 비상구로 향했다.
“여기서 비상계단으로 피해서 벽에 탁! 얼굴이 바로 앞에 딱!”
스태프가 집어준 포인트대로 영상 속 남녀는 마주 본 상태로 벽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주의 한 마디.
[잠깐만 이렇게 있어.]
“허억.”
한이는 남의 부끄러운 애정신을 목격한 듯이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래서 조회수가 높았던 거군. 정통파 멜로 배우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이걸 제가 해요?”
“마지막 대사 한 마디만 부탁드릴게요!”
“으음. 상대 역할 해 주실 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혼자 하면 좀 이상하고 앞에 누군가가 있어야 사는 장면이었다.
카메라로 대체하는 방법도 있지만 역광으로 얼굴만 가까이 잡혀서 느낌이 잘 살지 않을 테니까.
한이는 상대역이 필요하다며 옆에 앉아서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구경하던 작곡가를 쳐다보았다.
한이가 무엇을 하든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흐뭇하게 쳐다보던 작곡가도 근육질에 가까운 몸을 가지고 여주인공 역할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지 바로 시선을 돌렸다.
외면당한 한이의 시선은 이번엔…… 그 옆에 있는 내게 향했다.
‘안 돼!’
안 그래도 컬러즈에게 내 이름을 들키는 바람에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한데.
일반인은 모자이크 해주겠지만 컬러즈도 볼 영상에 내 머리털 하나라도 나간다? 절대 안 될 일.
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두 번이나 거절당한 한이는 불쌍한 표정으로 이번엔 스태프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마음이 약해진 걸까. 스태프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어, 그럼 카메라 잡아주실 분이 필요한데…….”
“카메라는 제가 맡을게요.”
삼각대에 고정된 카메라 각도 맞추는 것쯤이야.
비하인드를 위해 가끔 촬영을 돕기도 했더니 간단한 카메라 조작은 단련되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태프가 카메라 앞으로 나가고 나는 두 사람을 앵글에 담았다.
한이가 모노크롬 멤버 중 해랑 다음으로 키가 큰 편이라 아담한 체구의 스태프는 그를 올려다봐야 했다.
“탁.”
영상에선 남주인공이 박력 있게 벽을 짚는 장면이었건만, 한이는 입으로 자체 효과음을 내는 것으로 대체했다.
여기까진 장난스러웠는데.
“잠깐만 이렇게 있어.”
“어, 어헉.”
한이의 멜로 눈빛을 정통으로 맞은 스태프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
한이의 OST 녹음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얼마 후.
그간 업무로는 전혀 엮인 적 없었던 배우팀에서 이례적으로 연락이 건너왔다.
“한이가? 드라마에?”
한이에게 카메오 출연 요청이 온 것.
이번에 OST 작업을 한 그 드라마, <매일 아침 만나요>에서 말이다.
“네. 드라마 촬영이라 배우팀으로 연락이 간 것 같습니다.”
하긴 드라마 제작사면 아티스트팀보다는 배우팀으로 연락하는 게 일반적일 테니까.
‘카메오 출연이라…….’
한이한테 연기를 시켜봐도 괜찮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기회가 알아서 굴러들어올 줄이야.
마침 모노크롬은 비활동기라 시간도 많고, 새 OST 홍보도 될 테니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회수 45만 회…….’
드라마 클립 영상 조회수 45만 회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많은 시청자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이 좋은 소식을 들고 한이를 찾아가니 더 놀란 것은 한이의 옆에 있던 재민이었다.
“형이 드라마에 나온다고?!”
“재민이가 드라마 자주 본다고 했었지?”
“네. 저 그 드라마도 챙겨 보고 있는데요.”
전에 예능 촬영 때 같은 게스트였던 김형운이 출연한 드라마도 재밌게 봤다더니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 무슨 역할로 나가는데요?”
“남주 닮은꼴.”
“그게 뭐예요?”
한이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자 재민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한이랑 배우 김형운 씨랑 닮았다고 인터넷에서 얘기가 돌았나 봐. 스태프분도 알고 계시더라고.”
“네가 보기엔 어때. 닮은 것 같아?”
한이는 녹음 현장 인터뷰 때와 똑같이 엄지와 검지를 쫙 펴고 옆선을 강조했다.
그의 얼굴을 대충 살펴보던 재민은 “모르겠어.” 하며 얼굴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재민의 관심은 오로지 다른 곳만을 향해 있었다.
“형, 드라마 나가라. 나 캡처할래.”
“내가 너 캡처하라고 나가야 되겠냐?”
한이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말했지만 이건 누가 생각해도 좋은 기회.
한이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의 카메오 출연이 곧바로 결정되었다.
***
카메오지만 첫 드라마 출연.
자세히 알고 가는 게 좋겠다 싶어 알아보니 드라마 제목인 <매일 아침 만나요>는 ‘매일 아침 (발행되는 신문 기사로) 만나요’라는 무서운 뜻을 함유하고 있었다.
여주인공이 기자란 점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연예계나 엔터 업계 종사자라면 식겁할 만한 제목.
‘아는 사람을 기사로 만나고 싶지 않아…….’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 혹은 주변인이 신문에 떠서 난리가 났다?
연예면일지 사회면일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그보다 머리가 차게 식는 경험이 있을까.
혼자 무서운 상상을 하며 멀리 나갔지만 이 드라마는 추리극이나 스릴러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
내 상상처럼 무서운 내용은 없었고, 장르를 따라가는지 촬영 현장도 화목했다.
“우리 막내 FD가 녹음실 다녀오더니 온종일 한이 씨 얘기만 하더라고요.”
“와. 그 눈을 직접 보셨어야 해요. 저 그러고 나서 모노크롬 영상도 찾아봤잖아요. 컬러즈 가입할까 봐요.”
“컬러즈 가입이라면 여기서……가 아니라, 예쁘게 봐주셨다니 정말 감사하네요.”
시선 하나로 생각 없던 사람도 입덕시키는 한이의 강력한 멜로 눈빛이란.
스마트폰을 꺼내 컬러즈 가입 페이지로 친절히 모셔드릴까 했으나, 촬영엔 관심 없고 영업만 하러 온 것처럼 보일까 봐 그만뒀다.
아마 정말 마음이 있다면 직접 찾아서 가입하지 않을까.
입덕이란 자기 발로 스스로 늪에 걸어 들어가는 재미도 있는 법이니까.
“뉴마 엔터테인먼트에 배우분들도 많이 계시던데. 혹시 가수들도 같이 연기 수업을 받고 그러나요?”
“아, 아니요.”
못 배웠어요. 우리 애는…….
이전에 받았던 죄책감 공격을 시간차를 두고 또 받게 되어서 양심이 욱신거렸다.
PD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 괜찮습니다. 한이 씨가 촬영할 부분이 크게 연기력이 필요한 부분도 아니고요.”
그의 말대로 한이가 촬영할 부분은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여주가 한이의 뒷모습을 보고 남주로 착각하여 따라가는 신. 짧게 들어가는 가벼운 장면이었다.
실제로 닮은꼴이란 이야기로 소소하게 제작진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어서 ‘그럼 혹시 이런 장면을 넣어보는 건 어때요?’ 하며 추가된 내용이라고 했다.
‘로코여서 할 수 있는 연출이겠지.’
한이가 촬영할 부분도 짧게 딱 세 장면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주에게 붙잡히는 장면, 엘리베이터에서 서먹하게 서 있는 장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장면. 끝.
닮아서 착각 받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한이는 촬영을 앞두고 헤어를 남자주인공과 비슷하게 수정하는 중이었다.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번 <최고의 팀메이트> 촬영 때 재민과 함께 있었던 나를 알아봤는지 주연을 맡은 김형운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에 재민 씨랑 같이 촬영장에 계셨던, 맞죠?”
“앗, 네!”
“저 재민 씨랑 윤환 씨 일 기사 보고 알았어요. 혹시 촬영 때 제가 이상한 소리 한 거 없던가요?”
그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미리 알았으면 ‘재민, 윤환과 같은 팀을 하고 싶다’고 해맑게 얘기했을까.
그러나 이건 오히려 이쪽에서 미안해해야 할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게스트들까지 같이 촬영했단 이유로 엮이게 했으니.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신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가 살아났는데요. 재민이가 이 드라마도 매주 잘 챙겨보고 있대요.”
“하아. 다행이다.”
그는 내 말을 듣고서야 안도했다는 웃음을 지었다.
앗, 지금인가. 영업 타임…….
“말 나온 김에 저희 얼마 전에 나온 앨범이 있는데…….”
나는 촬영을 기다리며 제작진에게 비매품 앨범을 뿌리고 다니는 중이었다.
내가 앨범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자 옆에서 밝은 목소리가 다가왔다.
“앗! 뭐예요? 혹시 제 것도 있어요?”
김형운과 함께 주연을 맡은 진유선이었다.
“물론이죠.”
“와! 잘 들을게요. 이번 OST 먼저 들어봤는데 노래 너무 좋던데요?”
이, 이 사람들 너무 친절해!
드라마 촬영 현장은 처음이라 이걸 뿌리고 다녀도 될지 고민이 되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드라마만큼이나 밝은 사람들이었다.
영업 활동에 성공하여 뿌듯해하고 있는데 마침 헤어 스타일링을 마친 한이가 이곳으로 다가왔다.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한이를 보고 진유선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형운 씨랑 진짜 닮았다!”
“한이 씨가 더 잘생겼죠.”
“에이. 저는 형님 따라가려면 멀었어요.”
얘는 또 언제 호칭이 형이 된 거야.
“혹시 사진 같이 찍어도 돼요?”
“제 폰으로도 찍어요! 너무 신기하다.”
한이가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하자 진유선이 자신의 핸드폰을 찾았다.
그녀의 매니저가 가방을 가져오고, 세 사람은 다닥다닥 붙어 각자의 핸드폰으로 한 번씩 셀카를 찍었다.
여주와 남주, 그리고 남주 닮은꼴.
특이한 쓰리샷의 탄생이었다.
***
첫 번째 촬영은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한이의 뒷모습을 보고 여주인공이 따라 타며 붙잡는 장면.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려는 타이밍에 본능적으로 그를 쫓아 붙잡았더니 엉뚱한 사람.
상대를 당장 만나고 싶은 그녀의 간절한 마음과 대비되어 더욱 어색해지는 장면이었다.
“아, 죄송해요. 아는 사람이랑 너무 닮아서…….”
“아, 네…….”
원래라면 여기서 서로 서먹하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는 것이 끝이었다.
서로 어색함을 연기하는 와중에, 진유선이 대본에 없던 애드리브를 내뱉었다.
“저, 그…… 연예인 닮으셨어요. 아이돌 그룹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