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내가 지른 이상한 소리가 이사실 밖으로 흘러나갔는지 몇 초 후 문 너머에서 최 비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님? 괜찮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마.”
요즈음 계속 기분도 오락가락하고 피곤한 모습을 보였으니 신경이 쓰일 만도 했다.
다만 최 비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기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나한텐 아무것이 맞았지만.
‘설마 내 이름이 같이 적힐 줄은 몰랐는데!’
내가 이곳에 와서 하는 일은 대개 처음 하는 일이어서 상상도 못 했다.
이렇게 스태프 이름이 다 적히는 줄도 몰랐고, 내가 스타일링에 참여했다고 스타일리스트에 이름이 오를 줄도 몰랐고.
잡지 발매일이 마침 이 시기라 다행이라고 생각했건만, ‘마침’이 아니라 ‘하필’이 되어버렸다.
하필 이 시기에! 뉴마가 가장 욕먹을 시기에 하필 내 이름이!
‘아니, 잊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거야?!’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내가 피한다고 이미 올라온 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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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예전에 그 ㅈㅇㄴ 이건가?
(이미지)
멘즈서클 나노단위로 핥다가 발견했는데 혹시 이건가 하고.
솔직히 회사보고 ㅈㅇㄴ이라고 부르는거 개오바잖어
차라리 사람 이름이면 안심;;
└회사 소속 스타일리스트분이야?
└아 그래서 의상 얘기할때 말했구나
└솔직히 그때 애들 회사에 갑질 당하는 줄 알고 속상했는데 ㅠㅠ 진짜 그냥 이름 그렇게 부른 거면 좋겠다..
└ㅋㅋ성함 절케 장난쳐서 부르느라 말하다 만 거였음? 장꾸들 ㄱㅇㅇㅜ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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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졸이며 확인한 글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나는 긴장하느라 참았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휴우…….”
현재 컬러즈는 스타일리스트에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행히 스타일리스트로 적힌 덕분에 모노크롬 책임자라는 내 정체를 완전히 들키지는 않을 수 있었다.
아마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대충 넘어간 탓에 컬러즈도 잊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 이름이 다시 언급된 이상 차라리 이렇게 끝맺음하고 지나가는 게 나은 거겠지?
방심하다가 갑자기 내 이름이 튀어나와서 많이 놀라긴 했지만 내게는 오히려 이게 더 좋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넘어가는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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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 늘어지는거면 미안. 그 ㅈㅇㄴ 있잖아
혹시 이 사람 아냐?
(이미지)
어디서 본 것 같길래 생각나서 찾아보니까 여긴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총괄프로듀서인데?
└뭐 저렇게 개미글씨로 넣어놨대 돋보기라도 넣어주던가
└총괄프로듀서 원래 신대표 아니었음? 데뷔초 앨범 신대표 이름 들어가서 ㅈㄴ 아니꼬웠던 기억나는데
└저 사람은 언제부터 이름 들어가 있었는데?
└몰러 우리 실물앨범 몇년만에 나왔잖아..올해 나온건 다 저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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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헉.”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이번엔 다행히 이성을 부여잡고 괴성을 지르는 것까지는 참아낼 수 있었다.
모노크롬은 작년까지 디지털 싱글 위주로 노래를 내 왔다.
온라인 음원만 발매하는 것이었기에 물론 CD도 없고 포토북이나 북클릿도 없다.
굳이 넣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보통 음원 사이트 곡 정보란에 작사, 작곡, 편곡 담당의 이름이 적히는 게 끝이었다.
그러나 내가 담당하고 다시 실물 앨범을 내기 시작한 모노크롬.
앨범마다 들어간 북클릿엔 참여한 스태프진의 이름이 전부 들어가 있었다. 물론 총괄 프로듀서인 내 이름도.
컬러즈는 그것을 발굴해낸 것이다.
‘이런 것까진 안 보겠지 싶어서 일부러 보험 광고 약관처럼 깨알같이 넣은 건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하긴 발목만 보고 누군지 맞추는 사람들인데 이런 세세한 정보도 분명 누군가는 봤겠지.
<멘즈 서클>처럼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이 올라갔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총괄 프로듀서는 원래 대표의 이름이 있던 자리.
컬러즈들은 그곳을 대신 차지한 ‘신주인’이란 이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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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본명이 주인이라고?
└ㄴㄴ대표는 이름이 대표임 daepyo 걍 다른사람이야
└이름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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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신씨지
뉴마 가졷회사였냐?
└김이박도 아니고 신씨면 아무래도 의심가지,, 가족 아니래도 대표랑 관련있을 가능성 80% 이상이라고 본다
└ㅉㅉ놀랍지도 않음 구멍가게 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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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김에 성씨까지 설정해 주지!’
심장 부근에 손을 대니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내 이름을 보고 대표와 내 관계를 추측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심장에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대표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 곧바로 비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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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표가 문제일지도ㅇㅇ
아마 대표 해외 나가느라 이름 빠진 것 같은데 사라지자마자 앨범 제대로 나오는 거 보셈
모든 원흉은 대표였던 거임
└ㅇㅈ
└원래 아랫사람이 열심히 해도 윗사람이 다 말아먹는 거
└이참에 대표 퇴사해
└대표 백수여도 이름 대표인거 웃기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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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마가 멤버 방패를 쓴다느니 하는 말이 있었지만 내게 가장 강력한 방패는 역시 대표 방패였다.
일단 컬러즈의 공공의 적은 신 대표였으니 가족회사 소리를 듣는 것도 전부 대표의 잘못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컬러즈가 대표 욕을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치 일상처럼 ‘대표 퇴사해’로 마무리하며 끝나가는 흐름.
‘이, 이렇게 지나가는 거 맞나……?’
멤버들 인터뷰 덕에 컬러즈도 진정했고 욕은 대표가 대신 먹고.
다시 대두된 ‘주인님 사건’은 약간의 찝찝함을 남기고 일단은 무탈하게 넘어갔다.
***
재민이 윤환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멤버들은 깜짝 놀랐다.
다만 동시에 듣게 된 해랑의 동생 출몰이 워낙 긴급 사태였기에 촬영 이야기는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한 번 놓치고 나니 다시 꺼낼 기회가 없었다.
애초에 재민 앞에서 윤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상한데, 재민에게 직접 윤환에 대해 물을 용기가 안 나서.
멤버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예고편으로 재민과 윤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윤환을 본 것이 계약 해지 때.
모노크롬에서 독립한 그를 보는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예고편이 뜬 이후로 일주일간 모노크롬은 또다시 두 건의 멤버 탈퇴 사실과 엮여서 언급되었다.
그룹에 소속되어 있던 누군가가 좋지 않은 일로 탈퇴했다는 것. 굳이 감추고 싶은 일은 아니었지만 들춰내지는 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가장 속이 시끄러울 것은 팬들이었다.
팬들이 시끄러워질 때면 자신들은 신중하게,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어야 했고.
그렇게 답답한 상황 속,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방송일이 찾아왔다.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그래서 안 본다고?”
“……보긴 봐야지.”
우형을 제외한 멤버들은 이미 거실에 모여있었다.
모노크롬 멤버로서 볼 수밖에 없는 방송이라 차라리 다 같이 보자고 이야기가 나왔던 참이었다.
이 일주일간 방송을 가장 걱정하던 우형이 방에서 나오지 않고 미적거리자 준해가 그를 끌어냈다.
멤버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리더였지만, 그런 리더가 삽질을 하려 할 때 끌어올리는 것은 대개 막내가 담당할 때가 많았다.
우형이 멤버들 옆에 앉으며 재민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아. 너 진짜 촬영 무사히 끝낸 거 맞지?”
“어떻게 나올진 몰라도 난 나름 잘한 것 같은데.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닐 거라니까.”
자기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는 것치고 태평한 대답이었지만, 촬영 자체만 따지자면 재민은 만족스러웠다.
윤환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차라리 직면하고 나니 마음속에 남아 있던 복잡한 감정 하나가 해결된 기분.
그러나 그 촬영분을 어떻게 편집할지는 제작진의 재량이었으니, 걱정하기보다는 실제로 직접 보는 것이 빨랐다.
[최고의 팀메이트! 오늘도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TV에서 MC의 오프닝 멘트가 흘러나오고 게스트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바로 앞에 있는 재민과,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함께 지내던 윤환이 한 화면에 잡히고, 그걸 다 같이 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앞 순서였던 윤환은 짧게 신곡을 부르며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소개했다.
윤환은 이번 주에 컴백하여 막 활동을 시작한 참이었다.
그것을 TV로 접하는 자신들. 단절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 형운 씨는 재민 씨, 윤환 씨와 함께하고 싶다?]
[제가 몸치라서요.]
팀 배정을 앞두고 이런 토크가 이어질 때는 준해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재민이 공을 뽑으며 윤환과 결국 한 팀이 되었을 땐 멤버들의 시선이 재민에게 모여들었다.
같이 촬영을 했다고만 들었지, 같은 팀이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한 우형이 식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야! 너 이런 얘기는 안 해줬잖아……!”
“스포까지 해달라곤 안 했잖아.”
스포라니. 진짜 예능 보듯이 보려고 모인 것으로 알고 있나.
그 누구보다 예능을 다큐로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재민은 달랐던 모양이다.
[제가…… 얼마 전에 편의점 먹방을 했거든요!]
“으이그, 진짜!” 하며 재민의 목덜미를 잡던 우형은 이 멘트를 듣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우형만 저 사이 공백에 담긴 속뜻을 바로 알아챘다. 재민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본 것은 멤버 중에선 자신밖에 없었으니.
그때를 떠올리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우형은 재민을 바로 놓아주었다.
곧이어 화면 속에서 윤환이 커피 우유를 집어 들자 한이뿐만 아니라 멤버들은 전부 말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모노크롬 멤버만은 알 수 있는 요소.
화면 속 재민이 멤버들 대신 그에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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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bom_seo: #최고의_팀메이트 #1위
팀워크가 너무 좋았던 #서다봄 과 #양날개팀 쓰리샷><
누나가 밥 한번 사줄게!
└yoonhwan: 한우에 와인 먹어요
└jem.in: 편의점 와인으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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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원래 친분 있었나?
나 사실 초반만 해도 방송국 욕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어… 음… 생각보다 잘봤어…
└니맘내맘.. 의외로 재미있어서 뒤엔 조금 맘놓고 봤다..ㅠㅠ..
└222.. 나 되게 걱정했는데.. 애들 알아서 잘하는데 왜 걱정했지ㅠㅠ재미니 잘했다
└다봄언니도 잘해주셔서 넘 감사하다ㅜㅜㅜ..당신은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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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팀메이트> 방송 당일.
방송 시간이 되기 전까지 [ㅅX QBS 불매한다 난 안 볼란다]와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사려야 하냐 보고 당당하게 욕하자]로 종일 공방을 펼치던 컬러즈.
방송이 시작되고 잠시 소강상태더니, 하나둘씩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 글은 의외로 방송 내용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었다.
분량도 괜찮았고, 게임도 불편한 것 없이 재미있게 잘 진행되었고.
무엇보다 재민과 윤환의 팀워크가 제법 뛰어났다.
아무도 예상 못 한 평화로운 그림에, 시청률을 위해 자극만 쫓는다며 방송국을 비난하던 여론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물론 게스트 구성 자체는 논란을 부르는 구성이었기에 자극적인 요소를 기대하고 보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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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 ㅈㄴ하길래 궁금해서 봤더니 별거없네
어그로 끌다말아서 좀 실망ㅋ
└응 너같은 애들 취향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럼 뭐 치고박고 싸울줄 알앗냐?ㅋㅋ수준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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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그게 중요한 거였다.
컬러즈는 한때 멤버였던 윤환을 보니 조금 애달픈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마 TV로 윤환을 지켜보는 멤버들과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원래 컬러즈가 모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윤환의 이름은 암묵적인 언급 금지 단어가 되어 있었다. 윤환 팬덤이 모인 곳도 모노크롬과 컬러즈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 서로 눈치가 보여 말은 못 하고 있었지만 내심 양쪽을 응원하는 팬도 꽤 있었다.
그리고 방송을 보고 이런 이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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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실 윤환이 팬인데
방송 보고 생각이 많아져서 오랜만에 들어왔어..
윤환이 모노크롬일 때 같이 모여서 소통 잘해줘서 좋았거든
어쩌다 갈라지긴 했지만 뉴마가 일을 거지같이 해서 그렇지 멤버들 잘못도 아니고..
윤환이 오디션프로때 팬 된거라 사실 그룹으로 데뷔하는 거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멤버들한테도 정 많이 들었었나봐..
최근에 몬클 활동 하는 거 뜨면 보고 그랬는데 보기 좋더라.
앞으로 윤환이도 몬클도 따로 응원하려고
혹시 이런 글 남기는 거 별로면 지울게
└무슨 마음인지 이해함 글 안 지워도 될 것 같아
└전멤버라고 기를 쓰고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그랬는데 둘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거 보니까,,,난 그냥 편하게 생각하려고ㅠ
└222 다들 그룹이랑 팬들한테 진심이었어서 뭐라 할 생각 없다 나는ㅠㅠ
└윤환이 음색 좋아했어서 이번 솔로 앨범도 샀는데 다들 그냥 잘됐으면 좋겠다
└ㅠㅠ가끔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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