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병원이란 곳은 약한 마음이 침투하기 쉬운 곳이었다.
그의 부모님도 그걸 알기에, 침울한 분위기인 병실 밖에서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오란 의미로 해랑에게 매점 심부름을 맡긴 참이었다.
매점에 다녀와 다시 병실로 돌아온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침상에 앉아있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깨어났나 보다. 안도의 미소를 지으려던 순간.
[형이 날 밀었어.]
해랑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일순간 얼음물을 쏟아부은 듯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꽂힌 가족들의 시선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분명 ‘그런’ 시선은 아니었을 텐데.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손에 식은땀이 났다.
부모님은 당황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한 동생을 달래기 시작했다.
[연찬이가 오래 자느라 꿈을 꿨나 봐.]
연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팔을 뻗어 엄마에게 안겼다.
품에 파묻힌 그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내가 형한테 떼써서 그랬나 봐. 형이 자꾸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아니야, 연찬아. 물가라 미끄러워서 형이 손을 잘못 놓친 거야.]
엄마는 연찬의 등을 도닥이며 그를 달래주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 상황에서 제가 그런 게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었겠는가.
자신이 동생을 놓친 것은 사실이고 동생은 자신을 무서워하고 있는데.
밤늦은 시간이었고 해랑까지 밤새 병원에 붙어 있을 필요는 없었기에 부모님은 해랑을 먼저 집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연찬이 엄마를 놔주지 않았기에 그는 아버지와 단둘이 집으로 돌아왔다.
[연찬이 일어났으니까 이제 괜찮아. 그런데 놀라서 조금 더 병원에 있어야 한대.]
아버지는 같이 놀랐을 해랑을 안심시키며 자상하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버지는 그가 잠자리에 드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병원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아직도 얼굴에 걱정이 역력한 그를 보며 해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어린 동생이었다.
열셋이었으니 혼자 자는 것이야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러나 해랑이 혼자 남은 집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리라고는 부모님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나 안 그랬는데…….’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들었던 그 말과 그 분위기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항상 잘 따르던 동생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엄마의 말대로 의식이 없던 동안 나쁜 꿈을 꾼 걸지도.
‘……그런데 연찬이의 거짓말도 아니고 꿈도 아니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완전한 가족에 끼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그런 말을 꺼낸 동생에게 내심 미운 감정을 품었던 거라면.
해랑은 자신의 기억조차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재혼한 가정에서 갑자기 생긴 동생을 질투하는 첫째.
그런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드는 순간 이전처럼은 돌아가지 못했다.
물론 그의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아니다. 해랑 본인이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해랑의 마음속엔 근거가 없는 죄책감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먼저 말을 걸어준 것은 동생이었다.
동생이 이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의 걱정도 사라지고 가족 분위기는 다시 화목해졌다.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왔지만 자신만이 마음속 불편함이 조금 남아있는 상태였다.
‘……내가 이상한 거겠지.’
그래서 해랑은 더욱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필이면 정체성이 완성되어가야 할 시기에 겪은 일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말수가 적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휘몰아치는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서.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했다. 책 읽듯이 흐름을 따라가며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성격이 정착되어가던 어느 날, 중학생이 된 그는 교문 앞에서 대형 소속사의 캐스팅 매니저에게 명함을 받았다.
***
나는 그가 한숨을 섞어가며 천천히 얘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가 이런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근간에는 생각보다 뿌리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듯 보였다.
해랑은 자신이 한 기억도 없는 일로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려 십 년이 넘도록. 살아온 일생의 반을.
“……그래서 집을 나오려고 연습생이 되었다고?”
연습생 숙소는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었지만, 해랑이 원래 속해 있던 에이펙트 엔터테인먼트는 대형 소속사답게 숙소를 제공했던 모양이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음악은 취미로 듣는 정도였고 아이돌을 원래 꿈꾸던 것도 아닌 듯한데 그런 이유로 집을 나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생은 부모님한테 잘하고 저는 그러지 못해서요.”
“그게 왜 집을 나올 이유가 돼?”
“……그러면 아무 문제 없는 화목한 가족이 되는 것 같아서.”
자기만 없으면.
나는 밀려오는 참담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방해물 취급하는 데 진심이었고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누군가에겐 가장 편안한 가족이라는 존재가 그에겐 가장 불편한 존재였다.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시밭길이었던 아이돌 활동이 그나마 도피처였다니…….’
그런데 어릴 때야 이해하겠는데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동생한테 매여있는 이유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그 부분을 물어보니 그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데, 그 사고 때문에 폐가 좀 약해요.”
“…….”
첩첩산중. 바로 이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닐까.
연찬이 노래 쪽으로 꿈을 꿀수록 해랑은 더 죄책감을 느끼는 악순환이었다.
해랑은 동생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이 얘기하지만, 멤버들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연찬은 아마 해랑이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을 콕 집어 언급하며 계속 상기시켜왔던 게 아닐까.
‘음……. 준해가 또라이라고 부르는 게 무슨 느낌인지는 이해했어.’
남의 가족 이야기에 말을 얹는 건 예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이 문제로 힘들어 왔던 해랑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힘들어할 것 같았다.
그를 좀 더 생각하는 그의 주변인 또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숨을 크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아빠랑 안 보고 산 지 오래됐거든.”
“대표님이요?”
“……아니, 뭐. 일단 들어.”
아. 지금 나 대표 딸이란 설정이지.
지금 그 ‘신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굳이 해명해야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자.
지금껏 지켜본 결과 대표의 가족 관계나 나에 관해서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 크게 위화감이 들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남들에겐 좋은 사람이었는데 가족한테는 아니었어. 아마 가족이라 가식 떨 필요가 없어서 그랬거나……. 아니, 뭐가 문제인진 몰라도 그 사람한텐 가족이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사람이었던 거지.”
굳이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해랑이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해 줘서 조금 더 쉽게 꺼낼 수 있었다.
지금도 힘들어하면서 말하는 해랑과 달리 지금의 나한테는 그냥 지나간 일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예 따로따로 살게 되었는데, 그게 서로한테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나쁘게 대할 상대가 없어지니까 그냥 평균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살더라고.”
처음엔 가족과 절연한다는 게 심적으로 조금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되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같이 있는 게 힘들고 서로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으면 굳이 붙잡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
인생 선배라고 할 만큼 오래 산 것도 아닌데 자꾸 정답을 찾으라고 강요한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말을 덧붙였다.
“꼭 그러라는 건 아니고. 너무 매여있지 않는 방법도 있단 소리야.”
반평생을 자처해서 매여있던 그에게 와 닿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조금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나는 그렇게 넘어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애초에 길게 얘기하러 왔던 것은 아니라 나는 대화를 그 정도로 마무리하고 작업실을 나섰다.
나오면서 슬쩍 본 해랑은 내가 들어올 때처럼 여전히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도 해랑은 여전히 작업실에 박혀있었다.
‘나도 당장 해결되길 바라고 말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다시 숙소에 틀어박히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시간이 필요하면 안 나와도 된다고 내가 말해놓고는 내심 그러지 않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와 다시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믹스테이프. 내 보고 싶어서요.”
한 달 휴가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두 달? 하며 손에 땀을 쥐고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그 말에 벌떡 일어났다.
“가, 갑자기? 아니, 나야 좋지만. 정말로?”
믹스테이프는 한동안은 물 건너갔다며 혼자서 체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희소식인가.
해랑은 여전히 냉한 표정 그대로였기에 더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설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하고 바로 몇 초 전의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위로가 된다고 하신 말이 기억나서.”
여전히 전보다는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그 눈동자에는 감정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조금 다른 이채가 감도는 것도 같았다.
“제 이야기도 위로가 될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과거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딱 한 발짝.
단 한 발짝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또 우리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밝게 인사하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그였다. 박연찬.
그는 회사에서 자신을 마주칠 때마다 이상하게 호의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윤환은 불편한 마음이 앞섰기에 적당히 인사를 받아치며 바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를 피해 녹음실로 향하며 윤환은 그와 처음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을 바로 알아보기에 TV로 봐서 아는 줄 알았더니 그는 스스로를 해랑의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생각지도 못한 정체에 윤환은 눈을 크게 떴다.
[너……!]
연찬은 윤환이 자신을 알아보자 곧바로 웃는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형이 제 얘기 했어요?]
[……아니.]
오히려 말을 안 해서 문제였지.
연찬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해랑도 모르게 뉴레인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많은 소속사 중에 뉴레인에 들어온 의도가 의심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 나오신 오디션 프로그램도 봤어요. 멋있더라고요. 저도 보컬 지망이거든요.]
그는 다른 연습생과는 달랐다.
연습생으로 들어왔다면 데뷔를 꿈꿔서일 텐데, 데뷔에는 큰 미련이 없거나, 혹은 별 걱정이 없는 듯한 여유로운 분위기.
나이가 많이 어린 편도 아니고 곧바로 데뷔해도 될 나이일 텐데 말이다.
‘……새로 보이그룹을 만들 생각인가?’
뉴레인에는 걸그룹인 아이리스가 있으니, 만약 새로 그룹을 만든다면 이번엔 보이그룹일 가능성이 더 크긴 했다.
그러나 윤환은 컴백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기획실 직원이 아니니 그런 자세한 얘기까진 알지 못했다.
[탈퇴하고 첫 앨범 준비 중이시죠?]
연찬은 남들이 잘 건드리지 않는 부분을 아무렇게나 건드렸다.
모노크롬 멤버의 동생이니 남들보다 가볍게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연찬의 말은 그 정도 뉘앙스로 들리지는 않았다.
[보컬은 꼭 그룹 아니더라도, 솔로도 좋은 것 같아요.]
[……난 녹음 있어서.]
윤환은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그 짧은 첫 만남으로도 그가 어떤 타입인지 대략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마주치기가 꺼려져서 그를 포함한 연습생들과는 웬만하면 겹치지 않는 동선으로 이동해 다녔다.
다만 관심을 아예 거둔 것은 아니었다.
[윤환: 이번달 연습생 단체연습 평일 오후6~10시]
[재민: 확인.]
[재민: ㄳㄳ.]
한때는 함께 지내던 멤버였지만 지금은 외부인.
걱정되어도 수단도 없고 염치도 없어서 묻지 못했는데 그나마 통로가 하나 생겼다.
똑같이 외부인이었던 경험이 있는 재민이었기에 그에게 더 흔쾌히 연락처를 준 것일 수도 있었다.
윤환의 메시지를 받은 재민은 안도한 표정으로 우형에게 말했다.
“우리 퇴근길 포지션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 시간에 뉴레인 연습생 연습 시간이래.”
“네가 뉴레인 연습생 스케줄을 어떻게 알아?”
재민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슬쩍 웃었다.
“다 아는 방법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