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아나. 숨 막혀서 못 있겠다.”
방에 있던 한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거실로 나왔다.
재민이 숙소로 돌아오고 방 배치가 바뀌어서 해랑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을 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방심했다.
해랑이 동생 문제로 멘탈이 박살나는 일이 한동안 없던 터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탓에.
그런 이유로 해랑과 룸메이트를 하기 싫다고 할 건 아니었지만.
‘아니지. 좀 고민은 했겠지.’
요 며칠간, 해랑은 침대에 기대 누워서 자는 건지 안 자는 건지 모를 정도로 미동도 하지 않고 내내 헤드폰을 낀 채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니면 가끔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심각하게 앉아있기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로봇, 아니면 동상 같았다.
‘무슨 ‘생각하는 사람’이냐고.’
팬들이 하는 말처럼 그대로 미술관에 옮겨두면 사람들이 조각상이라고 착각하지 않을까.
하루 이틀이면 참겠는데 며칠이나 이어지니 그렇게라도 방에서 내쫓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해랑이 저러는 것은 연습생 때부터 유구하게도 이어져 왔다.
한이로서는 그가 저렇게 혼자 끙끙 싸매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 동생이 내 동생이었으면 진즉에 가만 안 뒀다고.’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동생이 행패를 부리는 걸 봐주고만 있는지.
그게 몇 년 동안이나 이어졌으니 당장에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한숨만 푹 쉬었다.
“준해! 오늘도 신세 좀 지자.”
“나야 뭐 상관없지…….”
한이는 도저히 그 방 안의 분위기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요 며칠은 준해의 방에 가서 자기도 했다.
원래 매니저도 함께 지내던 방이기에 침대가 하나 더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침 준해도 시험이 끝났고.
그런데 방에 있기 싫다고 방에 있던 개인 물품들을 전부 꺼내올 수도 없는 노릇.
남의 방에 얹혀 지내는 것보다야 자기 방이 편하겠지 해서 돌아갔다가 가시방석 같은 분위기에 다시 나오길 반복했다.
“형은 저걸 어떻게 견뎠대?”
“견디긴 뭘 견뎌.”
이쯤 되니 한이는 우형이 존경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모노크롬 숙소가 생겼을 때부터 얼마 전까지 해랑과 같은 방을 썼던 건 우형이었으니까.
그라고 딱히 별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해랑이 스스로 멘탈을 추스르고 괜찮아지기를 바랄 뿐.
그러나 예전 같으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앞으로 계속 저러면 어떡하냐.”
“…….”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바로 회사 옆에 있었으니까. 그것도 몇 번이나 더 터질지 모르는 고약한 폭탄이.
한이가 그 걱정을 입 밖으로 꺼냈으나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우형은 가라앉은 거실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이제 좀 모노크롬이 제대로 균형을 잡고 일어서기 시작했는데.
“하아…….”
그렇게 모노크롬 숙소에는 한동안 한숨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나는 작업실 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안쪽을 흘끔 살펴보았다.
해랑도 언제까지고 틀어박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오늘은 회사로 출근한 상태였다.
틀어박힌 지 닷새 만의 출근. 그러나 회사에 나와서는 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멤버들을 포함해 사정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봤다.
혹시라도 잘못 건드렸다가 더 상태가 안 좋아질까 봐.
‘잘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해랑은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반응이 느렸다.
“잠깐 괜찮아?”
“……네.”
연찬을 만나고 며칠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그 폐쇄 성향이라는 게 어떤 건지 이해가 갔다.
평소처럼 무덤덤한 게 아니라 무감정한 눈.
나는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작업 중?”
“네.”
모니터엔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아이콘과 그래프 같은 것들이 띄워져 있었다.
이 와중에 작곡이라니.
지금 보니, 해랑의 자작곡이 그렇게 어두운 것투성이였던 이유가…….
‘가장 잘 아는 감정이라서……?’
가족 얘기는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이었으니, 그간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나마 혼자서 풀어낸 게 아닐까.
말하자면 그의 일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일기를 굳이 들추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어둠 속에서 그나마 안심된다는 그의 자작곡 가사. 그 속에 담긴 심정을 이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작곡 경험치가 그만큼 쌓일 정도로 써왔으면 얼마나 혼자서 버틴 거야.’
그 어두운 감정이 어떤 의미로 그에겐 영감이 되었던 듯하지만, 이런 걸 영감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내가 상황을 둘러보느라 말이 없어도 해랑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온 것을 잊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전히 문밖에서 본 포즈 그대로였다.
내가 굳이 남들은 안 건드리려고 하는 해랑을 찾아온 건……. 별 건 아니고.
“아무도 모르는 얘기인데 나도 2주 정도, 아무 데도 안 나가고 혼자 집에 있어 본 적이 있거든.”
감정이 사라진 듯한 그의 눈에서 오히려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의 나도 비슷했으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었다.
내가 말을 하기 시작했음에도 해랑은 모니터를 응시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듣고 있는 거겠지?
“불도 안 켜고, 밥도 잘 안 먹고,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내가 날 더 힘든 상황에 몰아넣었지. 분명 힘들어서 쉰 건데.”
회사에 다닐 때.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할 적 이야기였다.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놓고는 그 기간 동안 마치 스스로 벌을 주는 것처럼 나를 더 혹사하며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잘 먹고 잘 쉬고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때는 그게 거짓 감정이라고 느꼈던 것 같았다. 날 향한 가식이라고.
“그러고 다시 나왔는데. 날 힘들게 만든 세상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으니까 허무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더라.”
내가 이렇게 힘들게 지냈으니 세상이 내 고통을 알아보고 알아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소망이 있었을지도.
물론 그런 비현실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랑은 여전히 가만히 앉아 듣기만 했다.
“내가 갑자기 이런 얘기 왜 하나 싶지?”
“…….”
“그냥. 가끔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 들 때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위로가 되더라고.”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진 건, 책이나 인터넷 같은 매체로 비슷한 경험담을 발견했을 때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런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하는구나. 뭐 그런.
“그래도 내 속마음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미련하게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차라리 질릴 정도로 자기연민에 빠져있으니까 내가 왜 이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칩거를 그만둘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시간 없이 똑같은 일상 루틴만 반복했으면 어쩌면 더 큰 부작용이 찾아왔을지도 몰랐다.
내가 그렇게 살아본 게 아니니까 정말 그랬을지는 나야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결론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면 무리해서 회사에 안 나와도 돼.”
2년. 아니 이제는 약 1년 반?
내겐 시한부 같은 회사 생활이지만 며칠이라면야 너그럽게 양해해줄 수 있었다.
주 단위로 넘어가면 그땐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
그래도 알아서 나올 마음을 먹는 게 가장 좋은 거지, 억지로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런 계산적인 생각을 하면서 위로하러 온 건 좀 미안하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완전히 이타적일 수는 없었다. 나도 살아야지…….
따지고 보면 해랑은 이기적이지 못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자신의 감정을 더 중요시했으면 이렇게 혼자 감당하려고 하진 않았을 텐데.
“너도. 너만 너무 힘든 것 같으면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냥 내 생각이야.”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어서 애초에 길게 얘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만 얘기하고 일어나려는데, 이번엔 내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해랑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러면 안 돼요.”
“……왜? 형이라서?”
나는 그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의자에 몸의 중심을 실었다.
해랑은 말할지 말지 고민되는 듯이 머뭇거렸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리고,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가.
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릴 때, 연찬이가 저 때문에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뭐?”
해랑은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주한 얼굴이었다.
그와 동생의 어긋난 사이. 그 근본이 되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해서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
어머니와 둘이 살던 해랑. 아버지와 둘이 살던 연찬.
두 사람은 부모님의 재혼으로 형제가 된 사이였다.
당시 해랑의 나이 열셋. 연찬은 그보다 네 살이 더 어렸다.
완전히 어린 나이도 아니고, 학교에 들어가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기도 하며 독립적인 인격이 형성된 시기.
그런 두 사람에게 갑자기 새 가족이 생겼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두 사람은 제법 잘 지냈고, 부모님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크게 안심했다.
어린 동생은 해랑을 잘 따랐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가족이었다가 의붓형제가 되었다는 것. 이것은 어린 동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해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난 아빠랑 성이 똑같은데 형은 왜 달라?]
[……나는 엄마랑 왔으니까.]
자신에겐 다른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동생에게 얘기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연찬은 그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친구들한테 얘기하니까 이상하대. 형이 이름 바꾸면 안 돼?]
물론 열 살도 안 되는 연찬보다야 키도 크고 학년도 높았지만 당시 해랑도 중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한 나이였다.
법적으로 성씨를 바꿀 수 있는지까지는 몰랐기에 바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항상 예쁜 이름이라며 좋아해 줬고.
그리고 더 어렸을 때의 일이라 이미 흐릿해져 버렸지만, 그에게 ‘백’ 씨를 물려준 친아버지와의 기억은 분명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연찬은 어린 마음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둘이 있을 때면 그 얘기를 꺼내곤 했다.
하루는 가족끼리 계곡으로 놀러 갔을 때였다.
부모님이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두 아들은 물놀이를 즐기러 나와 있었다.
열셋이면 동생 정도는 책임질 수 있는 나이였으니 부모님도 안심하고 연찬을 해랑에게 맡겼다.
[우리는 진짜 형제가 아니래.]
[누가 그래?]
[담임선생님이.]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했으면 ‘친구들이 잘 몰라서 그런 거야.’라며 넘길 수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어른인 선생님이 그랬다면 해랑도 할 말이 없었다.
[형은 아빠 아들이 아니래.]
[아니야. 가족이잖아.]
[그러면 이름 바꾸면 안 돼? 형만 바꾸면 되잖아.]
형만.
가족들 사이에서 자신만이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연찬은 습관처럼 해랑의 팔에 매달렸고, 하필이면 발을 디디기 좋지 않은 장소였다.
그의 동생은 물에 빠졌고 곧이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고 부모님이 울며 구급차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고 연찬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때 자신은 뭘 하고 있었던가. 너무 놀라서 그 당시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병원에서 하루 만에 깨어난 동생은 부모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이 날 밀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