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예상치도 못하게 두 사람의 가정사를 마주한 나는 적절한 리액션을 찾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이야기하니까 그 괴리감 때문에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머릿속에서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걸 처음 본 나한테 말해……?’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슨 반응을 해야 하지.
여전히 웃는 얼굴인 연찬과 달리, 해랑은 별로 알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는지 미간이 좁아졌다.
나라도 남한테 이런 말 가볍게 들려주고 싶진 않겠어.
해랑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오히려 연찬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까 내 뒤를 쳐다보다가 말하던데.
‘설마 일부러 해랑이 오는 거 보고 들으라고 말한 건가.’
아니겠지, 설마.
그 복잡한 가정사 아래에 있는 건 동생인 그도 마찬가지일 텐데.
두 사람 사이에 껴서 둘의 표정을 살펴봐도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해랑은 뭔가 말하려다가도 내 눈치가 보이는지 다시 입을 꾹 닫아 버렸고.
마치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마주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둘이서 볼일 있으면 얘기하고 와.”
“……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 불편함의 원인이 나인가 싶어서 난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빠져주기로 했다.
내가 회사 입구 방향으로 몸을 틀며 말하자 해랑이 가볍게 고개를 꾸벅했다.
여전히 밝은 표정인 연찬도 다음을 기약하며 내게 인사했고.
해랑은 곧바로 동생을 데리고 이야기할 만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슬쩍 보고 나도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 표정 처음 봐.’
뜬금없이 열애설 기사가 떴을 때도 어리둥절한 정도로 끝났던 그였다. 디폴트 표정은 무덤덤한 표정이었고.
방금처럼 다급해 보이는 표정은 처음 보았다.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 본 얼굴 중엔 제일 감정적이었다.
‘요새 멤버들이 해랑이를 감싸고도는 것도 그렇고…… 무슨 일 있나?’
안 그래도 요즘 멤버들이 해랑을 중심으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동생을 마주치고 이런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준해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 이사님. 혹시 해랑 형 보셨어요?”
그는 나를 보자마자 해랑을 찾았다.
전에도 해랑이 나가려니까 갑자기 튀어나와서 붙잡더니. 이번에도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해랑 때문인 듯했다.
“해랑이 동생 찾아와서 얘기하러 갔는데?”
“네?!”
준해는 내 말을 듣자마자 입을 벌리고 잠시 굳어버렸다.
만화였다면 옆에 ‘쿠궁.’이라는 효과음이 붙어있었을 만한 표정이었다.
“또라……, 아니, 걔가 찾아왔어요?!”
‘또라’?
말하는 것을 보니 준해도 연찬을 아는 모양이었다.
아니, 같은 그룹으로 몇 년이나 활동해 왔으면 형제와는 다들 아는 사이인 게 당연한가.
그런데 멤버의 형제를 언급하는 것치고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자기가 연락해서 불렀다던데. 동생이랑 만나는 게 무슨 문제 있어?”
“그 또라, 아니.”
준해는 아까부터 계속 다른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았다.
응. 그러니까 왜 또라이라고 부르는 게 입에 붙은 거냐고.
내가 대답을 기다리자 그는 입술을 깨물더니 조금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걔는 동생도 아니에요. 그게 무슨 동생이에요.”
“으음. 아까 그 동생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긴 한데.”
동생인데 동생이 아냐? 아버지가 다르다고 했던 말의 연장선인가.
준해는 내가 그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는 것까진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사님한테도 무슨 이상한 소리 했어요?”
“잠깐 마주쳐서 얘기하다가 해랑이가 와서 대화가 끊기긴 했는데. 내용은 내가 얘기하기가 좀.”
“……혹시 걔가 해랑이 형 앞에서 가족 얘기 꺼냈어요?”
“응. 그 비슷한 얘기……?”
남의 가정사라 나는 그 내용까지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뭉뚱그렸다.
내 애매한 대답을 듣고도 준해는 혼자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대체 뭔데 그런 반응이야?
“그 자식 분명 일부러 그런 거예요.”
“일부러? 그럴 이유가 있나?”
실제로 그 말을 듣고 ‘멕이는 건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착각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그런데 준해는 확신한다는 말투로 말했다.
“형한테 히스테리 부리는 게 취미예요. 옛날부터.”
옛날부터라니. 내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많은 일이 있었던 걸까.
“설마 요즘 해랑이한테 붙어 다니던 거 동생 때문이야?”
최근 멤버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던 이유가 동생인가 해서 물어보니 준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동생이 뉴레인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해랑이도 모르던 일을 너희는 어떻게 먼저 알고?”
“재민이 형이, 윤환이 형한테 들었다고…….”
……아. 동생이 뉴레인 연습생이고 윤환이가 뉴레인 소속이지.
얘기를 듣고 나니 그간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여러 일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재민이 <최고의 팀메이트> 촬영을 마치고 갑자기 차분해진 게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윤환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서였다니.
재민은 그 사실을 듣고도 혼자서만 생각에 빠져 있었다.
“왜 회사엔 말 안 했어?”
“……개인적인 일로 괜히 신경 쓰시게 할까 봐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신뢰가 부족했나.
동생이 회사로 연락하는 바람에 곤란해했던 준해는 특히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법했다.
‘게다가 그 연락 이후로 멤버들이랑 면담까지 해버렸지, 내가…….’
그래서인지 준해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똑같이 내겐 그 사실을 숨겼다.
사적인 일은 알아서 관리하란 의미로 면담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내 기분이 저조했고 하필이면 동생이 나타난 타이밍이 안 좋았다.
회사와의 관계가 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내 자만이었을지도.
아직도 내가 멤버들에 대해 잘 모르는 탓인지 이런 오해가 생겨나곤 했다.
‘아무튼 회사 주변을 신경 쓰던 게 동생이랑 마주칠까 봐 그랬다는 거지.’
동생이 있는 뉴레인 건물이 바로 옆이라서.
수목원에 촬영하러 나갔을 때만큼은 마주칠 일이 없으니 편해 보였던 거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대충 이해했다.
이해한 것과는 별개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지만.
그동안 멤버들의 행동을 보고도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겼던 게 무색하게도, 해랑은 그날 이후로 며칠간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
“숙소에 혼자 있다고?”
방치되어 있는 동안 뭐라도 하려고 회사에 나오던 게 습관이 되었는지, 모노크롬 멤버들은 출근을 강제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잘 나왔다.
해랑만 안 보이길래 우형에게 물어보니, 숙소에 혼자 틀어박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동생을 만난 게 저번 주 목요일. 금요일에도 안 나왔던 것 같은데 오늘이 월요일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틀어박혀 있다니. 중간에 낀 주말을 포함하면 지금이 나흘째란 소리였다.
“이럴 때는 일단 혼자 두는 게 나아서…….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해?”
“리더인데 이런 일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우형은 또 자존감 떨어지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그동안 대체 어떻게 지내온 건지 틈만 나면 금방 불안감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우형이가 리더긴 하지만 보호자도 아니고…….’
한참을 같이 지내면서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면 무력감을 느낄 만도 하려나.
하지만 이건 리더인 그가 노력한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리 친근한 사이라도 제삼자 신분으로 가족을 차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천재지변 같은 거야. 네가 책임 느끼진 마.”
“……네.”
대답은 했지만 우형의 표정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해랑이 신경 쓰이는지 멤버들도 같이 축축 처지는 상태.
진짜 멤버들 말대로 혼자 두면 되나?
지금이야 비활동기니까 괜찮은데 활동기에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업무로 돌아와서도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으시네요.”
“네? 아니……. 티 났나요?”
함께 기획 회의 중이던 송준오 피디가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몰랐는데 나도 멤버들이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혹시 송 피디님은 해랑이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아세요?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할 멤버들한테 물어보긴 좀 그래서요.”
“저도 뭐 자세한 얘기를 아는 건 아닙니다만. 백해랑 그 녀석은 예전부터 그랬어요. 요즘은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송 피디는 그렇게 말하더니 가볍게 혀를 찼다.
마음에 안 들어서라기보다는 반 정도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그에게서 멤버들의 예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에이펙트 엔터에서 거의 데뷔조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진 애가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직원들이 좀 기대했었죠.”
“거기 SPID 소속사 아니에요?”
“잘 아시네요.”
처음엔 아이돌 문외한이었던 나. 회의하며 직원들이 다른 아이돌 예시를 들면 혼자만 몰라서 몰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는 했었다.
그런 내가 SPID의 소속사 이름을 바로 알아듣자 송 피디는 많이 발전했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나저나 해랑도 그 대형 소속사 연습생이었다니. 그래서 SPID 멤버랑 친했구나.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왜 떨어졌는지 알겠더라고요.”
“왜, 왜요?”
“성격이 워낙 폐쇄적이어서요.”
“해랑이가요?”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내가 보기에는 자기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한텐 관심을 크게 안 두는 정도였지, 폐쇄적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는데.
내가 잘 이해를 못 하고 있으니 송 피디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그때는 뭐라고 할까. 평소에도 지금 같은 상태였다고 보시면 돼요.”
지금처럼 혼자 틀어박히는 게 일상이었다니.
과묵한 수준이면 괜찮지만 폐쇄적인 성격이라고 할 정도면 아이돌 활동이 가능할까?
나도 바로 이런 생각이 드는데, 아마 해랑의 연습생 시절 소속사는 더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까. 그 때문에 해랑의 데뷔를 번복한 모양이다.
“그래도 여우형이 나이가 제일 많아서 연습생 때도 거의 리더처럼 잘 챙겨줬죠. 현준해랑은 의외로 잘 지냈고. 그러더니 주변 사람들한테는 하나둘 정 붙이더라고요.”
지금도 우형은 자기가 아무것도 못 한다고 혼자 자책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가 예전부터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유한이랑 명재민은 원래 두루두루 잘 지내서 그 녀석하고도 무난하게 잘 지냈던 것 같고요. 아니, 유한이랑은 성격이 안 맞아서 좀 싸우긴 했는데.”
“예……?”
“입 다물고 있는 것보다는 싸우는 게 나아서 그냥 놔뒀습니다.”
과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반항기 갓 지난 청소년들이 모여 있으면 그런 일도 비일비재한가.
전부터 멤버들의 과거가 궁금하긴 했던지라 나는 상체까지 기울여가며 집중해서 들었다.
모노크롬 멤버들의 연습생 시절 일화는 내가 플레이하기도 이전.
정말 이 세상에서만 일어나던 일이었으니까.
“덕분인지 나아졌다가 또 이유 없이 폐쇄 성향 도졌다가 오락가락하는데. 보이그룹 런칭 준비할 때도 그 상태라 제가 그랬어요. 너 그러다 데뷔 못 한다고.”
“해랑이가 그 얘기 듣고 좀 나아지던가요……?”
“아뇨. 여전히 그러고 있는데 데뷔조로 픽스되던데요.”
“…….”
그는 자기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몰랐다.
그러니까 플레이어였던 나는 멤버들이 어떤 상태인지, 무슨 성격인지 전혀 몰랐다.
오로지 능력치 하나만 보면서 데뷔조를 꾸렸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해랑이가 데뷔할 수 있었던 거야……?’
개인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대표로서 강행한 게 현재의 모노크롬 5인조를 만들었다는 아이러니.
내 업보가 아니라 얻어걸린 결과물은 처음 접해서 되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