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73화 (73/430)

# 73화

마이 엔터에서 레벨이 오르는 건 관계자 외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기준인지, 쇼케이스 팬미팅 이후로 해랑의 수치에도 변화가 있었다.

높다고는 할 수 없었던 그의 작곡 레벨.

기존에는 경험치 게이지를 꽉 채운 레벨2였으나, 현재 레벨4로 두 단계를 한 번에 오르고도 경험치 게이지가 그대로 차 있었다.

경험치가 게이지를 가득 채우면 자동으로 레벨이 오르고 다시 처음부터 채워나가는 줄 알았는데.

경험치와 레벨 상승의 기준이 각각 다른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안이었다.

‘작업은 많이 하는데 공개를 안 해서 그런 건가?’

개인 무대에서 공개한 것은 온전히 그의 자작곡이라기보다는 우형과 같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경험치가 쌓인 만큼 레벨이 다 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경험치는 말 그대로 작곡 경험을 뜻하는 것 같았고.

두 단계를 뛰어넘고도 아직 남아 있는 경험치. 지금까지 혼자서 얼마나 작업을 해 온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우형이가 잠재력을 느낄 만했어.’

본격적으로 공개한다면 과연 레벨이 어디까지 오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런고로 최근 비활동기를 맞이하여 나는 우형과 함께 해랑을 설득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이 아까운 경험치들을 그대로 썩히긴 아깝지 않은가.

쇼케이스 팬미팅에서 첫 공개를 마친 만큼, 그도 설득마저 안 통할 정도로 완고한 건 아닌 듯했고.

그리고 마침 복도에서 우형과 마주쳐 그 얘기를 꺼냈다.

우형은 요즘 며칠 뒤 꽃놀이 컨텐츠 촬영일에 어쿠스틱 버전에 맞춰 기타를 치고 싶다며 연습 중이었다.

“그런 거 있다잖아. 믹스테이프? 그런 건 부담감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

믹스테이프란 게 있다는 것은 송준오 피디에게 들었다.

테이프라고 해서 정말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내는 게 아니라 조금 러프한 형태의 앨범을 칭하는 것이었다.

래퍼 같은 힙합 계열 아티스트들이 주로 내는 듯하고.

‘해랑이도 메인 래퍼니까 마침 딱이지.’

정식 음원 발매가 아니라 정말 공개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우형처럼 모노크롬 앨범에 직접 자작곡을 넣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공개하는 게 좀 더 허들이 낮지 않을까.

송 피디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해서 꺼낸 제안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도 우형은 어째서인지 소극적으로 나왔다.

“좋은 생각인데…… 좀 천천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적극적으로 나서던 그였다.

이제 막 물꼬를 텄으니 탄력 받아서 바로 밀어붙이고 싶었는데.

당사자가 아직 마음이 없는데 급하게 재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나도 동감이었다. 빠르게 마음을 열어준다면야 좋겠지만.

그래서 그가 하는 말도 이해는 갔지만,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이유는 영 추측이 가지 않았다.

“다른 이유라도 있어?”

“네?! 아니, 아뇨. 해랑이도 좀 생각할 게 많지 않을까 하고. 으음.”

우형은 또 버릇처럼 눈을 굴리며 말했다.

말하다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 항상 저러던데.

‘거짓말은 못 할 타입이네.’

내가 미심쩍게 쳐다보자 자기도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는지 우형은 결국 해명을 포기했다.

“죄송해요.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그 말을 남기고는 연습실에 핸드폰을 놓고 왔다며 갑자기 자리를 피했다.

‘……뭐야?’

멤버들의 이상 행동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잠시 볼일이 있어 나갔다 오던 참에 회사 로비에서 해랑과 마주쳤을 때였다.

시간 대부분을 연습실, 작업실에서 보내는 멤버들.

가끔 로비에서 마주치면 대개 바람 쐬러 나가거나 카페에 가는 길이었다.

“카페 가려고?”

“네.”

어디 가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냥 만났으니 아는 체 정도의 질문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용건에 끄덕이며 각자 갈 길을 가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준해가 튀어나왔다.

“형, 어디 가?!”

“카페.”

“꼭 지금 가야 돼? 내가 사다 줄게.”

회사 건물 1층에 들어와 있는 카페는 회사와 출입구가 달랐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도 고작 몇 미터만 더 걸으면 되는데 자기가 대신 가주겠다는 건 뭐지.

해랑도 이상했는지 갑작스러운 준해의 친절을 대번에 거절했다.

“됐어. 바로 앞인데 네가 왜?”

“그냥 내가 사다주고 싶어서!”

“왜?”

“혀, 형한테 고마워서 그러지.”

“뭐가.”

“아, 그냥!”

준해는 고맙다고 말한 것치고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버럭 성질을 부렸다.

이건 사이가 좋은 건가, 다투는 건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해랑은 굉장히 귀찮아 보였다.

뭐야, 이 내용만 훈훈한 이상한 대화는.

보고 있자니 결론이 안 날 것 같아서 내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이럴 시간에 벌써 주문하고 나왔겠다.”

“그, 그러네요. 그냥 빨리 갔다 오자!”

준해는 그냥 같이 가자며 해랑의 등을 밀며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에 쫓기는 일이라도 있나.

그 후로도 지켜보니 멤버들의 이유 모를 행동들은 해랑을 중심에 두고 이어지는 듯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이건 또 뭐 하는 거람.

“너네 그렇게 뭉쳐 있으면 안 더워?”

퇴근하려는데 멤버들도 숙소로 돌아가려는지 가방을 메고 로비를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회사 밖이 위험한 곳이라도 되는 양 해랑을 둘러싸고 나머지 멤버들이 앞뒤 양옆 4면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요새 날씨가 쌀쌀하더라고요.”

“날씨 이렇게 따뜻한데?”

“저희가 추위를 좀 많이 타요.”

이상하게 보는 내 질문에 대답한 한이가 “어휴, 추워.” 하면서 능청스럽게 몸을 떨었다.

‘저 포지션은 돌대회에서 재민이랑 같이 퇴근할 때 이후로 처음 보는데.’

출소 포지션……. 아니, 보디가드 포지션.

해랑이 답답하다면서 그 사이에서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면 멤버들도 우르르 따라갔다.

이건 또 무슨 신종 놀이인가.

근데 그 중심에 있는 해랑은 영문을 모르는 걸 보면 거의 괴롭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멤버들은 해랑에게만 비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도 뭔가 숨기는 것처럼 아무것도 말해주지를 않았다.

‘네 명만이 아는 뭔가가 있나 본데.’

그게 뭘까.

그렇게 멤버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이 반복되던 중, 시간이 지나 꽃놀이 컨텐츠 촬영일이 찾아왔다.

회사 밖을 경계하며 이상 행동을 보이던 멤버들도 정작 밖으로 나오니 다들 편안해 보였다.

‘회사 근처에 뭔가 문제 있나?’

연예인이니 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던 걸까. 해랑이 제일 키도 크고 눈에 띄니까?

아니면 혹시 기자라도 붙었나? 그렇다면 회사에 말해줬을 법한데.

지금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멤버들 모습을 보니 큰일은 아닐 거란 생각에 나도 이유 찾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가 오늘 찾아온 곳은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목원.

서울 근교의 수목원이나 공원보다는 한산한 편이었기에 섭외한 곳이었다.

대낮에 촬영하면 자연광이 너무 강해서 라이브 클립은 오전 중에 촬영 완료.

메이킹 영상도 하나 필요했기 때문에 지금은 비하인드 촬영 겸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나 이거 찍어줘.”

라이브 클립 촬영 후 우형에게 기타를 건네받아 대신 메고 있던 재민.

잠시 우형과 준해에게 기타 기본 코드 속성 강의를 받더니 결국 포기했는지 그냥 ‘잘 치는 것 같아 보이는 느낌’만 내며 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좀 더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고 있어 봐.”

“널 만나고 내 세상은 so beautiful~.”

재민이 아무렇게나 치느라 맞지 않는 기타 반주에 의 후렴부를 불렀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던 우형이 잘한다며 그를 부추겼다.

“이야. 잘 나온다. 이거 올려야겠다.”

“영상으로 찍은 거 아니지?”

“잘 나왔어.”

“그래서 뭐로 찍었냐고.”

영상이니, 사진이니 하며 투닥거리는 멤버들 옆에서 해랑은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일광욕 중이었다.

햇살이 점점 강렬해지자 조금 더웠는지 한 손에 작은 생수병을 들고 있던 해랑.

그가 물을 한 모금 마시려는데 옆에서 한이가 관심 있게 쳐다보더니, 물병 뒷부분을 툭 쳤다.

“푸흨.”

해랑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물을 뿜어 버렸고.

그 소리에 다른 멤버들이 전부 행동을 멈추고 물을 뚝뚝 흘리는 해랑을 쳐다봤다.

“야! 유한이!”

“왜, 왜. 이 정도도 못 해?!”

우형은 큰일이라도 난 듯 식겁해서 한이를 나무랐다.

이 정도 장난에 저 정도로 과민반응을……?

‘요즘 다들 왜 저렇게 해랑이를 과보호하는 거지.’

멤버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한이는 그 기세에 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결국 쫓아간 멤버들에게 금방 붙잡혀 버렸지만.

해랑이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땅에 메다꽂듯이 힘으로 휘두르자 메인 보컬의 목청이 울려 퍼졌다.

자기들끼리는 나름 필사적으로 쫓고 쫓기는 모습이었지만, 내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어서 그런가.

‘음. 뭔가 풀밭에 강아지 풀어놓고 노는 거 보는 기분.’

다음 활동 계획도 짜야 하고 <최고의 팀메이트> 방영 때문에 생각이 많은 시기였다.

회사에 있으면 일 걱정이 불쑥불쑥 들곤 했는데 밖에 나오니 확실히 기분 전환이 되었다.

모처럼 여유로운 환경. 지금만큼은 이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고.

‘하아.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

……하고 생각했던 게 플래그였던 걸까.

“안녕하세요. 뉴마 이사님이시죠?”

오늘도 직장인의 포션을 마시러 카페에 들른 참이었다.

이 카페 매출의 8할은 나를 비롯한 뉴마 직원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았다.

커피를 들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뭐야. 소속사 찾아온 외부인? 설마 기자?’

전에 수연도 회사 앞에 찾아온 기자를 피하느라 뉴마로 들어왔다지 않았던가.

나는 경계심 어린 눈빛을 장착하고 바로 철벽 칠 준비를 하며 뒤돌았다.

그러나 그곳에 서 있는 건 기자라기엔 목소리도 얼굴도 앳된 남자애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뉴레인에 연습생으로 새로 들어왔어요.”

“어? 으응.”

확실히 연습생이라는 말에 바로 믿음이 갈 만한 페이스.

그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기에 나도 얼결에 맞잡았다.

내가 인사를 받아주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소개를 덧붙였다.

“모노크롬 해랑 형 동생이고요.”

“정말? 해랑이 동생?”

“네.”

갑자기 부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한 반응만 보이던 나는 이어지는 소개에 깜짝 놀랐다.

뉴레인 연습생이 나한테 인사할 이유가 있나? 했는데 있었구나!

그나저나 동생이 뉴레인 연습생으로 들어오다니 이런 우연이.

멤버들의 가족 관계를 잘 아는 건 아니라 동생도 연예인을 꿈꾸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안 닮았네.’

해랑은 확신의 냉미남인 반면, 동생은 개구진 느낌의 웃는 상이었다.

동생이니 그보다 나이가 어린 것을 고려하더라도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뭐, 한 명은 엄마를 닮고 한 명은 아빠를 닮았을 수도 있겠지.

“해랑이 만나러 왔어? 불러줄까?”

“제가 부르긴 했는데…….”

불렀으면 불렀지, 부르긴 했다는 건 뭐지.

해랑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모른다는 듯 모호한 뉘앙스였다.

“아차. 제 이름 말씀 안 드렸죠. 박연찬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박연찬?”

“아.”

해랑이 백 씨인데 동생 이름이 박연찬?

내가 ‘백’을 잘못 들었나 해서 별생각 없이 곧바로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 뒤에 시선을 두더니 웃는 눈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다르거든요.”

“뭐?”

“야, 너……!”

언제 왔는지 바로 옆으로 다가온 해랑이 그 말을 듣고는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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